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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무명귀 님의 서재입니다.

누가 아저씨를 슬프게 했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중·단편

완결

무명귀
작품등록일 :
2020.12.26 15:25
최근연재일 :
2021.02.09 18:3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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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
추천수 :
25
글자수 :
125,420

작성
21.02.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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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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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9화 - 도망쳐 -

DUMMY

로위는 쇠창살 안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평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코끝을 스치는 불꽃의 냄새도 그를 깨우지 못했다. 살고자 하는 의지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 그때였다. 그를 끄집어내려는 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기서 뭐해요. ”


로위는 처음 듣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무엇도 들어올리지 못한 고개였다. 호기심이려나. 신선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그는 중년이 분명했지만, 젊어보이고 멋있었다. 팔자주름이 패여있고 외국배우처럼 기품이 있었다. 베이지색 코트는 불길을 조명삼아 일렁거렸다.


“ 어서 나와요. ”


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답답한 듯 얼굴을 찡그리고는 있었으나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다. 그가 왜 자신을 구하려하는지, 로위는 알 수 없었다.


“ 이대로 괜찮겠어요? 정말 이대로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요. 마리아도 죽을 거에요. 마리아를 구할 사람은 당신 뿐이에요. ”


그가 마리아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이름을 부르는 발음이 자연스러웠다. 몇 번이고 불러본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를 아는지 물을 때가 아니었다. 불의 향이 노골적인 기세로 코 안을 파고들었다. 불현듯 위기가 현실로 밀어닥쳤다.


환상 같던 화염이 보이기 시작했다. 깊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살고 싶어졌다. 살아야만 했다. 나가야했다. 남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열쇠로 철창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구원자처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로위는 그때까지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신을 마주한 듯 넋이 나가있었다. 신이 내려온 걸까. 그동안 짓궃게 굴어놓고 생색내듯 돕는 건가.


“ 무슨 일이 났나요. ”


로위가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사태파악 좀 시켜달라는 말이었다. 주변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는 시선이 노골적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다른 세계에 있다가 온 것처럼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심장이 발칵 뒤집히는 기분이다.


“ 불이 났어요. 원인은 몰라요. ”


그 뒤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목표가 설정되고 정신 없이 그곳을 향해 달렸다. 불이 그녀를 해치지 않기를. 연기가 그녀를 괴롭히지 않기를. 리노가 먼저 그곳에 도착하여 그녀를 데리고 가지 않기를. 오만가지 불행의 시나리오가 그를 덮쳐왔다.


로위는 기도할 신이 없다는 것에 자책했다. 왜 자신이 무교를 고집했는지 모르겠다. 집은 불타고 있었다. 절망감이 연기처럼 훅 끼쳐왔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살아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녀의 능력이 자신을 보호하며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직감.


그는 불로 뛰어들었다. 모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없는 세상에 살아있는 것보다 아픈 것은 없으므로. 타오르는 불 사이로 집에 진입했다. 집은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믿고 들어섰다. 무너진 조각에 등이 얻어맞아도 불길에 살이 타들어가도 상관없었다. 그는 외쳤다. 고통에 의한 비명인지, 간절함에 의한 부름인지 모를 외침.


“ 마리아. ”



*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문에 가려져 웅웅거리지만 확실히 들렸다. 다급하게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 로위임을 확신했다.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리아는 가만히 숨을 죽였다. 불길이 어서 자신을 삼켜주기를 소망하며. 그녀는 구원을 바라지 않았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그냥 가.


“ 마리아, 거기 있니. ”


질문이었으나 확신이 묻어있는 말이었다. “ 거기 있지? ”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녀는 도리질쳤다. 오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제발 가라니까.


“ 거기 있냐고 아저씨가 물었잖아. ”


로위의 목소리에 분노가 어려있었다. 아니, 슬픔과 절망에 가까웠다. 그 모든 걸 로위의 가슴에 박아넣은 건 다름아닌 마리아였다.


“ 말하지 않겠다는 거냐. 그럼 어쩔 수 없구나. ”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조용해졌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가 도망쳐주길 바랐다. 이제 이 마을은 잊고 살아가기를. 그때 문짝이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로위가 무력으로 문을 뜯어내서 방으로 들어왔다. 엄청난 힘이다.


“ 아, 아저씨. ”


그녀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혹스러웠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상대와 마주친 기분이다. 너무도 보고 싶었다는 모순된 감정도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가 다가왔다. 그녀의 가슴속은 “ 다가 오지 마. ”라는 말로 도배되어있었다. 로위가 손을 내밀었다. 심장이 아파왔다. 거절해야할 손이었기에.


“ 안 돼요. 아저씨가 소멸되고 말 거에요. ”


“ 그런 일은 없어. 자, 내 손을 잡아. 여기서 어서 나가야지. 그리고, 살아야지. ”


마리아는 더욱 더 도리질쳤다. 자신의 힘을 못 믿겠다는 듯.


“ 난 널 믿어. 넌 아무도 없애지 않아. 넌 그 힘을 조절할 수 있어.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왔던 것처럼. ”


그가 마리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믿음은 현실이 된다. 그녀는 안도감이 들었다. 로위가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로위를 죽이지 않았다. 무죄를 선고 받은 것처럼 가슴이 저릿했다.


“ 이제 나가자, 아가. ”



*



로위는 마리아의 손목을 잡았다. 이제는 놓지 않을 손목이라 다짐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놓지 않으리라. 불길은 다행히 아직은 상대적으로 고요했다. 뜨거웠지만 지나다닐 길은 열려있었다. 그들은 집 밖으로 탈출했다.


이미 대부분의 집들은 마치 주검처럼 제 모양을 잃어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대피를 끝마친 뒤였다. 로위는 마을의 입구이자 출구로 내달렸다.


“ 거기 서. ”


리노의 목소리였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목소리였다. 로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이 가슴을 짓눌렀다.


“ 그 년을 넘겨. ”


로위는 뒤로 돌아 마리아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다신 그녀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였다. 이빨이 울었다. 그를 물고 싶다고.


발톱이 성을 냈다. 그를 베어버리고 싶다고. 바람을 이루어달라고. 총을 겨누는 리노에게 달려들게 해달라고. 온몸이 요청했다. 자칫하면 튀어오를 것 같다. 맹수의 본능이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올 것 같았다.


“ 싸우고 싶어? 그래. 이해해. 내가 아니면 누가 널 이해하겠어. 내가 너의 조물주인데. ”


그가 총을 버렸다. 전면전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몸이 달라졌다. 자신과 같은 늑대로 변모했다. 그는 자유자재로 몸을 바꿀 수 있었다. 스스로 실험체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결과다. 영구적으로 이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로위와는 다른 것이다.


리노가 먼저 선제공격을 퍼부었다. 사정없이 난사되는 발톱은 마치 포탄 같았다. 사방으로 피가 솟구쳤다. 일반인이라면 벌써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뒤에서 마리아의 응원소리가 들렸다. 쓰러질 수 없었다.


“ 벌써 끝났나. ”


이제 그의 차례였다. 날아드는 발톱을 피하고 리노의 목덜미를 물었다.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로위는 그 비명이 기폭장치라도 되는 듯 더욱 거세게 턱에 힘을 주었다. 리노는 로위를 떨쳐내려 몸을 격렬히 흔들고 발톱으로 그의 등을 긁어냈다.


하지만 로위는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온힘을 다해 그를 공격했다. 리노는 어떻게든 그를 밀어내 거리를 만들었다. 여전히 목은 물리고 있었으나 공격의 사정거리를 만들 요량이었다. 리노는 기회를 엿보고 로위의 복부를 조준해 무릎을 날렸다.


로위의 입으로 신물이 튀어나왔다. 복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뒷걸음질쳐지고 피로 얼룩진 턱은 덜덜 떨렸다.


“ 이제 내 차례네. ”


리노는 로위의 턱을 걷어찼다. 로위는 뒤로 나자빠지고 숨을 헐떡였다. 마리아가 다가와서 그의 얼굴을 만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로위는 너라도 도망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납덩이가 목밑에 걸린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거칠게 경련했다.


“ 아직 힘을 다루는 능력이 미숙한 모양이군. 원할 때 그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걸 보니. 하긴,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걸 보면 너 자신에 대해 한참 모르는 거겠지. ”


리노는 로위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주색 케이스를 꺼냈다. 리노는 알약을 꺼냈다. 그리고 로위를 강제로 일으켜 턱을 열었다.


저항의 여지가 없었다. 마리아가 말리지만 리노에게선 아무것도 뺏을 수 없었다. 그녀는 주저앉아 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로위가 알려주기로 했다. 그녀가 뭘 해야하는지.


“ 도망쳐, 마리아. 그에게서 멀리. 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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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지막회 - 내 소원이 이루어졌어. - 21.02.09 27 1 18쪽
20 20화 - 아가 - 21.02.08 16 0 9쪽
» 19화 - 도망쳐 - 21.02.05 25 1 9쪽
18 18화 - 진짜 알약 - 21.02.04 17 1 13쪽
17 17화 - 빛을 향해 - 21.02.03 17 1 12쪽
16 16화 - 공모자들 - 21.02.02 20 1 13쪽
15 15화 - 컴 백 홈 - 21.02.01 20 1 20쪽
14 14화 - 잘 가 - 21.01.29 21 1 15쪽
13 13화 - 안대를 낀 여자 - 21.01.28 22 1 9쪽
12 12화 - 세상에게 물리다 - 21.01.27 26 1 11쪽
11 11화 - 가짜 에밋 - 21.01.26 20 1 13쪽
10 10화 - 누구랑 가는 게 중요해? - 21.01.25 19 1 10쪽
9 9화 - 과거 - 21.01.22 24 1 12쪽
8 8화 - 늙은 여우 - 21.01.21 2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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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화 - 모두의 마을이니까 - +1 21.01.16 27 1 15쪽
2 2화 - 이방인 - +1 21.01.15 50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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