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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무명귀 님의 서재입니다.

누가 아저씨를 슬프게 했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중·단편

완결

무명귀
작품등록일 :
2020.12.26 15:25
최근연재일 :
2021.02.09 18:30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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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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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420

작성
21.01.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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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화 - 이방인 -

DUMMY

순경은 뉘엇뉘엇 지는 석양 탓에 켜둔 자전거 헤드라이트로 그를 비췄다.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그의 주변을 훑던 빛은 마침내 그의 얼굴을 강하게 비췄다. 빛은 두 발로 서있는 기괴한 야수를 덮쳤다.


“ 당신 뭐야. ”


순경은 순수한 의미의 공포를 머금은 비명을 질렀다. 난생 처음보는 생명체였다. 그는 자신의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자전거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더 놀란 건 사실 로위였다. 자신이 주사로 막을 수 있는 건 허기로 인해 인간을 타깃으로 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것 뿐, 허기를 통솔할 수 있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함을 직접 경험한 셈이니까.


그의 손에서 우악스레 뜯어져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오이의 남은 조각이 그것을 명명백백히 증명하고 있었다. 너무나 가차없는 증명이어서 할 말이 없었다. 자신에게 야성이란 것이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이 저 파릇파릇한 순경의 표정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순경은 당황한 체로 한 손에는 테이저 건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주머니에 든 무전기로 동료를 불렀다.


“ 여기는 마트 근처 오이밭입니다. 수상한 놈이 있습니다. 머리는 늑댄지 뭔지 모르겠고 밑으로는 사람인데, 아, 아무튼 오시면 아십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지금 저 혼잡니다. ”


순경은 거의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어조로 말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온몸이 전동벨처럼 경련했다. 그는 무전을 멈추고 두 손으로 테이저 건을 겨누었다. 겨눈다기엔 너무 총구가 흔들려서 위압감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저래가지고 조준이나 제대로 하겠나, 싶었다. 로위는 순경의 공포를 느꼈다. 느낌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노골적이었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로위는 순경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으레 총구 앞에서 한없이 약해진 범죄자들이 그러하듯, 투항의 표시로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멀리서 사이렌이 울렸다. 순경은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로위가 작정했다면 이 틈에 도망치거나 저 멍청한 순경을 제압했을 좋은 헛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어쩐지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는 하염없이 자신을 어디로든 데려가줄 사람들을 기다렸다.


경찰차가 도착하고, 동료들은 순경의 젖은 바지와 오이밭의 침입자를 번갈아 목격하고 어느 것이 더 충격적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상관으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수염형사가 순경의 가랑이를 보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 기다렸습니다. ”


순경은 자신이 실례했다는 것에 체념한 듯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 목소리에는 여경은 왜 불렀냐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 카를 순경, 무슨 일인지 자세히 좀 얘기해주지 그래. ”


순경은 침입자를 발견한 경위에 대해 떨리는 와중에도 또박또박 소상하게 전달한다. 이미 저질러버린 그는 차분한 어조였다. 수염은 그 모든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는 놀랍게도 전혀 동요치 않는 듯했다. 수염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밭으로 내려와 침입자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건다.


“ 제 말 들리시나요. ”


수염은 천천히 다가가며 부드럽게 말했다. 웃지도 놀라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수염과 모자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로위는 그가 강심장의 소유자이거나 감정이 없는 냉동인간 중에 하나일 거라 짐작한다.


“ 들립니다. ”


로위가 대답했다. 오히려 놀란 듯한 건 로위였다. 수염은 지극히 업무적인 말투였다. 아무 감정도 들어있지 않아, 오히려 차별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평등적인 어조였다. 로위에게선 오히려 반가운 반응이었다. 과도한 친절도, 배척도 아닌 단조로운 반응. 로위는 이런 반응을 바라왔다.


“ 잠시 서로 가주셨으면 합니다. 몇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걸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수염의 말투에는 이제 정중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수염은 별다른 말과 표정 없이도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세심했고 매너가 있어보였다. 행동거지는 경찰이 아니라 사업가 같았다. 그는 로위의 발을 아까부터 흘겨보고 있었다.


로위 자신도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의 발등은 몹시 부어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피부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는 새삼 수염이 괜히 경찰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 이 야밤에, 이 당황스러운 만남 도중에도 차분하게 발을 확인하다니.


“ 예, 가시죠. ”


로위는 팔을 내리고 수염을 따라나섰다. 수염은 등이 넓었다. 누구라도 기댈 수 있을 듯했다. 여경은 여기 남아 밭을 조사할 거라 했다. 로위는 순경의 눈초리를 애써 피했다. 그는 아직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가 로위를 노골적으로 빤히 쳐다보자 수염이 눈짓으로 주의를 주었다.


로위는 수염이 이끄는 대로 좁아터진 경찰차 뒷좌석에 탑승했다. 앞좌석에는 수염과 카를 순경이 탑승했다. 수갑만 안 찼지 연행되어가는 중이었다. 진작에 벌어졌을 일이 이제서야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많이 불편하시더라도 참으세요. 요 앞이니까. ”


수염은 점점 더 자상해졌다. 마치 경찰서가 아닌 도살장에 데려가기 위해 안심시키려는 것 같았다. 유혹하는 것 같기도 했다. 로위는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차라리 그랬으면 했다. 적어도 수염은, 그 속내는 어떨지 모르지만 겉만 봐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편견이 없는 공정한 눈길이 수시로 룸미러로 들이쳤다. 로위의 표정을 살피는 눈치였다. 그는 자신의 부하를 볼 때도 똑같은 얼굴을 했다. 아마 수염은 모든 생명체들에게 저런 표정을 지으리라. 길이 험해 살짝 차량이 덜컹거리면 그세 수염이 말 한 마디를 던진다.


“ 이 놈의 길, 다시 깔든가 해야지.”


수염이 투덜거렸다. 그는 이제 무서울 정도로 편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길에 대해 짜증을 내고 라디오를 틀었다. 옆자리, 그러니까 조수석에 앉은 초임순경은 그 광경이 놀라운 듯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 경위님은 무섭지도 않으세요? ”


“ 그닥. 왜 그래야 하지? ”


절박한 물음에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 거기에 얹어서 반문까지 해버리는 수염의 태도는 수도 출신인 순경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상식이 아니었다. 수상한 놈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그가 배운 경찰상식이 아니었으므로. 수상한 놈에겐 의심과 경계가 우선이라고 배웠으므로.


“ 제대로 조사도 안해보고 데려가도 괜찮은 걸까요. 수갑도 안 채웠는데. 막 난동부리면요? 얼굴도 험악하고. 이빨도 날카롭고. 딱 봐도 이상한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요. 그게 사고로 끝나면 다행이죠. 걷잡을 수 없는 참사로 번질 수도 있어요. 참사. 디재스터. ”


순경은 뒤에 누가 타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한바탕 열변을 토해내고 자신이 아는 상식을 수염이 알아주길 기대했다. 아니, 감히 말하건데 수염이 자신의 말에 제정신을 차리기를 바랐다. 그정도로 순경은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수염은 오른손으로 자신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침을 튀기는 순경의 얼굴을 밀어버리고 기대 이하의 답변을 내놓는다.


“ 그럴 거면 진작에 공격했을 거야. 왜 이래, 카를 순경? 수도 놈들은 그렇게 가르쳐? 조사도 없이 아무나 막 포승줄로 묶고 수갑 채우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다루라고 말이야. 어디까지나 단순절도. 그것도 배고파서 그런 거라고, 정신차려. 자넨 너무 낡고 비뚤어진 상식이 많은 것 같군. 우리 마을엔 우리의 상식이 있어. 로마에 왔으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은 안 배웠나?. ”


수염이 우회전을 하며 말했다. 순경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순경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신이 이런 곳에 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로위는 그들의 사소한 충돌에 자신의 운명이 달렸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겉보기엔 누구보다 강인해보이지만 결국 타인의 결정, 처분과 공생 사이에서의 기나긴 토론과 결단에 의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경찰차 뒷좌석 안전벨트에 구속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자유인지 그는 안다.


넓디 넓은 세상에서 그에게 주어진 보금자리가 한 폭도 없다는 것만큼 서글픈 것은 없으니까. 지금 이렇게 타인의 온정에 운신해서 구제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 만족스럽지 않은 길의 상태가 그의 배은망덕한 불만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비는 여전했지만 조금 잦아들었고 시각은 어느덧 자정을 겨우 넘기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스레 울려대자 차를 멈춘 순경의 상관은 누구에게 온 것인지 확인한 뒤 뒷좌석과 조수석을 번갈아 쳐다보고 말문을 열었다.


“ 잠시 전화 좀 받아도 되겠습니까. ”


그가 양해를 구하는 의례상 하는 말을 굳이 뱉은 이유는 순전히 순경 때문이었다. 그가 겁에 질려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혼자 있을 수 있겠냐는 통보에 가까웠다.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 꼭 받아야 합니까. ”


순경은 벌벌 떨며 가지 말라는 말을 애써 억눌렀다. 그러나 수염은 그냥 나가버렸다. 순경은 하염없이 그의 뒤를 바라보았다.


“ 네, 서장님. ”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차 문을 열고 사라졌다. 내리는 비의 양은 상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비를 맞으며 통화했다. 그러자, 순경은 끔찍한 살인현장에 던져진 어린이처럼 딸꾹질을 해댔다.


“ 좀 전에 제가 한 말은 잊어주세요. 부탁이에요. ”


그는 구구절절 해명하려고 했으나 말은 딸꾹질에 의해, 혹은 자신의 부족한 용기에 의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 아니요. 저라도 그랬을 거에요. ”


순경은 금지된 말을 한 사람처럼 입술을 때리며 자신의 주둥이를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의외로 나긋한 저음의 괴물에게 이유 모를 호감을 느꼈다. 수심 깊은 괴물에게서 동질감도 느꼈다.


“ 저는 당신이 정말 괴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그래요. 근데 모르겠어요. 당신은 누구죠. ”


순경은 갈팡질팡했다. 순경은 말 한 마디, 아니, 그보다 더 정밀하게 말하자면 단순한 음성 하나가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는 여전히 뒷좌석의 괴물이 자신의 목소리를 숨겼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신중함은 경찰의 덕목이니까.


그러나 전보다는 더 신뢰감이 생긴 건 사실이었다. 배고픈 야수에게 가장 좋은 타이밍인데도 그는 순경을 잡아먹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오이로 배를 채웠다 해도, 사실 그 부분이 더 이상한데, 맹수의 머리를 해놓고 어떻게 오이를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순경은 자신이 그렇게도 부르짖는 수도의 상식을 총동원해서 이해하려 애썼다. 이해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상황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 글쎄요. 저는 누구일까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 세상에서 저는 뭐였는지. 제가 이렇게 된 이유도 모르겠어요. 아무도 모를 거에요. 그래서 저는 혼자였어요. 외롭고 힘들었어요. 그냥 사는 거죠. 고통은 일상이 되고 몸과 마음이 다치죠. 아무도 날 봐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되뇌어요. 저는 제가 사람인지, 동물인지도 모르겠어요. 늘 혼란스러워요. ”


그는 자신이 이토록 길게 떠들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보지만 뚝뚝 끊긴 기억들로 머리만 복잡해졌다. 가끔은 머리를 비우는 것이 상책일 때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 잘 모르겠군요. 이렇게 대답해도··· 해치지 않을 거죠? 그리고.. 그게, 저도 여기저기 아프고 외로워요. 그래서 그 마음은 저도 이해해요. 정말 힘드셨겠네요. 저도 이 마을 밖을 잘 알아요. 가끔씩 때려주고 싶은 자식들이 있죠. 솔직히 저도 제 고향이었던 수도에서 그렇게 따뜻한 사람은 못 봤네요. 다들 저 살기 바쁘죠. 여기보다 잘 사는데. 저 또한··· ”


그는 말끝을 흐렸다. 자신도 그중에 하나였으므로. 할 말이 없었다. 침묵이 꽤 오래 지속됬다. 수염은 아직도 전화를 끊지 못했다.


“ 당신은 따뜻한 경찰이에요. ”


로위가 불쑥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얼마나 그를 안다고 하는 소린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 그럴 리가요. 경위님이 들으시면 화낼 거에요. ”


그들은 빗속의 경찰차 안 조수석과 뒷좌석에서 운전자가 없는 사이에 놀라운 속도로 서로를 알아갔다. 운전자가 돌아왔다. 두 사람은 다시 침묵했다.


“ 카를 순경, 괜찮나? ”


수염은 내심 걱정이 되었는지 돌아오자 마자 순경부터 챙겼다. 순경은 조금 편해진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 네, 괜찮습니다. ”


순경은 언제 그랬냐는듯 군기가 바짝 들어서 대답했다. 수염은 울고불고하지 않는 순경이 이상한 듯 잠시 시선을 고정시키다가 안전벨트를 메고 차를 출발시킨다. 그들을 태운 경찰차는 다시 빗길을 달려 마을 경찰서에 도달했다. 로위는 수염의 안내에 따라 경찰서 입구까지 걸어갔다.


“ 발목 상처가 너무 심하군요. 괜찮겠습니까? ”


수염은 그를 보았지만 그는 애써 괜찮은 표정으로 유리문을 밀었다. 작은 서 안에서 농땡이를 피우던 경찰 서넛이 토끼눈이 되어 입구를 경악스럽게 쳐다보았다.


“ 일들 해. ”


수염은 아마 이 서 안에서 꽤 높은 직함인 것 같았다. 그의 말은 곧 법이라는듯이 소란은 잠잠해졌다.


“ 우선, 조사실로 가시죠. ”


로위는 수염을 따라서 조사실로 향했다. 불은 켜져있었으나 어쩐지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조사실로 향했다. 조사실 내부의 공기는 매우 탁했고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검은 유리가 참관실을 막고 있었다. 작은 조명 아래에 탁자와 의자가 놓여져있었다.


더는 자존심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로위는 자신이 왜 이런 삭막한 분위기의 취조실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차라리 편했다. 무슨 말이라도 할 기회가 주어진 거니까. 로위가 먼저 앉고 건너편에 수염이 앉았다. 그는 좀 전보다는 진지해진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본색을 숨긴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기분이 느껴졌다.


“ 우선 이름을 말씀해주시죠. ”


수염이 능숙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첫 질문으로 이름을 물어본 듯했다. 로위는 형식적인 절차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에 또다시 신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더는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저 사내의 인내를. 참을 수 있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 저도 알고 싶군요. 제가 누군지. ”


“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믿을 수 없는 말이군요. ”


수염은 로위를 만난 후로는 처음으로 그의 말을 냉정히 받아쳤다. 로위는 그동안 수염에게 감정이란 게 존재했는지 의문이었지만, 확실히 그에게도 감정의 굴곡이 존재한다는 걸 지금의 말로 깨달았다.


“ 저도 저를 믿을 수 없군요. ”


로위는 할 수 있는 말이 이것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렇게 말했다. 로위는 수염이 자신의 말을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를 대하는 사람들의 결론은 언제나 같았으니까. 그는 자신을 언제나 하루살이라고 표현했다. 스스로 죽음을 불사하고 여러 곳들을 떠돌아다니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 언제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심정으로 지나온 길을 피로 얼룩지게 만들며 떠도는 부랑자. 그것이 그였다. 수염은 인상을 쓰더니 로위가 제 분신처럼 품 안에 쏙 넣고 다니는 가방에 관심을 가졌다. 누가봐도 수상쩍은 물건이었다.


“ 가방이 멋지네요. 뭐가 들었을지 궁금하군요. ”


로위는 의심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수상해보이는 얼굴과 그의 생명줄과도 같은 돈가방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침묵을 지켰다. 할 수 있는 게 그것 뿐이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선택지라는 게 묵비권 행사 뿐이라니. 묵비권은 자백의 다른 이름 아니던가.


“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


수염의 목소리엔 단호함이 담겨있었다. 금방이라도 강제로 빼앗아 내용물을 확인할 기세였다. 그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맞닥뜨린다.


“ 다시 한 번 말하죠.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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