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니의 곡괭이
번쩍..
콰아앙..
“환자가 눈을 떴어요.”
“여긴 어디죠?”
“정신이 들어요?”
“예?”
“여긴 병원입니다. 저는 의사고요. 이름이 뭐죠?”
“최진수요.”
“학생인가요?”
“예, 복학생입니다.”
“어떻게 여기 오셨는지 기억이 나세요?”
“뭔가 번쩍 하고..그리고 천둥이 친 것 같은데..”
“번개에 맞으셨어요. 그래도 운이 좋으세요. 번개가 관통을 했는데 몸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거든요.”
진짜로 번개에 맞은 건가?
마지막 기억으로는 그런 것 같았다.
의사는 큰 이상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루 동안 입원을 해서 간단한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
“이제 퇴원해도 되는 겁니까?”
“예, 현재로서는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네요. 불편한 곳이나 이상한 곳은 없으시죠?”
“그게.. 좀 이상한 게 보이기는 하는데. 괜찮을 것 같습니다.”
“뭐가 보이는데요?”
“그냥, 뭔지 모를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는 하는데..원래 좀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 몽상 같은 걸 많이 하거든요.”
“음, 환각 같은 거 말인가요?”
“좀 피곤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가끔 그럴 때가 있거든요.”
“내 손을 잡고 힘을 줘보세요.”
“이렇게요?”
“예, 악력도 좋고 컨디션은 문제가 없는 것 같네요. 걷는 것도 문제는 없죠?”
“예...하하..와우..”
“왜요?”
“아닙니다. 몸은 이상 없습니다. 몸매가.. 아니 몸은 좋습니다.”
역시나 환각인가? 하지만 너무 생생했다. 마치 VR을 보는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손이었다. 번개에 맞은 후로 손에 뭔가 닿을 때마다 이상한 것들이 보이고는 했다.
지금 본 것은 마치 야동의 한 장면 같은 모습...
하지만 보통 야동이 아니라 나도 본 적이 있는 간호사의 알몸이 보이고 있었다. 장소는 의사의 진료실..
보기보다 그 간호사는 글래머였다.
***
황학동 시장
다행히 학교에서는 내가 번개에 맞아서 입원까지 한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도 역시 모르고 있었고 그저 하룻동안 병원에서 지내다 나온 것뿐이었다.
의사 말대로 운이 좋았던 건지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러니까, 다른 외상이나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번개 때문일까?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은 확실했다. 손..
손에 뭔가가 닿을 때마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 기억 같은 것이 보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그런 정보들이 감당이 안 될 정도였지만 곧 그걸 통제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뇌파를 조정한다고나 할까?
정신을 집중하면 그런 환상들을 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치 머릿속에 스위치가 있는 것처럼 내가 필요할 때만 그런 환상들을 볼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이거 신기하네요. 뭐에 쓰는 건가요?”
“심마니들이 쓰는 곡괭이야. 산에 갈 일이 있으면 이걸로 약초도 캐고 그럴 수도 있지.”
“심마니면 산삼 그런 거 캐는 거 아닌가요?”
나는 오래되어 보이는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얼핏 낫처럼도 보이고 호미처럼도 보이는데 그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도구였다.
산에서 약초를 캘 때 쓰는 물건인 것 같았다.
요즘에 나온 것 같지는 않고 예전에 대장간 같은 곳에서 만들었을 법한 골동품이었다.
내가 손을 대자 또다시 환상이 보였다.
“와, 명호 아저씨는 또 산삼을 캐셨네요. 비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비법은, 무슨,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찾는 거지. 자네도 열심히 하다 보면 산삼도 캐고 그럴 거야.”
“하하, 전 아무리 찾아도 산삼은 못 찾겠더라고요. 전 그냥 약초나 찾으러 다니려고요.”
지라산에서 유명한 심마니였던 장명호, 이 오래된 곡괭이의 주인은 왕년에 지리산 최고의 심마니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오래된 기억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맘에 드네요. 이 곡괭이 얼마인가요?”
“만 원만 내슈,”
“여기 있습니다.”
***
지리산
내가 보는 것이 막연한 환상인지, 아니면 진짜 어떤 오래된 기억을 보는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번개를 맞고 일종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생긴 것 같았다.
물건, 혹은 사람과 접촉하면 그러니까 손에 닿게 되면 과거의 기억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마치 물건에 접속을 한다고나 할까?
USB 같은 것을 꽂은 것처럼 그 물건에 손을 대고 있는 동안은 그 물건에 있는 과거의 기억에 접속할 수 있었고 그 기억을 열람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다.
처음 와보는 지리산이었지만 심마니 장명호의 곡괭이 덕분에 마치 제집처럼 자유롭게 산을 오를 수가 있었다.
대도시와 달리 지리산은 장명호가 활동하던 수십 년 전이나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나는 익숙하게 산을 오르며 산삼 군락을 찾아 나섰다,
장명호의 기억 속에 산삼이 모여 있던 군락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산삼은 원래 인삼과 같은 종이다. 인삼의 씨앗 같은 것이 새들에 의해 산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산속에서 천천히 자라나는 변종인 셈이었다.
주로 음지에서 자라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산삼이 귀하고 비싸게 거래되는 이유도 희소성이 있기 때문인데..
보통은 하나를 찾기도 힘든 것이 산삼이지만 오래된 산삼은 씨앗을 통해 아들삼과 손자삼을 번식시키고 하기 때문에 종종 군락을 이루기도 한다.
운이 좋은 심마니들은 이런 산삼군락을 찾기도 하는데
산에서 마치 보물창고를 찾은 셈이다.
장명호도 우연히 찾은 이 산삼군락 덕분에 큰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큰 삼 몇 개와 작은 삼들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었는데..
그게 벌써 30년 전의 일이었다.
진수는 장명호의 곡괭이를 들고는 과거의 기억을 쫓아 깊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계곡으로 들어가자 험한 암반이 나왔지만 개의치 않고 더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암반 뒤쪽에서 산삼군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와..진짜로 산삼이 있잖아. 굉장한데..”
지리산에도 처음이지만 산삼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마니의 곡괭이에 손을 대고 있는 동안은 노련한 심마니였던 장명호의 기억을 내 것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장명호의 과거에 접속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진짜였구나? 모든 게 환상이 아니라 진짜 과거의 기억들을 보는 거였어?
역시 그 간호사의 알몸도 진짜였던 건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30뿌리는 족히 될 것 같은 이 산삼들을 캐는 일이었다. 심마니의 곡괭이 덕분에 산삼을 캐는 방법도 모두 알게 되었고, 나는 능숙하게 뿌리가 상하지 않게 산삼들을 모두 캐서 배낭에 담을 수 있었다.
***
대청 약초상회
“산삼을 캤는데 좀 보시겠습니까?”
“산삼요?”
예전에 자주 왔던 약초상, 그러니까 장명호가 자주 거래를 하던 약초상이었다. 하지만 벌써 30년 전의 일이었고 지금은 예전 주인의 아들인 것 같은 남자가 주인이었다.
“뇌두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100년 넘은 모삼들과 30년짜리 지삼들입니다. 다 합쳐서 32뿌리입니다.”
“와..이걸 다 어디서 캔 겁니까?”
“산에 갔다가 운 좋게 발견했네요. 산삼군락을 찾은 거죠.”
“대학생처럼 보이는데 산삼에 대해서도 잘 아는 모양이네요.”
“아버지가 심마니셨거든요.”
아버지는 고향에서 과수원을 하시는데 대충 그렇게 둘러댔다.
장명호의 지식으로 산삼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처럼 말할 수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어렵지 않게 약초상과의 거래도 이루어졌다.
“산삼이라는 게 정해진 가격은 없습니다. 아버지가 심마니셨다니 아시겠지만. 나중에 제대로 임자를 만나면 더 비싸게 받을 수도 있죠. 그래도 저희도 장사를 하는 입장이니까, 32뿌리 다 합쳐서 5억이면 어떻습니까?”
“5억요?”
뭐야? 그렇게 비싸? 이게 대박인데..
산삼 가격이야 구매자를 잘 만나면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가격인 것 같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파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고, 일단 그 정도면 가난한 복학생인 나에게는 엄청난 대박이었다.
“좋습니다. 5억이면 나쁘지 않네요.”
나는 표정 관리를 하며 정식으로 산삼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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