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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763
추천수 :
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3.02.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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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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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진천 - 167화

DUMMY

진천이 다시 눈을 뜬 것은 3일 후, 마교의 의령전(醫靈殿).


"아버지! 정신이 드십니까?"


"...여긴 어디냐."


"의령전입니다. 3일만에 깨어나셨습니다."


"... 압룡대는? 아버지는..."


"압룡대는 이할이 남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쓰러지신 후 할아버님은 곧장 사도들을 데리고 떠나셨고, 적룡은 포터를 데리고 사라졌습니다. 라빈이 남은 전력을 본교로 옮겨 줬습니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아버지, 집으로 가시지요. 어머니가 기다리실 겁니다."


"어미에게 말했냐?"


"아직입니다."


"말하지 마라. 난 아버지를 보고 와야겠다."


"아버지, 좀 쉬시는 것이..."


움찔.


"..."


잠시 몸을 까딱거린 진천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동이...'


몸을 옮기려 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제야 호문이 말한 '벌'을 실감한 진천은 서서히 침상 밖으로 나와 몸에 진기를 끌어들였다.


후우웅-


자연진기는 별 문제없이 진천의 몸에 휘몰아쳤지만 진천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겨우 이 한줌...'


평소 모이던 것과는 차마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미약한 진기에 말로 다 못할 허망함을 느낀 진천이 진기를 잠재우자 진호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버지, 저, 잠시..."


"말해라."


"할아버님의 말씀 중에... 아버지께서 핏줄을 죽였다는 얘기가 무엇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모두 모아라. 대전으로 가자."




***




진천의 소집에 금새 구학영과 범요, 사마의가 달려왔고 그 무리엔 풍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독고단의 얘기를 들은 듯 했다.


"교주님, 괜찮으십니까."


공손하게 부복한 사마의의 질문에도 진천은 잠시간 멍한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 보다가 물었다.


"염광은?"


진천의 질문에 구학영이 상당히 냉기서린 목소리로 답했다.


"뇌옥에 가뒀다."


"..."


"스승님을 죽인게 그놈이더군. 화를 피하려 적룡에게 뒤집어 씌웠다고 자백했다."


"...아아."


"이유는 묻지 않는가."


구학영의 물음에 진천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둘의 눈치를 보던 사마의가 고개를 숙이며 슬쩍 끼어들었다.


"독고단 태상장로가 교주님의 일을 계속 반대하기에 자신이 벌을 내렸다 하였습니다. 교주님께서 처분을 내려 주시지요."


"그냥 풀어줘라."


"...!!"


"진천!!!"


구학영의 외침에 진천은 눈을 질끈 감고 관자놀이를 누르며 짜증을 내비췄다.


"독고단 태상장로의 생사여탈권이 그보다 더 강한 염광에게 있었을 뿐. 본교 강자지존의 율법대로 문제 될거 없잖소."


"교주님! 태상장로직은 무공의 성취와는 상관 없이..."


범요가 반박했지만 진천은 그 말을 끊고 구학영을 바라봤다.


"그게 아니더라도 염광은 애초부터 아버지의 수하. 난 놈의 처분을 결정할 권한이 없소."


진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교주의 말이 곧 법인 마교에서 사사건건 교주의 일을 반대한 독고단이었기에 이는 염광의 과잉충성 정도로 적당한 징계를 내리면 끝날 일이다.


또 그런 자잘한 법도 따위는 차치하고라도 호문의 수하인 염광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는 없었다.


구학영은 반 강제로 어금니를 씹으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혀야만 했다.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었다.


"형님."


"..."


"미안하오. 내가 지금 좀... 나도 모르게 말이 거칠게 나갔소."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제정신이 아닌 것은 진천이었다.


큰 싸움을 시작도 못한채 굴욕을 당하고 그토록 강대하던 힘마저 잃어 버렸다.


깨어난지 반시진 후 부터 조금씩 그것을 실감하기 시작한 진천은 신경이 점차 날카로워 지다가, 어느 순간엔 맹수가 가득한 산속에 홀로 벌거벗은 채 있는 듯한 불안감에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 시키며 화제를 돌렸다.


"사마의, 중원은 어떻게 되었나?"


"속하도 어제서야 막 확인한 바, 각 구파일방의 본관은 물론 명문 정파들과 황궁의 점령까지 마쳤습니다. 지금은 본교 전 병력이 중원 각지에 남은 군소문파와 무인들을 찾아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마의의 보고에 눈을 살며시 감은 진천이 다시 말이 없자 사마의가 말했다.


"완전한 마도천하를 이루셨습니다. 이는 천마신교 역사상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일 뿐더러 본교 병력 약 2할의 피해만으로 이루신 성과입니다. 교주님의 이 위대한 업적은 대대로 남아 천하인들에게 전해질 것 입니다."


그것은 분명 마교를 넘어 중원의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 자리에 만족을 느끼는 이는 없었다.


특히 진짜 간절히 원했던, 정말 위대하다고 평가 받을만한 일은 정작 시도도 못해보고 굴욕을 당한 것에 더해 족쇄까지 차게 된 진천은 점차 뻣뻣하게 굳어가는 심상에 이젠 숨결마저 미약해진 참이었다.


대전이 어색한 침묵속에 잠기자 진천이 천천히 태의에서 일어났다.


"모두 고생 많았다. 나는 잠시 혼자 있을테니 이후 복귀하는 마인들이 있으면 아끼지 말고 포상을 내려라. 그간 본교의 일은 사마의와 소교주가 맡아서 하고."


"존명."


멈칫.


다시 한번 습관처럼 몸을 옮기려던 진천은 또 다시 깊은 숨을 내쉬며 진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잊을 뻔 했군. 그 핏줄 얘기 말이다."


"네, 아버지."


"네가 서역에 있는 동안 예전에 금영진 놈이 씨를 받았던 네 아이들이 태어났다."


"아..."


"열둘의 아이가 태어났고 내가 모두 죽이라 명했다. 적룡... 을 치기에 앞서 힘이 크게 빠지기도 했거니와 그 아이들이 대를 이으면 겉잡을 수 없기에 불가피 했으니 매정하다 생각치 말거라."


"네..."


"너도 느끼지 않았느냐?"


"네. 서역에서 며칠간 상당한 기력이 소실된 채로 지냈습니다."


"그래. 그래도 네 아이들인데, 아비가 원망스러우냐?"


칼에 몸이 뚫리는 큰 부상을 입으면 베이거나 찔린 작은 상처들은 느껴지지도 않는 것 처럼, 적룡의 일을 실패한데다 힘까지 빼앗긴 진천은 지금 자신이 이 일을 왜 비밀로 하려 했는지도 모를만큼 하찮게 여겨지는 것에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진호는 그런 진천의 무덤덤한 설명에 아주 잠시간 말을 고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정신도 없을 때 빼앗긴 씨앗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그래. 난 연공실에 있으마."


"네."


"진천."


"네, 형님."


"혼란스러운건 안다만... 동족 수장의 제안을 어떻게 할지는 시급히 결정해야 할 일이다."


"...아직 5년 남지 않았소. 며칠 후에 얘기 합시다."


후욱-


기력없는 경공으로 멀어지는 진천의 신형을 보던 모두는 각자의 복잡한 심경을 갈무리하지 못했는지 선뜻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교주님께서 충격이 크신 듯 합니다."


"...그렇겠지."


사마의의 말에 구학영이 주먹을 불끈 쥐며 답하자 진호가 분위기를 환기 시키려는 듯 부러 목소리를 키워 말했다.


"자, 중원의 일 부터 정리 하시지요. 군사.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뭐지?"


"아무래도 치안의 안정입니다. 각 관아의 관료들은 대부분 남아있으나 치안을 담당하던 각 지역의 문파가 모두 없어졌기에 앞으로 많은 마인이 바깥에서 주둔해야 할 것 입니다. 허나 동족 수장의 요구대로라면 본교도 1만을 제외한 모든 마인의 무공을 폐해야 하는지라... 단전을 폐한 마인들을 각 지역의 관군으로 배치시킬지, 아니면 새로이 양민들 중에서 차출할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황궁도 문제인데... 교주님께서 황궁의 관리 절반 이상을 멸하시는 바람에 관리 인원이 턱없이 부족할 것입니다."


"황궁은 그냥 버리면 안되나? 굳이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범요의 물음에 사마의가 옅은 웃음을 띄며 답했다.


"하하, 본교의 입장에서야 그렇겠으나 중원의 양민들에겐 꼭 필요합니다. 외교도 그렇고 중앙 집권처라는게... 아, 단순하게 중원이란 지역을 관리하는 관아라고 보시면 됩니다."


"허나 지금은 황제도 없지 않나."


"본교에서 관리자 한명을 파견해 황제역을 맡겨야겠지요."


"흠..."


"흐, 누구 황제 한번 해보실 분 계십니까?"


진호의 질문에 어둡기만 하던 모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서리며 무겁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풀어지는 듯 했다.


"참, 무영문도 문제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지부들 외에 중요 거점이나 본문의 위치는 워낙 꽁꽁 숨겨져 있기에 그들을 색출하려면 고생을 좀 해야 할 듯 합니다. 마침 금영진도 사라진 참이라... 소신이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다. 다들 워낙 큰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당연하다. 무영문...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둘러야겠군. 군사가 필요한 인원을 붙여 처리하시게."


"존명."


이후 군사부를 중심으로 소교주 진호와 구학영, 범요 등 수뇌부들은 밤잠을 잊은 채 산처럼 쌓인 중원의 일을 정리하는 것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한 지역도 아니고 제국 전체를 통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그들은 기존의 관리 체제는 유지한 채 치안과 분쟁을 담당 할 군사들만 파견하는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무래도 무위가 가장 낮고 수가 많은데다 무인보다는 군대에 가까운 마격대에서 대부분의 인원을 차출하기로 했고, 관리직으로 각 군(郡)당 500명의 이급~일급 고수와 한명의 절정 고수가 배치 될 예정이었다.


이급고수와 마격대의 경우는 언제 단전이 폐쇄될지 모르는 운명이긴 했으나 그 날이 왔을 때 모두 십만대산에 모여있는 것 보다는 각 지역에서 분산 처리하는 것이 한결 수월할 것이었다.


두달 후.


마교를 대표해 이 모든 지역을 총괄하는 수장- 새로운 대명제국의 황제 범요의 성대한 즉위식이 열렸다.


마교는 명제국이라는 칭호는 그대로 둔 채 황궁 요직의 인사만 마교의 인물로 대체 했는데, 대부분 무공이 거의 없는 군사부의 인물들로 그 수장은 사마소가 맡게 되었다.


그렇게 대명제국의 황제위에 앉은 마교의 부교주, 범요의 황당무개한 일처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조금 더 훗날의 일이었다.


이런 천지가 개벽한 변화 속에서도 양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여기저기 천마신교의 깃발이 나부끼고 매일 풍경처럼 보던 각 정파의 무사들 대신 시커먼 흑의를 입은 마인들이 무리지어 오가는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물론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원망과 분노야 이를데가 없었지만, 전 중원의 인구에 비하면 워낙 소수기도 했거니와 당장 무인이라고는 흔적도 남지 않은 중원에서 감히 마교를 상대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금새 3개월의 시간이 더 흘렀다.


그간 마교 내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가 계속 이어졌는데, 그 중 하나는 악야의 섬서행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세상이 절단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걱정에 밤잠을 못이루던 악야는 기어이 제 눈으로 확인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다시 섬서의 가택으로 이사를 감행한다.


벌써 다섯살이 된 진호의 딸 지재와 란영도 당연히 함께가게 되었는데, 도저히 마교를 떠날 수 없는 진호와 연공실에서 나올 기미가 없는 진천을 대신해 단길이 호위 책임자로 임명되어 500의 호위대와 함께 섬서로 가게 되었다.


"이제 중원에 무인이라곤 본교 마인들 밖에 없는데 굳이 이런 호위가 필요 하겠니?"


악야의 물음에 진호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어머니,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아직 세간이 어수선합니다. 당분간만 참으십시오."


다행히 섬서로 돌아간 악야는 별탈 없이 무사히 지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는 그제야 얼굴이 활짝 피며 며느리와 손녀 자랑에 여념이 없는 매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




진천이 연공실에서 나온 것은 그로부터 1개월이 더 지난 어느날.


대전으로 든 진천은 진호를 불러 몰라보게 수척해진 얼굴로 말을 꺼냈다.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아버지."


"어미에게 가자. 너무 오래 못봤구나."


"아, 어머니는 란영과 지재와 함께 섬서의 가택으로 가셨습니다. 가시지요."


"음."


곧장 진호와 함께 섬서로 출발한 진천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땅위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담기자 이런저런 잡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무가 원래 저런 색이었나? 저긴 노면이 엉망이군. 응? 소가... 저리 컸던가?'


진천의 나이 어느덧 79세.


그 오랜시간 봐온 평범한 세상의 풍경에 묘한 생소함을 느낀 진천은 뭔가가 불안했는지 머리를 한번 흔들며 몇차례 허공을 짓밟고 올라 더 높은 상공을 내달렸다.


화산파, 곤륜파, 무당파, 무림맹...


내노라 하는 명문정파의 수장들을 날파리 잡듯 죽이고 현경의 고수라 해도 손짓 두어번으로 숨을 끊으며 용과도 대차게 맞서려 했던, 수십만의 군병도 눈 깜짝할 새에 시체로 만들던 진천은 죽었다.


천하를 오시하는 그 압도적인 폭력- 종(種)의 힘을 잃은 진천은, 점점 자신의 마음을 좀먹을 그 상실로 인해 겪게 될 끔찍한 변화를 꿈에도 모르는 채 악야를 향해 달렸다.





***





타다다다다다닥!!


"이놈아! 뛰지 말라니까! 넘어져!"


이제 막 7살쯤 되어보이는 작은 사내아이는 얼마나 기운이 넘치는지 벌써 두시진 째 그 넓은 표국의 여기저기를 사슴마냥 뛰어다니며 헤집고 있었다.


"이놈! 잡았다!!!"


"끄악!!!"


"너! 읽으라는 책은 다 읽고 이 난리를 피는 것이야?"


"아, 네! 다 읽었어요!!"


"진짜야? 읊어봐!"


"윽... 저, 근데 아버지. 교주님은 진짜 하늘을 날아요?"


"뭣!"


턱!


아이의 입을 다급하게 막은 아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이놈아! 함부로 교주님을 입에 올리면 죽어!!"


"읍! 읍! 파하!"


고개를 세차게 휘저어 아비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아이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비를 따라 속삭이듯 말을 물었다.


"왜요?"


"이놈아, 왜는? 교주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인데? 그 태산 같던 중원 무림의 고수들을 암탉 잡듯 잡은 분이시다. 그분한테 걸려서 살아남은 자는 하나도 없어. 하늘을 날다 뿐이겠냐? 태산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드실걸."


"에이-"


"이놈이? 근데 갑자기 그건 왜묻냐?"


"호위무사 아저씨들이 맨날 얘기 해줘요. 천하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교주님이고 당할자가 없다고. 근데 다 뻥이죠?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날아요?"


"뻥이긴? 너 저 무사들이 경공으로 파바바박! 달리는 것 못봤냐? 엄청난 무공 고수들은 경공으로 하늘도 날고 그러는거야."


"우와! 그럼 나도 무공 배울래요! 이렇게! 이렇게!!"


후다다다닥!!


"아니, 저놈이? 야!! 이리 안와??"


"이히히히!! 파바박! 파바박!!"


"해존아!! 그쪽은 안된다!! 어이쿠, 이놈아!!"


타다다닥!!!


펄쩍-!


풀썩!!


"윽! 으으..."


국주전 뒤쪽의 무성한 수풀속을 내달리다 마주친 거대한 돌담을 단숨에 뛰어넘은 해존이 얼얼한 엉덩이를 문지르며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엉? 여긴 어디지? 나 여긴 처음오는데..."


평소 자신이 보던 투박한 표국의 풍경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정갈하고 아담한 정원과 작은 연못, 그리고 그 안쪽으로 난 돌길 끝에 있는 고급스러운 사랑채.


표국 한켠의 작은 단칸방에서 살던 해존이 처음보는 표국내의 공간이 신기했는지 입을 헤- 벌리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자, 곧 정원 우측끝에 꾸며진 화단 틈에서 해존보다 작은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똘망똘망한 눈으로 해존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누구야?"


작은 여자아이의 질문에 해존은 대답 대신 같은 질문을 던졌다.


"넌 누군데?"


"나? 나는 지재야."


"나는 해존이야."


"너 어디서 왔어?"


"나 여기서 왔는데. 여기 우리 집이야."


"너 여기 살아?"


"응. 근데 여긴 처음와봐. 너도 여기 살아?"


"아니, 난..."


지재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뭔갈 말하려던 그 때.


"지재야! 어서오렴! 할아버지 오셨단다!"


"네!!"


"여기서 뭐해? 어머, 넌 누구니?"


지재를 찾아 온 란영의 물음에 지재가 제 어미를 빤히 올려다 보며 또박또박 답을 대신했다.


"쟤는 해존이래. 여기 산대."


"여기? 아아, 표국에 사는 아이구나. 얘야. 여기는 허락없이 들어오면 안되는 곳이란다. 어서 돌아가렴. 자, 지재야 어서 가자."


"네. 어머니. 해존아 안녕~"


"..."


지재의 인사에 말없이 손만 흔든 해존은 뭐가 그렇게 신기했는지 멍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지재의 등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그 뒤를 쫒아 목을 쭉 빼들었다.


"아버님, 여보. 지재 왔어요."


"그래. 지재 많이 컸구나. 자, 할애비가 한번 안아보자."


"하, 할아버님. 안녕하세, 꺄악!!"


"하하! 우리 딸이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봐서 어색하구나. 자, 아버지. 어서 드시지요."


"음."


삐쭛거리며 인사하는 지재를 번쩍 들어안은 진천이 진호, 란영과 함께 사랑채로 들었고, 멀찍이 떨어진 나무들 사이에서 진천의 큼직한 등을 바라보던 해존은 사랑채의 문이 닫히자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렸다.


"쩝, 새로운 친구 생길 수 있었는데... 아, 맞다! 빨리 무공 배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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