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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영(靑英) 님의 서재입니다.

슬기로운 망나니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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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4월봄바람
작품등록일 :
2024.05.08 16:16
최근연재일 :
2024.06.07 18:3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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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4
추천수 :
16
글자수 :
153,045

작성
24.06.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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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홍지수 (2)

DUMMY

***


중추원 첨서 왕사윤은 대쪽 대감이라는 별명이 있어 겉으로는 공과 사가 뚜렷하다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물평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제각기 견해가 달랐다. 나는 왕사윤이 야심을 숨긴 능구렁이라고 평하는 걸 들은 기억이 있다.


정의감이 넘치는 대신.

야심을 숨기는 능구렁이.

그런 사람을 앞에 두고 있으니 긴장된다.


그러나 왕사윤은 나를 반기며 술상을 차리고 마주 앉았다.

첫 만남인데도 그가 나를 반기자 나는 점차 마음이 놓였다.

하긴 이 사람에게 황금 100냥이나 쏟아 부었는데···.


“네가 금천석의 막내아들인 무혁이로구나. 안 그래도 너를 만나고 싶었다.”

“제 아버지께서 집안 간에 혼인을 청했다고 들었어요.”

“음. 그랬지. 난 네게 가장 아끼는 셋째 딸을 줄 생각이다.”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셋째 딸?

대체 딸이 몇 명이나 있는 거야?


“소선 낭자가 아니고요?”


왕사윤의 얼굴에 노기가 스쳐 지나갔다. 곧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소선은 가기(家妓)야. 그런 천한 아이를 귀하신 금대인의 자제와 혼인을 시킬 수는 없지 않겠나.”


나도 안다.

나 말고도 낙양의 수많은 청년이 그녀를 탐내고 있었다. 오랜 기간을 고관 대신으로 일해 온 능구렁이 같은 왕사윤이 모를 리가 없다.


내겐 권력도 없고, 상속받을 가능성도 없는 재력가의 막내일 뿐이다. 아마도 그는 적당히 혼사를 추진하여 우리 가문과 혼연을 맺을 생각으로 보였다. 나중에 아버지는 그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며 이권을 얻어 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나도 왕소선이 아니면 굳이 왕사윤의 딸과 결혼할 이유가 없었다.


왕사윤은 절대로 잘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딸도 아버지를 닮았을 터이니 안 봐도 뻔하다.


그는 고위직에 있지만, 그의 가문은 이 나라 최고의 권문도 아니다. 우리 집안과 사돈이 된다면 아버지의 돈을 이용하여 더 큰 권세를 얻기를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소선은 어떻게 될까?


‘그녀를 황궁에 보낼 생각이야. 소문대로의 미모를 지녔다면 후궁으로 보내는 것이 훨씬 좋은 정략결혼이겠지.’


왕사윤의 생각을 알게 되자 갑자기 속이 역겹다.

더 이상 혼사는 진행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오늘 만났던 홍지수와 잘해 보는 것이 훨씬 낫다.


갑자기 뇌물로 쓴 황금 100냥이 아까워 죽겠다.


원래 내 생각은 이랬다.


황사윤은 대대로 관리하던 집안이었고 그에게는 재산도 꽤 있다.

나는 천하제일미라는 왕소선의 남편이 되고 장인에게서 돈도 빌릴 수 있다.

만일 장인어른이 돌아가시면 상당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테지.


그런데···.

대체 이 늙은이에게 딸이 몇이나 있는 거야?

그가 죽은 후에 서로 나눠 갖게 된다면 내게 돌아올 재산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거다.


‘내 재산의 반도 넘는 아까운 황금 100냥···. 하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혼인이 아예 없는 걸로 되는 게 더 좋겠어.’


품속의 장부를 만지작거렸다. 이걸 공개하면 혼인은 없었던 일이 되고 아버지는 곤경에 빠질 거다.


정말 그럴까?

아버지는 만 가지 꾀를 가진 사람이다.

장부가 세상에 노출될 것을 염려하여 이미 피할 구멍을 만들어 뒀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만 위험해지는 건 아닐까?


아니지.

한번 황금 100냥의 위력이나 시험해 볼까?

내가 왕사윤에게 뇌물을 바쳤는데 그가 나를 저버릴 리는 없다. 잘하면 그가 나를 보호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장부가 효력이 있으려면 왕사윤은 진짜 장부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 같은 증인이 필요하다. 다만 나를 고문해 진짜 장부로 증명할 것인지, 아니면 귀한 증인으로 보호할 것인지는 그의 선택이다.


나는 장부를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르신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왕사윤은 장부를 펼쳐서 보다가 안색이 변했다.


“이걸 왜 내게 주는 거냐? 이건 금대인이 뇌물을 뿌린 명세서가 아니더냐? 이게 세상에 알려지면 너와 너의 아버지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나라를 해치는 간신배들을 보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아버지와 의논 끝에 이걸 왕첨서님께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아차! 실수했구나.

내가 왜 아버지와 의논했다고 말했을까?


왕사윤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너희 부자가 피해당하지 않도록 방법을 생각해 보마.”


아니···. 그게 아니지.

나만 보호하면 돼.

아버지 말고.


***


아침이 되자 삼식이가 내게 서신을 건넨다.


“이게 뭐지?”

“주인님이 보낸 서신.”

“뭐?”

“새벽에 전서구가 도착했어.”


편지의 내용이 제법 장황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혁은 보아라.

장부를 왕첨사에게 넘겼다고 들었다. 비록 이 아비와 상의는 없었으나 옳은 일 했구나.

왕첨사와 만났다는 소식도 들었다. 네가 사모하는 왕소윤은 천한 출신이라서 우리 집안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조만간, 네게 도움이 될 좋은 며느리를 찾아 주마.

낙양은 곧 풍전등화 상태에 빠질 거다. 관중왕이 위급하여 낙양은 불바다로 변하겠지. 도성에 변고가 생기기 전에 양양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오거라. 네 형과 어머니가 학수고대하며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네 형은 언제든 너를 보호해 줄 거다.

끝으로··· 너를 경호할 무인을 보내 주마. 아버지 씀.]


새삼 놀랍지도 않다.

아버지 늘 이런 식이다.


내가 집을 되찾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를 무시한다.

의논은 없고 통보만 있었다.

제길. 욕심 많은 형이 날 보호해 줄 거라고?

형은 아버지 재산은 모두 챙기고, 나를 평생 못난이 취급하며 보호하는 척하겠지.


청소도 안 하고 음식도 나오지 않는 집이지만··· 나만 있는 집은 내 세상이다.

아! 삼식이는 있어도 도움이 안 된다.


노팔룡 등 세 사람을 알고 있으나 그들은 내 친구가 아니다.

청의 소년이 우리 집에서 살고 있으나 집에 돌아온 이후로는 그를 본 적이 없다.

몇 번 만나 보려고 집안을 어슬렁거렸으나 집이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다.

이미 내게 말도 없이 집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집에 홀로 있으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나와 친했던 친구들은 모두 죽어서 동네에도 어울릴 친구가 없다.


이제는 새로운 친구를 사귈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집을 나섰다.

친구를 사귀려면 주루에 가는 것이 가장 좋다.


주루 안에는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도 술을 시켰으나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 뻘쭘해졌다.


그때 뜻밖의 사람이 내 옆에 앉았다.

소면살 염자단이다.


“집에 갔더니 삼식이가 여기에 있을 거라고 말하더군.”

“그놈이 눈치는 없는 편이죠.”

“나이도 어린 게 대낮부터 혼자 술을 마시려고?”


내가 술을 처먹든 말든 뭔 상관이지?


점소이가 주문한 술병을 가지고 왔다.

그러자 염자단이 술병에 입대고 마시기 시작했다.

뭐야 더럽게···.

대낮부터 술을 처먹는 건 너잖아?


“나는 왜 찾은 거예요?”


그러자 그가 웃더니 말했다.


“친구가 되고 싶어서 왔네.”

“갑자기?”

“지금쯤이면 외로울 테니까.”


이 자식도 내 속을 긁는구나.


“소협님은 몇 살이세요?”

“나? 스물넷.”

“그럼, 저보다 일곱 살이 많네요. 친구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요. 술 마셨으면 이제 가 보세요.”

“까칠하게 굴지 마. 강호에 재미있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걸 알려 줄게.”


재미있는 소문?

이 사람은 재미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건성으로 들으며 술병의 입구를 소매로 닦고 내 잔에 술을 부었다.

그리고 천천히 음미하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염자단은 그런 나를 힐끗 보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미후왕이라는 무서운 고수가 출현했다고 소문이 있어. 그가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정의단의 두 고수를 제압했다고 했네.”


술을 마시다가 하마터면 사레가 걸릴 뻔했다.


무적철검 채문광과 섬전신검 냉광철도 정의단 소속의 자객이었나?


나는 몇 번이고 캑캑거리다가 겨우 말했다.


“재미없어요. 이제 가세요.”

“네가 미후왕이지?”


염자단은 다시 술병 체 나발 분다.


“미후왕이 누구 건 간에 관심 없어요.”

“미후왕이 금대인의 장부를 가져갔어. 자네가 가져간 것이겠지.”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염자단이 또다시 나발을 분다.

이젠 더러워서 저 술은 못 마시겠다.


“어제, 자네 부친의 수하가 나를 찾아왔어. 그의 권고로 황실 호위무사 직을 그만두었네. 그리고 자네의 호위무사로 취직했어. 그러니 이젠 어쩔 수 없이 내가 항상 자네의 곁에 있을 걸세. 물론 미후왕의 무공이 나보다 훨씬 고강하니, 내가 자네를 호위할 수는 없겠지만···. 하하하.”


아버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사람.

나는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었다.

갑자기 확 짜증이 밀려온다.


“아버지가 당신을 어떻게 알고?”

“나야 모르지. 자네 부친의 별호가 신묘상인(神妙商人)이 아닌가?”


갑자기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염자단이라는 혹을 달고 다니면 어느 누가 내 친구가 되겠는가?


“미후왕, 앞으로 잘 부탁하네. 이렇게 종종 술을 사 주면 더 좋고.”


이런, 제기랄.


역시 새 친구를 만나려면 주루가 최고의 장소다.


비록 이번에 사귄 친구는 거치적거리지만···.


내가 벌떡 일어서자 염자단이 술병을 흔들며 말했다.


“아직 술이 많이 남아있어.”

“혼자 다 드세요.”


주루에서 나오자 염자단도 나를 쫓아오며 말했다.


“관아에서 집을 봉인했다면서?”

“누가 그래요?”

“이거 왜 그래? 소문이 쫙 퍼졌어.”

“그거 모두 헛소문이에요.”


길을 걷고 있는데 건달 4명이 시시덕거리고 있다. 이전에도 안면은 있지만, 질이 아주 안 좋은 녀석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들에게 돈을 몇 차례 뜯긴 경험이 있었다.


뜻밖에도 이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환골탈태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중에 만득이라는 녀석이 나를 불렀다.


“혹시 우리가 만난 적이 있던가?”

“사람 잘 못 봤어.”


반말로 대답하고 나니 심장이 오그라든다. 그러나 이들은 평민이라 나 같은 귀공자의 하대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염자단의 곁에 붙어서 이들을 지나가려는데 갑자기 귀에 쏙 꽂히는 말이 들려왔다.


“···엄청난 미인을 잡아 넘겼어. 이번 건은 제법 돈이 될 거야. 벌써 그녀를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더군.”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들에게 물었다.


“사람을 팔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만득이가 대답했다.


“옷차림을 보니 돈이 꽤 있어 보이는군. 미인에게 관심이 있소?”


그러자 다른 녀석이 킬킬 웃는다.


“관심이 없으면 사내가 아니지.”


나는 웃는 놈은 무시하고 물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저잣거리에 허풍떨기로 유명한 약재상이 있지.”


나는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는 놈이다.


“누군지 알아. 평소에 명약이 들어왔다고 사기 치는 허삼을 말하는 거 아닌가?”

“아는군. 허삼이 거짓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그는 시골에서 소문을 듣고 명약을 구하려고 찾아온 연고가 없는 사람을 납치하고 뒷거래 시장에 팔아넘기는 걸로 돈을 벌고 있는 놈이지.”

“뭐야? 그 녀석, 알고 보니 더 악질이었군. 하지만 양인을 노비로 팔다 걸리면 사형인데···?”


킬킬 웃던 녀석이 말했다.


“이게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야. 허삼은 손님들을 납치하면서 신분패를 없애기 때문에 희생자들은 신분을 밝힐 방법이 없어. 우리는 그가 찍은 손님을 납치하고 뒷거래 시장에 넘기고 판 돈을 나눠 갖지.”

“재밌군. 자네들은 돈 많이 벌었겠군.”

“그 여인을 한번 보면 눈이 뒤집힐 거야. 관심이 있으면 2경에 열리는 뒷거래 시장에 가 보게. 비싼 값으로 사 주시면 우리야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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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신풍권 권민기와의 만남 24.05.29 30 0 14쪽
19 황금패의 행방 (3) 24.05.28 39 0 13쪽
18 황금패의 행방 (2) 24.05.27 37 0 13쪽
17 황금패의 행방 (1) 24.05.24 44 0 12쪽
16 늑대와 호랑이 24.05.23 38 0 12쪽
15 수어지교 24.05.22 44 0 14쪽
14 관군에 포위 되다 24.05.21 4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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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결투를 신청하다 24.05.19 67 0 13쪽
11 황금패를 분실하다 24.05.18 90 0 12쪽
10 장부의 진실 24.05.17 102 0 14쪽
9 복수 24.05.16 113 1 12쪽
8 무기를 구하다 (3) 24.05.15 136 1 12쪽
7 무기를 구하다 (2) 24.05.14 151 0 12쪽
6 무기를 구하다 (1) 24.05.13 182 2 12쪽
5 동굴에서 나가다 24.05.12 208 2 13쪽
4 환골탈태 24.05.11 222 1 13쪽
3 상산대협 24.05.10 234 3 11쪽
2 기연 24.05.09 248 4 12쪽
1 죽느냐 사느냐 24.05.08 29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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