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어둑별의 다락방

오리엔트 특급 영웅 전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어둑별
작품등록일 :
2021.05.12 12:03
최근연재일 :
2021.07.11 18:05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0,961
추천수 :
1,448
글자수 :
284,803

작성
21.05.13 17:35
조회
987
추천
40
글자
8쪽

국무國巫의 예언

DUMMY

책을 읽다가 갑자기 골이 난 표정으로 멍해진 율은 학사를 통해 목욕 장면을 훔쳐보던 부 중에 여인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었다.

그 아리따운 여인들은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한 대장군 아들들의 부인들이었다.

청상과부들.

대장군과 초고 부인은 이 불쌍한 여인들의 재혼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부인들의 친정이 이제 대장군부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대장군부는 이 여인들의 든든한 배경이 돼 줄 거란 소리였다.

율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그녀들을 훔쳐보며 키득거리며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 할 자신의 장밋빛 미래를 그렸던 일이 얼마나 그녀들에게 무례한 일인지 생각하니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부 중에서 마주칠 때마다 옅은 미소를 띠며 인사를 건네던 그 여인들 생각에 맘이 아팠다.

율은 다시는 목욕탕을 기웃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여인들은 그해 가을과 겨울, 더는 전장에 나가지 않는 사내를 만나 대장군부를 떠났다.


역사서와 학사와의 대화를 통해 안 사실을 기초해 예상한다면 귀족 중 절반 이상은 전장에서 산화할 공산이 컸다.

그만큼 무수한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대장군이 돼 제국을 호령하는 양부 가림이 얼마나 대단한지 반증하기도 했다.

발목이 끊어져 다리를 절어도 배냇병신을 나와 몸이 불편해도 귀족은 예외 없이 전장으로 나간다는 점에서 전장을 피할 뾰족한 묘수는 없어 보였다.


‘별수가 없네. 10년 동안 나 스스로 괴물이 되는 수밖엔.’


그날부터 율은 어린 맘에도 미래에 생존을 위한 훈련에 들어갔다.

오전엔 서고로 가 각종 지리서, 병서 등을 읽었고 오후엔 연무장으로 가 갑사들과 놀이를 가장한 신체 단련을 했다.

아직 무거운 무기를 들고 단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로 체력과 근골을 키우는 노력을 했다.

사예射藝만큼은 어린 나이에도 수련하기 적합했기 때문에 하루에 백발이상 화살을 날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검산에 있을 때부터 자신 있던 활 실력에 부 중의 갑사들도 모두 율의 솜씨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아이고, 우리 도련님. 아시두리로 가셔도 사예만큼은 으뜸이실 겁니다. 대단하십니다.”


무치라는 갑사 중 십인장이 엄지척해 보이며 칭찬을 했다.

향이와 그렇고 그런 관계에 있는 그 갑사다.


“아시두리? 그게 뭔데?”

“엥? 아직 모르십니까? 내후년이면 도련님도 아시두리로 가셔야 할 터인데······.”


무치에게 들은 바로는 아시두리는 앗센 제국의 인재를 키워내는 군사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이었다.

하긴, 이만한 제국에 그런 기관이 없을 리가.

여덟 살에 입교해 열다섯 살에 졸업하는 아시두리는 귀족뿐만 아니라 형편이 되는 평민도 입교해 제국의 인재로 키워진다고 했다.

물론 귀족 자제는 의무 교육이라고 했다.

비단 군사 교육만이 아니라 광범위한 학문도 다룬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교육을 받는 자들이 제국의 관료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율은 내후년엔 아시두리로 가야 했다.


&


대장군 가림과 부 중 늙은 학사 도수가 한가로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래, 요즘은 무슨 책을 주로 보는가?”

“지리서에 흠뻑 빠지셨다가 근래에 병서를 주로 많이 읽으십니다.”

“병서?”

“네, 병참에 대해선 황실의 박사나 군부 참모와 대화해도 막힘이 없을 것입니다.”

“지리서에 병서라······.”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해봤습니다만, 율 도련님은 신동입니다.”


가림은 옅은 미소를 띠며 차를 마셨다.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자네 입에서 신동 소리가 나온 걸 보니 대단하긴 한가 보군.”

“대장군, 칭찬이 아닙니다.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율 도련님은 천년에 하나 나올 천재가 틀림없습니다.”

“허허, 사람 참.”


너털웃음을 보이며 차를 마신 가림은 학사 도수를 물리고 서재에서 멀리 보이는 황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범재여야 하는데, 범재여야 해.’


학사 도수를 청하기 전 가림은 대장군부 훈련 대사범을 불러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어린 시절 전장에서 무릎을 다치고 육십 평생을 갑사 훈련에 매진한 대사범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율 도련님은 제 손으로 키워낼 그릇이 아닙니다. 당대 최고라 할 수 있는 무골인데다가 잠재된 선술의 크기를 제 능력으론 파악조차 어렵습니다.”


가림은 한숨을 쉬며 홀로 되뇄다.


‘과연 검산 지킴 씨족의 후예란 말인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지 어린 율의 재주를 무슨 수가 있어 가린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황후가 된 수임의 소생임을 아는 많은 이들은 율을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다.

내후년에 율이 아시두리에 들고 나면 큰바람이 불 터였다.


때때로 너무 잘남이 화를 부르기도 한다.

애초에 앗센 최고의 미녀였던 수임이 해마리 산으로 들어간 것도 경천동지의 운명을 지닌 아이를 잉태하리란 국무國巫의 예언 때문이지 않았는가.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일 운명이란 무엇이겠는가.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황실과 위정자로선 달가운 일은 결코 아니다.

고대로부터 전승한 예언 선술을 이어온 앗센 제국 국무의 신통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가림은 해마리 산의 신성함에 의지해 스스로 자신을 유폐한 수임을 막지 못했다.

그곳에서 사람과 검님의 경계에 선 지킴 씨족의 아이를 잉태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예언의 중심에 있는 율을 생각하면 막막함이 밀려왔다.

사사로이는 양자이며 그전엔 외조카 아닌가.

장성해 세상을 어지럽힐 수 있다는 이유로 언제 어떻게 처분돼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이런 내막을 잘 아는 황제는 무슨 이유로 수임을 황후로 삼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수임에게도 율에게도 잔인한 운명이다.’


가림의 고심은 깊어졌다.


&


이미 해가 져 어두워졌을 무렵이었다.

대장군의 막내아들로 살아갈 장밋빛 인생이 어그러진 율은 빈 연무장에 앉아 여러 상념에 잠겼다.

검산의 지킴 씨족도 죽음을 옆에 두고 삶을 사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검산을 침범하는 두억시니와의 전투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무사도 상당했다.


‘여기나 검산이나······.’


어차피 세상에 난 것엔 생존이라는 문제가 항상 존재했다.


‘전생에선 나았던가. 별반 다를 게 없네. 그나마 준비할 시간과 명확한 목표가 있지 않나.’


이런저런 고민하던 율은 생부 생각이 났다.

율은 해마리 산에 있을 적에 생부와 지킴 무사들이 동료를 잃거나 큰 전투를 앞두고 향했던 동굴이 있었다.

생부와 무사들은 그 바위 동굴에서 마음을 다스리곤 했는데 철모르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번뇌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곧잘 따라 하곤 했다.

율은 기억을 더듬어 몸은 편히 하고 정좌하여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곤 생부와 같이 호흡에 집중하며 온몸의 신경을 일깨워 맘을 다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편해지고 맘이 명료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스스로 관조자가 돼 자신을 들여다보는 경지에 이르러 온몸에 일렁이는 알 수 없는 기운을 알아채곤 낯설지 않은 기운에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 이런 명상? 호흡? 비슷한 수련을 하고 나서야 번다했던 맘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야 율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sunset-691848_640-1.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24 꿈길™
    작성일
    21.05.14 02:34
    No. 1

    제목... 정말 어렵네요. 이렇게 개성이 뚜렷하고 필력이 좋은데.
    제목이 ... ㅋ
    혹시 '별을 지키는 무사' 같은 건 어떤가요?

    찬성: 0 | 반대: 1

  • 작성자
    Lv.21 어둑별
    작성일
    21.05.14 02:50
    No. 2

    으으. 공모전 중에 쪽지가 안되는 걸 까먹고 장문에 편지를 썻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기존에 나온 작픔이랑 좀 이미지가 겹칠 듯 해서 심히 저어되요.
    에휴 참 어렵네요.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신경써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다오랑
    작성일
    21.05.14 11:11
    No. 3

    잼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작가님 화이팅^^

    찬성: 0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21 어둑별
    작성일
    21.05.14 12:24
    No. 4

    정말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오리엔트 특급 영웅 전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리메이크 공지 21.07.12 151 0 -
공지 안녕하세요. 어둑별이입니다. +2 21.07.08 64 0 -
공지 제목 변경 노트[재수정] +4 21.06.03 665 0 -
85 아뭄의 서 +6 21.07.11 177 5 8쪽
84 탑의 수호자 +4 21.07.10 200 6 7쪽
83 거꾸로 세운 탑 +8 21.07.09 219 6 7쪽
82 천형을 짊어진 망령 +2 21.07.08 231 5 7쪽
81 진Djinn +6 21.07.07 229 6 12쪽
80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4 21.07.06 237 6 7쪽
79 다재다능 키리얀 +4 21.07.05 235 5 7쪽
78 권능 현신 +10 21.07.04 244 6 8쪽
77 이딤의 성소 +8 21.07.03 250 5 7쪽
76 겁화지체劫火之體 +6 21.07.02 256 6 8쪽
75 작은 깨달음 +6 21.07.01 259 5 7쪽
74 마스터의 세계 +8 21.06.30 261 7 7쪽
73 굿바이 마이 라이프 +10 21.06.29 262 6 7쪽
72 순례의 길 +10 21.06.28 264 8 7쪽
71 '이데'로 가는 길 +10 21.06.27 272 7 8쪽
70 포스가 그대와 함께 +10 21.06.26 274 6 9쪽
69 네 검은 어쨌지? +10 21.06.25 284 6 8쪽
68 소년 노예 +8 21.06.24 281 4 8쪽
67 [제4장] 이디프를 향하여 +10 21.06.23 287 7 8쪽
66 남도에 꽃피운 사랑 +10 21.06.22 294 7 8쪽
65 피 흘리지 않은 처형식 +10 21.06.21 296 6 8쪽
64 타이마르의 몰락 +12 21.06.20 286 9 7쪽
63 쥐의 왕국 +10 21.06.19 292 8 8쪽
62 검은 갈기의 사내 +10 21.06.18 295 7 7쪽
61 사람과 사람의 전쟁 +12 21.06.17 304 6 7쪽
60 비역 +8 21.06.16 311 8 7쪽
59 세나비에게 ​알리지 마라. +12 21.06.16 303 8 7쪽
58 불휘 +12 21.06.15 301 9 7쪽
57 명도冥道의 도사들 +10 21.06.15 312 8 8쪽
56 잔도를 달리는 말 +8 21.06.14 317 6 7쪽
55 연금술 상인 +8 21.06.14 328 7 7쪽
54 깨어난 권능 조각 +8 21.06.13 354 8 7쪽
53 꿈에 그리던 해마리 산 +9 21.06.13 350 13 7쪽
52 [제3장] 세나비 Ⅱ +13 21.06.12 362 10 7쪽
51 영웅은 주색이다. +12 21.06.12 367 11 7쪽
50 누구 탓도 아니다. +14 21.06.11 368 15 8쪽
49 기도 +12 21.06.11 361 16 7쪽
48 어린새의 꿈들 +10 21.06.10 360 12 8쪽
47 마적 +10 21.06.10 364 9 8쪽
46 호형호제가 웬 말인가. +12 21.06.09 369 14 8쪽
45 능소능대能小能大 하였다. +14 21.06.09 383 19 7쪽
44 변경의 북소리 Ⅱ +10 21.06.08 402 14 8쪽
43 수상한 모정, 불타는 입술 +10 21.06.08 407 13 7쪽
42 여우 구슬과 칠황자 +16 21.06.07 415 16 8쪽
41 여들 땅의 새 주인 +11 21.06.07 412 16 8쪽
40 내 속엔 뭐가 너무 많아서··· +15 21.06.06 449 16 7쪽
39 반열에 오른 자 +13 21.06.06 425 12 8쪽
38 세나비 +8 21.06.05 417 11 7쪽
37 하필 그믐밤 +9 21.06.05 423 11 7쪽
36 체탐자 +9 21.06.04 437 11 8쪽
35 밀명密命 +9 21.06.04 456 12 8쪽
34 귀목鬼木 +11 21.06.03 450 15 8쪽
33 [제2장] 내 마음대로 되는 것 +11 21.06.02 452 20 8쪽
32 황제께서 말씀하셨다. +11 21.06.01 474 19 8쪽
31 어미 두억시니 +10 21.06.01 458 20 8쪽
30 도르바이 +11 21.05.31 458 18 7쪽
29 기울어진 전장 +7 21.05.30 475 17 8쪽
28 베르내의 기적 +6 21.05.29 490 17 7쪽
27 요력妖力이 검에 든다. +10 21.05.28 494 16 8쪽
26 초혼술燒魂術 +12 21.05.28 530 16 8쪽
25 휘날리는 대장군 기 +9 21.05.27 525 20 8쪽
24 꿈틀거리는 해모 가문 +9 21.05.27 551 20 8쪽
23 여인을 울리는 나쁜 남자 +11 21.05.26 565 21 7쪽
22 보이지 않는 미래 +11 21.05.26 554 19 8쪽
21 붉칼 +11 21.05.25 582 22 8쪽
20 그믄 팔매 +10 21.05.25 585 22 8쪽
19 [제1장] 변경의 북소리 +9 21.05.24 617 27 8쪽
18 문무겸전文武兼全 +9 21.05.24 611 18 7쪽
17 너는 커서 무엇이 되련? +11 21.05.23 627 18 7쪽
16 둔갑술 +9 21.05.22 648 24 7쪽
15 성인식 +11 21.05.21 673 28 8쪽
14 두억시니 +12 21.05.21 697 33 7쪽
13 씨줄, 날줄, 그리고 실타래 +9 21.05.20 713 29 8쪽
12 아이는 자라나 사내가 된다. +9 21.05.20 735 31 8쪽
11 불꽃이 될 큰 나무 +11 21.05.19 750 31 7쪽
10 성상은 아이가 궁금하다. +9 21.05.19 775 31 8쪽
9 외척난입 +13 21.05.18 788 36 7쪽
8 도발의 정석 +9 21.05.17 832 36 7쪽
7 첫 만남은 강렬하게 +13 21.05.16 855 41 7쪽
6 아시두리의 어린새 +11 21.05.15 905 47 7쪽
5 청강검기靑剛劍氣 +6 21.05.14 939 50 8쪽
» 국무國巫의 예언 +4 21.05.13 988 40 8쪽
3 귀족의 조건 +8 21.05.13 1,097 47 7쪽
2 황도의 귀공자 +8 21.05.12 1,448 52 7쪽
1 [서장] 해를 삼키고 나온 아이 +28 21.05.12 2,331 87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