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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영(靑英) 님의 서재입니다.

슬기로운 망나니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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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4월봄바람
작품등록일 :
2024.05.08 16:16
최근연재일 :
2024.06.07 18:3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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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6
추천수 :
16
글자수 :
153,045

작성
24.05.1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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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무기를 구하다 (2)

DUMMY

내가 다시 질문하자 점원은 조소를 참으며 말했다.


“그 철주봉(鐵柱棒)은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저희 대장간의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만년한철로 만든 전시품입니다.”

“대단한 기술이야. 이런 건 쉽게 만들 수는 없어 보여.”


점원은 신이 나서 열성을 다해 자랑했다.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한 겁니다. 저희 가게의 최고의 장인이 직접 만든 기술의 결정체입니다. 바위를 내리쳐도 찌그러지지 않고, 물에 담겨 있어도 녹슬지 않으며, 속에는 금관이 두 개나 뚫려 있습니다. 봉의 양 끝에 특별히 제작한 마개로 막는다면 전설의 여의봉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마개라니?”


점원은 창고 깊숙한 곳으로 가더니 서랍을 열어 복숭아 크기의 쇠구슬을 두 개 꺼내 왔다.


“이게 마개입니다.”


점원은 철주봉을 달라고 하더니 쇠구슬의 구멍에 철주봉을 꽂아 넣었다. 나머지 한 개의 쇠구슬도 집어넣자 정말 여의봉처럼 보였다.


“휘두르면 마개가 빠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휘둘러 보세요.”


나는 몇 번 휘둘러 보고 나서 말했다.


“여의봉처럼 똑같이 생겼으니 당연히 늘리거나 줄일 수도 있겠지?”


점원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때 50대의 중년인이 창고로 들어오다가 점원의 들고 있는 철주봉을 보며 소리쳤다.


“인석아! 그 철주봉은 건들지 말라고 했지?”


점원은 당황하여 철주봉을 얼른 제자리에 놓으며 말했다.


“수석 장인어른. 죄송합니다. 손님께서 제게 보여달라고 졸라서 어쩔 수 없이···.”


수석 장인은 나를 힐끗 보고는 점원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명령했다.


점원이 재빨리 창고 밖으로 사라지자, 그가 말했다.


“망나니 녀석이 여긴 웬일이냐?”


순간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 어리둥절했지만, 곧 그가 아버지와 함께 집에 방문했던 손님 중 하나라는 걸 떠올렸다. 그와 동시에 내가 왜 철주봉에 꽂히게 되었는지 이유도 생각이 났다.


*


5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에 나는 저잣거리에서 이야기꾼이 들려주던 돌 원숭이 손오공의 이야기에 폭 빠져있었다.


아버지는 수석 장인의 솜씨를 칭찬하며 나와 형에게 그가 만든 신기한 기계들을 우리에게 자랑하며 보여 주었지만, 어렸던 나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랐다.


나는 장인이 만들었던 기계는 관심을 두지 않고 딴짓만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장인이시라면 여의봉도 만들 수 있어요?”


그때 수석 장인은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를 놀리며 도발했다.


“여의봉도 못 만드는 실력으로 최고의 장인이라니···.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그 말을 들은 장인은 내 말은 무시하고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금대인!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우리는 여전히 당신을 의심하고 있소.”


그가 화를 내면서 돌아가 버리자, 아버지는 큰 소리로 나를 야단쳤다.


나는 손님에게 무례하다는 이유로 사흘간이나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벌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반성문을 쓰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내가 끝내 반성문을 쓰지 않자 아버지는 내게 다른 벌을 내렸다.


나는 내가 수석 장인을 도발한 것과 수석 장인이 아버지를 의심하는 것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석 장인이 만든 기계들은 우리 집 마당에 반년간이나 놓여 있었고, 나는 밤마다 그 물건들을 동작시키다가 그가 대단한 실력가임을 그제야 알았다.


그 후에 나는 수석 장인을 몇 차례나 만나 보려고 노력했지만, 아버지의 명을 받은 무사들의 제지로 인해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마당에 두었던 기계들이 모두 없어진 날이었다.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어 사흘간이나 울며불며 기계를 도로 마당에 두라고 아버지에게 사정했지만, 아버지는 반성문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날 밤, 내 방에는 만술장괴(萬術匠怪)라는 사람이 쓴 한 장의 쪽지와 함께 두 권의 책자가 놓여 있었다.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기밀이니 유출하면 안 된다.]


*


나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저씨, 저 왔어요.”

“너는 여기는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걸 잊었느냐?”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반성문을 쓴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아요. 지금도 쓰고 있으니 곧 출입 허가가 떨어질 거예요.”


그는 내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많이 변했구나.”

“5년은 긴 시간이니까요.”

“빌려준 책은 읽어 봤느냐?”

“별 내용은 없었지만 재미있었어요.”

“네가 그 책을 불태운 것은 알고 있다.”

“다 읽고 나면 없애라고 하셨으니까요.”


그에게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스승님.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만술장괴는 차갑게 대답했다.


“나는 너를 제자로 삼을 마음이 없다. 네가 계속 나를 찾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책 두 권을 줬을 뿐이다.”


그의 눈빛은 말투와는 달리 따뜻해 보였다. 다시 한번 더 절하며 그에게 스승의 예를 갖추며 말했다.


“이미 가르침을 제게 주셨으니 제게는 스승님이십니다.”

“망나니치고는 제법 예의가 있구나.”


만술장괴는 창고의 문을 잠그고는 이상한 말을 했다.


“어쩌다가 지마인(地魔人)이 되었느냐?”

“말도 안 돼요. 전 마귀가 아네요.”

“누가 너를 마귀라고 했느냐? 지마인이라고 말했다.”

“그게 그거죠.”

“마귀는 말 그대로 악마이고 요괴이지만, 지마인은 이 땅의 정기를 몸에 지닌 사람이다. 마귀를 물리칠 사람들은 오로지 지마인뿐이다. 다시 말하면 혜택을 받은 사람이지.”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마귀를 물리칠 능력이 있을 리 없었다.


“추상적으로 말씀하셔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만술장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조그만 쇠붙이에 손을 댔다. 그러자 손에서 열기가 피어올랐다. 쇠붙이가 붉은색으로 바뀌더니 곧 쇳물로 변해 버렸다.


“어떻게 하신 거에요? 마술인가요?”


만술장괴는 득의양양하며 내게 물었다.


“최근에 기연을 얻었지만, 네가 어떤 능력이 생겼는지는 모르나 보군. 어디···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어나 볼까?”


나는 집에서 벌어진 일부터 시작해서 수중동굴에서 빠져나온 일을 대충 말하자 만술장괴가 말했다.


“서리꽃이라는 건 처음 듣는구나. 그게 독초였으면 너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나는 독초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서리꽃을 먹고 환골탈태하였느니 독은 아닌 게 분명하다. 나는 그가 나를 놀리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너도 기연을 얻었구나.”

“그 말씀은···?”

“실은 나도 지마인이다. 지마인에게는 각기 독특한 재주가 있지. 네게는 무슨 재주가 생겼느냐?”

“스승님과 저는 비슷한 능력이 있나 봐요. 제 경우엔 쇠를 만져서 자석으로 바꿀 수 있어요.”


만술장괴는 고개를 끄떡이더니 다시 물었다.


“전승백에게 복수할 거니?”

“복수는 하고 싶지만, 복수할 능력이 없어요.”


내 대답을 들은 만술장괴는 혀를 찼다.


“지마인이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능력자이건만 복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쯧쯧.”

“지마인이라는 말도 오늘 처음 듣는데요?”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만일 전승백을 죽인다면 너를 제자로 삼아 주마. 단, 조건이 있다. 방법은 네가 찾아야 한다.”


나는 사람을 죽이라는 말에 당황했다.


“저는 스승님에게 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면 더욱 좋겠어요.”


“흥! 내 별호가 만술장괴라는 걸 잊었느냐?”


그의 별호에 ‘괴(怪)’가 들어간 것은 괴짜라는 뜻이다.


그가 물었다.


“아직도 여의봉을 찾고 있느냐?”


나는 엎드리며 말했다.


“미안해요. 그때는 제가 철이 없어서 그런 헛소리를 나불거렸어요.”


만술장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네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부끄러웠다. 여의봉은 모습만 비슷하다고 여의봉이 되는 것이 아니지.”


이게 무슨 말일까?

혹여나 나를 시험하는 말이라면, 지금 대답을 잘하는 것이 유리하다.


정직하게 말할까, 아니면 아첨을 떠는 것이 나을까?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지만, 사람의 본성이 어디 가겠나 싶다.


교묘하게 아첨하는 게 좋겠어.


“스승님이 만드신 여의봉을 살펴보니 정말로 대단한 기술이었어요. 만년한철은 녹이기도 어렵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 물건으로 관을 만들었으니 이런 기술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내 말을 들은 만술장괴는 자만심이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여의봉을 꺼내 들고 내게 던지며 말했다.


“살펴보게.”


나는 봉을 받았으나 어떻게 휘둘러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는 이걸 여의봉이라고 부르지 않아. 기껏해야 철주봉이지. 이건 무기도 아니야. 장식으로 쓰는 용도에 불과하네.”

“제가 보기엔 충분히 무기로 보여요.”


말은 이렇게 했어도 생각해 보면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쇠구슬로 양 끝을 막아 두었으니 남들은 속이 비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거다.


이걸 본 사람들은 틀림없이 엄청나게 무거운 봉을 쓴다고 생각할 듯싶었다.


나는 철주봉이 맘에 들었다. 나같이 무공이 없는 사람에게 꼭 맞는 허세를 부리기에 적당한 무기였다.


그는 내 생각을 꿰뚫어 본 듯이 말했다.


“무공도 모르는 네 녀석이 이걸 휘두른다고? 웃기지 마라. 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의도를 몰라 멍청히 서 있자, 그가 말을 했다.


“너의 재주는 아직 미완이니 더 연성해야만 할 거야. 넌 아직도 능력을 제대로 쓰는 법을 모르고 있다.”

“그 말씀은···?”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자석은 두 개의 극성을 하고 있다. 같은 극성끼리는 서로 밀치는 힘이 있다.


“방금 생각났어요. 그러려면 쇠구슬이 필요해요.”


만술장괴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구나.”


그는 서랍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동그란 쇠구슬이 50개가 들어 있었다.


“철주봉의 가격은 황금 10냥이다. 사고 싶다면 점원에게 돈을 지급하거라. 이 쇠구슬은 1개당 은자 1냥이다.”


금 열 냥이면 평범한 사람은 10년은 모아야 하는 거금이다.


“네? 주는 게 아니었어요?”

“흥!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느냐?”

“지금은 돈이 없어요. 쇠구슬은 이번엔 공짜로 주세요.”

“인석아. 그러면 내가 밑지는 장사를 하는 꼴이다.”

“스승님이 제자에게 장사로 이윤을 남긴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넌 아직 내 제자가 아니야.”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말을 이었다.


“전백승을 죽인 후에 나를 찾아오거라.”


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는 이 철주봉을 여의봉이라 부를 거예요. 스승님, 제게 여의봉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만술장괴가 슬쩍 말을 흘렸다.


“황금패는 갖고 있겠지?”

“그럼요.”


내가 황금패를 꺼내 보이자 만술장괴가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잘 간수하고 네 고모를 찾거라.”


그가 창고를 나가자 잠시 후 점원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우리 수석 장인께서 철주봉을 손님께 파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금액은 황금 10냥입니다.”


나는 빙그레 웃고는 철주봉을 휘두르자 점원은 놀라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말했다.


“한번 맞아 볼래?”

“아이고~. 조심하십시오. 그 물건에 스치기만 해도 제 뼈는 산산조각이 날 겁니다.”


나는 갑자기 돈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술장괴는 괴인이니 돈을 밝힐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손오공은 용궁에서 여의봉을 공짜로 가져갔다. 아무리 만술장괴가 황금 10냥을 받겠다고 했지만, 그대로 돈을 준다면 만술장괴 같은 괴짜가 핑계를 대며 나를 제자로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대금은 금천석 대인에게 받아!”


내 말에 청년이 화가 난 표정이다.

나는 내 얼굴을 청년의 얼굴에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내가 그의 아들 금무혁이야. 그러니 내 아버지에게서 받으란 말이다. 확인증을 써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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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정의로운 사나이 24.05.31 23 0 13쪽
21 재물을 찾아라! 24.05.30 26 0 15쪽
20 신풍권 권민기와의 만남 24.05.29 30 0 14쪽
19 황금패의 행방 (3) 24.05.28 39 0 13쪽
18 황금패의 행방 (2) 24.05.27 38 0 13쪽
17 황금패의 행방 (1) 24.05.24 44 0 12쪽
16 늑대와 호랑이 24.05.23 38 0 12쪽
15 수어지교 24.05.22 44 0 14쪽
14 관군에 포위 되다 24.05.21 47 0 12쪽
13 삼대일의 결투 24.05.20 65 0 11쪽
12 결투를 신청하다 24.05.19 67 0 13쪽
11 황금패를 분실하다 24.05.18 90 0 12쪽
10 장부의 진실 24.05.17 102 0 14쪽
9 복수 24.05.16 113 1 12쪽
8 무기를 구하다 (3) 24.05.15 136 1 12쪽
» 무기를 구하다 (2) 24.05.14 152 0 12쪽
6 무기를 구하다 (1) 24.05.13 182 2 12쪽
5 동굴에서 나가다 24.05.12 208 2 13쪽
4 환골탈태 24.05.11 222 1 13쪽
3 상산대협 24.05.10 234 3 11쪽
2 기연 24.05.09 248 4 12쪽
1 죽느냐 사느냐 24.05.08 29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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