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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din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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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din
작품등록일 :
2017.08.19 15:44
최근연재일 :
2019.03.10 20:19
연재수 :
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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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5
추천수 :
86
글자수 :
38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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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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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절대자의 면모

DUMMY

<안자영 - 세계의 구원자이자 엘프 납치 상습범>


털석-


집으로 돌아온 나는 빅대디의 목에서 내려와 어깨에 들쳐매고 있던 가슴이 묵직한(?) 처자를 조심스레 바닥에 앉힌 후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리고 그 일련의 행동이 자연스러우며 동시에 강렬했는지 눈앞에 서있던 나의 친구는 눈을 크게 뜬다.


“사과합니다! 제가 너무했습니다.”


“......아니...그것보다 이분은 또 뭐야? 에, 엘프? 또?!”


다다다다-


그저 단순히 내가 기절시켜 데려온 엘프가 놀라운 것 뿐이었나보다.

임예선의 목소리는 결코 작은 부류의 것이 아니었기에 마당에서 장작을 패던 스방이네 세 명까지 불러들였고 기어이 소란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주인님! 또 엘프를 납치해오신 겁니까?”


“여자다~! 친구가 늘었어~! 응···? 근데 어디서 본것...같기도...”


“어, 어어···? 얘, 얘 세계수 마을의 실라 아니야?!”


누가 들으면 납치 상습범으로 오해할만한 발언. 스방이의 발언은 그러했고 스방이를 졸졸 따라다니는 두 여엘프는 실라의 얼굴을 알고 있는지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응. 얘 이름이 실라라고 하긴 했는데 유명한 애야?”


“엘프 부족이라면 거의 모르는 엘프가 없을 정도입니다 주인님- 엘프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사’의 꿈을 꾸는 엘프로 유명하죠. 타 부락을 방문하기 위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엘프들에 비해 실라는 언제나 홀로 다니기도 하고요. 그래서 엘프들이 실라의 이름과 얼굴을 더 잘 아는 이유이기도 할겁니다.”


“오. 루드릭의 제자로 있더니 설명도 아주 기가 막혀요. 대견스럽다 우리 스방이!”


“애, 애 취급하지 마십시오~ 일단 실라는 저희 집으로 옮길까요?”


고개를 끄덕이며 잘 대접해주라는 말까지 잊지 않고 그 셋을 보내자 1층 홀에는 임예선과 내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소연이는?”


“방에.”


“으, 응. ......예선아? 내가 정말 잘못했어.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너한테 궂은 일만···”


“사, 사과 했잖아~ 그만해...그리고 솔직하게 자영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괜히 그런 것도 있고- 그러니까 그만하자~ 응?”


하지만 왠지 모르게 친구의 눈에선 안타까우면서도 쓸쓸한 빛이 보였다.


“친구 사이에 이런걸로 싸우는게 이상하지 그치~”


울컥-


난 순간 가슴에서 치고 올라오는 감정에 살짝 얼굴이 굳어버렸다. 스스로조차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 그 미묘한 느낌에 순간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고 내 얼굴을 살피던 임예선도 놀랐는지 나에게 물어오기 시작한다.


“내, 내가 뭐...잘못 말했을까? 조금 표정이 안좋네 자영이···”


“......없지. 그런거 전혀.”


심지어 이제는 스스로가 취하는 행동 조차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상대가 좋게 보지 못할만큼 거친 움직임으로 그녀에게서 등을 돌려버리는 나. 게다가 이어지는 대답은 더더욱 가관이다.


“야, 야! 너 지금 화난 것처럼 밖에 안보이거든?! 뭐라고 말이라도 하던가! 남자가 뭐 그렇게···”


“누가 화났다고 그래. 네말대로 여기서 이야기 끝내자. 그래도 다음부턴 혼자 두고 둘이서 가버리지 말고. 그 후에 전투가 벌어져서 혼자 꽤 고생했다고-”


“저, 전투? 지, 진짜야?! 다친데는···”


“죽어도 살아나는데 너가 걱정할 필요가 있냐?”


나는 그대로 그녀를 지나쳐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공복감에 배에서 소리가 났지만 방금전까지 있던 식욕이 그녀와의 대화로 완전히 사라져버렸기에 그냥 방으로 들어가 잠을 취하고 싶을 뿐이다.

미리 계곡에서 씻겨온 몸을 침대 위로 던져버리고 천정을 향한 시야에 인터페이스 창을 띄워 살피기 시작했다.


‘돌아가야 해. 이 세계에 끌려온 이유도 파악했으니 클리어 조건도 나온 셈이나 다름 없고. 어서 빨리 돌아가야지. 임예선을 위해서도 유소연을 위해서도.’


나는 스텟창을 확인하며 성장 방향을 머릿속으로 수정했다. 지금껏 느긋한 시간을 갖고 확실하고 안전한 성장을 생각하며 균등하게 스텟을 분배했지만 그래선 안됐던 모양이다.


‘너무 안일했어. ...솔직히 임예선이란 친구도 점점 여자로 보이기 시작하고. 이 세계에서라면 소연이와 계속 함께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던 모양이야. 세계의 구원자라는 타이틀도 좀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현실 세계보다 여기가 훨씬 즐거우니까.’


성장 방향을 대폭 수정하고 스킬 트리로 넘어가 공격 계열을 주로 살핀다.


‘그게 임예선을 괴롭게 만든 모양이야. 여자가 감당하기에 이 세계는 거칠어. 평소에 안그러던 친구가 저런 모습을 드러낸다는게 확실한 증거 아니겠어-’


나는 쏟아져내리는 잠기운 속에서 정신을 한 번 더 깨웠다.


“레벨 471이 뭐야. 너무 약하잖아.”


스스로의 약함이 너무나 싫어져서 잠도 달아나 그대로 다시 집을 나서기로 한다.






<유소연>


-“야!! 이 밤에 혼자 어딜가냐니까!”


-“자, 자영아...? 내일 같이 가자~ 응? 아니, 우리랑 같이 가기라도 하자~! 특별한 거 하러 가는거지~?”


해가 진 시간에 홀로 산책을 나가겠다는 남자의 말은 두 여자를 집 밖으로 나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 잠깐 산책 다녀오는거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희는 쉬고 있어-”


-“...진짜 질린다 질려! 너 삐진거 맞잖아 지금! 아까 내가 뭘 그렇게 못할 말을 했다고 이러는건데 대체!”


“그런거 아니래도~ 그리고 죽어도 무조건 다시 살아서 돌아오긴할텐데 왜 그러냐 둘 다~”


“아 진짜--!! .........됐어 소연아. 들어가자. 어디서 다치든 찔리든 짤리든 먹히든 알게 뭐야--!!!! 죽으라지 멍청이가!!”


그 때 유소연은 볼 수 있었다. 임예선이 눈시울을 붉히며 소리를 지르고 돌아섰는데도 안자영은 여전한 태도로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선이에게는 미안한게 한 둘이 아니네...소연아, 예선이 잘 부탁할게.”


그 웃음이 아주 가식이라는 것. 그 웃음이 가식이 아니라면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안자영이란 남자가 그런 웃음을 짓고 있는 이유가 ‘웃기 어려운 심정’이기 때문이라는 것까지 생각할 수 있는 그녀였다.


“자영아. 자영이 뭔가...이상한 생각하고 있는거 아니야?”


“이상한 생각···? 아닐꺼야. .........맞는 생각일거야.”


“자영아 또! 우리들한테 왜 말도 안하고 그러는거야! 이번도···”


하지만 유소연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 남자가 번번히 그녀들과 상담도 없이 일을 벌인 적은 허다했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남자의 눈에 비친 색은 바로 ‘초조함’. 무언가에 쫓기고있거나 여유가 없이 꽉막힌 느낌의 빛. 그 빛이 눈에 어려있었던 것이다.


‘자영이가 이런 적은...처음인데.’


끄덕-


유소연은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여버린다. 그것도 아주 활짝 만개한 미소와 함께 말이다.


“답답해서 그러구나? 다녀와! 기다릴게!”


“.........푸핫~!”


그 대답에 순간 얼이 빠진 남자였지만 곧 육성으로 웃음을 터트리더니 새로 깨닫는 것이 있었다. 다른 것 아닌 그녀가 말한 부분.


“그렇구나. 나 답답했구나-”


뭐가 답답한지는 남자가 잘 알 것이다.

수 시간 전 임예선이 뱉었던 하나의 단어. ‘친구’.


자신이 왜 그러한 감정의 변화가 일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그 남자가 홀로 마물들과 싸우며 깨우칠 부분이었다.






<실라 - 정의로운 엘프 기사>


“저, 저런 처죽일놈이···!”


“뭐, 뭐에요···! 언제 깨어났습니까?!”


스방이는 어느새 자신의 뒤에서 거친 분노의 콧숨을 내쉬고 있는 실라를 발견하고 기겁했다. 그가 하고 있던 일이 마당에서의 소란을 자신의 집 현과문 틈으로 엿보는 일이었던만큼 더욱 놀란 모양.


“자신있게 사과하겠다고 했거늘! 저런 남자는 그걸 떼버려야···!”


“몸은 좀 괜찮습니까 실라?”


“.........그쪽은 누구시죠? 그런데 왜 제가 이곳에 있는겁니까?”


뭔가 대단히 인식에 문제가 있는 듯 보이는 모습. 실라라는 정의로운 엘프는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관측하는 불의를 우선하여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뒤늦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 물어오는 실라에게 간단한 경위만을 설명한 스방이는 자신과 한 지붕 아래에 사는 두 여성엘프를 소개했다.


“...여튼. 실라는 그래서 이곳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같이 사는 두 친구 ‘티아’와 ‘수르카’ 입니다.”


“오! 이런 곳에서 동족을 만나게 되다니. 정말 기쁘군요- 제 이름은 실라입니다.”


실라가 내민 손을 마주잡으며 악수를 하는 것이 엘프식의 인사와 사뭇 달랐지만 두 여성 엘프가 인상이 굳은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스방이가 ‘친구’라고 소개한 것 때문.


“친구라 한들 한 지붕 아래 남녀가 같이 지내다니 신기하네요. 아···! 이럴 때가 아닙니다. 저 비양심적인 인간을 쫓아야합니다! 저러고 혼자 나가는 곳이 어딜지 매우 신경쓰이네요!”


“아, 아? 실라?! 자, 잠깐···!”


스방이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말리려했지만 실라의 움직임이 얼마나 빠르고 거침없는지 그녀는 순식간에 현관을 나서 안자영이 사라진 숲길로 걸음을 내달린다.


“이크···! 나, 나도 잠깐 다녀올게. 먼저 자고 있어 알았지?”


꽈아악!


하지만 스방이는 좀처럼 일찍 실라를 따라가지 못했다. 두 엘프가 스방이를 흠모하는 것은 스방이만 모르는 사실. 두 여성의 입장에서 실라와 같은 미인이 나타나 스방이를 끌어들이려하는데 어찌 쉬이 보내겠는가.

결국 스방이는 1분이나 그녀들을 어루고 달래어 겨우 그곳을 나올 수가 있었다.


‘하, 하긴...이곳에선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인데 걱정이 될만도 하겠지.’


여전히 스방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저게......뭐야···”


스방이는 겨우 실라를 쫓아 그녀와 나란히 풀숲에 몸을 숨겼다. 그녀가 숨어 지켜보는 곳은 달빛이 잘 드는 높은 언덕.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의 시선을 빼앗은 장본인은 홀로 나온 안자영이란 남자였다.


“후우! 실라......! 저 분이 그렇게 나쁜 분은 아닙니다! 그러니 저희는 돌아가서···’


실라가 무엇에 그리 넋을 잃어버린지도 궁금해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을 하던 스방이. 하지만 고개를 돌려 그녀와 시야를 공유한 다음에는 그것을 이어내지 못했다.


“......역시.”


“저게...정말로 인간이라고···?”


스방이는 쓰게 웃었다. 루드릭의 제자로 들어가 온갖 고생 끝에 재능을 꽃피웠던 스방이는 리온 폴 워커가 잠든 폐성으로 가는 마물 앞에서 선전했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굉장히 강해졌다는 자만심이 몸 곳곳에 찌들어있었던 것.

하지만 달빛 아래의 언덕에 널브러진 수십 조각의 마물 사체를 보고는 그러한 기분이 싹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나 같이 강한 마물들이었다! 덩치며 이빨이며 발톱이며···! 하나 같이!’


처음 저 남자를 알게된 이는 오죽하겠는가. 과연 저 존재는 정말로 인간인 것일까- 소문의 레오 1세 또한 단 일의 타격도 없이 저 마물들을 도륙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치 않았던 실라. 그녀의 눈에 그의 뒷모습은 아주 절대적으로 비쳤다.


‘나와 붙었을 때는 단 3할도 실력 발휘를 안했군.’


스크래치가 난 자존심에 살짝 이를 다무는 실라.

그렇게 풀숲 사이로 이동하며 마물을 찾아 끊임없이 전진하는 안자영을 미행하던 두 남녀는 곧 자신의 무기를 조심히 쥐어야했다.


키에에엑!!

커허어엉!!!


‘키메라!’


‘아, 아무리 주인님이라도 혼자 저건 무리다! 내가 가세해야···!’


하늘의 제왕이라는 그리폰과 쌍벽을 이루는 마물, ‘키메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활공이 가능한 그리폰이기에 감히 키메라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단언컨데 땅을 딛고 다니는 짐승 마물 중 키메라보다 강한 이를 묻는다면 누구나가 침묵해야할 부분. 즉, 키메라는 최강의 짐승이나 다름 없다는 소리다.

머리는 한차례 안자영이 조우했던 변종 그리폰과 닮아 사자의 아귀를 하고 있었고 등에는 악마의 영이 씌인 마법을 사용하는 염소의 머리. 그리고 꼬리는 그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길어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사자의 몸과 머리가 쏟아내는 공격들은 하나 하나가 빛살처럼 빠르며 톱날처럼 강하고 염소가 내리는 벼락은 살갗을 벗겨낼만큼 날카로운데 꼬리의 뱀이 흩뿌리는 독안개는 더욱 답이 안나오는 부분.

실라와 스방이가 검자루를 쥐는 것도 아주 당연한 판단이었다.


스륵-


“......?! 이, 이봐요. 지금 어쩌자고···! 저 남자를 죽게 둘 생각이에요? 아무리 못나도 지성을 가진 생명···”


실라는 스방이가 팔을 뻗어 자신의 앞을 가로막자 그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자영에 대해 아는 이라면 누구나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도울게 없습니다. 키메라와 싸우기엔 저희는 약해요.”


“싸우자는게 아니라 구해내자는 말이에요···! 세 명이 합심을 잘 해본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잖습니까···!”


“저 분은 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있는게 주인님을 돕는 일이에요. 저 분과 다르게 저희는 쉽게 죽고, 저 순진한 분은 저희 죽음을 슬퍼할테니까요.’


처음 들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지만 스방이란 엘프가 헛소리를 늘어놓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실라. 곧 그녀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키메라와 1:1로 조우한 인간 남자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릉-! 키기이이-


남자가 처음 꺼내든 것은 와이어 줄이 손잡이 끝에 걸린 하나의 단검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요술을 부리는 것인지 허공에서 와이어와 연결된 단검들이 줄줄이 등장했고 그 단검이 6자루를 넘어 11자루까지 등장했을 때는 단검들이 남자의 손에 있지 않았다. 양손 열 손가락 사이에 끼더라도 최대가 여덟자루인데 꺼내든 단검은 총 11자루. 달빛 아래의 남자는 와이어로 이어진 11자루 단검 중 마지막 열 한번째 단검만 쥔 채 그것을 허공에 빙빙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쉬햐아아아아아!!!!


와이어와 단검들이 내는 소리가 얼마나 살벌했으며 키메라 조차 움직임이 조심스러울까. 남자가 허공에 무섭게 돌리는 단검들이 달린 와이어의 길이는 무려 20미터! 열 한자루 단검의 무게에 원심력까지 포함한다면 돌리는 것이 고작일것처럼 보였지만 안자영은 잔상을 남기는 속도로 돌리고 있었다.


크허어엉!!!!


하지만 키메라가 무엇인가. 지상 최고의 짐승이라 불리는 마물! 와이어와 단검에 의한 데미지쯤은 감수하고 들어가 고기를 뜯으면 되는 것이다! 흉포한 사자 울음 소리를 터트리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파고드는 키메라가 실라의 몸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촤악-

팍!! 쉬리릭!!

콱- 콰득! 파바박!! 푸화악!!


하지만 실라는 반쯤 일어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상상도 못한 안자영의 반격에 경악한 것이다.

가장 바깥을 돌고 있던 단검과 와이어가 키메라의 몸에 생채기를 내는 순간 남자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돌리던 와이어에 한차례 더 힘을 주더니 들고 있던 단검을 바닥에 박아 고정! 그리고 사자의 아귀가 자신을 덮치는 아찔한 순간 키메라의 머리 위로 도약해 등에 있는 염소와 마주한 것이다.

그 뿐인가. 키메라가 머리 위 대상에겐 반응이 약하다는 것쯤은 어련히 잘 알고 있는 안자영. 단검 와이어의 회전력을 유지시키고 키메라 등에 올라선 남자가 기다리는 것은 키메라를 감싸고 돌아올 단검들이었다. 키메라의 커다란 살점을 파고들며 순식간에 거체를 둘둘 싸매기 시작하는 와이어와 단검들. 그 마물에 올라타있다는 것은 그 와이어와 단검에 자신도 희생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안자영은 오히려 귀신 같은 솜씨로 공격을 강화할 뿐이다.

신들린 움직임으로 묘기를 부리듯 와이어를 피해내고 쇄도하는 단검을 잡아채 키메라의 몸체에 내리꽂는 연속! 그 하나 하나의 몸짓은 경이로운 속도였으며 울려퍼지는 소리 또한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케헤에에에에--!!


곧 키메라가 전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서운 속도로 자신의 생명력이 감소하는 것을 느꼈는지 등에 달린 염소의 머리가 기이한 포효를 지르며 허공을 향해 마법을 캐스팅하는 것. 허나 변종이 아닌 이상 키메라의 수는 안자영에게 읽힌다고 보아야했고 지금 또한 예외일 수가 없었다.


척- 피잇!

쿠릉···!

번쩌억-!!!!


안자영은 키메라가 준비한 회심의 일격을 아예 무효화시켰다. 염소 머리가 마법을 준비하며 보인 움직임만으로 어떠한 마법을 준비할 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던 남자는 마지막 열한번째 단검을 잡아 높은 허공으로 내던진 것이다. 자신을 머리 위를 노리고 떨어질 벼락의 궤적. 그곳으로 전도체 역할의 단검을 내던져 와이어를 타고 벼락 마법이 흐르게 만든 다음 유유히 공중제비를 돌아 키메라에게서 떨어지는 안자영이었다.


케헤에에!

크허어어어엉---!!!!


하지만 마법을 사용하는 마물이 자신의 마법에 저항을 가지지 못했겠는가. 키메라는 온 몸을 옭아맨 와이어와 박힌 단검을 통해 스스로의 벼락을 고스란히 입었지만 큰 데미지가 없어 보였고 그 사실을 남자 또한 충분히 인지하며 다음 수를 준비한다.


‘가죽을 뚫고 들어간 단검이 어느 정도 데미지는 줄 줄 알았는데. 착오로군-’


휘리릭-

스륵- 샤락.


속으로 되내이는 말에 비해 안자영의 눈빛과 몸짓은 아주 여유롭다. 근접전에서 주로 사용하는 드워프제 단검을 한자루씩 양손에 쥐고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손에서 회전시키는 모습.

그러자 키메라는 아까까지의 패기로운 모습과는 달리 사자의 머리를 낮추며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한다. 상대가 사냥하기 쉬운 적이 아님을 인식하고 천천히 탐색전에 나선 것이다.


‘피가 반절은 깎였을텐데 이제서야 제대로 하겠다니. 역시 짐승 대가리야. ......피가 많든 적든 별 상관 없지만.’


키메라가 앞으로 취할 패턴이 모조리 보이는 안자영에게 키메라라는 위대한 마물은 아주 작아보였다.


샤하아아아아......!!!


‘음? 뱀꼬리 패턴인가- 범위 밖으로만......아니다! 단순한 패턴이 아냐···!’


운이 안좋아도 어쩜 이렇게 안좋을 수가 있을까. 안자영은 키메라가 취하는 동작이 어떤 공격을 준비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추측하고 머릿속에 수많은 대응책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지금 취할 수 있는 수는 이거 밖에 없어! 도박에 가깝지만......!!’


올 인 원 유저들이 키메라와 조우했을 때 가장 최악이라 부르는 히든 패턴. 키메라도 빅대디처럼 3% 확률로 발동하는 히든 패턴이 있지만 그 종류가 사자 머리, 염소 마법, 뱀 상태이상의 세 종류 중 하나로 발동하기에 사실상 ‘가장 최악이라는 지금의 패턴’을 보일 확률은 1%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안자영은 떡하니 1%의 확률에 당첨되었고 결국 도박에 가까운 수를 쓸 수 밖에 없는 셈이다.

하지만 만일 올 인 원 마니아 유저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안자영을 미친놈이라 부를 것이다. 또는 자살을 위한 방법이라고.


쿠화아아아아아---!


곧 전 올 인 원 유저들을 경악하게 만든 최악의 브레스가 뱀의 입에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수많은 종류의 상태 이상 독을 뿜는 키메라의 뱀꼬리. 히든 패턴에서는 ‘면역 및 제거가 불가’한 ‘마비’독이 60초간 살포한다. 반경은 50미터이며 60초간은 그 말도 안되는 마비 영역이 유지되기에 사냠감은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그 동안 키메라가 얌전히 있어줄 리가 만무. 마비된 사냥감의 살갗을 찢는 것은 염소의 번개며 뼈까지 씹어 없애는 것이 사자의 아귀다. 이 패턴이 발동되기 전에 무조건적인 도주가 답.

하지만 안자영의 다리는 여전히 그 범위 안에서 땅을 굳게 딛고 있을 뿐이다. 그저 인벤토리에서 몇몇의 아이템을 흘릴 뿐.


‘몸이 움직일 때 과연 눈 앞에는 키메라가 빌빌대고 있을지. 그게 아니라면 첫날의 들판이 펼쳐져 있을지 궁금하군.’


혼자가 되어서야 드러난 그 남자의 성향은 입에 걸린 미소가 나타내고 있었다.

아주 호전적이며 도전적인 자의 얼굴이었으니까.






남자가 보지 못하는. 남자가 일으킨 일련의 과정. 마비로 인해 모든 감각이 차단되고 눈 앞을 응시하는 것 외에는 눈 하나 깜짝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작은 인간 한 명이 일으킨 말도 안되는 기적.

남자가 떨어트린 세 개의 아이템. 떨어트렸다기보다 그렇게 활성화되는 아이템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크르르르르......!!

스하아아아···!


여전히 마비 독안개를 흩뿌리며 어슬렁어슬렁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키메라는 그 거리가 3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낮게 울었다. 아직도 몸 곳곳에 꽂혀 피를 철철 쏟아내고 있는 단검들. 그것에 많이 아프고 화가났는지 곱게 죽이지 않겠다는 짐승의 표현과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키메라는 자신이 전투에서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안자영의 첫번째 노림수에 이미 걸려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즈즉- 파앗!

쩌엉--!


날카로운 쇠붙이가 찢어지는듯한 굉음을 발생시키며 키메라가 밟은 함정 발동식 마법 아이템이 빛을 터트린다. 안자영이 흘린 아이템 중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트린 마법 아이템. 범위 내 가장 가까운 특정 매체에 한 종류의 룬을 새기고 동시에 새긴 룬을 일정 범위 증식시키는 것이 아이템의 효과!

키메라가 섬뜩한 감각에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이미 ‘금속’이라는 매체들에 룬 표식은 이미 가득했다. 열 한 자루의 단검과 얇은 와이어에 새겨진 미세한 룬 표식들.


크허어어--!!!!


‘짐승으로서의 감각은 뛰어나지만 머리가 상당히 안좋은편이었지 네놈은. 마법까지 쓸 줄 아는 주제에 말이야.’


남자는 움직일 수 없는 눈동자를 통해 몸을 움츠리는 키메라를 바라보고 속으로 웃는다. 위화감을 육감으로 감지하는 저 짐승이 곧 있으면 스스로 자해를 시도할테니 말이다.

키메라는 자신의 몸 곳곳에 틀어박힌 금속에 작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감각으로 알았다. 그것을 몸에 박아두다간 아주 큰 일이 날 것이라는 사실 또한! 허나 짐승의 몸으로 단검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만무했고 결국 키메라는 염소 머리의 마법을 이용하기로 판단했다. 끊임없이 독을 살포하고 있는 뱀꼬리를 이용하기도 없었으니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케헤헤헤헹!!


악마가 깃든 염소의 울음이 이러할까. 분명 키메라의 소리는 보통 염소와 다르다. 염소가 발현한 마법이 허공에 ‘푸른빛의 사슬’을 길게 뽑아내자 안자영의 속에선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오른다. 자신의 생각대돌 척척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렴 단검을 뽑으려 할 것이고 뽑기 위해선 ‘블루 체인 휩’ 마법을 쓸 수 밖에 없을테니까.

그리고 그 전류가 흐르는 마법이 ‘금속에 새겨진 룬을 발동시킨다’.


파지짓-!!

콰하아아앙---!!!!!

화르륵----!!!! 콰하앙!


새겨진 룬의 효과는 ‘속성 변환’. 번개 속성의 마법 밖에 못쓰는 염소 대가리는 기어이 번개를 ‘불’로 바꿔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와이어를 타고 흐르는 전기가 불로 바뀐 정도일터인데 어찌 키메라는 거대한 폭발과 함께 활활 타오르는 것인가- 그야 남자가 두번째로 떨어트린 아이템이 연계되어 발동했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떨어트린 세 개 중 가장 값진 아이템인만큼 그 효과는 아주 특별. 한 줌의 불꽃을 반경 1미터의 폭발 마법으로 변환시키는 아주 귀한 마법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화염에 대한 내성이 제로나 다름 없던 키메라는 전신에서 터져나오는 폭발에 그대로 넉다운을 당해버렸고 가죽과 살을 태우는 불길에 괴로워 바닥을 구를 수록 고온에 달궈진 단검들이 파고들었다.






“나, 남자는 어떻게 무사할 수가 있는거지···!”


경악에 가까운 실라의 의문. 하지만 루드릭에게 마법효과에 대해서도 상당 수준 배웠던 스방이는 안자영의 바닥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세번째 마법도구입니다......워낙 잘 안쓰는 마법도구라 저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만. 자신의 마법 저항력을 다섯배 가량 강화시키고 물리 저항력을 크게 낮추는 아주 위험한 마도구에요.”


“그, 그런 마도구가 있다고요···? 들어본 적도 없는데···”


“손톱만한 돌맹이를 던져도 살갗이 터져나갈만큼 물리 저항력이 크게 낮아지는 마법도구거든요. 자살용 마도구나 다름 없는데 누가 좋다고 거래하겠습니까. 아는 사람이 드문 정도의 마도구에요.”


거대한 폭발을 지척에서 맞고도 멀쩡히 쓰러져 자해를 계속해나가는 키메라를 바라보는 인간 남자. 안자영은 아직 마비독에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실라와 스방이는 마음이 편할 수 있었다. 키메라의 뱀꼬리는 이미 마비독 살포를 멈췄고 안개도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키메라를 상대로 단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대체 저 자는 누구란 말이에요!”


“......제 주인님입니다 실라. 듣기론 세계의 구원자라고 하시는데 잘은 모르겠네요?”


실라는 장난과도 같은 마검사 엘프의 대답에 말을 잃을 뿐이었다.


“장난쳐요 지금 저랑?”


“설마요~”


놀란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잃었던 실라.

하지만 그녀가 이 기회에 확실하게 알게된 사실은 분명히 있었다. 저 남자가 진짜로 구원자든 그저 장난이든, 그 전투센스만큼은 실로 절대적이라는 것을.


“배울게 많을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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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력을 늘리자 +2 17.08.24 594 5 21쪽
5 토끼 가라사대 가진걸 내놓으라 (2) +2 17.08.23 716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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