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귀신상어 님의 서재입니다.

파일럿 아카데미의 무한 회귀자

웹소설 > 일반연재 > SF, 게임

귀신상어
작품등록일 :
2020.09.14 23:20
최근연재일 :
2020.11.30 18:0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172,725
추천수 :
7,825
글자수 :
367,520

작성
20.10.25 11:10
조회
2,208
추천
111
글자
12쪽

438th=우주 아이돌 (1)

DUMMY

계속되는 루프와 쌓여가는 경험치. 난 점점 능숙해졌고 스스로도 달인에 가깝다 자부할 만큼의 전투력을 보유하게 되었지만 실패했다.


이유는 단 하나. 코어 키의 발동시간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긴 시간을 쏟아 붓더라도 몇 십분 단위의 지속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건 마치 전신에 힘을 준 채로 격렬한 움직임을 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숙련도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에 가까운······.


하지만 루프가 반복될수록 시간에 쫒기듯, 난 습관처럼 '다시'를 외쳐댔고. 결국 한계에 달했다.


시뮬레이션 속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져 구토를 했던 것이다.


“우웨에에엑!”


먹은 것도 없는데 정신적인 압박만으로도 구역질이 나는구나.


당연하지만 주변의 생도들은 전부 당황했고 날 알고 있는 이들은 주위로 모여들어 내게 염려를 건네 왔다.


“괜찮아요? 역시 아까 쓰러졌던 일의 영향이······.”


레아는 어머니와 접촉해서 현실로 튕겨져 나갔던, 이제 언제쯤이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예전 일을 언급했고, 난 대답하지 않은 채 입을 닦았다.


“어이. 괜찮나?”


이어서 엔도가 검집으로 날 툭 치며 물었고 난 그녀의 그런 무례한 태도에 인상을 찌푸리며 심호흡을 하곤 얼굴을 정돈한 채 일어섰다.


“괜찮은지 모르겠군.”


율 대위도 내게 물어왔지만 난 무표정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예 뭐 신경 끄십쇼.”


어차피 내가 왜 힘든지도 이해 못하면서 잘도 위로한다 싶었기에.


“뭐예요! 사람들이 걱정을 해주는데!”


“예의를 갖춰라.”


“시끄러워. 너네 둘은 싸우기나 해라.”


난 내게 화를 내는 두 명에게 소리치고는 뒤를 돌려던 게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지만 때마침 내 팔을 잡은 타냐가 날 뒤로 잡아당기며 대위에게 말했다.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으니.”


“······그래. 그러는 게 좋겠군.”


율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난 검술을 갈고 닦아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강박에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니. 그것보다 코어 키를······."


"가만히 있어."


하지만 몸에 힘이 없었는지 결국 난 타타냐의 부축에 따라 기숙사로 옮겨져 내 침대에 눕게 됐다.


“율 대위의 전달사항은 아마 같은 조원인 미코양이나 엔도 양이 전해줄 거야.”


난 천장을 바라보며 잔상처럼 떠올려지는 파가누스와의 전투를 머릿속에서 진행시키다가 진절머리가 나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있는 건가······.


“······너 진짜 괜찮아?”


타냐가 물었지만 난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고 좀 더 나를 쳐다보던 그는 “안 되겠다.” 하곤 침대에서 일어나 내 겨드랑이를 받쳐 날 강제로 일으켰다.


“어······어? 야야!”


난 수백 번의 루프에서 처음 보이는 타냐의 행동에 드물게 반응하며 놀랐지만 그는 단호했다.


“너. 밖에 좀 다녀와. 심신이 지쳐서 정상적인 상태가 아냐.”


그는 외출을 위한 겉옷을 내게 던졌고 난 그것을 받아든 채로 멍하니 서 있다가 물었다.


“아니. 나 괜찮은데? 지쳐 보여?”


몇 번이고 데미지 없이 3일 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 내 장점인데.


“응. 거울이라도 보지?”


타냐는 날 뒤로 돌려 밀치며 화장실로 향하게 했고 거울속의 나는 반쯤 풀린 눈을 하고 있었다.


물론 몸은 지치지 않은 상태였기에 멀쩡해 보였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나 기운 같은 것이 수상해보였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그렇더라도 좀 더 중요한 일이 있는 법이다.


“아니. 괜찮아. 그것보다 너 오늘 지급 받은 코어 키 사용 훈련 할래? 검술 훈련 겸해서.”


내가 고개를 젓고 허리에 메인 코어 키로 손을 옮기자 타냐는 처음으로 정색하며 노골적으로 내게 혐오의 시선을 보내왔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진짜 맛 갔어. 휴일이니까 나가서 바람을 쐬던지 아니면 앙뒤트 양이라도 만나보던지 해.”


“레아? 어차피 죽을 건데 뭣 하러? 차라리 코어 키 작동 훈련이······.”


그 순간 강한 충격과 함께 내 목이 옆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고 난 얼얼해진 내 볼을 만졌다.


“정신 좀 차리라고.”


타냐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렇게 이야기 한 다음 세면대의 물에 손을 적셔 내 얼굴에 뿌렸다.


“네가 우리들하고 다른걸 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그렇게까지 전지전능한 인간은 아니잖아. 훈련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볼 때 넌 지금 정상이 아니야. 그러니까. 나가서 사람들이라도 구경하고 오라고. 군부대 내에만 있느라 틀에 갇혀 있는지도 모르니까. 리프레쉬 응?”


타냐의 말에 난 하는 수 없이 한수 접고는 대충 옷을 챙겨 입은 다음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사실상 그가 나를 밖으로 쫓아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한숨을 쉬며 지금쯤 싸우고 있을 엔도와 레아 두 명을 떠올렸다.


참.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싸우는 걸 보면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걸 왜 말려야 하나 싶기도 하고.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난 어느새 검문소 앞까지 왔고 그곳의 병사는 내 id를 체크하고는 나에게 말했다.


“소위로 등록되어 있으십니다만 복장이······.”


“아직 장교복을 지급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아······예.”


무표정한 내 대답을 듣고 그는 얼떨떨하게 납득하곤 문을 열어주었다.


*


결국 갈 곳은 어디인가. 난 습관처럼 버스를 타고 레아와 함께 갔었던, 백화점과 공원이 있는 번화가로 향했다.


루프가 반복되어 몇번째인지 판별하기 어려워졌을 무렵부턴 그 누구와의 개인적 관계를 쌓는 것도 의미 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어 그만 두었기에, 실로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만약 루프를 반복할 때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함께 어울려 외출을 계속하다 보면 이 루프를 해결했을 때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무덤덤해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뭐 백을 넘어간 시점에서 이젠 아무래도 좋았지만.


난 버스에서 내려 번화가로 들어선 다음 레아와의 추억이 없는 장소를 찾아 앉았고, 그곳은 공연장이 얼핏 보이는 위치의 벤치였다.


공연은 내일 시작할 텐데 벌써부터 몇명은 텐트를 치고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고 내일의 공연을 기대하며 떠들고 있는 행복한 가족, 연인들도 꽤 보였다.


레아랑 나도 저렇게 보였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등받이 뒤로 목을 꺾고 타냐의 말대로 사뭇 다른 것 같은 민간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결국 그러면서도 머릿속에선 적 테트라의 위치와 공격 순서 그리고 아군이 그에 따라 취할 수 있는 대응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일종의 게임 중독과도 비슷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율 대위에게 테트라의 습격에 대한 대비를 부탁하는 걸 잊었군, 뭐 그렇다고 해도 단 한 번도 덕을 본 적은 없으니 의미 없겠지만.


그냥 이렇게 된 김에 훈련에 멋대로 불참하고 밖에서 어떻게 세상이 진행되는지 볼까? 테트라의 유입 경로도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


어느새 밖에 나와서까지도 그 동안의 루프와 똑같이 어떻게 하면 파가누스 무리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던 난, 묘한 행색을 하고 있는 사람을 얼핏 보고는 고개를 다시 내리고 시선을 인파로 향했다.


부대끼는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이질적인 행동을 하는 두 명. 마스크를 쓰고 볼캡을 푹 눌러쓴 다음 후드티를 얹고 선글라스를 낀 매우 수상한 차림새의 사람과 어떻게 보면 내게 익숙하다고 말할 수 있는, 미세한 광학위장이 노이즈를 일으키는 얼굴을 한 안드로이드.


어쩌다가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해대는 괴물을 놔 둘 수는 없지.


안드로이드보다 한발 앞서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달리고 있는 인간은 분명 자신이 쫒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두 명을 쫒아 걷기 시작했고 곧 인적이 드문 공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곳의 분수를 보곤 몇 번인가 와본 적이 있는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저나 저 사람은 쫒기고 있으면서 왜 굳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도망쳐 습격하기 좋은 상황을 만들어주는 건지.


어느덧 달리기를 그만둔 도망자는 뒤로 돌아 마스크를 벗었고, 추격하던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매우 닮은 행동과 말투를 하기 시작했다.


“저를 부른 게 당신입니까?”


“제가요? 글쎄요~”


멀쩡하게 인간의 말을 하는 기계와 쫒기고 있었음에도 오히려 발랄한 말투로 대답하는 여자. 난 뭔가 특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점차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정신파의 이상적 확장이 느껴져 관계자라고 생각했지만. 뭐,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살려 보낼 수도 없으니.”


안드로이드는 노이즈가 일어나는 얼굴을 만지며 몸을 숙였고 난 곧 그것이 적의를 가진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낀 여자는 태연하게 서있을 뿐이었고 결국 난 큰 걸음을 앞으로 내딛었다.


“어라?”


난 여자의 어깨를 당겨 안드로이드의 피격 범위에서 벗어나게 한 다음 나머지 한쪽 손으로 안드로이드의 공격을 빗겨냈다.


그리고 엇나간 팔을 붙잡아 관절을 꺾은 다음 목을 잡고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쳤다.


이젠 거의 자동 반사처럼 이루어지는 작업, 루프를 반복하면서 내겐 생각 없이 백병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


딱히 정해진 유파나 근본이 없는 철저하게 상황에 맞춰져 만들어진 기술들이었기에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것이 되진 못하겠지만 뭐. 이런 영웅놀이를 할 땐 유용했다.


난 쓰러진 안드로이드의 머리통을 걷어찼고 무거운 기체는 바닥에 긁히며 3바퀴 정도만을 굴러갔다.


“왜 도망을 안가세요?”


난 모자를 쓴 여자에게 물었지만 곧장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랬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아마도 일반인. 여태 상정해왔던 동기들과는 대처도 움직임도 다를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이다.


하지만 내가 사과하려 하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켰고 난 곧장 검을 뽑아 삐걱이며 일어난 안드로이드의 머리와 몸통을 Z자로 베어 다섯 동강을 내고는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젠 별다른 루틴 없이도 코어 키의 작동까지는 여유로웠으니 뽑자마자 적을 베는데 장애는 없었던 것이다.


“와!”


쫒기고 있던 여자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했던 것도 모르는 것인지. 어린애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난 한숨을 쉬었다.


“방금 죽을 뻔 한 거 아세요?”


“제가요? 에이~ 전 안 죽어요.”


그녀는 손을 저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고 난 그녀가 대범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고민하다가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다 싶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조심하세요. 저 이상한 기계는 제가 회수하겠으니.”


그렇게 말하곤 뒤를 돌아 볼을 긁으며 군에 보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으니 뒤쪽에서 다급하게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녀는 꽁꽁 싸맸던 후드, 마스크 선글라스를 모두 벗고 볼캡만을 쓴 채로 두 손에 v자를 만들며 웃었다.


“어?”


난 드물게 놀라며 입을 벌렸고 분홍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볼캡을 쓴 여자는 과장된 행동과 함께 자기소개를 했다.


“네! 당신이 알고, 내가 알고, 모두가 아는 최고의 아이돌 문 프린세스가 맞습니다!”


작가의말

숨은 설정: 지금 태선의 팔 움직임은 엽문 수준.


와! 선작 300 넘었어요. 제목 바꾼 효과가 있는 것 같네요.


시빌리우스 님!  n8345_nighthmoon 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파일럿 아카데미의 무한 회귀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438th=우주 아이돌 (1) +12 20.10.25 2,209 111 12쪽
34 9th=열심히 안 할거야? +21 20.10.24 2,204 116 17쪽
33 3rd=포에니를 탈취하라 +11 20.10.23 2,238 115 15쪽
32 2nd=더블 부킹 (5) +14 20.10.22 2,220 144 11쪽
31 2nd=더블 부킹 (4) +12 20.10.20 2,232 104 9쪽
30 2nd=더블 부킹 (3) +14 20.10.20 2,295 105 14쪽
29 2nd=더블 부킹 (2) +9 20.10.19 2,302 96 13쪽
28 2nd=더블 부킹 (1) +7 20.10.18 2,361 101 13쪽
27 1st=데이트를 해줘요 (5) +7 20.10.16 2,434 104 10쪽
26 1st=데이트를 해줘요 (4) +6 20.10.16 2,505 112 10쪽
25 1st=데이트를 해줘요 (3) +22 20.10.15 2,605 135 13쪽
24 1st=데이트를 해줘요 (2) +20 20.10.13 2,733 135 12쪽
23 1st=데이트를 해줘요 (1) +13 20.10.12 2,816 120 11쪽
22 세계선 이탈 +7 20.10.11 2,682 125 12쪽
21 프로젝트 M +11 20.10.09 2,731 126 15쪽
20 에페 모의전 (3) +10 20.10.08 2,757 110 12쪽
19 에페 모의전 (2) +10 20.10.06 2,750 113 13쪽
18 에페 모의전 (1) +8 20.10.05 2,831 105 12쪽
17 세레스 탈환 전투 (3) +12 20.10.04 2,943 120 12쪽
16 세레스 탈환 전투 (2) +10 20.10.02 2,961 106 14쪽
15 세레스 탈환 전투 (1) +10 20.10.01 3,056 125 13쪽
14 엔도 사키 (3) +10 20.09.29 3,010 118 14쪽
13 엔도 사키 (2) +8 20.09.28 3,042 125 12쪽
12 엔도 사키 (1) +16 20.09.27 3,248 125 11쪽
11 슈발리에 사관생도 제 15조 +9 20.09.25 3,396 131 12쪽
10 월면기지 크로스 델타 +14 20.09.24 3,641 126 12쪽
9 3rd=라 플람 기동 (4) +21 20.09.22 3,706 146 16쪽
8 3rd=라 플람 기동 (3) +19 20.09.21 3,909 157 16쪽
7 3rd=라 플람 기동 (2) +25 20.09.20 3,992 166 12쪽
6 3rd=라 플람 기동 (1) +17 20.09.18 4,251 14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