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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영(靑英) 님의 서재입니다.

슬기로운 망나니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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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4월봄바람
작품등록일 :
2024.05.08 16:16
최근연재일 :
2024.06.07 18:3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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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2
추천수 :
16
글자수 :
153,045

작성
24.05.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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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늑대와 호랑이

DUMMY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노팔룡은 홀로 방에 들어가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잠만 자는 듯했다. 황대칠은 어디론가 사라졌으며 소소구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성안에는 내 얼굴이 방에 붙어 있을 거다. 내 현상금이 은자 10냥쯤 되지 않으려나 싶다. 물론 나의 준수한 얼굴이 세상에 알려지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그 밑에 액수가 적혀 있는 것은 거절하고 싶다.


산채는 너무 불편했다. 방은 더러웠고 벼룩과 빈대는 방바닥을 운동장처럼 여기고 돌아다닌다. 이불은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으며 뭔지 모를 오물 흔적으로 인해 덮기는커녕 건드리기도 꺼려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

먹을 만한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엌으로 들어가니 깨진 솥이 하나 있고 그릇에는 거미줄이 처져 있다. 멀쩡한 건 술병과 술잔뿐이다. 그것도 겨우 세 개.


노팔룡이 술병으로 나발을 불었던 게 이해가 된다.


이곳저곳을 뒤져봐도 술독뿐이다.

우물도 없어 목이 마르면 물 대신 술을 마셔야 할 형편이다.


노팔룡과 소소구는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도 별문제가 없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다.


몇 번이고 노팔룡을 발로 툭툭 차며 깨워보려고 했으나 깨어날 생각도 하지도 않는다.


소소구는 조그만 나뭇가지를 붙잡고 조각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에게 수차례나 말을 걸었으나 대답은 고사하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 집안은 또 얼마나 웃기냐 하면 산토끼나 다람쥐가 시도 때도 없이 집안 마당까지 찾아와 우리를 구경하다가 돌아가고 갑자기 푸드덕거리며 꿩이 날아 올라가기도 했다. 가끔은 뱀이 나타나 기겁할 때도 있었다.


부엌에 먹을 게 없는 이유를 알겠어.

지천으로 널린 게 산짐승이니까.

배고픈데 뭘 못하겠어?


사냥도구를 찾아 집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노팔룡이 말하는 그의 무기는커녕 농사일에 쓰는 농기구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노끈이나 밧줄, 막대, 널빤지, 갈고리 등을 찾을 수 있었다. 쇠붙이 두 개만 찾아도 무기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갈고리 하나로는 무기를 만들 수조차 없었다.


여러 가지 물품을 챙겨 사냥할 준비 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그 많던 산짐승들이 보이지 않았다. 벌레는 빼고!


결국 구멍을 통해 노팔룡의 산채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갔다. 마침내 작은 계곡 근처에서 늑대의 흔적을 발견했다.


‘늑대를 먹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실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배고프니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늑대가 나타나면 정작 내가 늑대의 밥이 될 텐데.


늑대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멧돼지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게 보인다.


발자국 크기로 볼 때 꽤 큰 놈 같았다. 늑대에게 아직 잡아먹히지 않았다면 다시 여기를 지나갈 것이다.


먼저 튼튼한 나무로 막대를 만들고 그 끝에 날카로운 돌을 찾아 묶었다. 그리고 힘겹게 구덩이를 만들고 막대를 그 위에 놓았다.


다 만들고 나서 생각하니 중요한 게 없다.


미끼로 쓸만한 것이 필요한데···.


하지만 미끼로 쓸만한 게 있었더라면 내가 진작 먹었겠지.


잎사귀들을 모아 구덩이 위에 조심스럽게 덮었다. 잎사귀가 구덩이의 검은 흙을 가리고 나니 주변과 잘 어우러졌다.


나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끼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없으면 만들어내면 된다.


피 냄새로 동물을 유인해야겠어.


주저하다가 갈고리로 왼팔을 찔렀다. 갈고리 끝이 무디어 생채기는 났지만,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팔의 상처를 꽉 잡고 고통을 참았다. 내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손은 떨리고 있었다.


고통이 가시자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돼. 피가 나와야만 해.’


몇 번을 긋자 상처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 늑대만 기다리면 된다. 늑대는 후각이 발달한 동물이니 피 냄새를 맡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피가 응고되면서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위는 조용하기만 해서 실망했다.


지쳐서 사냥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숲속을 가르는 듯한 호랑이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얼음에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죽음도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도망쳐야 한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고는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랑이는 나무 위로 잘 올라간다는 말이 기억났다.


갑자기 팔에 힘이 빠졌다. 그 순간 주르륵 미끄러지며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벌떡 일어났으나 온몸이 떨리는 나뭇잎처럼 느껴진다. 심장이 얼어붙는 말이 뭔지 알 것 같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여의봉!

내 여의봉만 있었더라도!


그때였다.


뭔가 시커먼 놈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지자, 놈의 입에서 썩은 냄새가 풍겨온다.


두 손으로 늑대의 목을 잡아 두 팔을 쭉 뻗었다. 늑대는 얼굴을 좌우로 흔들며 이빨이 연신 딱딱 소리를 내며 물려고 들었다. 물린다면 뼈가 으스러지겠지.


점점 팔에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체념할 때였다.


깨개갱.


노란색의 커다란 덩치가 눈앞에서 휙 지나갔다. 조금 전까지 나를 덮쳤던 늑대가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호랑이의 입에는 늑대가 목이 물린 채 발버둥 치고 있다. 늑대는 격렬하게 몸부림쳤지만, 호랑이의 입과 발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늑대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호랑이도 늑대도 보이지 않는다.


왠지 허탈했다. 이제는 배고픈 줄도 모르겠다. 그때 갑자기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아까의 늑대 비명과는 달랐다.


소리가 나는 곳을 가보니 내가 팠던 구덩이 안에서 들려왔다. 늑대 새끼가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부드러워 보이는 회색 털로 덮여 있으며 귀도 제법 쫑긋 서 있었다. 발이 작고 뭉툭한 게 귀여웠다.


늑대 새끼를 들어 올렸다.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이놈도 맹수라고 나를 물었으나 이가 자라지 않아 아프지도 않았다.


낑낑거리는 소리.

나를 핥는 귀여운 모습에 시선이 갔다.

나는 늑대 새끼에게 연민을 느꼈다.

배가 고팠지만, 먹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풀어 줄 수도 없다.


만일 풀어 준다면 연약한 이 짐승은 다른 짐승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결국 늑대 새끼를 껴안고 노팔룡의 산채로 돌아왔다.


구멍을 통해 간신히 산채에 도착해 보니 고소한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노팔룡과 소소구가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노팔룡은 나를 보더니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는 거냐?”

“호랑이가···.”


노팔룡은 태평하게 말했다.


“알아. 이 산에도 호랑이가 살고 있지. 하지만 이 산채에는 들어오지 못해.”

“왜?”

“여긴 용이 사는 곳이니까.”


어이가 없는 대답이다. 자기 이름에 용이 있다고 해서 용이 살고 있단다.


나는 늑대 새끼를 다시 제대로 안아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노팔룡이 내 품을 보더니 말했다.


“강아지는 왜 데려왔어?”

“늑대야.”

“키울 거냐?”

“아직 잘 모르겠어.”

“잘 됐어. 다음에 호랑이가 덮치려 한다면 그 녀석을 호랑이에게 던져 줘.”


고기를 먹으면서 조금씩 늑대 새끼에게 나눠줬지만, 녀석은 아직 제대로 씹지도 못했다.


“이름은 뭐야?”

“낑낑이.”

“왜?”

“나를 만난 이후부터 계속 낑낑거렸어.”

“이름 한번 촌스럽네.”


한참을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소소구는 아무 말 없이 먹다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두루마리로 감긴 서류를 가지고 나오더니 내게 던지며 말했다.


“받아. 공문서야.”

“무슨 공문서?”

“보면 알아.”


그에게서 공문서를 받고 펼쳐보자 우리 집을 봉문(封門)을 해제한다는 글과 함께 관중왕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걸 어떻게 구한 거야?”


소소구가 웃었다.


노팔룡이 대신 대답했다.


“물론 그 인장은 가짜지. 소소구가 가짜 도장을 만드는 재주가 있거든.”


그러고 보니 소소구가 나뭇가지에 조각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뭐야? 만일 가짜인 게 발각되면 큰일이잖아?”

“괜찮아. 발각되지 않을 거야. 관중왕은 병세가 심해져서 오늘내일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술잔을 주고받고 있는데 산채 안으로 황대칠이 들어오더니 불평했다.


“이 냄새 뭐야?”

“뭐긴. 돼지고기 냄새지.”

“혹시 내가 숨겨둔 거 아니지?”

“맞아.”


황대칠이 화를 내며 노팔룡의 멱살을 잡으려 하자 노팔룡이 말했다.


“황대칠 대협. 대협으로서의 체통을 지켜야지.”


그 말을 들은 황대칠은 얼른 노팔룡의 멱살을 풀면서 헛기침하더니 점잔을 떨었다.


“흠. 흠. 먹고 싶었으면 먼저 내게 말하지, 그랬어.”

“지금 말해서 미안하군. 대신 나중에 크게 한턱내지.”

“노대협. 대협의 한마디 말은 뭐다?”

“일언천금(一言千金)!”

“좋았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천금을 내놓아야 할 거야.”


황대칠은 내 옆에 앉고는 낑낑이를 안아 들며 말했다.


“고놈 귀엽다. 어디서 난 강아지야?”

“늑대야.”


황대칠은 황급히 낑낑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 늑대? 이놈이 크면 우리를 잡아먹을 거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황대칠 대협, 설마 늑대 새끼가 두려운 거야?”

“물론 아니지. 네가 걱정되어서 그래. 임마.”


황대칠은 술잔을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귀수 조연이 어디에 있는지 찾았어. 성안에 지하전장(地下錢莊)에 숨어 있더군.”


지하 전장은 도박판을 의미하는 은어였다. 관중왕이 도박을 엄금했기 때문에 도박은 불법이었고, 그래서 지하에서 환전한다는 의미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황대칠이 계속 말했다.


“오늘 밤 2경이 넘은 후에 지하 전장을 급습하여 조연을 잡아 오자.”


노팔룡은 얼굴을 찡그렸다.


“성문을 지키는 병졸이 있을 텐데···.”

“그래서 2경이 넘어야 하는 거야. 그때 내가 아는 병졸이 성문을 지킨다고.”


노팔룡은 아직도 찜찜한 얼굴이다.


“돌아올 때는 어떡하고?”


내가 대답했다.


“내게 맡겨.”


가만히 듣고 있던 소소구가 벌떡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작업할 시간이야.”

“무슨 작업?”


소소구는 대답도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황대칠의 말대로였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는 황대칠을 보고 얼른 통과하라고 손짓했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성문을 통과했다.


우리는 도박장을 덮쳤고, 취해 쓰러진 귀수 조연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우리가 조연을 잡아 줄로 묶어도 주변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나는 노팔룡 일행과 함께 조연을 끌고 객잔으로 향했다.


이때, 순찰하던 포졸들과 마주쳤다. 그런데 하필이면 용인사 앞에서 우리와 대치하던 포졸들이었다.


포졸을 이끌고 있던 광만구가 외쳤다.


“이게 누구야? 이렇게 쉽게 만나다니!”


노팔룡은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고, 황대칠은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만만했다.

이 녀석들이 글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말했다.


“우리는 이미 사면받았으니 비키시게. 조금 있으면 통금이 아닌가?”

“뭐? 사면을 받아?”


나는 소소구에게서 받은 공문서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이 사면장이 보이지 않는가?”


물론, 내가 펼친 공문서는 우리 집의 봉문을 풀어 준다는 허가서에 불과하다. 그러나 무식한 녀석이 글을 알 리가 없을 거다.


광만구는 공문서를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내가 비록 글자를 모르지만, 이건 사면장이 아니야. 사면(赦免)장은 하도 많이 봐서 제목 정도는 읽을 수 있거든.”


그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저놈들을 모조리 포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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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황금패의 행방 (2) 24.05.27 37 0 13쪽
17 황금패의 행방 (1) 24.05.24 44 0 12쪽
» 늑대와 호랑이 24.05.23 38 0 12쪽
15 수어지교 24.05.22 44 0 14쪽
14 관군에 포위 되다 24.05.21 47 0 12쪽
13 삼대일의 결투 24.05.20 64 0 11쪽
12 결투를 신청하다 24.05.19 6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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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기를 구하다 (2) 24.05.14 151 0 12쪽
6 무기를 구하다 (1) 24.05.13 182 2 12쪽
5 동굴에서 나가다 24.05.12 20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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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산대협 24.05.10 234 3 11쪽
2 기연 24.05.09 248 4 12쪽
1 죽느냐 사느냐 24.05.08 29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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