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vs 마녀(209)
테드버드(4)
작은 파문이 점점 크게 일었고 작은 웅성거림도 점점 커졌다.
삽시간에 경기장 안은 시장바닥처럼 변했다.
그렇게 말한 아조카드도 멍한 상태였다.
졌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 것이다.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조카드는 곧 냉철하게 판단했다.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아조카드는 토멘트 공작 앞으로 다가가 간단한 예를 취하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할 상대가 아닙니다."
"아니 자네는 소드 마스터일세. 자네 같이 반신의 경지에 오른 이가 검 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못하고 상대가 안 된다니 그럼 저자가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관중들도 같은 심정이다. 지금 소드 마스터의 멋진 기술들을 구경하러 왔는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거의 박빙으로 싸우는 것 같은데 갑자기 검을 내리더니 졌다고 한 것이니.
관중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저마다 목소리를 내니 시장바닥과 같은 소리가 났다.
"괜찮으시다면 저에게 한번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애브러브레이머 장군은 경기장 한가운데 선 테드버드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부탁드릴 참이었소. 그대가 직접 그의 검을 판단해 보시오."
애브러브레이머는 아조카드와 스쳐 지나갈 때 나지막이 말했다.
"자네가 검을 거둘 정도면 나도 의미 없는 도전이겠지?"
"솔직히 말해 나를 가지고 논 셈일세. 칠무신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야."
애브러브레이머의 눈썹이 꿈틀했다.
늘 자신들의 비교 대상이 칠무신이었다.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말에 오기가 발동했다.
"너무 쉽게 지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은가. 자네는 포기가 너무 일렀어."
"그런가? 그럼 직접 부딪쳐 보게. 재주 피우는 원숭이가 되거나 일찍 포기하는 겁쟁이가 되거나 선택지는 두 개 뿐이란 걸 느끼게 될걸세."
테드버드는 또 후회하고 있었다. 적당히 해야 했는데 힘을 통제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조절이 되지 않았다.
아조카드가 그토록 빨리 포기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러면 자신의 입장은 더욱 난감해진다.
마침 애브러브레이머와 교체할 모양인데 이번에는 저들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주인은 저들이다. 괜한 짓거리로 미움을 살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테드버드의 성격은 마교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누구보다 인정이 많으며 죄를 지으면 벌을 주기 전에 그 행동이 왜 좋지 않으냐를 먼저 이해시키는 성격이었다.
살생을 극도로 싫어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살인범도 교화시키면 된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정의롭고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그것은 제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람을 정확히 판단하고 또 세심하게 가르친다. 테츠가 달리 그에게 마교 인원 통솔권한을 부여한 것이 아니다.
테드버드는 신병 가르치는 것을 가장 중요시 하고 또 그 일에 진솔하게 매달렸다.
처음부터 올바른 법도를 주입하면 된다는 취지에서다.
엘빈은 제자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벌을 내리지만 테드버드는 하나부터 열까지 잘잘못을 정확히 지적하고 이해시켰다.
다소 고리타분한 성격이라고 지적받기는 해도 그는 그런 자신의 행동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는 올곧은 성격의 사나이였다.
지금 이곳에는 윌리엄 대공도 있고 특히 온두라스와 마크라스도 있기에 이들이 토멘트 공작과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교주가 자신들을 이곳으로 보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애브러브레이머가 앞에 섰다.
테드버드는 이곳에 도착해 다른 곳에 신경을 쓴다고 내공 수련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랬다면 몸의 변화를 빨리 알아차렸을 텐데 말이다.
어떻게 하든 이들의 자존감을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려 이들은 소드 마스터의 칭송을 받는 자들이다.
아직도 아조카드가 왜 졌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거버트 이하 마교의 제자들도 어리둥절한 상황이니 말해 무엇할까.
테드버드는 이번에는 상대의 공격을 방어만 하기로 했다. 아직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 신체 능력이 과한 힘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눈앞에 선 상대는 폭군이라고 불리는 자다. 아조카드는 빠르고 날렵한 한손검의 소드 마스터라면 애브러브레이머는 상성이 완전히 반대의 사람이다.
딱 알프레드 스타일이다. 우직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에 난폭함까지 더해지면 폭군이라는 별칭이 생기겠지.
사실 마교 장로들의 실력을 본 기사들은 장로들이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넘어섰다고 자주 말을 하긴 했다.
특히 어반마르스에서 넘어온 자들은 칠무신의 위용을 여러 차례 봐왔기 때문에 특히 잘 알고 있다. 어반 마르스에는 소드 마스터라고 거론되는 몇몇 인물도 칠무신에 비하면 어른과 아이 정도의 차이었으니.
그것을 알 리 없는 타국의 이들은 칠무신과 소드 마스터를 동일시하지만 실제로 칠무신의 위용을 본 사람들은 절대라고 고개를 흔든다.
인간으로서 궁극의 자리에 오른 지와 신의 힘을 받은 자는 솔직히 다른 개념으로 이야기되어야 한다.
테드버드의 귓가로 애브러브레이머가 길게 내뿜는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마나를 끌어모아 오라 블레이드를 만드는 중이었다.
가볍게 움직이는 거대한 양수검을 본 테드버드는 그 검도 잉겔리움 금속으로 제련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대한 양수검이 저렇게 가볍게 움직인다는 것은 철광석보다 사 분의 일 정도의 무게를 가지는 특수한 금속이기에 가능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전장의 폭군. 애브러브레이머의 위용은 아조카드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조카드가 날카로움을 숨긴 선풍이라면 애브러브레이머는 거칠게 황야를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이었다.
-팟
바닥을 차는 소리가 너무 잘 들려 테드버드는 깜짝 놀랐다.
'신체의 모든 감각이 상승했다. 왜 이걸 몰랐지?'
그동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수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머리가 복잡했기에 자신의 신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그동안 내공 한번 일으키지 않았으니.
'근접 기사형이군.'
아조카드는 일정한 거리에서 검기를 날리는 스타일이었다면 애브러브레이머는 묵직하고 거대한 검을 앞세워 근접으로 붙었다.
-캉
검과 검이 부딪쳤다. 그 충격파가 관람석에서 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완력이 대단하긴 하나 내공에는 비할 바가 안 된다. 격식이 없는 검은 격식이 없는 상태에게나 통하자 우리 같이 검의 범을 아는 자에게는 무의미한 행동이다.'
한 번의 격검으로 상대의 장단점을 파악해 버린 테드버드다.
-캉, 캉, 캉
몇 번의 격검이 더 이루어졌다. 테드버드는 상대의 궤적을 너무나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눈을 감고 소리만 듣고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애브러브레이머도 마찬가지다 상대와 부딪쳐 보니 반발력이 얼마나 강한지 손목이 저려 올 정도였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아조카드가 한 말이··· 진실이란 걸. 사람은 역시 맞아봐야 아픔의 크기를 안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전혀 반격하지 않는군.'
애브러브레이머는 테드버드가 공격 의사 없이 자신의 공격만 막아는 내는 것을 알았다.
함성은 다시 크게 일어났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소드 마스터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함성의 크기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무를 좋아하고 싸움을 즐기는 자들이다.
애브러브레이머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고 테드버드는 여유롭게 그것을 막아 내고 있었다.
느낌이다.
한쪽은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고 움직이 과했다. 반면 한쪽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싸우는 것이 아닌, 그냥 뭐랄까 아이를 데리고 노는 아버지의 느낌이랄까.
사람들은 입을 닫았다. 분명히 애브러브레이머가 멋지게 움직이며 거세게 몰아붙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나 편안해 보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이런 긴박한 상황에 저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움직임이 가능한가?
물론 테드버드 그런 자신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단지 상대의 검을 받아 주는 것으로 체면을 세워 주려는 것뿐이었다.
거대한 양수검. 무엇이든 갈라 버리는 파괴력의 검을 얇은 검신의 콜라다로 가볍게 탕탕 쳐내는 것은 마치 아이와 어른의 대결을 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분명히 들리는 격검 소리로 봐서는 무서운 힘이 부딪치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행동의 양상은 판이하였으니 매칭이 안 되는 것이다.
또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휘날렸지만 이젠 웅성거리는 소리조차 줄어들었다.
갑자기 애브러브레이머가 검을 멈췄다. 테드버드는 살짝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나에게 치욕을 안겨줄 셈이오?"
그 말에 테드버드는 살짝 긴장했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아, 공격하지 않고 방어 일변도라 그러는 모양이군. 그럼 잠깐 공격해 줄까?'
테드버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찬마행공으로 바닥을 찼다.
애브러브레이머는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몰랐지만 실제로 눈앞에 경험해 보니 이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미친!"
급히 검을 후려쳤다. 테드버드는 살짝 어깨를 트는 행동으로 검의 궤적을 피해내고는 연달아 검을 뻗어 왔다.
애브러브레이머는 황급히 검을 들어 테드버드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근육의 완력, 공간감, 스피드, 침착함, 대담성 그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일체가 되어 움직였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갑작스러운 외침에 테드버드는 아차 싶어 검을 멈추었다. 하지만 검은 이미 애브러브레이머에게 날아들었고 테드버드는 순간 손목을 틀어 그의 검신을 세 번 때렸다.
-따땅
잉겔리움 무기끼리 부딪치며 청명하지만 단단한 파괴음이 연달아 만들었다.
애브러브레이머는 테드버드의 완력에 밀려 허리가 뒤로 꺾여질 정도였다.
테드버드의 눈에 애브러브레이머의 모든 부분이 허점투성이에 죄다 빈틈이었다. 어느 쪽으로 검을 밀어 넣든 일격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쉽게 눈에 뻔히 보였다.
'이것이 소드 마스터인가?'
테드버드는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의 제자보다 못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실력. 왜 이들이 소드 마스터의 칭호를 얻었을까?
천마행공으로 붙자마자 구화마검을 펼쳤다.
애브러브레이머는 아조카드와 똑같은 환상을 봤다. 수십, 아니 수백의 칼날이 비처럼 쏟아져 오고 있음을.
아무리 빨리 휘두른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검우 그 자체였다.
있는 힘껏 오라 블레이드를 휘둘렀지만, 검에 닿는 감촉이 없었다. 그가 검을 멈추었을 때 콜라다의 검날은 정확히 자신의 목에 닿은 채 멈춰 있었다.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토멘트의 표정은 묘하게 변했다.
"일개 용병의 검소 씨가 저 정도라는 말이냐?"
함성은 더는 일지 않았다. 다들 충격 속에 빠져버렸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그 기세가 워낙 강해 마교의 제자들마저 위축될 정도였다.
테드버드는 검을 거두었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도 모르게 순간 검에 도취하여 버렸다. 휘두르고 싶었고 마음이 가는 대로 검을 움직이고 싶은 열망이 폭발했다. 그나마 검을 멈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소드 마스터인 애브러브레이머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검을 거꾸로 세웠다. 이건 기사들의 룰로 보면 상대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행동이다.
그런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승자에게 보내는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토멘트 공작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수행원을 대동하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두 명의 소드 마스터도 곧 그 뒤를 따랐고 그런 다음에야 경기장이 본격적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번 대결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소드 마스터가 어떤 사람들인가 한 번의 검으로 산을 허물고 군단을 상대한다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들은 그 화려한 기술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고 몇 합 싸우지도 않았음에도 스스로 패배를 자처하다니 이건 계획된 무슨 쇼인가?
사람들은 이 대결의 진정한 내막을 알수 없었다.
보좌관 클라우드 남작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경기는 승패와 관계없이 중단되었고 테드버드 일행은 숙소로 돌아왔다.
거버트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스승님께서는 평소 보였던 움직임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누구처럼 보였다는 거냐?"
"세렌 장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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