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혁기(3)
칙칙한 냄새가 나는 골목길은 오랫동안 청소나 정비 따위가 되지 않았다. 이 세계는 벌레가 없다. 곤충이라고는 단 한 마리도 없는 세상. 쥐나 벼룩 심지어 곰팡이도 없고 바이러스나 세균 또한 없다.
퍼스트 임펙트 이후 세상은 멸균 소독된 느낌이다. 자연의 분해자는 오롯이 슬라임의 몫이다. 자연의 균형이 깨지지 않고 연결되는 것 또한 자연의 힘이다. 그 균형은 오히려 지금 세상이 더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축축한 뒷골목에서조차 곰팡이 하나 피어나지 않는다.
이현희는 송덕수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 따라나섰다. 그녀는 연합으로 왔던 적이 없었는지 생소한 이질감을 느껴진다고 했다.
저번에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는 침착하게 아예 노크도 없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 이것들은 살아 있는 것들이 풍기는 냄새가 아니다. 오래된 나무와 섞어 가는 건물 자재에서 풍기는 현실을 대변해 주는 세월의 냄새였다.
인기척에 모습 대신 목소리가 먼저 들려 온다.
"누구여?"
"할머니 접니다."
"그러게 저가 누가냔 말이여?"
"예전에 찾아뵈었던 정동혁이란 사람입니다."
구석진 곳에서 머리 하나가 쑥 빠져나온다. 그녀는 허리까지 오는 치렁치렁한 흰머리를 산발하고 있다.
"어머,"
그 모습에 이현희가 깜짝 놀라 외마디 신음을 내질렀다.
"와, 머리 감을 참인데? 네년은 여자 아니냐? 귀신이라도 봤냐? 댓바람부터 비명은 지랄."
이현희는 머쓱해서 살짝 얼굴을 붉히며 웃고 말았다.
"거기 기다려 후딱 머리 감고 갈테니껴."
"이거 무슨 냄새야?"
"향냄새요."
"향?"
"향나무로 만든 초와 비슷한 겁니다. 태우면 이런 냄새가 나요."
"묘한 냄새인데 처음 맡아봐."
"인간의 역사 속에 묻힌 냄새죠."
이현희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대충 차림을 한 송덕수 할머니가 걸어 나왔다.
"아, 생각났다. 너무 어려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대 정면으로 보니 생각났어."
그러면서 이현희는 몸살이 난 것처럼 화들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
"옛날 일이 떠올라서 그래."
이현희는 갑자기 말이 없었다. 얼굴이 굳었고 감정의 흐름이 갑자기 끓어져 버린 느낌이 들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의식의 흐름을 현희에게 맞췄다.
종속 관계는 아니지만 내 피를 잊고 있는 사람의 기억을 훔쳐보는 것은 집중만 조금 하면 가능한 일이다.
비명, 몸부림, 열 살 꼬마가 할 수 있는 짓은 그것뿐이다. 우악스럽고 두려운 남자들은 열 살짜리 꼬마가 걸치고 있던 옷을 잡아 뜯는다. 아픔과 절망, 수치감, 두려움의 감정이 날아든다.
세 명의 남자에게 철저히 유린당한 어린 소녀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알몸으로 구겨져 던져져 있다. 그녀는 흘릴 눈물도 메말라 버렸다. 그 순간 한 명의 여인이 뛰어들어 왔다. 그녀는 고함을 치며 남정네들을 베어 넘겼다.
바로 젊은 시절의 송덕수였다. 나는 이현희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송덕수 할머니는 과거에 자신이 구한 소녀가 이현희임을 알지 못했다.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고 그녀가 구한 소녀가 어디 현희뿐이겠는가?
이현희는 그날 구해지고 몇 년이 안되 데빌의 네크로폴리탄의 습격이 있었고 그때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송덕수가 돌보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죽거나 살아남았다.
"내가 괜히 오라고 했나 보네."
현희는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 덕분에 나를 구한 은인을 만나게 되었으니까. 한데 그 여장부가 왜 이런 생활을 하도록 연합은 버려두는 거야?"
"그녀가 원한 삶이야. 연합은 그녀를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지켜 주는 것뿐이야. 아무도 그녀의 삶에 관여하지 않아. 이것은 오롯이 그녀가 원하는 것일 뿐."
"둘이 그렇게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할 것 같으면 여기 왜 찾아 왔냐?"
송덕수 할머니는 눈을 부릅뜨며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아닙니다. 할머니 저 기억 나시죠?"
"음, 음,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헌디?"
연합의 말로는 송덕수 할머니는 옛날 말로 신이 내려서 미쳐버렸다. 신기가 있다고 한다. 미래를 점지하고 과거를 본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죽는 날과 어떻게 죽는지 이야기해 버려 연합의 마인은 송덕수 할머니와 얼굴을 마주치면 기겁하고 도망간다.
송덕수는 나를 이현희와 번갈아 쳐다보더니 눈썹을 찡그렸다.
"와, 궁합이라도 보게? 근데 둘은 안 맞다. 부부의 연이 아닌갑다."
그 말에 이현희는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부 아닌데요. 그냥저냥 엮여 사는 사이일 뿐이에요."
"그러는기 좋을기다. 니 헌테는 저 남자 옆자리는 너무 무거워 감당 못혀."
"알고 있어요. 옆자리 주인은 따로 있으니까. 신경 안 씁니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라고 네 년은 자꾸 저놈한테 붙어 있으마 수명이 단축 될끼다. 살고 싶으면 멀리 떨어져."
"후, 전 그런 거 안 믿거든요. 자꾸 볼일 없는 저한테만 이야기하세요. 혁아 네가 이야기를 좀 꺼내. 이 할머니 자꾸 나만 본다."
나는 송덕수 할머니는 직시하며 말했다.
"기억이 날 겁니다. 이 모습···."
호흡을 집중하고 앉은 채로 네필림으로 변신했다. 단번에 기의 폭풍이 휘몰아쳐 오르며 건물 전체가 후드득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최대한 힘을 조절했으나 자연스럽게 뿜어 나오는 기의 광량은 어떻게 하지 못한다.
"엄마야"
송덕수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녀는 오른손가락으로 내 머리 뿔을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었다.
"너, 너는!"
"이 뿔 기억나시죠? 김주연 송덕수 할머니 친딸도 기억나시고요?"
"이게 무슨 일이고? 이게 무슨 일인 거냐?"
송덕수 할머니는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뒤돌아 엉금엉금 기어가더니 손에 무엇을 들어 올리고 흔들어 댔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작은 방울이다.
그녀는 그것을 두 손으로 잡고 마구 흔들어 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얼거렸다.
'3023, 그녀의 상태를 체크 해줘.'
이 버릇을 고치는데 상당한 애를 먹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정크 보이 시절 언노운을 처음 만나 궁상맞게 혼자 독백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굳어져 버려 언노운과 대화 할 때는 항상 독백했었다. 그게 편하고 몸에 익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못한 오해를 종종 샀었다. 혼자 주절주절하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몇 년 동안 몸에 깃든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언노운의 도움을 받아 강제 교정을 통해 습관을 고쳤다.
이제는 텔레파시로 언노운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신체 리듬이나 다른 부수적인 요소는 깨끗합니다. 약간의 정신적 불안감과 번아웃 증후군이 있을 뿐입니다】
"신혁기 아시죠?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내 말에 그녀는 방울을 흔들던 동작을 멈추더니 말했다.
"과거는 돌이켜서 뭐 하려고? 과거는 과거에 남는 것이 가장 좋은 거야. 그걸 지금 와서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누?"
"저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너는 앞이 안 보여. 내 님이 가진 능력보다 훨씬 높은 대장군이야. 나에게 올 필요도 없는 사람이 왜 나를 찾아 왔누?"
"그때 이야기를 좀 하실 수 있겠습니까? 과거 이야기 들춰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누군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인간 아닌 님이 뭘 알고 싶다는 거냐?"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마시고 따님이 임신한 이야기 해 보면 안 될까요?"
송덕수는 무릎 걸음으로 총총히 기어 오더니 말했다.
"혹시라도 기대하지 마라고. 님은 아니란게 알잖아. 인간일 수가 없지 장군님이야 장군님."
이현희는 얼굴을 찡그렸다.
"정상적인 대화가 될 것 같지 않은데?"
"음, 강제로 그녀를 파헤쳐 봐야 할 것 같네요."
"뭘 어떻게 하려고?"
"심층 다이브란건데 일종의 최면입니다. 그 사람의 과거 기억 속을 살펴보는 겁니다."
"그럼 그게 좋겠네. 이렇게 이야기하다가는 끝이 없겠어."
'3023, 준비해 그녀의 기억으로 들어간다. 잠깐 그녀를 속박 할 테니 심층 다이브를 시행해 줘.'
【알겠습니다 심층 다이브 진행합니다】
나는 오른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신경과 근육을 제어했다.
"아프지 않으니 잠시만 이대로 기다려 주세요."
【상당한 정신적 방어막이 쳐져 있습니다. 이것을 깨면 뇌에 손상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진행해.'
【알겠습니다. 심층 다이브 진행합니다. 오차율 0.1% 미만. 싱크로율 70%까지 상승. 동화 진행률 20%】
생각보다 그녀는 자신의 정신세계에 단단한 울타리를 쳐 놓고 있다.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튼튼한 울타리로 자신을 가둬 두고 있었다. 이걸 깨부수면 그녀는 오히려 마음의 부담을 덜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과감히 그녀의 울타리를 부수고 들어갔다.
비로소 나는 김주연의 얼굴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신혁기의 모습도 기억 속으로 들어왔다. 웃고 떠드는 두 부부의 모습들 송덕수의 기억이 하나둘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마음에 지니고 있던 행복했던 시간과 또 생각하기 싫었던 비참한 기억이 모두 내게로 전염되듯 넘어왔다.
언노운은 그녀의 기억을 분류하여 데이터화 시키고 저장했다. 나는 그녀의 과거 밑바닥까지 기억의 조각들을 모두 건져 냈다.
그녀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억 저장소의 데이터 분류 저장 완료했습니다】
'됐어. 심층 다이브 멈추고 그녀를 풀어 준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 숙연해진 분위기에 마음이 짠했다. 그녀의 기억들을 더듬는 동안 그녀의 희로애락을 간접적으로 맛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밖으로 나오세요. 빛도 들지 않는 곳에서 갇혀 지내는 것 보다. 밝은 곳이 나을 겁니다. 나오고 싶으면 이호점으로 찾아오세요. 그곳 애들에게 말해 놓을 테니···."
이현희와 함께 좁은 골목길을 걸어 나오는데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누님 전 이대로 이모탈 시티로 가렵니다. 만날 사람이 있어요."
"그래? 지나간 과거로의 여행이니 마음 편히 생각하라고."
"저기 잠시 송덕수 할머니 봐 주시겠습니까? 평생 마음을 닫고 살았는데 제가 그 울타리를 깨 버렸으니 한동안 어리둥절 하실 겁니다. 그녀를 설득해서 이호점으로 모시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알았어. 나도 그녀에게 진 빚이 있으니 모른 척 할 수 없지. 여긴 내게 맡겨둬."
"그럼 부탁합니다."
그 길로 이호점을 통해 이모탈 시티로 넘어왔다. 불사의 회람은 내가 나타나자 부산하게 움직였다. 나는 불사의 회람 회장이 아니다. 이모탈 시티의 각성자들은 거의 나를 왕으로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 신으로 추앙하는 무리도 있다.
철저히 통제된 사회에 언론과 모든 주변 환경을 사대 길드가 지배한다. 그들은 한동안 중국이 존재하였는지도 몰랐고 중국과 치열한 전쟁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지내왔다. 사대 길드가 철저히 언론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자신의 삶에 충실할 뿐이다. 이곳에는 선도 있고 당연히 악도 있다. 선악이 공존하는 이 세계는 이렇게 자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불사의 회람 회장직을 물려받은 김상렬은 유철환 비서와 함께 마중 나왔다. 나에게는 특별한 코드가 부여되어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알람이 울린다.
그 소리에 두 사람이 급히 마중 나온 것이다.
"시장님 오셨습니까?"
원래 이모탈 시티에 시장직을 수행하는 공무원이 있었다. 사대길드가 임시로 만든 허수아비 시장이 있긴 했었다. 왕으로 추대되었지만 나는 왕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은 시티에서는 왕이 필요치 않았다. 나는 시장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일입니다. 혼자 조용히 움직일까 하는데···."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시장님이 도착하셨다고 타 길드에서 무슨 일이냐고 전화가 빗발치는군요."
"하하. 개인적인 일이라고 하세요. 아무 일도 아니라고 전하세요. 아, 참 정아에게는 따로 연락해 주시고요. 그리고 회사 정문에 차 한 대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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