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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767
추천수 :
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3.04.17 20:45
조회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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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3쪽

진천 - 182화

DUMMY

진호가 차려진 요리를 대충 집어먹자 구지근이 말했다.


"어제 그렇게 마시더니 사람 참."


"흐흐, 그러게 말일세. 자네는 일찍 일어났나 보이?"


"나야 별로 안마셨으니까. 속 풀리게 오리탕이나 한그릇 들게. 이봐 점소이, 여기 오리탕도 하나!"


"네, 네!"


오리탕은 금세 나왔고, 진호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푹 숙였다.


"크- 좋구만. 구가, 나 잠시 뜨거운 국물 좀 넣겠네."


"음."


후루루룩!


오리탕에 집중하는 척 하며 말을 멈춘 진호가 구지근이 눈짓으로 가리킨 자리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 그렇다니까. 내 아들도 이번에 수경각에 꼭 넣을생각이네."


"가격이 보통이 아닐텐데 괜히 재산만 탕진하는 것 아닌가?"


"무슨! 난 수경선사 말을 믿네. 두고 봐, 이제 마교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수 많은 군부세력들이 일어나 서로 모셔갈 군사가 없어서 안달일테니."


[군사?]


진호의 전음을 받은 구지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헛기침을 하며 옆자리의 사내에게 술병 하나를 슬쩍 건냈다.


"크흠, 저, 형씨. 내 본의 아니게 옆에서 듣다가 궁금한게 있어서..."


스윽-


구지근이 내민 술병을 본 사내는 입술을 오물거리는 것이 벌어지는 미소를 참는 듯 했다.


"헛, 그냥 물으면 되지 뭐 이런걸... 이거 비싼술 아니오?"


"괜찮소. 그보다 방금 하신 말씀 말인데... 부끄럽지만 내 스물넷이나 먹도록 할 줄 아는게 없어서 말이오. 그 수경선사란 분이 유명한 분이오?"


"아, 유명하다 말다. 예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선 대부로 추앙받는 분이오. 그간 무림이 번성하여 딱히 나설곳이 없었지만 이제 무인이 없어졌으니 그분의 세상이 올 것이오. 그대도 생각이 있으면 하루 빨리 수경각의 제자로 드시오. 더 지나면 들어가고 싶어도 못들어갈테니까."


"아아... 근데 그 수경각이 정확히 뭐하는데요?"


"수경선생께서 직접 학문과 군사학(軍思學), 병법등을 사사 하시는 군사 양성소라 보면 되오."


"양성소라... 헌데 형씨는 이런 얘길 어디서 들었소?"


"들은게 아니고 봤지. 이주 전 부터 매일 아침 사시에 수경각의 정문앞과 인근 지역의 사거리 마다 소식지가 배포되오. 현재 중원의 크고 작은 소식들과 그걸 기반으로 수경선생께서 직접 관측하신 앞으로의 정세를 정리한 것이오. 자, 이런거지."


부스럭.


"음."


잠시 사내에게 받은 종이를 바라보던 구지근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형씨, 혹시 이것 내게 줄 수 있소?"


"그러시오. 어차피 어제거요."


"고맙소."


"흐, 별 말씀을. 그럼 술 잘마시겠소."


옅은 미소로 화답한 구지근이 진호의 앞으로 서신을 슥 내밀며 말했다.


"자네도 좀 보겠나?"


"음, 난 해장 좀 더 하겠네. 군사학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러시게."


바로 이어 구지근에게 진호의 전음이 들렸다.


[이번 일과 연관이 있는건가?]


[아닙니다. 이건 전혀 다른얘기... 이걸 보니 수경이란 자는 무영문과는 관련이 없는 듯 합니다. 드러난 사실만으로 정세를 판단하는군요.]


[허면 신경 쓸 것 없는 것 아닌가?]


[당장은 그렇습니다만 분명 범부는 아닙니다. 이런 영향력을 가진 자가 혹 만에 하나라도 무영문과 손을 잡고 있거나 앞으로 잡게 된다면 위험 합니다.]


[흠.]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됐다, 연비대를 통해 감시만 하지.]


[네.]


둘의 전음이 끝난지 얼마 안되어 오리탕 한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진호가 구지근의 앞으로 제 잔을 내밀었다.


"나도 한잔 주시게."


"음."


구지근이 조금 어색한 한손으로 진호의 잔에 술잔을 채우며 뭔가를 말하려 할 때, 아까의 옆자리에 새로운 사내 한명이 더 앉으며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왔는가?"


"음, 내가 좀 늦었구만."


"어서 앉게. 참, 자네 혹시 오늘자 소식지 구했나? 난 한발 늦어서."


"크흐, 그럼. 내가 좀 부지런한가. 자, 여기있네."


"오오, 고맙네."


종이를 받아든 사내가 그것을 슥 훑어보고는 홀로 중얼 거리듯 말을 꺼냈다.


"황군이 오랑캐 토벌을 위해 출병 한다라... 마교에 대한 소문은 진위 확인이 어려우니 당장 휘둘리지 말고 기다려라... 응? 속중표국의 안주인이 위독하다고?"


"그렇다는군. 나흘 전부터 온갖 이름 좀 있다 하는 의원들이 모두 오갔는데 병세가 보통이 아닌가보이. 그런 대형 표국의 안주인인데도 못 고칠 병이면 보통병이 아닌거야."


"헛, 백날 재물 쌓아봐야 소용 없구만. 나이도 젊다고 하던데... 쯧."


벌떡!


"응?"


그 대화를 듣던 진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얘기를 나누던 세명은 물론 주위에 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진호를 바라봤다.


[소교주님.]


움찔.


[이곳에 무영문의 첩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진위여부는 저희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빠르니 눈에 띄는 행동은...]


"..."


구지근의 전음에 주위의 시선을 느낀 진호가 곧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우우욱! 아무래도 너무 많이 먹었나보이. 이봐 구가, 좀 걷지. 숨만 쉬어도 오리탕이 넘어 올 것 같네."


"어허 사람, 어쩐지 허겁지겁 먹더라니... 얼른 나가세."



***



같은 섬서에 있었기 때문에 성내로만 이동해야 했던 구지근과 진호는 경공 대신 적당한 속도로 뜀박질을 했다.


약 반각 후, 그들이 표국에 도착했을 땐 어느새 돌아온 진천이 악야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


진호의 말에 진천의 두텁고 묵직한 몸이 느릿하게 돌며 심하게 갈라지는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왔느냐."


"아버지,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일 전 부터 갑자기 발작이 있더니 정신을 못차리는구나. 황궁의 태의까지 왔다 갔으나 점점 악화만 되고 있다."


"...어머니. 어머니 저 왔습니다. 어머니."


"어제까진 조금씩이라도 말을 했는데 오늘은 의식이 없어."


진호가 본 악야의 얼굴은 겨우 며칠 새 마른 나무껍데기 처럼 거칠고 비쩍 말라 있었고, 몸의 피부색도 거뭇하게 색이 죽은 것이 마치 마른 시체를 보는 듯 했다.


조심스럽게 악야의 손을 부여 잡고 서서히 진기를 불어 넣어 악야의 전신을 살핀 진호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하자 더욱 유심히 어미의 안색을 살피며 홀로 중얼거렸다.


"기혈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마른침을 삼킨 진호가 그제서야 바라본 진천의 얼굴도 멀쩡하진 못했다.


핏기 없는 피부와 입술에 눈 밑은 퀭하게 그늘져 있었는데, 그의 몸을 순환하는 방대한 양의 자연진기를 생각하면 그가 받고있는 정신적 고통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 며칠 사이에 이렇게 까지 되신겁니까. 아버님, 하, 할아버님께 부탁해보시지요. 어떤 병이든 할아버님이 오시면..."


"아니."


진호의 말을 끊고 고개를 가로 저은 진천이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어금니를 짓눌렀다.


"어제 이미 다녀왔다."


"..."


"그자는 더 이상 내 아비도 네 할애비도 아니다. 핏줄이라 생각치 마라. 이대로 네 어미가 세상을 떠난다면 불굴대천의 원수가 될것이다."


"..."


순식간에 퍼진 진천의 노기가 방안을 가득 메우자 진호가 악야의 팔을 잡고 공력을 불어 넣으며 말했다.


"아버님. 어머니께 자극이 됩니다. 노기를..."


"..."


후욱-


방안에 가득찼던 노기가 한순간에 진천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며 잠시간 정적이 맴돌았고, 얼마안돼 조심스럽게 열린 방문으로 란영과 의원 둘이 즐어 진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 호남과 광동에서 방금 도착한 의원들입니다."


"...들어라."


스윽


악야의 앞으로 선 의원들은 잠시 몸을 흠칫하며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한명이 팔을 걷고 나서며 악야의 맥을 짚기 시작했다.


"..."


"으음... 곡지혈의 흐름이..."


"진호."


"네, 아버지."


"따라라."


"엇..."


덜컥.


훌쩍 방을 떠나는 아비의 뒷모습과 침상의 어미를 번갈아 보며 주춤하던 진호는 이내 란영에게 눈빛을 보내고는 곧장 진천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아버지, 의원의 진맥이..."


"소용없다."


"네?"


"저런 놈들은 한수레가 와도 병의 원인조차 알지 못해. 표정만 봐도 안다."


"그런..."


"의원따위가 고칠 수 있는게 아니야."


진천의 말에 진호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진천이 말을 이었다.


"사마교의 말로는 악야를 찾았던 그 마인놈이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이 크다더군. 독초나 독약. 어쩌면 마공..."


"마공이라면 저나 아버지가 모를리가 없잖습니까. 아까 제가 일주천을 돌렸을 때 별다른 이상은..."


"오래 전 소실 됐거나 금지된 것일수도 있다. 혈교의 것일 수도 있고... 본교에서 그 분야를 잘 아는 이가 나올거다."


"아버지, 스승님은 어디계십니까? 스승님이라면... 아니면 이미 어머니를 보셨습니까?"


진호의 말에 호흡한번을 삼킨 진천이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돌리며 말했다.


"...떠났다."


"..."


"독고단 장로를 죽인게 나다. 복수하겠다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그냥 조용히 떠나더군."


"들었습니다."


"음?"


"아버님과 떠나시기 전날 밤에 언질을 주셨습니다. 아직 확실치는 않으나 아버님이 하신 일이 맞다면 교를 떠나신다고..."


"...아아."


둘 사이에 다시 먹먹한 적막이 찾아왔다.


"내가 원망스러우냐?"


"... 아닙니다. 스승님도 이제 좀 쉬셔야지요. 오래 싸워오지 않으셨습니까.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올겁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인 진천이 오른손을 들어 진호의 어깨를 감쌌다.


"서역에 다녀와라."


"네?"


"네 어미가 얼마나 버틸지 알 수가 없다. 마영과 황재성이 언제 그 마인놈을 찾을지 몰라. 서역으로 가 치유력이 뛰어난 마법사를 데려와라."


"아! 힐러는 아버님이나 드래곤의 힘과 같은 치유가 가능하니!!"


"내가 가려했는데 마침 네가 왔으니 다행이다. 서둘러라."


"바,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후악!


그 자리를 그대로 박차고 오른 진호가 높은 상공으로 사라지자 진천은 사마교의 집무실로 들었다.


"교주님. 오셨습니까."


"마침 진호가 와서 바로 서역으로 보냈다. 난 따로 그놈을 찾으러 가겠다. 전 중원을 뒤집어서라도..."


분기 가득한 눈으로 말끝을 흐린 진천에게 사마교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교주님 안됩니다. 놈들이 태모님께 접근한 이유가 이것 아니겠습니까. 뭔가를 도모하기 전에 교주님의 심상을 흔들어 놓으려는 것 입니다. 지금은 냉정을 찾으셔야 합니다."


"그 사이 악야가 죽으면?"


"...교주님. 지금은 어느 때 보다 냉정해지시는 것이 태모님을 살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것 입니다."


"..."


"소교주가 서역으로 갔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시지요. 곧 황군이 타작을 시작하면 숨어있던 사냥감들이 튀어 오를것입니다."


"...알았다."


마지못한 답을 한 진천은 한동안 말없이 멀뚱히 서있을 뿐 나갈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더 이를 말씀이 있으신지요."


"지금 악야에게 불어넣은 자연진기로는 10일을 버티는게 한계다. 만약 그때까지 놈을 잡아 악야를 고치거나 진호가 돌아오지 못하면..."


"..."


"중원인의 절반을 멸한다. 그래도 안되면 전부를 멸해서라도 악야를 살릴 것이야."


"!!"


진천의 엄포에 사마교의 얼굴에 경악이 번지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교, 교주님!! 안됩니다! 그리되면 금영진은 둘째 치고 사도들의 힘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상관없다."


"교주님! 잠시! 잠시만 주시면 속하가 다른 방안을..."


탁.


"..."


진천은 사마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을 나섰고, 사마교는 허망한 얼굴로 진천이 닫고 나간 문을 바라보며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서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사람하나 살리자고 수천만을 죽이겠다고?'


아직 제 짝을 만나지 못한 사마교는 진천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사마교뿐 아니라 혼인을 한 자라고 해도 천생연분이란 말을 공감 해 보지 못했다면 진천을 이해 하기는 어려울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방안에서 이야기만 나눠도 즐거운 사람. 함께하는 것이 너무 행복해 끊임 없이 흐르는 시간이 야속해지게 만드는 사람.


혹여나 둘 중 하나가 잘못되면 수북하게 쌓인 행복이 떠오르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진천과 악야는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었기에 악야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진천의 중원학살은 으름장이나 객기가 아닌 진정한 공포에 질려있는 상태에서 내뱉은 진심이었다.


6일 전. 구학영을 죽인 진천이 표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악야는 병상에 누워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진천은 악야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오늘까지 밤낮을 지새며 단 한숨도 자지 못한 채 피가 말리는 공포에 잠식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진천에게 마교를 떠났던 염광이 찾아 온 것은 자시가 넘은 야심한 밤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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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진천 - 184화 23.04.22 165 1 16쪽
184 진천 - 183화 23.04.19 14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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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진천 - 181화 23.04.16 155 0 15쪽
181 진천 - 180화 23.04.15 153 1 13쪽
180 진천 - 179화 23.04.14 141 1 14쪽
179 진천 - 178화 23.04.11 138 0 14쪽
178 진천 - 177화 23.04.08 145 0 14쪽
177 진천 - 176화 23.04.06 136 1 12쪽
176 진천 - 175화 23.04.01 141 0 12쪽
175 진천 - 174화 23.04.01 136 1 13쪽
174 진천 - 173화 23.03.26 150 1 15쪽
173 진천 - 172화 23.03.22 151 1 13쪽
172 진천 - 171화 23.03.20 169 1 16쪽
171 진천 - 170화 23.03.18 404 1 15쪽
170 진천 - 169화 23.03.04 185 2 14쪽
169 진천 - 168화 23.02.24 19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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