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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영(靑英) 님의 서재입니다.

슬기로운 망나니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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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4월봄바람
작품등록일 :
2024.05.08 16:16
최근연재일 :
2024.06.07 18:30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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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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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수 :
153,045

작성
24.05.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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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황금패를 분실하다

DUMMY

삼식이와 나는 나이와 생일이 같았다. 같은 집에서 태어나 같이 자라서 어릴 때는 싸움도 많이 했다. 그때마다 하인들은 삼식이를 야단쳤다. 그럴 때면 남몰래 삼식이를 불러내서 맛있는 간식도 나눠 먹으며 화해하곤 했다.


삼식이는 비록 하인의 신분이었지만, 나와 단둘이 있을 땐 친구처럼 내 이름을 부르고 말도 놓았다. 어떨 때는 나를 깔보고 비웃기도 했지만, 그게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난 친형보다 더 형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점점 크면서 남들 앞에서 그런 티를 내면 낼수록 삼식이만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남들 앞에서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로 아래층에 내려왔다.


나를 본 삼식이가 쪼르르 달려와 말했다.


“무혁아, 어떻게 된 거야? 어제는 널 못 알아볼 뻔했어.”

“왜 나를 못 알아봐?”

“그새 키가 많이 자라고 살이 빠져서···.”

“그 난리가 난 후부터 얼마나 지난 거야?”


삼식이가 100일이 넘었다는 말에 기가 막혔다.


기절했던 날이 많아서 그런지 시간이 언제 그렇게 많이 흘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삼식이에게 모든 사실을 말할 이유가 없어 대충 둘러댔다.


“너무 고생하다 보니 살이 쭉 빠졌어.”

“키가 정말 많이 컸네. 부럽다.”

“성장기니까···. 그런데 넌 여전히 그대로구나?”


삼식이는 잠시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그는 나를 생각해 주는 척 말했다.


“사실, 네가 이런 누추한 객잔에서 잔다고 생각하니 조금 우습긴 해.”

“집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포졸들이 살인사건 현장이라면서 못 들어가게 하던데?”


삼식이는 펄쩍 뛰며 관가를 비난했다.


“주인어른이 갖다 바친 돈이 얼마인데 집을 봉인하다니! 책임자는 모가지 쳐야 해,”

“반드시 집을 찾을 거야. 시일이 100일이나 지나도록 봉인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집을 도로 찾으려면 관청에 가서 돌려달라고 청원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시일은 얼마나 걸리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삼식이가 비아냥거렸다.


“네가 무슨 수로?”


씩 웃으며 대답했다.


“삼식아, 너 잔머리 잘 굴리잖아? 한번 방법을 찾아봐. 좋은 방법이면 해 볼게.”

“관아에 먼저 가서 집을 돌려 달라고 청원하는 것 정석이야.”

“그러려면 내 신분을 밝혀야 하는데··· 문제가 있어.”

“그렇겠네. 네 모습이 많이 변해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거야.”


삼식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좋은 수가 있어. 신분패를 보여줘.”

“신분패?”


지금쯤 내 신분패는 비룡폭포의 물속 어딘가에 가라앉았을 거다.


치명상을 입고 호수에 빠져 죽을 뻔한 그 날 이후로는 깊은 물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며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건 호수 아래에 있을 거야. 너···, 수영 잘하지?”


삼식이가 펄쩍 뛰며 말했다.


“난 수영 못하는 거 알잖아?”

“100일이 지나도록 수영도 안 배우고, 뭐 했어?”

“너야말로 물을 좋아했잖아?”

“내가 언제?”


삼식이가 비웃듯 말했다. 꼭 이럴 때만 말 높이지.


“왜 그러세요? 몇 년 전에 연못에 들어가 주인께서 아끼시는 잉어를 모조지 잡아 죽였잖아요.”

“내가 한 일이 아니래도.”


그 날, 나는 잉어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날 연못에 나가 보니 아버지가 아끼던 잉어뿐만 아니라 다른 물고기들이 모두 죽어서 둥둥 떠 있었다.


밤중에 누군가가 연못에 독을 풀었고 그 범인은 나라고 지목당했다.


변명했지만, 몇몇 하인들이 내가 잉어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자 ‘모든 잉어를 죽여버리겠다’라고 푸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 방에서는 극독약이 든 병이 발견되었다.


결국 나는 사흘간 방에서 갇혀있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통이 터진다.


나는 정말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걸 물었다.


“아버지는 집이 박살 난 건 알고 계셔?”

“당연히 알겠지. 이 낙양 땅에 주인님의 수족과 눈과 귀가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데.”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아버지는 나를 찾지 않았어?”


삼식이는 고개를 저었다. 계속 삼식이를 빤히 쳐다보자 마침내 그가 말했다.


“실은···. 네 시체를 찾으라는 분부가 있었어. 사람들은 네가 죽었을 거라고 말하며 장례식을 하라고 했으나 주인님은 그 말을 듣지 않았거든.”

“뭐?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는 뜻이잖아? 그런데도 집에 돌아오시진 않았어?”

“하북의 사업 규모가 꽤 커서 돌아올 시간이 없으신가 봐.”


아버지가 야속했지만, 삼식이 앞이라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아버지에겐 사업이 자식과도 같으니까.”

“웃기시네. 그럼, 넌 자식이 아니란 거야?”

“나는 이미 철이 들었으니까. 사업은 아직 신생아 수준인가 보지.”


“주인님에게 네 실력을 보여줘. 네가 집을 도로 찾으면 능력을 인정해주실 거야.”

“내가 집을 되찾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인정할 만한 일이 못 돼.”

“나···. 여기서 일하기 싫어. 제발 집 좀 찾아 줘.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잖아.”


삼식이에게 반강제적으로 내몰려 관아로 향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골치가 아팠다.


“환골탈태의 부작용이라니···.”


관아의 문 앞에 당도하자 문을 지키던 포졸이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오?”

“청원이 있으니 들어가게 해주세요.”

“먼저 신분증을 보여 주시오,”


“신분패를 새로 만들고자 하는 청원이에요. 관아에 들어가야 신분패를 만들지 않겠어요?”

“공자 혼자서는 곤란하오. 신분패를 만들려면 당신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오시오.”


몇 번이고 들어가게 해 달라고 실랑이를 벌였지만, 포졸은 막무가내였다.


포졸이 점점 나를 수상하게 생각하기 시작해서 물러나야만 했다.


결국 증인이 필요했다. 삼식이는 하인 신분이라 증인의 자격이 없었다.


만물장괴는 나를 알고 있으니 그를 증인으로 세우면 될 것 같기도 했다.


복수하면 찾아오라고 했으니 잘 됐다 싶었다.


대장간에 도착했으나 만물장괴는 물론이고 목규만이란 이름의 점원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일꾼을 찾아 물어보자 그가 대답했다.


“여기는 이미 팔렸소. 당신이 찾는 두 사람은 여기 새 주인께서 다른 일을 시킨다고 하더군.”

“이 가게는 낙릉공주의 소유예요. 그분의 후계자가 아닌 자가 대장간을 팔아넘길 수는 없어요.”


일꾼은 귀찮다는 듯이 대답했다.


“법적인 문제는 관아에서 해결하시오. 난 그런 건 잘 모르오.”

“새로운 주인은 누구요?”

“가만있자···. 이름이 장민후라고 했소. 최근에 낙양으로 이사 왔으니 찾을 수 있을 거요.”


일꾼과 다퉈봤자 별도리가 없어 대장간을 나와 길거리를 배회했다.


신분패가 없으니 관아에 가서 도움을 청할 형편도 못 된다.


장민후라는 사람을 만나서 대장간을 인수한 경위를 들어 보는 것이 좋겠다.


“만술장괴도 도움이 안 되는군.”


그때, 누군가가 둔기로 내 뒤통수를 내리쳤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 바닥에 쓰러지자 그가 내 봇짐을 빼앗으며 말했다.


“이 녀석, 완전 호구잖아!”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사람이 죽었다!”


손으로 뒤통수를 만졌다. 아프긴 하지만, 머리가 깨지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환골탈태한 덕분에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한 사람이 나를 걱정하며 물었다.


“괜찮소?”


다른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을 리가 있나? 어서 의원을 불러오게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말했다.


“전 괜찮아요. 누가 날 몰래 습격한 거죠?”


사람들은 유유히 걸어가는 양아치를 가리켰다.


땅에 떨어진 여의봉을 집어 들고 그에게 뛰어갔다.


“게 섰거라!”


그 소리를 들은 양아치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양아치는 골목 상가 안으로 들어가자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양아치는 골목길에 노점상이 진열해 둔 물건들을 쓰러뜨리면서 앞길을 방해하며 도망쳤다. 상인들은 놀라며 소리친다.


“내 물건! 이놈아! 물어내!”


그런 소리에 돌아올 녀석 같으면 처음부터 상품들을 쓰러뜨리지도 않았겠지.


제법 속도가 빠른 게 경공을 조금은 익혔을지도 모른다.


그때, 누군가가 내 앞길에 다리를 쑥 내밀었다. 나는 그 다리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걸려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바로 일어나며 화를 냈다.


“대체 누구야?”


한 사내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놈아! 파는 물건을 망가뜨렸으면 사과하고 물어내야 할 것이 아니냐?”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보니 8척 장신에 몸이 탄탄하게 생긴 거구의 털보가 서 있다.


햇빛을 차단하는 듯 털로 뒤덮인 얼굴은 수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굵은 수염은 뱀처럼 꼬불거리며 얼굴을 가렸고, 두 눈은 깊은 숲속처럼 어두웠으나 눈빛은 살아 있어 누가 보더라도 녹림의 호걸로 보였다.


그렇다고 쫄면 내가 아니지.


“네가 뭔데 내 발을 걸어?”

“이 자식···. 완전 천둥벌거숭이군! 자기가 잘못하고서 어디서 큰 소리야? 당장 손해를 물어주지 못할까?”


지금 내겐 봇짐이 전재산이었다.

이놈에게도 흥미가 당기긴 하지만 봇짐 찾는 것이 먼저다.


“지금 바쁘니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비키시오.”

“못 비켜. 상인들에게 손실을 보상한 후에 비켜 주마.”


그때, 강호의 규칙이 생각났다.


개인 분쟁을 해결할 수단으로 결투를 하는 것이다. 결투로 누가 옳은지 판단을 내리면 된다.


결투할 때는 한쪽이 기절할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아니면 그 자리에서 졌다고 시인하면 싸움을 끝난다.


증인들이 있는 앞에서 결투를 약속하고 만일 저버린다면 그는 영원히 사람들에게 비겁자로 낙인이 찍힌다. 그러므로 결투 약정이 채결 되면 웬만하면 받아들여지게 되어 있다.


“지금은 바쁘니 내일 정오에 용인사 근처 은행나무 아래서 결투하자!”


뜻밖의 결투 신청에 거구는 주위 상인들을 돌아보았다.


“저 녀석이 내게 결투를 신청했으니 내일 오후까지 기다려 주시겠소?”


손해를 입은 몇 명의 상인들이 좋다고 말하는데 키가 작고 푸른색의 옷을 걸친 소년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이 아니에요. 먼저 달아난 자가 있어요.”


그러나 성격이 급한 거구는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내일 보자. 내가 상인들에게 손해 청구서를 모아서 가져가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아치가 달아난 곳으로 다시 달려갔다. 하지만 거구와의 실랑이로 시간이 지체되어서 양아치가 어디로 달아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봇짐을 찾지 못한 나는 품속에 넣어뒀던 황금패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괜히 쫓아갔어. 까짓 몇 푼도 되지 않는 재물이야 아무래도 좋아. 내게 황금패가 있으니 뭐가 걱정이야?“


그러나 억울한 마음은 다스려지지 않는다. 그렇게 저잣거리를 방황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내 곁을 살짝 스치며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그가 내 품속에 넣어둔 황금패를 슬쩍 빼간 것을 깨달았다.


예전보다 몸의 감각이 예민해져서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도둑이다. 도둑 잡아라!”


나는 소리를 지르며 그자를 뒤쫓기 시작했다. 뒤에서 보니 그자는 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오늘은 재수 옴 붙은 날이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퍽치기에 소매치기당했다고 생각하자 울분이 터진다.


“그건 내 엄마의 유품이야! 당장 내놓지 못해!”


큰 소리로 외치며 그를 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를 쫓으면서 보니 그가 내 봇짐을 매고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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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황금패의 행방 (2) 24.05.27 37 0 13쪽
17 황금패의 행방 (1) 24.05.24 44 0 12쪽
16 늑대와 호랑이 24.05.23 37 0 12쪽
15 수어지교 24.05.22 43 0 14쪽
14 관군에 포위 되다 24.05.21 46 0 12쪽
13 삼대일의 결투 24.05.20 64 0 11쪽
12 결투를 신청하다 24.05.19 67 0 13쪽
» 황금패를 분실하다 24.05.18 90 0 12쪽
10 장부의 진실 24.05.17 102 0 14쪽
9 복수 24.05.16 11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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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기를 구하다 (2) 24.05.14 151 0 12쪽
6 무기를 구하다 (1) 24.05.13 182 2 12쪽
5 동굴에서 나가다 24.05.12 208 2 13쪽
4 환골탈태 24.05.11 222 1 13쪽
3 상산대협 24.05.10 234 3 11쪽
2 기연 24.05.09 248 4 12쪽
1 죽느냐 사느냐 24.05.08 29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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