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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법가 님의 서재입니다.

어쩌다 암살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퓨전

두끼만
작품등록일 :
2024.01.20 12:48
최근연재일 :
2024.04.04 19:1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88
추천수 :
3
글자수 :
144,568

작성
24.02.05 19:15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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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DUMMY

시체를 통나무에 매달아 사람들 앞에 전시했다

역사책에나 나오는 장면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봤다.

살 떨리는 충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매달린 시체 앞으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내는 특이하게 콧수염 끝이 위로 올라가 있다. 수염이 특이하고, 볼이 빨간 데다 위아래 빨간 옷을 입고 있어 내 눈엔 어릿광대처럼 보였다.

빨간 옷의 어릿광대를 보고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천산비입니다. 아마 제 이름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광대의 말을 듣고 군중들이 웅성거린다.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치게 한다는 사도맹의 천산비다.”

“사도맹은 남경에 있는 걸로 아는데 천산비가 항주엔 왜 왔지?”

“형이 죽어서 왔나 봐”

“형이 누군데?”

“천산마잖아. 이번에 목 잘린 채 발견된 시체가 천산마야. 형의 머리를 찾으려고 왔나 봐.”


군중들 사이에서 천산마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천산비가 날 알아볼 것 같아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가자고 장천의 팔을 잡아당기는데 꿈쩍도 않는다. 장천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 있다.

형제처럼 지낸 조원들이 비참하게 죽은 채 매달려 있으니 피가 거꾸로 솟구쳤을 것이다.


‘쿵’


뭔가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천산비가 휘두른 검에 시체 하나가 목이 잘린 채 쿵 떨어졌다. 군중들이 놀라 입을 다물었다. 성벽에 앉아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던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악까악 울며 날아간다.

“재밌나요?”

“······..”

“말이 없는 걸 보니 재미없는 모양이군요. 시체 목을 자르는 건 재미없죠. 며칠 내로 여러분 앞에서 여기 죽은 놈들의 한패를 잡아 목을 자르겠습니다. 흐흐 목이 잘린다고 바로 죽지는 않아요. 살아있는 것처럼 눈도 깜빡이고 뭔가 말하려는 듯 입도 벌립니다. 자신의 목 잘린 몸뚱이를 보며 죽다니 꽤나 비참한 죽음이죠. 곧 비참하게 뒤질 놈들이 아마 여러분 속에 있을 겁니다.”


술렁이는 사람들 속에 나는 숨을 죽였다. 사람들이 날 알아볼까 두려웠다. 천산비가 장천과 내가 여기 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마 첩자가 군중 속에 섞여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대학사님을 노리는 놈들에게 말하겠다. 네 놈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네 놈들의 목을 자를 때까지 나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지 와라, 나 천산비가 기다리겠다.”


말을 마친 천산비가 또 다시 군중을 훑어봤다. 수많은 군중 속에 묻혀 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그렇지 않았다면 속까지 꿰뚫어보는 듯한 저 눈빛에 들통났을 것이다.


이마를 빨간 띠로 묶고 가슴에 빨간 흉갑을 찬 삼십여 명의 무사들이 천산비를 경호하며 군중 속을 빠져나갔다.


“혈마단이다!”

“혈마단 멋있네.”

“멋있긴 뭐가 멋있어. 인간 백정들이지”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손 발이 차갑게 식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얼마 안 가 얼굴 가죽이 벗겨진 채 저 자리에 묶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


얼이 빠진 나를 장천의 목소리가 깨웠다.

장천의 얼굴이 죽은 시체처럼 창백하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저기서 한잔하자!”


묵묵히 걷기만 하던 장천이 노점 주막을 가리켰다.

네 귀퉁이에 장대를 세우고 차일을 묶어 하늘을 가린 노점 주막 안으로 장천이 성큼성큼 들어갔다. 성밖에 있는 주막이라 그런지 우리 말곤 손님이 없다.


얼굴에 곰보자국이 있는 중년 여자가 주문을 받고 술과 안주를 내왔다. 작은 술잔 말고 큰 대접을 달라고 한 장천이 국그릇에 술을 따라 연거푸 세 잔을 마셨다.


덩달아 나 또한 국 그릇에 술을 따라 마시다가 목에 걸려 죽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친구들과 중국집에서 마셨던 빼갈보다 독하다. 못해도 오십 도는 넘는다. 이런 독한 술을 장천이 안주도 없이 세 잔이나 마시다니 미쳤다.


“이 팔 누가 자른 줄 아냐?”


의수를 탁자에 올려놓고 장천이 말했다.

적과 싸우다 잘린 것 아닌가?


“멧돼지가 잘랐다”

“뭐?”


술잔을 들다 말고 그대로 굳었다.

장천이 멧돼지에게 팔목이 잘렸을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임무에 실패해서 잘렸다. 강담, 네가 기억을 잃어버려 잘 모르겠지만 나도 한때는 조장이었다.”


나보단 장천이 조장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은 했다. 왜 조장이 안 됐을까 의문을 가졌지만 그걸 입 밖에 꺼낸 적은 없다.


“조장의 무게는 한없이 무겁지. 임무를 성공시켜야 하고 조원들의 목숨도 책임져야 하니까. 강담 네가 느끼는 무게를 나도 느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나만 살려고 해. 부끄러워 장천을 외면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멧돼지가 판 함정이었다. 내 암살 표적이 누군줄 아냐? 도진산이다. 무림맹 군사 도진산을 제거하라니 감당 못할 임무였지. 결국 팔목이 잘리고 지옥도에 일 년간 유배를 갔다 왔다.”


장천의 잔에 술을 따랐다.

워낙 장천이 가라앉아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왜 멧돼지가 널 함정에 빠뜨렸는데?”

“내가 당주 자리를 차지할까 두려워 함정에 빠뜨린 거다. 차기 당주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내가 한참 잘 나갔거든.”


그렇구나, 멧돼지가 강담과 마영을 제거하려기 전에 장천을 제거하려고 했구나.

왜 나는 그 생각을 못 했지?

비열한 멧돼지가 같은 짓을 반복해왔단 것을 생각 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씨바, 당하고 가만 있냐?”

“내가 당주였다면 나도 멧돼지처럼 했을 거야. 이쪽 세계는 이인자를 용납할 수 없는 세계 거든. 이인자가 자신의 목을 날릴 수 있으니까 경계하는 거야.”

“그런다고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고 팔목을 잘라?”

“여긴 그런 세계야. 살려고 뭔 짓이든 하는 세계지. 난 멧돼지는 이해해. 나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장천 네가 부처냐? 뭘 이해해? 널 죽이겠다고 놈까지 이해한다고? 부처 나셨네.”

“우리 같은 놈들에게 복수는 사치 아니냐? 돈 받고 남 죽이는데.”

“넌 사치일지 몰라도 난 사치가 아냐.”


그렇다.

난 무영당 살수 강담이 아니라 김병태다.

돈 받고 사람을 죽인 적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복수해야지.”

“그럴까.”


장천이 무심히 말하는데 쿵 가슴이 내려앉는다.

복수하자고 장천을 몰아붙였는데 막상 하자니까 덜컥 겁이 난다. 내가 뭘 믿고 장천을 몰아붙였지? 난 내공도 없고, 무공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죽이자!”

“누구?”

“그놈 말이다. 아까 그 새끼, 빨간 옷 입은 놈. 형제들 얼굴이 벗겨진 걸 보니까 팔이 잘린 것보다 더 아프다. 지옥도에 끌려갔을 때도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았는데 진짜 미치겠다.”


멧돼지한테 칼을 겨누라고 했더니 장천의 칼이 천산비에게 향한다. 자신의 잘린 팔보다 조원들을 생각하는 장천의 마음이 보인다.

솔직히 천산비와 싸우고 싶지 않다. 멧돼지가 더 쉬운 상대란 생각이 든다. 멧돼지를 쓰러뜨리고 뱃속에 있는 고독을 없앨 해독약을 뺏으면 안 될까?

장천을 설득하려면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항주성에 나 홀로 들어갔다.

장천이 곁에 없으니까 불안하다. 커다란 덩치에 늠름한 체격이라 장천이 옆에 있으면 듬직했다. 하지만 이번엔 나 홀로 임무를 성공시켜야 한다.


워낙 체격이 좋아 장천은 주변 사람의 이목을 끈다. 항주성에 들어가면 큰 덩치 때문에 장천이 천산비의 눈에 띌 가능성이 높다. 성문 앞에선 사람들이 워낙 많아 못 보고 지나갔지만 그런 운이 두 번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 혼자 성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9조 대원들의 시체가 전시된 남문을 피해 서문으로 들어갔다.

방가장에서 위조 호패까지 가지고 나왔는데 워낙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검사도 않고 들여보낸다.


정윤수 암살 미수 사건 때문에 깐깐하게 검사할 줄 알았는데 아니다. 인구 백만에 가까운 도시를 완벽히 통제하긴 힘들 것이고, 암살범들이 호패 검사에 걸릴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을 테니 그냥 들여보내는 모양인데 잘못 알았다.


나, 김병태는 암살 초보다.

호패 검사를 했다면 비지땀을 흘리며 수전증 걸린 사람처럼 손을 달달 떨었을 것이다.

성문 앞에서 병사들을 잠깐 본 것뿐인데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 무림에 우황청심환이 있을 리 없고 미치겠다.

오일장 열린 것처럼 대로가 북적인다. 온 항주 사람들이 날 잡으러 다 나온 것 같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술이라도 한잔 마셔야겠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미로처럼 생긴 골목길을 헤매다 작은 술집에 들어갔다. 아직 이른 저녁이라 나 말고는 손님이 없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며 중년 남자 셋이 주막으로 들어왔다. 셋 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는데 한 명은 회색, 다른 한 명은 백색, 마지막 한 명은 검은색이다. 백색과 검은색 두건은 고집 세 보이고 회색은 음울해 보인다.


“연화장에서 저렇게 성문 앞에 시체를 메단 게 벌써 일곱 번째야”

걸상에 앉으며 백색 두건이 말했다.


“자네가 잘못 알았어. 여덟 번째야”

검은색 두건이 주모에게 술과 안주를 주문하고 말했다.


“잘못 안 건 자네야. 시체가 메달릴 때마다 내가 우리집 담벼락에 표시해 놨거든. 담벼락에 표시된 게 이번까지 포함해서 일곱 개야.”

“자네도 인정하다시피 내가 기억력 하나는 끝내주네. 분명히 오늘까지 여덟 번째야”


회색 두건이 한심하다는 듯 두 친구를 바라봤다.


“시체를 메단 게 일곱 번째면 어떻고, 여덟 번째면 어떤가.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국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그만 입씨름하게”


회색 두건의 말에 검은 두건이 ‘내 말이 그만일세’하며 술잔을 들었다. 둘의 입 씨름이 이번엔 대학사를 누가 죽이려고 하는 지로 옮겨갔다.


“대학사님을 죽이려는 놈들이 어떤 놈들일까? 여덟 번이나 실패했는 데도 시도하는 걸 보면 지독한 놈들이야”

“일곱 번이라니까.”

“그렇다 치고 자네 의견은 어떤가?”

“대학사를 노리는 놈들이 어디 한두 놈인가? 조정에도 있을 테고, 칼쟁이들 천지인 무림에도 있겠지. 그리고 이를 가는 백성들도 있을 테고 말이야”

“쉿, 자네 목숨이 두 갠가? 백성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게.”


잔뜩 겁먹은 검은 두건이 주변을 둘러보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난 못 들은 척 막걸리 잔을 들어 비웠다.


앗 실수다. 막걸리 잔에 빼갈보다 독한 술이 들어있다.

컥, 뜨거운 불덩어리가 식도를 태우며 내려갔다. 위산이 역류한 것보다 더 속이 쓰리다.

그들의 이야기를 못 들은 척 내 잔에 술을 따랐다.

두건 아저씨들, 나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이야기 계속 해


“내가 못할 이야기했나? 대학사가 조정의 막후라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네. 자기 배 채우려 황제와 조정 대신들을 움직여 가혹하게 백성들을 수탈하지 않는가? 쌀이 넘쳐난다는 호남성이 관리들의 수탈과 가뭄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나가고 있네. 자네가 보기에 이게 제대로 된 세상인가?”


속이 쓰린 것도 잊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두건 아저씨의 열기에 전염된 것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혁명가가 되어 삐뚫어진 이 세상을 뒤엎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자네가 세상을 뒤엎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검은 두건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창피했기 때문이다. 난 상상은 잘 한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망상이라고 내 친구가 그러던데 그 말이 맞다.


“뚫린 입으로 말도 못 하나?” 기분이 상했는지 하얀 두건이 일어섰다.

“승룡이 자네 걱정해서 한 말이야. 말 한마디 잘못하면 목 이 잘린다는 것 모르는 것도 아닌데 자넨 너무 조심성이 없어.”

“내 걱정은 내가 할 테니 자네 걱정이나 하게”


회색 두건과 검은 두건이 나가려는 승룡 아저씨를 말리며 주저앉혔다.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학사 정윤수에 관한 이야기가 더는 나오지 않았다.


딱 술 한잔만 마시고 주막을 나왔다.

더는 떨지 않겠다.

환락궁주를 만나 담판을 짓겠다.

정윤수를 죽이게 도와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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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4. 죽여야 산다 24.04.04 10 0 9쪽
31 3. 죽여야 산다 24.03.14 24 0 9쪽
30 2. 죽여야 산다 24.03.12 19 0 11쪽
29 1. 죽여야 산다 24.03.11 19 0 11쪽
28 12. 암살의 서막 24.03.07 15 0 11쪽
27 11. 암살의 서막 24.03.06 18 0 11쪽
26 10. 암살의 서막 24.03.05 19 0 10쪽
25 9. 암살의 서막 24.03.04 19 0 9쪽
24 8. 암살의 서막 24.02.29 20 0 11쪽
23 7. 암살의 서막 24.02.28 20 0 10쪽
22 6. 암살의 서막 24.02.26 19 0 9쪽
21 5. 암살의 서막 24.02.23 23 0 9쪽
20 4. 암살의 서막 24.02.22 20 0 8쪽
19 3. 암살의 서막 24.02.20 21 0 11쪽
18 2. 암살의 서막 24.02.19 25 0 10쪽
17 1. 암살의 서막 24.02.16 27 0 11쪽
16 2. 당주 암살 24.02.14 25 0 10쪽
15 1. 당주 암살 24.02.12 26 0 9쪽
14 3.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8 33 0 11쪽
13 2.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7 30 0 9쪽
12 1.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6 29 0 10쪽
» 3.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5 27 0 12쪽
10 2.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1 30 0 10쪽
9 1.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1.31 29 0 11쪽
8 4. 보름 안에 살인을 24.01.30 29 0 9쪽
7 3.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9 30 0 10쪽
6 2.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6 40 0 11쪽
5 1.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5 34 0 10쪽
4 4. 어쩌다 무림에 24.01.24 35 0 10쪽
3 3. 어쩌다 무림에 +1 24.01.23 4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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