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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돌선생 님의 서재입니다.

작은 신의 아이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완결

장돌선생
작품등록일 :
2018.06.04 01:15
최근연재일 :
2018.11.28 10:51
연재수 :
8 회
조회수 :
483
추천수 :
6
글자수 :
32,370

작성
18.06.06 00:40
조회
87
추천
1
글자
11쪽

일상(3)

.




DUMMY

제법 비가 쏟아지는 오후의 어느 골목, 즐비한 쓰레기통 사이에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더러운 누더기를 뒤집어 쓴 채 굵은 빗방울을 작은 어깨로 받아내고 있었다. 골목 밖은 평범한 일상, 빗소리에 섞여 첨벙대는 발소리와 서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 밥을 못 먹었는지 앙상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누더기 차림의 아이에게 다가간다.


야옹-


소리를 낼 힘조차 안 남아 있을 법한 몰골이지만, 자신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며 눈을 마주치려는 새끼고양이의 모습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이 보였다.


야옹-


"당장에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것이 어찌 계속 내 눈에 들려 하는 것이냐. 나에게 다가와도 너에게 줄 빵조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옆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약간 높은 톤이지만 들으면 따스하다 느낄 수 있는 목소리로 말려 보았지만, 새끼고양이는 누더기를 뒤집어쓴 아이의 말은 가볍게 무시하며 더욱 파고들었다. 힘겹게 고개를 쳐들고 누더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아름답지만, 빛을 잃어버린 두 눈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혹시, 너와 같은 처지인 나를 위로 해주는 것이냐."


자신을 바라보던 새끼고양이가 이번엔 누더기의 안쪽을 파고들며 이 골목에서 가장 따뜻한 곳에 누웠다. 더는 힘이 없는지 줄곧 바라보았던 눈을 보지 못한 채 가쁜 숨만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제법 비가 쏟아지는 오후의 어느 골목,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이 골목에 따스한 빛이 하나둘 모여들어 이내 골목 한 켠을 감싸 안았다.


"조금은 따뜻해졌느냐."





마지막 종소리가 울리자 반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짐을 챙겨 뒷문과 앞문에 설치된 손바닥 크기의 화면에 흰 카드, '기프트'를 가져다 대는 것으로 문을 빠져나가거나, 자기들 끼리 모여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아 뭐야 밖에 비와."


"진짜? 나 우산 안가져 왔는데."


"나는 그럴 줄 알고 챙겨왔지롱."


"설마 일기예보도 챙겨보는 거야? 이 몸이 그대를 잘못보았구나."


"아-니, 내 기프트, 날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거든. 내 거로 같이 쓰고 가자."


"이런,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평생 이 은혜 잊지 않겠사옵니다."


"왜이래."


같이 있던 여학생들이 사극 말투를 하는 여학생을 보고는 웃긴지 깔깔 거리며 문을 나선다.


"오늘 배틀 콜로세움 예선전인거 안잊어버렸지? 이 형님이 아빠한테 졸라서 힘들게 구한 표라고."


"당연하지! 꼭 보러간다. 빨리 짐 챙겨서 가자."


너나 할 거 없이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교실 문을 빠져 나간다.


"오늘 남자 당번 누구야! 와서 보드 정리하고 교탁 정리해-!"


검은 뿔테안경을 쓴 여학생이 소리치자 뒷문에 있던 남학생 무리에서 당번으로는 보이는 남학생이 귀찮다는 듯 투덜거리며 걸어 나왔다.


친구들이 기다릴 거라는 생각에 보드 앞에 서서 빠르게 오늘 수업한 자료들을 화면에 보이는 파일 안에 집어넣고 있었다.


"야! 너희 같이 가 금방 끝난다고, 참을성 제로냐?"


잠깐 뒤돌아봤을때 그냥 가려던 무리를 보자 자료를 휙 휙 던지며 무리의 남학생들에게 짜증을 섞어 부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학생 무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교모드를 유지했다. 오히려 '어쩔 수 없지. 화이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아오! 저놈들 진짜!"


마음이 급해진 당번 남학생은 재빠르게 화면을 이리저리 넘겨가며 정리하고 있었다. 학생이 반쯤 빠져나갔을 때 뿔테안경 여학생이 한쪽 끝이 막혀있는 긴 봉 형태의 청소기를 바닥에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자 살포시 얹혀있던 먼지부터 돌돌 뭉쳐 손으로도 잡히는 먼지까지 청소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툭.


반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한참을 바닥 먼지를 먹던 청소기 끝에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사람의 발이었다. 시선을 쭉 위로 올려보니 발의 주인은 기프트조차 하사받지 못한 낙오자. 한지호였다.


"미안, 지나가려다... 방해해서 미안해."


"괜찮아, 제대로 안 본 내가 잘못한 거지. 신발 안 더러워졌지?"


"응? 아, 괜찮아. 그럼 이만 먼저 가볼게."


의외의 사과에 지호는 약간 놀랐다. 하지만 금방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뒷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던 그 때, 지호를 제치고 한 남학생이 먼저 달려나가다 문 앞에 급히 멈춰 섰다.


"진짜 미안! 애들이랑 배틀 콜로세움 예선전 보기로 했거든, 오늘만 봐주라 미안해 김진희-!"


사과의 의미로 한손으로는 사과의 제스처를 취하며 한 쪽 눈을 감고 있던 것은 당번 남학생이었다. 기프트를 화면에 대고는 빠르게 빠져나가는 남학생의 등 뒤로 분노로 가득 찬 진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뭐 하자는 거야. 이래서 항상 남자들이 문제야. 자기 할 일 항상 미루고 수업시간에 장난만 치려 하고, 잠이나 퍼질러 자고, 자기들하고 싶은대로 다해버려! 정말 민폐 덩어리야 남자는!!"


잔뜩 화난 얼굴로 얼굴이 붉어진 진희가 남학생이 나간 문을 보며 화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아차차- 야 한지호! 평소에 쓸모없는 너를 내가 오늘 특별히 쓸모 있게 만들어줄게, 나 대신 김진희랑 당번 좀 해라 기프트도 없는 쓰레기를 오늘 특별히 재활용해주는 거니까 그냥 가지 말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도와줘라. 그럼 난 진짜 간다."


남학생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돌아갔고, 지호는 잠시 굳어있었다.


지호가 굳어 있던 건 이름도 잘 모르는 녀석에게 무시당하고 책임 전가 당한 것 때문이 아니라 남아있는 여학생과 어떻게 청소를 해야 하나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것이 왜 굳어있어야 할 이유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호는 다르다 매번 당번인 날에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혼자 청소해왔으며 무시만 당하던 인생에 여자라고는 친누나 같은 유리 누나 밖에 없다.


유리 누나는 역시 여자에서 빼자고 다시 생각했다.


아무튼, 그런 것이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는 편이 아닌 지호는 잠깐의 대화를 통해 슬쩍 보았던 김진희라는 여학생이 이쁘다는 사실에 굳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남자 싫어!' 라고 외치는 여학생과 단둘이 청소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진짜 어이가 없다."


뒤에서 들려오는 진희의 목소리에 어깨가 움찔거리는 지호였다.


지호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왜 떨어야 하지? 떨 필요 없어. 항상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거지.' 마음을 다잡고는 뒤로 돌아 진희를 향해서 말하였다.


"그냥 나 혼자할게."


완벽해. 지금까지 아무도 남아 있던적 없었다.


드디어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던 지호였다. 바로 청소를 시작하려고 메고 있던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뭐래... 왜, 너가 혼자해. 바보 아니야?"


멈칫하는 지호는 얼빠진 표정으로 천천히 진희를 바라보았다.


"같이 해. 나는 원래 당번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거야. 그리고 너가 도와주는 처지인데 왜 너 혼자 하냐. 같이해야 맞는 거지."


들고 있던 청소기를 다시 이리저리 휘두르며 청소하는 진희의 모습을 지호는 여전히 얼빠진 표정으로 처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선을 느낀 진희가 가볍게 째려보자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보드의 나머지 정리를 시작했다.


한창 청소를 하고 보드 정리가 끝난 지호는 여전히 청소 중이던 진희를 보고 있었다. 지금 지호에게는 확인이 필요했다. 청소 중이던 진희의 옆으로 다가갔다.


"왜? 그쪽은 다해서 도와주려고 왔구나? 괜찮아 나도 곧 끝날 것 같아."


지호의 인기척을 느낀 진희가 말하였다.


"아니 도와주러 온 거 아니고 궁금한게 있어서 물어보려고 왔어."


"아- 그래, 뭐가 궁금한데?"


자신의 예상이 빗나간 진희는 약간 창피한 듯, 청소기를 휘두르며 청소하는 척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다른 녀석들은 나랑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너는 내가 싫지 않아? 이상한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휘두르던 손을 멈추고는 청소기를 제자리에 놓고 지호의 앞에섰다. 그리고 허리를 똑바로 새운 채 손을 허리에 대고, 지호의 궁금증 가득한 눈을 보며 진희가 대답하였다.


"나는 너가 기프트가 있건 없건 상관없어 딱히 그런 걸 혐오스러워 하지 않고. 그런데 아마 다른 녀석들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물론 너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내 기준으로는 오히려 너희가 더 이상해."


"그 이유는?"


지호는 집착하듯 다시 질문했다.


"얼굴도 모르는 신한테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도 없는 능력을 받고 뭐라도 되는 것처럼 평가질이나 하는 그 녀석들이나, 그깟 능력 하나 받지 못했다고 그런 녀석들한테 무시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삶을 사는 너나, 나한테는 다 똑같이 한심해 보이거든!"


한 손을 치켜들고는 지호를 가르키며 한 층 화가난 목소리로 진희가 말하였다.


잠시 멍하니 진희를 바라보던 지호는 웃음이 터졌다. 포즈까지 당당한 그녀에게 한 방 먹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진희는 영문도 모른 채 지호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한지호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왠지 너랑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 같아."


지호는 찔끔 흘린 눈물을 닦고 진희에게 정식으로 인사하였다.


"좋아. 그런 태도 싫어하진 않아. 내 이름은 김진희야, 같은 반 되고 3개월 만에 인사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걸로 조금은 아는 채 할 수 있겠지. 청소도 끝났겠다 난 먼저 갈게. 내일 봐."


진희는 새침하게 인사를 받아주고는 작은 가방을 챙겨 먼저 나갔다. 수줍은 미소를 띄운 채 나갔지만 지호는 그 미소까지는 보지 못하였다.


"나도 같은 녀석들인 건가. 푸하-!"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어본 지호였다.


지호마저 나가자, 교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침묵으로 뒤덮였다.




비가 제법 쏟아지는 오후, 누더기 차림의 꼬마 아이는 퇴근하는 사람, 하교하는 학생들 틈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하염없이 걷고 있다.


키가 작아서인가. 아니면 다들 하늘만 보고 걷는 것인가. 지금 시대에 이런 차림의 아이를 보고도 무시하는 광경이 말도 안 되지만, 익숙하게 유유히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다. 누더기 차림의 꼬마 아이에게는 이것이 일상이다.


잠시 멈춰서서 구멍 뚫린 하늘을 바라본다. 굵은 빗방울이 고운 얼굴에 떨어지니 따갑지만, 기분은 좋았다. 눈을 감고 얼굴의 감촉을 느끼던 것도 잠시, 얼굴에 떨어지던 빗방울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상함을 느끼고 아름다운 눈을 살포시 뜬 누더기 차림의 아이 앞에 한 소년이 우산을 든 채 서 있었다.


"꼬마야 그렇게 비 다 맞고 있으면 감기 걸린다. 오늘은 오빠가 기분 좋으니까 특별히 이 우산 줄게. 비 맞지 말고 가렴."


우산을 쥐여 준채 가방을 우산 삼아 뛰어가는 남학생에게 시선을 때지 못한 아이의 눈에는 에메랄드 빛이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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