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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법가 님의 서재입니다.

어쩌다 암살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퓨전

두끼만
작품등록일 :
2024.01.20 12:48
최근연재일 :
2024.04.04 19:1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86
추천수 :
3
글자수 :
144,568

작성
24.03.12 19:40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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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 죽여야 산다

DUMMY


“뭔 놈의 날씨가 이렇게 좋냐? 사람 죽이기 딱 좋게!”


왁자지껄하던 시장 사람들의 소리가 뚝 그쳤다.

사람 죽이겠다는 천산비의 목소리가 하도 크고 우렁차서 좌판의 사과를 훔쳐 달아나던 아이까지 놀라서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따, 이 동네는 농담도 못 하겠네 하하하하”


천산비가 웃었지만 아무도 따라 웃지 않는다.

물고기 장사꾼이 ‘어떤 미친놈이야!’라고 소리치다 천산비와 눈과 마주치자 식칼을 떨어뜨렸다.

메기 같은 큰 입으로 천산비가 웃었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내가 이래서 시장을 좋아한다니까. 안 그냐?”


피에 젖은 삐에로가 히죽 웃으며 말한다.

당파파의 지시로 정윤수의 저택인 연화장까지 천산비와 함께 간다.

천산비 또한 내게 관심이 아주 많다.

내가 천산마를 죽였다는 걸 알고도 이렇게 히죽 웃을까?


“어쭈 우미인이 내 말을 씹네. 야 우미인, 너 내 손에 죽어 볼래?”

“하하, 미안합니다. 애새끼가 사과 훔쳐서 도망치는데 다람쥐가 따로 없네요. 저도 시장 좋아합니다. 저런 다람쥐를 어디 가서 보겠습니까”

“다람쥐 쳐다보다가 모가지 떨어지니까 조심해라”

“원래 그렇게 살인을 즐기십니까?”

“아주 좋은 질문이야. 좋아, 아주 맘에 들어”


천산비가 수염을 꼬며 미소를 짓는다.

멋 내려고 콧수염을 양쪽으로 올린 줄 알았더니 버릇이다.


“난 원래 살인을 안 좋아해. 그런데도 내가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게 뭐죠?”

“꼭 한 놈을 죽이고 싶었거든. 근데 그 놈을 죽일 수가 없어. 그래서 소 대신 닭이라고 다른 놈들을 죽이는 거야”

“소가 무공이 엄청 센가 보죠”

“나에 비하면 좆도 아냐.”

“근데 왜?”

“소가 형이거든. 씨파 새끼가 형이라서 차마 못 죽인 거야.”

“왜 형을 죽이려고 하죠?”

“그 새끼가 내 손가락을 이렇게 만들었거든”


천산비가 왼손을 들어 보여주는데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없다.

칼에 잘렸는지 날카롭게 잘려 있다.


“지 맘에 안 든다고 동생 손가락을 자르는 놈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냐?”

“······”

“내가 우리 어머니만 아녔으면 형 새끼 진작 죽였다. 근데 말야, 우리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이제 슬슬 형 새끼 목을 따려고 하는데 어떤 놈이 새치기를 했단 말이지.”

“형님이 돌아가셨나요?”


형을 죽인 살인범이 옆에 있는 걸 알면 놀랄 것이다.

나도 참 뻔뻔하다. 내가 죽이고 돌아가셨냐고 뻔뻔하게 묻는다.


“돌아간 건 아니고 뒤진 거지. 내가 이십 년을 기다렸는데 어떤 놈이 새치기했다니까. 새치기한 놈을 어떻게 해야겠냐?”

“모르겠는데요”


흐흐

천산비가 장터를 가로질러 걸어가다 걸음을 멈추고 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쿵 심장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긴 뭘 몰라 새꺄, 죽여야지.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죽여야지. 내가 형 죽인 새끼 산 채로 잡아서 간을 오도독 씹어 먹을 거야”

“하하 생식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난 고기 안 좋아해 새꺄. 하지만 그 새끼는 내가 꼭 씹어 먹을 거야”


갑자기 간이 아파온다.

내 간을 씹어먹겠다는 놈이 옆에 있으니 아플 만도 하다.


“한데 말야 너 살수냐?”


갑자기 푹 찌르는 천산비의 말에 눈을 깜박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살수가 뭔지는 알지?”

“돈 받고 사람 죽이는 인간 말종들 아닌가요?”

“알고 있는 놈이 왜 대답을 못 해?”

“하도 엉뚱한 질문이라서요”

“너와 나 단둘이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봐. 너 정 대감 죽이러 가는 거지?”

“예?”


놀람을 감추고 최대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는데 통할지 모르겠다.

천산비가 다 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쳐다보는데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아니면 말고”


천산비가 키득거리며 걸어간다.

사람들이 미친놈인 것 알아보고 바닷물 갈라지듯 피한다.

정신 줄 놓고 있으면 더 의심할 것 같아서 후다닥 따라갔다.


장터를 벗어나 빗물 한 방울 새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게 포석이 깔린 도로를 걸어갔다.

천산비가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저 인간이 진짜로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날씨 좋지?”

“예?”

“할망구 말 들으니까 네가 공력이 없다고 하던데 정 대감은 어떻게 죽일 거지?”


심장이 이번엔 돌바닥에 쿵 떨어졌다.

이 새끼 다 알고 날 놀리는 건가?

어디서 비밀이 새나갔지?

혹시 조필이 밀고한 것 아닌가.


“정 대감을 죽이려면 방법이 있어야 할 것 아냐?”

“아까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저를 의심하는데 저 그만 갈게요. 내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의심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 정 대감님댁 안 가도 밥 먹고 살아요. 정 대감님이 원해서 가는 거지 저는 갈 맘 없어요”

“진짜? 그럼 정 대감을 어떻게 죽인 건데? 정 대감은 연화장에만 있을 텐데 죽일 방법이 없잖아. 안 그래?”


정 대감에게 받은 돈이 들어있는 전낭을 풀어 내밀었다. .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정 대감 댁에 갈 마음이 없어졌다.

천산비가 이렇게 의심하는데 성공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길 벗어나면 도망칠 생각이다.

탈명각의 사신대가 지옥 끝까지 좇는다는데 세상 어딘 가에 숨을 곳이 있을 것이다. 내장을 녹이는 무형독이 문제인데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다. 그냥 운에 맡기자.


“농담이야 농담! 놀이패 출신이 농담도 못 알아듣냐?”

“농담에 뼈가 들어있으니까 문제죠”

“니가 뭐라고 내가 뼈를 집어넣냐?”

“아무것도 아닌 저를 자꾸만 자객 취급하니까 그렇죠”

“아무것도 아닌 인간 취급해줄 테니까 돈 집어넣어라. 참고로 내 앞에 뭐 내미는 놈을 난 못 참는다. 칼이든, 동전이든 내미는 놈들 손 모가지 자르는데 넌 특별히 참는다. 내 인내심 시험하지 말고 집어넣어라”


손모가지 잘리고 싶지 않아 전낭을 다시 허리에 찼다.

그 뒤로 콧노래를 부르며 힐끔, 힐끔 날 쳐다보는데 아주 미치겠다.

천산마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내 키의 두 배는 될 듯한 대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그토록 커다란 대문이 전기도 없는 시대에 자동문처럼 열린 것이다.

연화장 현판이 걸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보니까 대문 양쪽 고리를 두 명의 하인이 붙잡고 있다. 정윤수는 얼마나 부자이기에 대문을 지키는 하인이 두 명이나 될까?


“수고하셨습니다.”

손에 창을 든 무사들이 천산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문 하나를 하인 둘에 무사 셋이 지킨다. 이 정도면 청와대 경비 수준이다.


“우와!”


정말 순수한 감탄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끝없이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멀리 성채 같은 저택들이 보인다.

푸른 잔디밭 사이로 난 돌길을 걷는데 달콤한 꽃 향기가 사방에서 풍겼다. 꽃을 찾아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호수에 드리운 느티나무 가지는 바람에 흔들렸다. 재벌가 저택은 안 가봤지만 아마 여기와 비슷할 것이다.


아치 형 돌다리가 호수와 섬을 연결하고 있다. 돌다리 중간에 서서 수면을 내려다보자 나와 꼭 닮은 남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뭐해?” 천산비가 돌아보며 말한다.

“너무 멋있어서 구경 중이에요”

“그래 많이 봐라, 언제 다시 보겠냐”


내 인생이 마치 오늘 끝날 것처럼 천산비가 말한다.

기막힌 풍경 때문에 들떴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참 내 운명도 기구하다.

떡 먹다 죽고 깨어보니 저승이 아니라 ‘암살군주’라는 무협지속 세상이다.

초일류 고수는 아니더라도 세가의 막둥이 정도는 되어야 편안한 삶을 살텐데 살수에게 빙의했다. 누군가를 죽여여만 살 수 있는 운명인 것이다.


씨파, 내가 어떻게든 살아돌아갈 것이다.

현실로 돌아가봤자 삼류 단역 배우지만 기대수명이 하루도 안 되는 여기보단 백배는 낫다.

‘암살군주’ 책을 끝까지 읽은 게 다행이다. 책 끝부분에 마영이 암살군주의 탈명검을 뺏어 이십일 세기 사회로 시간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탈명검이 일종의 타임머신인 것이다. 마영보다 내가 더 빨리 탈명검을 뺏어 이십일 세기로 돌아올 것이다.


“너는 어떤 삶을 살았지?”


윽, 생각에 푹 빠져 있는데 천산비가 묻는다. 뭐라고 둘러대야 하지?


“장터 돌아다니며 살았어요”

“장터를 돌아다녔어도 부모는 있을 거 아냐?”

“부모님은 몰라요. 워낙 어렸을 때 시장통에 버려져서 기억에 없어요. 기억나는 건 동냥질한 것과 놀이패 따라다닌게 전부에요”

“험하게 자랐다는 놈치고 지나치게 곱단 말이지”


천산비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이젠 두근거리지도 않는다.

하도 날 의심하니까 면역이 됐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도 들었다.


“시궁창에 가서 한 바퀴 뒹굴고 올까요?”

“그럼 안 되지, 정 대감이 싫어할 테니까 말야. 정 대감은 너처럼 깨끗하고 예쁘게 생긴 애를 좋아하니까. ”


천산비를 따라 걷는데 보도 옆에 늘어선 정원석이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다.

어떤 정원석은 물결치는 모양이고 어떤 정원석은 뾰족한 산 모양이다. 정원석 하나만 팔아도 백 만원은 받을 것 같다. 정원석 사이엔 빨강, 하양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시선을 끌었다.


무지개처럼 생긴 돌다리를 건너가다 더는 못 참고 저택 안을 흐르는 수로를 내려봤다.

생활 하수가 유입돼서 그런지 탁하다.

노랗고 빨간 잉어 떼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물 속에 뭐 있냐?”


돌다리를 넘을 때마다 내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천산비가 못 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잉어가 있네요”

“살수는 없고?”

“그건 모르겠네요”

“흐흐, 잘 봐라 있을지 모르니까”


장천이 벌써 왔을 리는 없고 다른 암살조가 왔나?

탁한 물속을 들여다봤지만 보일 리 만무하다.

백날 떠들어봐라 천산비야! 연극 짬밥이 있지, 내가 들킬 것 같냐.


“가자!”


천산비를 따라가는데 불과 삼사 십 보도 못 걸어 순찰 무사들과 마주치곤 했다.

어떻게 된 게 일하는 사람들보다 칼 찬 무사들이 더 많다.

장원이 아니라 병영처럼 느껴진다. 정윤수를 죽이더라도 이 많은 무사들을 뚫고 탈출하긴 불가능할 것 같다. 어쩌자고 나는 이 짓을 벌였단 말인가? 또 다시 후회가 밀려온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이건 뭐 후회의 연속이다. 조금 전 현실로 돌아가겠다는 굳은 결심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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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죽여야 산다 24.03.12 19 0 11쪽
29 1. 죽여야 산다 24.03.11 19 0 11쪽
28 12. 암살의 서막 24.03.07 15 0 11쪽
27 11. 암살의 서막 24.03.06 18 0 11쪽
26 10. 암살의 서막 24.03.05 18 0 10쪽
25 9. 암살의 서막 24.03.04 19 0 9쪽
24 8. 암살의 서막 24.02.29 20 0 11쪽
23 7. 암살의 서막 24.02.28 20 0 10쪽
22 6. 암살의 서막 24.02.26 19 0 9쪽
21 5. 암살의 서막 24.02.23 23 0 9쪽
20 4. 암살의 서막 24.02.22 20 0 8쪽
19 3. 암살의 서막 24.02.20 21 0 11쪽
18 2. 암살의 서막 24.02.19 25 0 10쪽
17 1. 암살의 서막 24.02.16 27 0 11쪽
16 2. 당주 암살 24.02.14 25 0 10쪽
15 1. 당주 암살 24.02.12 26 0 9쪽
14 3.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8 33 0 11쪽
13 2.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7 30 0 9쪽
12 1.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6 29 0 10쪽
11 3.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5 26 0 12쪽
10 2.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1 30 0 10쪽
9 1.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1.31 29 0 11쪽
8 4. 보름 안에 살인을 24.01.30 29 0 9쪽
7 3.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9 30 0 10쪽
6 2.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6 40 0 11쪽
5 1.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5 34 0 10쪽
4 4. 어쩌다 무림에 24.01.24 35 0 10쪽
3 3. 어쩌다 무림에 +1 24.01.23 4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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