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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체인 님의 서재입니다.

잃어버린 세상에서 - 캡틴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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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체인
작품등록일 :
2021.10.05 09:39
최근연재일 :
2021.10.15 20:18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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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347

작성
21.10.14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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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화

DUMMY

태웅의 안내로 도착한 3층 끝에 자리한 내무실이 내가 사용하는 숙소라고 했다.


내무실에서 철제 침상과 관물대,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여러 명이 쓰던 내무실을 혼자 쓰게 바꿔놓은 꽤 넓은 공간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은 한쪽 구석에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화장실이었다. 작은 공간에 세면대와 볼일을 볼 수 있고 샤워까지도 가능한 공간이었다.


“여기서 나가는 건 전부 특수처리해야 하니까 버릴 물건은 따로 모아둬.”


뒤를 돌아보니 해린이 서 있었다. 그녀는 쓰레기통과 잘 개어진 군복과 속옷을 들고 있었다.


“특수처리?”

“만약에 사태를 대비해서 말이야.”


하긴 나 하나로 인해서 이곳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부대의 측면에서 본다면 주변의 좀비를 장비 없이 감지해내고 좀비에게 감염되지 않고 회복속도까지 빠른 병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전투력이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좀비화라는 단점이 있지만, 지난번 돌연변이 때처럼 적진에서 발휘된다면 오히려 단점이 아닌 전투력의 극대화가 될 것이니까.


그러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내가 필요하단 말이겠지.


생각해보니 난 부대에는 큰 전력이지만, 나에게 이곳은 무엇일까? 나에게 이득은 무엇일까?


어느 정도의 편의성과 식량을 제공받는다. 그 정도가 다인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관물대에 옷과 속옷을 챙겨 넣는 해린이 물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해린과 태웅 그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으니까.


지금 우린 가족이니까. 가족이라...


“혹시 부모님, 가족에 대해 아는 게 있어.”


질문에 표정이 어두워진 해린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 가족 소식은 몰라.”


혹시나 가족들이 무사할지 모른다는 기대에 물어본 말이었지만, 예상된 대답만이 돌아왔다.


“다른 생각 말고 오늘은 쉬어. 필요한 게 있으면 옆방에 태웅 오빠한테 이야기하고.”


내 생각을 이해한 해린은 조용히 내무실 문을 닫고 나가주었다.


해린이 나간 뒤 과거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찾기 위해 내무실 이곳저곳을 뒤져보았다.


관물대는 상당히 정리가 잘 되어 있네.


군복과 사복이 옷걸이가 잘 걸려있고 속옷은 잘 말려 서랍에 놓여있었지만, 다른 특별한 것은 없었다.


여기는 뭐가 있으려나?


책상 위 책꽂이에 정리된 책들을 살펴보았다. 다양한 종목의 격투 교범이었다. 그리고 작은 노트북을 열어보았다.


비밀번호라.


평소에 사용하던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잠금이 풀렸다.


여기라면 뭔가 단서가 있겠지.


노트북 안에 만들어진 폴더를 뒤지기 시작했다.


딱히 특별한 건 없네.


그나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7년 전부터 기록된 임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모든 문서에는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다.

아까와 같은 비밀번호를 입력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비밀번호를 총동원해보았지만, 결국 문서는 열리지 않았다.


문서를 열어보는 건 다음으로 미뤘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붉은 빛을 확인했다.


이야, 아름답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붉은 노을. 이런 풍경을 본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태웅이랑 노느라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군대에선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신경 쓰지 못했고 전역 후에는 먹고 사느라 신경 쓰지 않았다.


사색의 시간은 그리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마음의 평온을 안겨주던 붉은 빛은 금세 사라져버렸다.


이제 씻자.


더 찾아봐야 나올 것이 없기에 씻고 내일을 맞이하기로 했다.


화장실에 마련된 샤워부스에서 몸 구석구석을 씻기 시작했다.


어우야. 몸이.


샤워하면서 전과 달라진 몸을 다시금 확인했다.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예전의 몸과는 달리 쩍쩍 갈라진 복부와 구석구석 잔근육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중요한 부위도. 어. 어라. 이게. 왜.


“이거 왜 이래!!”


급하게 수건을 두르고 태웅이 있는 옆 내무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깍!”

“뭐야! 미친놈아 나가!”


1인 침상 두 개가 붙어있는 그곳에서 해린과 태웅이 반전라인 상태로 하나가 되어있었다.


“이게 무슨.”

“나가라고 이 자식아!”


머릿속이 하얘진 상태로 쫓겨나듯 방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젖은 채로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은 정지혁이었다.


해린과 태웅이 뭐하고 있는 거지? 내가 좀비라서 관계는 태웅이랑 가지는 건가? 우리가 이런 관계라니.


그때 태웅이 문을 벌컥 열었다.


“넌 노크도 할 줄 모르냐!”

“···너···너···어떻게···그럴···수···있어···”

“뭘 그럴 수 있어. 부부가 당연한 거지.”

“부부? 부부! 내가 아니고?”

“무슨 소리야. 설마 해린이 남편이 너라고 생각한 거야?”


태웅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아이고, 미친놈아.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아~ 미치겠다.”

“······”


아, 너무 쪽팔린다. 결혼했다면 당연히 나인 줄 알았는데.


창피함에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고 한참을 웃던 태웅이 물어온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왜 찾아온 거야?”


태웅의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녀석이 반응을 안 해!”


정지혁은 자신의 중요 부위를 가리켰다.


태웅은 심각해진 얼굴로 옆에 앉아 어깨를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좀비의 특징이야.”

“특징이라니?”

“기본적으로 좀비가 되면 생식 기능이 사라지거든.”

“생식.. 사라진다고.. 그럼..”


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고자.

내가 고자라니. 내가 고자라니.


충격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태웅은 조용히 자리를 비워주었고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며 바닥을 적셔갔다.


정지혁은 모든 것을 잃은 얼굴로 말없이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한참을 멍하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만을 쳐다보았다.


방안에 멍하니 있자니 옆방에서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들리지 않는 내면의 소리였지만, 방 안에 더 있다간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바람이나 쐬자.


그렇게 사복을 하나 주워 입고 약도를 챙겨 생활관 밖으로 나와버렸다.


연병장에 빼곡한 유리온실에서 밝은 빛이 밝혀주고 있어 주변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여기가 여긴가?


약도를 이리저리 맞춰보며 부대 내부의 지리를 파악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혁이. 몸은 좀 어때?”


얼굴을 보니 인적사항이 기록된 서류에서 본 사람이었다. 부대의 차량을 관리하는 정비사였다.


“네, 괜찮습니다.”


기억을 잃었다는 내색을 하지 말라는 해린의 말이 기억나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인사를 건넸다.


“몸조리 잘하고 얼굴 좀 자주 비추라고.”

“그럴게요.”


그렇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가버린 정비사였다.


길을 걷는 동안 몇 명의 사람을 더 만났고 다들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다들 내가 좀비인 걸 알면서도 거리낌 없이 반겨주었다.

잘못하면 감염될 수도 있을 텐데 내가 무섭지 않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한 유리온실에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흔들어 댔다.


“캡, 몸은 괜찮아?”


서류에서는 보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소년의 밝은 분위기에 맞춰 적당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캡, 퇴원한 거야?”

“어, 오늘.”

“잘됐다. 캡, 나 좀 도와줘.”

“아니, 난.”

“얼른.”


기억을 잃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이곳을 벗어나려 했지만, 소년의 손에 온실 안으로 끌려들어 와버렸다.


“캡, 이것 좀 같이 옮겨줘.”


얼떨결에 노란 물이 담긴 양동이를 옮기게 되었다.


근데 저 꼬맹인 아까부터 캡, 캡 거리지? 계급이 대위니까 캡틴은 맞는데. 뭐, 히어로가 된 기분이니 내버려 두자.


“이번에 영양제가 잘 만들어져서 애들이 잘 자랄 거야.”


날라준 양동이를 선반 옆 통에 부었다. 층층이 만들어진 선반에는 이를 모를 식물이 가득했다.


“캡이 아니었으면 난 이 자리에 없었을 거야.”

“응? 무슨 소리야?”

“캡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사람처럼 살지 못했을 거야.”


꼬맹이가 갑자기 분위기를 잡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난 캡이 내 친형이라고 생각해.”

“응? 갑자기?”

“캡이 내 가족이란 소리야.”


꼬맹이의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 말이 진심이라는 건 느껴진다.


“형만 믿어. 무슨 일이 생겨도 반드시 지켜줄 테니까.”

“응, 캡.”


꼬맹이가 웃으며 대꾸했다.


몇 개의 양동이를 더 날라주고 온실을 벗어났다.


대체 뭐 하는 녀석이지? 닭살 돋는 말만 하고 말이야. 이상한 녀석이네.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소년과 헤어지고 약도에 추모공원이라고 표시된 곳으로 향했다.


추모공원은 부대 중앙에 있었다. 공원이라고 부르기엔 작은 공간이었었다.

잘 정리된 잔디 중앙에 2미터 정도 되는 비석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고 비석에는 추모문이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의 욕망에 유명을 달리한 모든 이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바랍니다. 우리는 그대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고 영원히 가슴속에 새기며 희망을 찾겠습니다.]


좀비에게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글이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도 희생되었다는 생각에 조용히 눈을 감고 묵념을 올렸다.


“정 대위.”


묵념이 끝나자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서류에서 보았던 사람이다.


“충성.”


그는 해린의 직속 상관인 정보부장이었다.


“자네 상황은 보고 받았네. 많이 혼란스럽지?”

“예, 아직은 이게 현실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자리를 옮기지.”


공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온 정보부장이 담배를 꺼내 들고 불을 붙였다.


“후~ 예전엔 나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네. 모두가 그랬겠지.”


담배를 문 정보부장의 넋두리가 시작되었다.


“돈을 벌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있었어. 대출로 겨우 얻은 작은 아파트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살았지. 그땐 그게 행복인 줄 몰랐어.”


정보부장의 눈이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그날은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떼를 쓰는데 겨우 쉬는 날이라 아내와 아이들만 내보냈어.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지. 가족을 잃은 난 죽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막상 죽으려니 용기가 나질 않더군.”


정보부장은 깊숙이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죽지도 못하고 결국 반쯤 미쳐버린 난 좀비로 가득한 아파트 밖으로 나갔어. 이렇게 좀비가 되어 죽는구나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살아보겠다고 좀비를 때려잡고 있더군. 그렇게 폐인이 된 채로 좀비를 잡으며 살다가 부대장님을 만났고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거야.”


다 타버린 담배를 끈 정보부장.


“이제 부대 안에 모든 사람이 내 가족이 된 거지. 정 대위 자네도 마찬가지야. 여기 많은 사람이 자네 덕에 목숨을 부지했어.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주게.”


원래의 자리라니.

내가 아는 한 이건 원래 내 자리가 아니다.


“미안하네. 내가 시간을 너무 빼앗았지? 내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말게.”


그렇게 정보부장과 헤어져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산책을 다녀온 뒤 생각이 많아졌다.


기억을 잃기 전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찾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나를 히어로로 생각하는 꼬맹이.

모든 일상을 잃어버린 정보부장과 살아남은 모든 사람.

태웅과 해린 역시도 가족을 잃고 삶을 잃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결국 오래 살지는 못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더는 과거에 얽매여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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