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자라나 사내가 된다.
어두워져서야 방에 돌아온 율을 바라보는 어린새들은 표정이 모두 안 좋았다.
율이 벌 받기를 자청해서 징벌방도 다녀오고 걸무와 다시 붙다가 선도장에 끌어가고 나니 공범이나 다름없은 어린새들은 율에게 빚을 진 맘이었다.
서너 시간 마당만 쓸다 왔다는 말에 다들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 교정이랑 마당 쓸기랑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야. 이건 그저 갈구는 거잖아!”
선도장의 ‘선’ 소리만 들어도 경기가 날 지경이던 규여 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선술스승, 신지씨 ‘효기’ 박사는 매우 고결하고 정명 공대한 분이라 들었다.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오황자 강이 낮은 음성으로 탄식하듯 말을 내뱉었다.
“이번엔 내가 나서는 건데······.”
맥달이 입술을 깨물며 아쉬워했다.
“아, 뭐. 너무 걱정 하지 마. 마당 쓰는 것이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율은 이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다음 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율이 선도장으로 향하는 길엔 혼자가 아니었다.
“부름도 없이 선도장엔 어찌 온 것이냐?”
선술스승은 율을 따라 빗자루를 메고 온 37번 방 어린새를 보며 물었다.
오황자 강이 입술을 열었다.
“저희 모두 동패가 돼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율만 홀로 처벌받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스승님. 저희도 함께 벌을 받겠습니다.”
오황자의 말에 선술스승은 잠시 말이 없었으나 엄숙한 표정은 거두지 않고 있었다.
맥달도 진도 잔뜩 움츠러들긴 했지만 이대로 두고 보진 않을 작정이 단단히 선 모양이었다.
“오냐. 너희의 생각이 가상하구나. 정 그렇다면 너희에게도 벌을 내리마. 너희는 가서 솔잎을 한 주먹씩 주워 오너라. 산 것은 아니 된다. 낙엽이 돼 떨어진 것만 주워 오너라.”
율도 나머지 어린새들도 표정이 일그러졌다.
애써 빗자룰 메고 산까지 올라온 보람도 없거니와 율의 벌을 나누고자 한 계획도 무산됐기 때문이다.
바늘 끝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것만 같은 스승의 표정에 압도된 어린새들은 뿔뿔이 흩어져 솔잎을 찾았다.
소나무가 태반인 산에서 낙엽이 된 솔잎이야 금방 줍겠거니 했다.
그러나 어린새들은 산중을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솔잎 하나를 찾지 못했다.
여덟 살 나이에 벌써 노안이라도 온 것인지 아무리 둘러봐도 퍼런 솔잎만 눈에 들지 갈색이 된 솔잎은 뵈지 않았다.
“아이 썅. 선술스승이 도력으로 조화를 부린 게 틀림없어. 이 넓은 산중에 솔잎 하나 뵈지 않는 게 말이 돼?”
저잣거리에서 자란 진은 입담이 거침없고 욕설도 다양하게 구사했다.
하나도 줍지 못한 진과 달리 강은 대여섯 개, 맥달도 여남은 개를 주워왔다.
“한 주먹이 되려면 밤새도 어렵겠다.”
맥달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쉬워질 줄 알았어? 제국 최고의 선도술사며 대학자다. 우리 꾀로는 당할 수 없을 거야. 시키는 대로 해보자.”
부루 강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어린새들도 동감을 했는지 인상을 구기면서도 그 흔해 빠진 솔잎 찾기에 시간을 보냈다.
동료 어린새가 그런 고충을 겪는지도 모르는 율은 어제보다 더 집중하여 마당을 쓸었다.
날이 어두워져 산에서 내려가야 할 때쯤이 돼 율이 쓸어놓은 마당은 사람 하나 눕기에도 좁아 보이는 정도였다.
나머지 어린새가 주워온 솔잎은 열댓 개도 되지 않았다.
“그것이 너희가 쥔 주먹의 크기니라. 장차 이 나라를 지탱해 나갈 너희가 쥔 주먹이 고작 솔잎 열댓에 불과하구나.”
어린새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력으로 골탕 먹은 생각에 분했던 진도 입술이 굳게 닫히고 말았다.
뭔가 깨달음을 주는 말씀을 기다리던 어린새들을 뒤로 하고 수염이 허연 노스승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정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린새들은 그대로 어깨가 축 처져 방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일도 오라는 말이야? 아니면 오지 말라는 말이야?”
진이 입술을 삐죽이자 맥달이 말했다.
“내준 일을 마무리 짓지 않았잖아. 내일도 주워야지.”
“다른 데서 주워가면 어떨까?”
진이 잔꾀를 부리자 강이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태학박사 못 봤어? 하루아침에 털북숭이 성성이가 된 것이 소문엔 선술스승의 술법 탓이라고 하던데. 잔꾀를 부리다간 머리털이 전부 뽑히거나 하얗게 셀지도 몰라.”
강의 윽박에 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간내기가 아닌 진도 몸소 선술스승의 도력을 체험하자 겁이 덜컥 났다.
“괜찮다는 데도 애쓰더니······.”
낭패를 본 동패에게 미안한 율이 볼멘소리로 혼잣말했다.
이날 일은 그들의 우정이 한층 깊어지는 계기가 됐다.
한 달이 가까워지자 새로 입교한 어린새들도 점차 싸움이 잦아들고 적응하는 모습이 됐다.
그런 와중에도 율은 동배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사분동이, 일년 선배였던 사택 구수가 떠든 얘기 때문에 어린새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있었다.
율이 현 황후의 소생이고 검산 지킴 씨족의 피를 물려받은 반 도깨비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황도의 상황을 전혀 접하지 못했던 지방 출신들도 입에서 입으로 얘기를 전해 듣고 수군댔다.
율과 37번 방 어린새가 지날 때마다 모두 곁눈질하기 바빴다.
맥달과 진은 이 수군거림이 몹시 거슬렸다.
때론 윽박지르고 때론 점잖게 타이르기도 했지만, 좀체 줄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마. 내가 검산 출신인 건 사실인걸. 다들 사분동이 도깨비라니까 그게 맞나보지 뭐. 근데 쟤들은 도깨비나 보고서 저러는지 몰라.”
“헉, 너 도깨비를 봤어?”
황도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보지 못한 진이 눈이 동그래져 물었다.
“뭐, 검산에선 냇가에서 가댁질도 하고 씨름도 하며 놀기도 했는걸. 한가위나 정월엔 모여 잔치도 하고 그랬어.”
“어떻게 생겼는데?”
“응. 꼭 너처럼 생겼어.”
진이 인상을 구겼다.
꼭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도깨비나 인간이나 형상은 비슷하다.
눈에서 나는 불기와 특이한 기운이 풍기다 뿐이지 별다르지 않았다.
두억시니만 형상으로 기억하는 맥달도 율의 설명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깨비는 두억시니처럼 뿔이 달리고 손발에 긴 손발톱이 나고 피부가 돌처럼 딱딱하지도 않았다.
정작 도깨비를 보지 못한 사람이 두억시니의 형상으로 미루어 도깨비를 상상했을 뿐이다.
그러니 어린새들이 율을 반 도깨비의 자식이라 무서워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점심 식사 후 종알대는 37번 방 어린새들 주위를 배회하는 한 녀석이 있었다.
두 번이나 율과 싸움을 벌였던 걸무였다.
근처를 배회하다가 이 소리를 몰래 엿듣던 걸무는 여기서 단단히 오해하게 된다.
‘날 기절시킨 그 기술이 도깨비의 비술이었구나! 큭, 도깨비를 무슨 수로 이기겠어.’
지난 대결 직후에 태학박사에게 장장 네 시간이나 눈물이 핑 돌 만큼 훈계를 들었던 걸무는 그 무렵 율의 주위를 빙빙 돌며 힐끔거리는 중이었다.
주워들은 것에 단단히 오해한 걸무는 더는 율과 자웅을 겨룰 의지마저 잃어버리게 됐다.
먼 훗날, 걸무가 집대성한 무예서 체술 편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참수단斬首斷’이란 비술를 소개하였는데 이를 본 율은 길로틴 쵸크를 제대로 표현했다며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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