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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왕과 나태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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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신니햄참
작품등록일 :
2022.09.14 19:21
최근연재일 :
2022.09.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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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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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독왕의 고민

DUMMY

'나를 위해 행동하리라.'


그것이 독왕이 고민한 결과 내놓은 답이었다. 잠시간 이런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소혜를 위해, 어미 닮은 얼굴이라도 볼 민준을 위해.'


따위의 생각도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변명이라는 걸 시인했다. 침상에 누워 있던 소저 앞에서 예빈을 부인이라 퍼뜩 말하지 못하고 딸아이의 엄마라고 둘러댄 심리와 맥락이 통했다. 그땐 괜히 민망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자식을 둘러대 누구 엄마 따위로 둘러 불렀던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소혜와 민준을 위한다는 것은 또다른 형태로 자식을 변명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불과하다 느껴진 것이다. 가끔 보이는 명문 세가에서 자식을 쥐잡듯 잡는 부모가 떠올랐다.


그들은 다 너를 위한 일이라며 자식에게 공부를, 무공 수련을 한계까지 몰아 붙였다. 그들의 자식이 강압에 괴로워 하는 것은 그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를 위한 일이라는 변명을 내세워 어떤 학사의 아비, 어미, 어떤 고수의 어미, 아비로 불리우는 것을 위해 자식을 더 예쁜, 더 멋진 장식품으로 깎는 것에 심취했을 뿐이다.


당세혁은 독왕, 천하에 무공으로 견줄 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독존하는 존재였다. 당세혁은 장식품으로 자신의 치부를 가릴 필요가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랬기에 자식을 내세워 변명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그의 자존감이 당소혜와 당민준의 도구화를 피하게 했다. 녀석들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사교死敎의 등장은 무림에게 재앙이었고, 당가에게도 큰 위협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당가의 가장 큰 성장 동력원 이었다. 용독술을 몇몇 개량하고, 되살아난 시체들에게 잘 먹히는 독들을 개발해내자 사교 세력을 무력화 시키는 큰 역할을 해냈다. 여전히 비 무림인들에겐 독을 사용하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사정을 아는 무림인들에겐 무림의 선봉이었고 영웅이었다.


사교와의 전쟁에서 독왕은 항상 발벗고 나섰다. 먼길 마다하지 않고 싸움이 있을 곳에 가 치열하게 싸웠다. 이를 본 무림인들은 독왕에게 무림의 안녕을 위하는 협객이라 칭송했다. 이타심이 뛰어난 선인이라 띄워줬다. 기분은 좋았다, 기분은.


하지만 독왕은 사교 무리와의 전쟁에서 얻게 되는 시독, 마비독, 수면독, 고독부터 온갖 종류의 독과 독 부산물들을 쫓았을 뿐이다. 그들을 소탕하고 나면 처음보는 약물들과 독물들이 널려 있었고, 무림인들은 그것들을 쳐다 보기도 힘들어 했다. 그들의 사형제와 사부, 제자를 손수 베게 만든 원흉들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독왕과 당가는 자신들이 나서서 폐기하겠다며, 사교에 더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연구하겠다며 독물들을 모아갔다. 남들의 눈엔 돈도 안받고 쓰레기들을 치워주는 자선업자 였지만, 독왕과 당가엔 돈도 안주고 보약과 영약을 줏어가는 기회였다. 독왕과 당가가 이기적으로 행동했을 때, 세상은 이타적인 행동이라며 칭찬했다.


그런 칭찬이 이어지자 당가 스스로 꽤나 선행을 하기도 했다. 남들이 좋은 사람이다, 이타적인 사람이다 해주니 스스로 그 평가에 더 부합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독물 수집 뿐만 아니라 폐허 복구와 지역 안정을 위한 자선도 꽤 했다.


아까의 과일 상점 주인이 큰 돈을 쉽게 받아 갔으니 거스름이라도 조금 챙겨 주려는 심리와 같았을까? 그들은 손쉽게 독물을 챙겨 이래도 되나 싶어 자선인 척 대가를 지불해 마음의 짐을 덜어 놓으려 했던 것일까? 독왕은 별 생각이 다 든다며 피식 웃기도 했다.


그런 사건들이 있고 나니 독왕은 요즈음 스스로가 착한 사람인가보다 하며 지냈다. 하지만 지금 모체 고독이 있는 작은 병을 들고, 자고를 뽑으려 먹이 까지 챙겨 온 자신은 어떠한가.


독왕은 그제서야 자신의 과거 선행 또한 그것이 자신의 이기심과 충돌이 크게 일어 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행동 이었다는 걸 인정했다. 존경 받고 싶어 하는 욕구, 선업으로 명성이 드높아 질 때의 쾌감. 위선 조차도 사라지면 세상은 훨씬 더 가혹해 질 것이기에 감히 누가 이를 비난할 수 있겠냐만은, 독왕은 상황이 내몰리자 자신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부인이 보고싶다.'


라는 감정을 솔직히 인정했다. 예빈을 닮은 그녀를 오래 곁에 두어 그녀가 떠올리기 힘들어하는 '그곳'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필요했지만.


'예빈의 닮은 얼굴이라도 두고 보고 싶다.'


라는 꽤나 기형적인 욕망이 자신에게 존재함을 인정했다. 예빈이 있을 때 더 잘 해줄껄. 병신새끼. 독왕은 자조하며 눈에서 암녹색 안광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독공을 끌어 올려 고독을 다룰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내 독왕은 품속에 과일을 꺼내 천천히 씹었다. 모체 고독이 소화하기 쉽고 편하게, 그리고 자신의 기운이 조금 베여 들어 뽑혀낸 자고가 자신의 명령을 잘 듣도록 내기를 섞는다.


그의 눈에서 흘러 나오는 암녹색 안광이 음울했다. 눈물이라도 되는것처럼.


===


"앗, 세혁님! 오셨어요."


여자 후지기수가 식탁에 앉아 그를 반겼다. 청월 객잔주가 신경을 써줬는지 그들이 제공받은 식당은 정갈하면 서도 고급스러웠다. 독왕은 식탁에 앉았다.


"소저, 우리끼리 있는 곳에서 독왕님께 세혁님이라 부르는 것은 무례가 될 수 있소."


남자 후지기수가 여자 후지기수에게 말했다. 그의 말은 타당했다. 비무림인이 많은 곳에서야 괜한 위화감을 형성하지 않기 위해 별호를 부르지 않는게 괜찮았던 거지, 이렇게 일행들 끼리 있을 때 독왕을 세혁님 처럼 친근하게 부르는 것은 누군가에겐 불쾌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독왕을 존경하는 당가의 고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녀에게 눈총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네..."


그녀는 수긍했다. 하지만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녀는 평소에 독왕을 존경했다. 사교를 상대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임무의 최전선에서 무림을 구한 영웅, 현경에 이른 고수, 그녀의 문파 또한 독왕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 그런 그가 임무뒤 맛있는 과일까지 사주지 않았던가. 그녀가 방에가 잠깐 먹었던 과일은 달콤했다.


친한척을 해보려고 했던 것이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저지당한 기분이 들자 풀이 죽었다.


당세혁은 말했다.


"이름을 그렇게 친근하게 불린 것은 오래간만인데."


공동파의 고수, 후지기수 넷은 모두 약간 긴장했다. 독왕은 무림에서 존경받는 고수였지만 독공의 고수답게 때로 손속이 잔인하다는 말도 떠올랐다. 기분이 좋다는 것일까, 나쁘다는 것일까, 이름을 불렀던 것이 실례였나 마음을 졸였다.


"뭐, 함께 임무를 수행한 동료끼리 친근한 기분이 들어서 좋군요."


당세혁은 웃었다. 이름을 불렀던 여자 후지기수는 기분이 좋아져 '세혁님, 이것좀 드셔 보세요' 하고 과일을 까기 시작한다.

남자 후지기수는 '세...세...센 독왕님!'하고 차마 이름을 부를 수 없었는지 멍청한 소리나 내고 있다.


평소의 독왕이라면 이름을 부르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을 테다. 그가 적당한 무표정을 하고 자기 할일이나 열심히 하면 그의 주변인은 알아서 사렸다. 아무래도 독공의 고수는 동료라도 경계를 사는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독왕에겐 술자리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이 자리엔 그의 목표가 있었기에.


"독왕께서는 배려심이 깊으신 분 같소."


목표, 아니 공동파의 고수가 독왕을 칭찬하고 나섰다. 독왕은 마음이 쓰렸다. 그냥 개새끼면 나도 편하게 개새끼 할텐데. 왜 너는 괜히 고고하느냐 싶다.


"강호가 답답하다 하여 내 마음까지 답답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곳에서 가슴 한켠이 가장 답답한 독왕은 그렇게 거짓을 내뱉어 스스로를 기만해본다.


"독왕 같은 분께서 계시는데 어찌 강호가 답답하기만 하겠습니까."


그냥 개새끼 하라고 개새끼야!


라고 독왕은 소리치고 싶었다. 독왕은 그저 슬쩍 웃기만 할 뿐이다.


이내 객잔 주인이 음식과 술을 내온다. 독왕 일행이 사온 과일, 당과중 일부를 정성스레 담아 낸 것도 있다. 나머진 꽤 정성스레 담아온 각종 선식과 채소, 소면등이 준비되어 있다. 아무래도 객잔 주인은 최대한 공동파의 고수에게 맞춘 식사를 내온 듯 하다.


독왕은 약간은 눈쌀을 찌푸린다. 공동파의 고수도 약간은 찌푸린다. 공동파의 고수가 객잔 주인에게 말한다.


"음, 자네, 내 도문의 제자로서 육식을 멀리해야 하는 것이 맞으나, 일행을 위해서는 조금 필요하지 않겠나? 적당히 준비해 주시게."


객잔 주인은 아 역시 배려심이 넘치시는분, 따위의 말을 하며 물러 간다. 공동파의 고수는 턱을 쓰다듬으며 흠흠 거린다. 이따가 저 자식도 고기를 조금은 입에 댈 것 같다.


사교의 영향 때문에 도문에서 제자들이 문파 밖으로 나가 술을 조금 하고 오는 것은 벌하지 않았는데, 그 술자리에서 고기 몇점 집어 먹고 술김에 그랬다는 변명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는게 요즘 도문 유행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독왕은 피식 웃었다. 재밌는 말코다. 나한테도 개새끼면 더 좋을텐데.


객잔주가 금새 고기 요리를 주고 간다. 공동파 고수는 객잔 주인에게 일행끼리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다른 사람을 들이지 말아 달라 한다. 사정을 모르는 비무림인에게 도사가 술마시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나보다. 일행은 천천히 식사를 한다. 모두 독왕을 주목하고 있다. 이 자리는 독왕이 타주는 술을 경험하는 자리다.


독왕은 마련되어 있는 소흥주를 열었다. 주향이 괜찮다. 귀한 술을 자주 접했던 그에게도 흠이 잡히지 않는 걸 보니 객잔 주인이 정말 신경 써준 듯 하다.


독왕이 진기를 끌어 올린다. 암녹색 연무가 옅게 방 전체를 지배해 나간다. 이 정도로 끌어 올릴 필욘 없지만 일종의 시각적 장치다. 분위기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공동파 고수와 후지기수들은 올게 왔구나 싶어 침을 꼴깍 삼킨다.


"무슨 술을 원하는가?"


독왕이 물었다. 그리고 그는 미소지었다.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술, 죽음과 같은 잠을 푹-하고 자게 해주는 술, 미쳐버릴 것 같은 흥을 깨워 주는 술, 신비로운 영감을 가져다 주는 술."


독왕은 잠깐 멈칫 하더니 다시 말을 한다.


"아, 혹시 그쪽 용과 꽃들 중 사귀는 관계가 있던가?"


남녀 후지기수들을 쳐다보며 애인관계가 있냐며 독왕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랑의 묘약도 만들어 줄 수 있다네?"


그렇게 술자리는 독기로 달구어져 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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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독왕의 고민 22.09.20 17 0 11쪽
6 6화 과일을 산 독왕 22.09.19 29 0 13쪽
5 5화 독왕의 고독 22.09.18 35 0 12쪽
4 4화 <나태>의 낚시 22.09.17 34 0 12쪽
3 3화 예빈 22.09.16 38 1 11쪽
2 2화 이리 오너라 22.09.15 61 0 11쪽
1 1화 독왕은 나태의 악마에게 찍혔다. 22.09.14 73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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