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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법가 님의 서재입니다.

어쩌다 암살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퓨전

두끼만
작품등록일 :
2024.01.20 12:48
최근연재일 :
2024.04.04 19:1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84
추천수 :
3
글자수 :
144,568

작성
24.03.0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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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9. 암살의 서막

DUMMY

운명의 신은 날 죽이려는 것도 모자라 이젠 고쟁이까지 벗기려 한다.

그것도 천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왕소팔 사부에게 뒤통수를 맞고 의식을 잃기 직전에 고쟁이를 벗긴다는 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거대한 내 무기를 보여줄 사람은 딱 한 명이면 족하다.

그 한 사람이 첫 눈에 반한 화월궁주였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화월 궁주가 저 많은 구경꾼 중에 섞여 있을지 모른다. 그녀 앞에서 고쟁이가 벗겨지느니 차라리 혀 깨물고 죽겠다.


한쪽 눈을 뜨고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 왕소팔 사부와 주태, 댕강마와 식인마가 쥐똥처럼 생긴 만약단을 파느라 정신없다.

낮은 포복으로 천막을 향해 기었다.

사람들이 날 끝까지 못 보길 바랬는데···


“벗김마가 도망간다.”

“어머, 어머 아직 고쟁이도 안 벗었는데.”

“이건 사기야. 난 벗김마 물건 보려고 약 샀는데.”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 서라’는 아낙네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쪼만한 애들이 달려들길래 고쟁이를 움켜쥐고 천막 안으로 뛰어들었다.


“안 돼, 여기는 너희들이 들어오는 곳이 아냐.”


왕소팔 사부의 또 다른 제자 정란이 막지 않았다면 코흘리개들이 달려들어 내 고쟁이를 벗겼을 것이다.

아줌마들도 아닌 애들까지 내 고쟁이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망신당하는 꼴을 기어코 보겠다는 심보다.


불발로 끝난 고쟁이 쇼가 끝난 후에 통굴리기, 차력 시범, 줄타기, 공중 제비가 연이어 펼쳐졌다.

공연 중간에 만약단을 파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법 공연이 인기가 있어 바구니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천막 안에까지 들렸다.


공연 마지막은 최고 하이라이트 ‘인간 과녁’이다.

인간 과녁은 당연히 나다.

왜냐면 내가 모든 구경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서가 아니라 그냥 가만히 서 있는 재주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만히 서 있는 게 전부인 인간 과녁이지만 할 게 많다.

얼굴에 분가루 바르고 볼에 연지 칠하고 입술은 빨갛게 칠했다.


왜 여자로 분장했냐면 여자로 보여야 사람들의 더 많은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연약한 여자가 위기에 처하면 사람들은 더 많이 가슴을 졸이고 긴장한다. 남자들 수명이 짧은 이유를 알겠다. 남자들은 죽을 위기에 처해도 아무 관심 가지지 않는다. 지 스스로 빠져나오던가, 죽든가 둘 중의 하나다.


인간 과녁 역할을 하다 주태가 던진 단도에 허벅지를 다친 정란이 내 머리를 땋았다.

머리를 땋고 정란이 거울을 들고 내 앞에 섰다. 거울은 청동 거울이 아니라 서역에서 수입한 둥그런 거울이다. 이십일세기 한국에서 쓰는 거울과 차이가 없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사랑스럽다.

내 모습이지만 사귀고 싶다.

강담양, 나 김병태인데 나랑 사귀면 안 될까?

앗, 강담은 남자 아닌가.

내가 남자와 사귈 생각을 하다니 미쳤다.


“나보다 예쁘네”

정란도 나와 똑 같은 생각을 하는지 예쁘다는 소리를 한다.


“병태야, 조심해”

“뭘?”

“그렇게 말렸는데 주태 아저씨가 또 술 마셨어. 아저씨가 던진 단도가 심장으로 날아올지 모르니까 조심해야 돼.”

“어,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데? 좀 가르쳐주면 안 될까?”

“그건 말이지··· 아, 난 모르겠다. 암튼 조심해!”


저도 모르는 걸 나보고 하라고 한다.

술 마시고 인간 과녁에게 칼을 던지다니 차라리 음주 운전이 낫다.

음주 운전은 확률이라도 낮지 음주 단도 던지기는 백발 백중이다.


“나 안 하면 안 될까?”

“인간 과녁은 놀이패의 공연의 꽃이야. 가장 중요한 공연인데 네가 안 하면 어떻게 해.”


차마 ‘네가 하면 안 될까’란 말은 하지 못했다.

주정뱅이가 던진 단도에 허벅지 살이 한 움큼이나 베었다는데 어떻게 과녁 앞에 서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초심자인 내가 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내가 진짜 정윤수 암살이라는 대의만 없었다면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벗김마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나와라!”

“꼬추가 번데기만하니까 못 나오는 거지.”


천막 밖으로 뛰쳐나가서 애새끼들 대갈통을 갈겨버리고 싶다. 재밌는지 끊임없이 날 약 올린다. 정말 내가 보여줄 수도 없고 미치겠다.

니들 바나나보다 큰 번데기 봤냐?


천막 밖에서 왕소팔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가 미리 경고하는디 심장 약한 사람은 그냥 가쇼. 아그들도 가라. 니들 지금부터 시작하는 인간 과녁 공연을 보면 오줌 싸니께 그냥 가라. 튼튼하고 강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공연, 간 떨어지지 않게 꽉 붙들어주는 만약단을 복용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공연, 우덜 촐랑극단이 자랑하는 최고의 공연, 시방부터 살 떨리는 인간 과녁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내 공개 처형이 시작됐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정윤수 손에 죽느냐, 주정뱅이 손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입구의 장막을 걷고 한발 디디자 ‘벗김마 나와라’라고 합창하던 애새끼들이 주둥이를 다물었다. 녀석들도 아는 것이다. 내가 죽으러 가는 것을···

아닌가?

왜 홀린듯이 쳐다보냔 말이다.


소란스럽던 구경꾼들도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남자 놈이 남색치마에 하얀 저고리, 분홍 장삼을 걸치고 나오니까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도 원래 이렇게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왕소팔 사부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워메, 여우네, 여우! 어쩜 저렇게 이쁠까?”

“이 사람 눈 삐었나? 저 사람 벗김마잖아.”

“벗김마라니? 뭣여? 그럼 남자란 말여?”

“그렇다니까. 어떻게 된 게 남자가 여자보다 더 예쁘네.”

“예쁜 정도가 아녀. 양귀비를 데려와도 저 여자한테는 안돼”


둥그런 과녁 앞으로 걸어가는데 앞줄에 앉아있는 남자들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린다.

예쁘다는 소리에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몸보다 큰 과녁판 앞에 눈을 부릅뜨고 섰다.

자 와라! 내가 온몸으로 칼을 받아주겠다.

어차피 칼 맞아도 안 죽는다.


앗, 그런데 얼굴엔 던지진 마라.

얼굴에 맞으면 아프다.

심장도 안 된다.

심장 맞으면 죽을지 모른다.

배도 안 된다.

배가 갈라지면 내장이 쏟아진다.

생각해보니까 내 몸 어디 한 군데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


내 소중한 몸 어디 한 군데도 내 줄 수 없다 주태야!

제발 정신차려라.

내 간절한 바램과는 달리 주태는 싱글벙글거리며 단도 다섯 개를 공중에 높이 던지고 저글링을 하고 있다. 지 손 다치기는 싫은지 실수 없이 잘한다.


구경꾼들이 잘한다고 박수친다.

인간들아, 속지마라. 저 인간 술 취해서 지금 헤롱거리니까.

사람들이 싱글거면서 주태에게 환호하는 모습이 정말 얄밉다.


단도 저글링이 끝나고 인간 과녁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처형장의 북소리 같다.


“나가 거짓말이 아니라 이런 공연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본당께. 여러분은 시방부터 깻잎 한장 공연을 볼 것이여. 깻잎 한장이 뭐냐? 저어그 서 있는 뭐시냐, 서시보다 예쁜 처자 몸을 시퍼런 단도가 깻잎 한장 차이로 비켜가는 공연이다 해서 제목을 깻잎 한장으로 붙였당께. 서시보다 예쁜 우리 서미가 깻잎 한장 차이로 죽느냐 사느냐 여러분 두 눈 뜨고 똑똑히 지켜보랑께.”


내 이름이 서시의 사촌쯤 되는 서미가 됐다.

왕소팔 사부가 뚝딱 지은 것이다.

구경꾼들은 왕소팔 사부의 말은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죽을지, 안 죽을지 내기를 한다.


주태가 단도 끝을 잡고 어깨 위로 치켜들었다.

코끝은 빨갛고 두 눈은 흐릿하니 초점이 없다.

음주 측정을 하면 면허 취소 수치가 나올 것이다.


제발 정신차려라 주태!

서시 사촌 서미가 죽는 꼴을 꼭 봐야겠냐?

순간 주태가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양팔을 들고 서 있다가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


퍽,

내 뺨을 스칠 듯 지나간 단도가 나무 과녁에 박혔다.


구경꾼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하늘도 놀랐다. 오직 놀라지 않은 인간은 주태뿐이다. 주태만이 침착하게 허리에서 두 개의 단도를 뽑아 들었다.

단도 하나도 제대로 못 던져 날 죽이려던 인간이 이제는 두 개를 던지려고 한다.


오 하늘이시여!

제발 던지지마! 주태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데 헛것이 보인다.

죽은 조필이 주태 뒤쪽 구경꾼들 사이에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날 지켜보고 있다.


갈 때가 되니까 귀신이 보이나?

나와 눈이 마주친 조필 귀신이 심지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

날 죽이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내가 곧 죽는단 뜻인가.

모르겠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난리다.

앗, 내 양쪽 겨드랑이 밑에 단도 두 개가 박혀 있다. 언제 이게 날아와서 박힌 거지? 조필 귀신에 신경 쓰느라 단도가 날아와 박히는 것도 몰랐다.


주태가 이번엔 세 개의 단도를 꺼내 든다.

주태보다 조필 귀신이 더 무섭다.

조필 귀신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사라진 것이다.


큰일이다.

만일 조필이 살아있다면 이번엔 내가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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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4. 죽여야 산다 24.04.04 10 0 9쪽
31 3. 죽여야 산다 24.03.14 24 0 9쪽
30 2. 죽여야 산다 24.03.12 18 0 11쪽
29 1. 죽여야 산다 24.03.11 19 0 11쪽
28 12. 암살의 서막 24.03.07 15 0 11쪽
27 11. 암살의 서막 24.03.06 18 0 11쪽
26 10. 암살의 서막 24.03.05 18 0 10쪽
» 9. 암살의 서막 24.03.04 19 0 9쪽
24 8. 암살의 서막 24.02.29 20 0 11쪽
23 7. 암살의 서막 24.02.28 20 0 10쪽
22 6. 암살의 서막 24.02.26 19 0 9쪽
21 5. 암살의 서막 24.02.23 23 0 9쪽
20 4. 암살의 서막 24.02.22 20 0 8쪽
19 3. 암살의 서막 24.02.20 21 0 11쪽
18 2. 암살의 서막 24.02.19 24 0 10쪽
17 1. 암살의 서막 24.02.16 27 0 11쪽
16 2. 당주 암살 24.02.14 25 0 10쪽
15 1. 당주 암살 24.02.12 26 0 9쪽
14 3.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8 33 0 11쪽
13 2.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7 30 0 9쪽
12 1.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6 29 0 10쪽
11 3.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5 26 0 12쪽
10 2.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1 30 0 10쪽
9 1.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1.31 29 0 11쪽
8 4. 보름 안에 살인을 24.01.30 29 0 9쪽
7 3.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9 30 0 10쪽
6 2.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6 4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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