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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법가 님의 서재입니다.

어쩌다 암살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퓨전

두끼만
작품등록일 :
2024.01.20 12:48
최근연재일 :
2024.04.04 19:1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85
추천수 :
3
글자수 :
144,568

작성
24.02.1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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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 암살의 서막

DUMMY

“왕소팔이네”


놀이패 꼭두쇠 이름을 듣고 놀라 입이 벌어졌다.

왕소팔이라면 화월 궁주의 스승 아닌가?

항주의 밤을 지배하는 화월 궁주를 키운 사람이라서 홍콩 배우 주윤발을 연상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까 쪼그만 할배다.

눈꼬리는 밑으로 내려가 있고 입은 내 머리를 삼킬 정도로 커서 개구리와 닮았다.


“왜 그렇게 놀라나? 미래의 역사서를 읽었다면 내가 나타날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화월 궁주님이 제 이야기를 다 했나 보네요..”

“자네가 말하는 걸 숨어서 다 들었네. 내 취미가 엿듣기라네.”

“그렇다면 동굴에도···”

“동굴뿐인가 인간 백정들이 방가장에 모여 말하는 것도 다 들었네. 듣자니 자네 목숨이 며칠 안 남았더군.”


하하

어이없으니까 웃음밖에 안 나온다.

펭귄처럼 생긴 이 쪼그만 노인네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야 무공이 없으니까 눈치를 못 챘다 하더라도 장천은 알았어야 하지 않았는가? 심지어는 마영조차도 펭귄 노친네가 엿듣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도대체 무공이 얼마나 강하기에···


“그래서 어떻게 할 텐가?”

“예?”

“정윤수를 어떻게 죽일 거냐 이거지. 설마 우리 보고 정윤수를 죽여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하하, 그럴 리가요. 정윤수를 유인해서 화···”


아차 싶어서 입을 다물었다.

중요한 비밀인데 왕소팔에게 말할 뻔했다.


“화약으로 죽이겠다고? 우리가 공연하는 공터 앞에서 화약을 터트리겠다는 생각이냐?”

“예? 하하, 뭐 그건···”

“정윤수를 죽이겠다고 구경하는 사람들 다 죽이고 우리까지 죽일 생각이냐?”

“아, 아닙니다.”

“생각하는 게 딱 인간 백정이구만. 네 놈을 좋게 봤는데 안 되겠구나.”


노친네가 주변을 둘러보다 공연용 소품으로 걸려있는 망나니 칼을 뽑아들었다. 칼날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소도 잡겠다. 한 번 휘두르면 내 몸 두 동강 나는 건 일도 아니다.


“어, 어르신···”

노인네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저··· 절대로 아닙니다.”

“이상하다. 내 귀에 화약으로 들렸는데···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


화약 말고 다른 방법을 짜내야 한다. 짜내지 못하면 망나니 칼에 허리가 잘려 죽는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천재다.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다. 있다, 있다, 있다···.


“미인계를 쓸 겁니다.”

“미인계?”

“아니, 아니 미남계요.”


정윤수가 공민왕처럼 남색을 즐긴다는 내용이 탈명군주에 나온다. 김병태라면 미남계가 안 통하겠지만 강담이라면 통할 것이다.


“남색을 좋아하는 정윤수를 제가 홀릴 생각입니다.”

“네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것이 노친네가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나도 못 믿겠다.

살자고 하는 짓이지만 어떻게 남색을 떠올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설 수도 없다.


“네, 정윤수와 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죽일 생각입니다.”

“어떻게 홀릴 건데?”

“그야, 제 얼굴로···”

“정윤수 앞에 의심 사지 않고 어떻게 나설 거냐는 말이다?”

“그니까···”

“너도 우리 패에 합류해서 공연하면 되겠구나. 놀이패라면 정윤수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엑스트라 생활을 오래 했지만 사람들 많은 장터에서 공연한 적은 없다.

노친네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공연에 세우려는 거지?


“저 보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라고요?”

“넌 서있기만 하면 된다.”


날 도와줘서 고맙긴 한데 이상하다.

왕소팔 노인 또한 살수들에게 가족을 잃었다. 한데 왜 내 일을 도와주는 거지?


“어르신께서 살수들을 증오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제 일을 도와주나요?”

“궁주는 안 믿지만 난 미래의 역사서를 믿는다. 강담, 네가 반드시 탈명군주를 죽일 거라고 생각한다. 탈명군주를 죽여야 암살의 악순환도 끝난다.”

“대의를 위해 정윤수를 죽여도 된다는 말인가요?”

“정윤수는 부정부패의 원흉이다. 정윤수에게 돈을 갖다 바치고 벼슬 자리에 오른 자들이 백정들의 고혈을 짜서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거나 유랑 걸식하고 있다. 죽어 마땅한 자를 죽여야 하는데 내가 어찌 너를 돕지 않겠느냐.”


내 어깨에도 못 미치는 키 작은 노인네가 거인처럼 느껴졌다.

세상과 백성을 걱정하는 우국지사의 풍모가 그에게서 풍겼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제가 살수로 보이나요?”

“내가 제법 사람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하는데 너를 보면 모르겠다. 넌 분명히 살수인데 전혀 살수 냄새가 나지 않아. 손에 많은 피를 묻혔을 텐데 어떻게 피 냄새가 안 나는 거지?”

“······”


제가 평범한 일반인이라서 그래요.


***


엄청 기분 좋다.

화월궁주 사부 왕소팔이 나를 팍팍 밀어주기로 했다.

왕소팔이 누구냐면 항주 제일 기루 환락궁을 만들고 화월 궁주를 키우신 분이다. 그 동안 환락궁으로 벌어들인 돈이 산처럼 쌓였을 것이다.


이건 한 마디로 돌아가신 현대 그룹 정주영 회장이 나를 밀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진 거라곤 불알 밖에 없던 놈이 정주영 회장의 후원을 받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내 이 기쁜 소식을 널리 알려 만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겠다.

우선 사랑하는 내 9조 조원들에게 말해야겠지.

‘사랑하는’에서 수림은 빼겠다. 걔는 날 못 잡아먹어 환장한 얘니까.

아, 비영 걔도 빼겠다. 그 자식은 가면을 쓰고 다녀 속을 모르겠다.

남는 건 육구와 장천뿐이구나.

아낌없이 두 인간에게 사랑을 베풀어야지.


한데 이 놈의 산길 언제까지 걸어가야 하나?

한 시간 넘게 걸었다.

장천, 이 자식 돈도 많은데 회의 장소를 편안하고 안락한 객잔으로 잡지, 산속으로 끌고 간다.


“언제까지 걸어야 하냐?”

“다 왔어, 여기야.”


장천이 나무 위를 가리켰다.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는데 너무 높아 목이 아프다. 우산을 닮은 나무가 끝도 없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와 닮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한민국에 이렇게 큰 나무는 없다.


“서.. 설마, 모임 장소가 나무 위는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단 말 못 들었냐? 올라가자.”

“야, 띠바야 저 높은 데를 어떻게 올라가냐?”

“어떻게 올라가긴 발로 올라가지. 내가 먼저 올라갈 테니까 따라와”


장천이 ‘타핫’ 기합 소리를 남기고 위로 솟구쳤다.

볼 때마다 신기하다. 어떻게 중력을 이기고 날아오를까? 장천이 트램플린을 밟고 뛰어오르는 것처럼 나뭇가지를 밟고 솟구치는데 기가 막히다.


“야 뭐해? 안 올라올 거야?”


나뭇가지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데 장천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된 거 죽기 살기로 올라간다. 칼에 찔려도 안 죽었는데 설마 떨어진다고 죽겠냐?


퉤퉤 손에 침을 뱉고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잔 가지가 많아 잡을 데는 많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다. 굵은 소금 같은 땀방울이 얼굴과 목, 몸뚱이를 타고 흘러내린다. 다 오르기도 전에 온몸의 물기를 땀으로 다 흘려 수분 고갈로 죽겠다.


‘헉, 헉···’


마라톤 선수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땀에 젖어 미끈거리는 손으로 붙잡을만한 나뭇가지를 찾았다.

머리 위에 있는 나뭇가지는 너무 멀고 대각선 방향에 있는 나뭇가지는 적당한데 점프해서 붙잡아야 한다.


목표로 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는데 손이 수전증 걸린 것처럼 떨린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오느라 손가락을 너무 혹사했다.

장천을 부를까 생각하다 그만뒀다.

조장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내 스스로 올라가겠다.


‘난 안 죽는다, 난 불사신이다, 난 떨어지는 게 두렵지 않다’


열심히 최면을 걸다 밑을 쳐다보는데 까마득하다.

송전탑도 이보단 높지 않을 것이다.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리겠다. 신이 있더라도 가루가 된 뼈는 못 맞춘다. 불사신이라는 말 취소다. 떨어지면 죽는다.


다시 내려갈까 올라갈까 고민하다 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나뭇가지를 향해 점프했다.


아아~

내 딴에는 멀리 뛰기 선수처럼 날았다 생각하는데 폴짝 밖에 안 된다.

그래도 나뭇가지에 손가락이 닿았다. 손가락을 구부려 붙잡으려는 데 빈 허공만 붙잡았다.


“앗, 너는 수림!”

“가지가지한다 정말. 뭐 하는 수작이냐?”

“나..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오 그러셔, 내가 방해했네. 밀어줄 테니까 열심히 해라”

“자.. 잠깐!”


나무 밑으로 밀려고 하는 수림을 손을 붙잡았다.

살려고 하니까 그 빠른 수림의 손이 보인다.


“후.. 훈련 끝났다.”

“지랄”


수림이 위에 있는 나무를 붙잡고 물구나무를 서더니 위로 올라간다. 십점 만점에 십 점이다. 체조해도 되겠다.


멍하니 내 손을 봤다. 수림의 부드러운 감촉이 손에 남아있다. 입은 뾰족한데 손은 부드럽다. 가슴도··· 등에 닿은 가슴의 감촉이 느껴진다.


다행히 얼마 안 가 나의 고난은 끝났다.

나무 중간쯤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평상이 보였다. 한참 올라왔다 생각했는데 겨우 중간 밖에 못 올라온 것이다.


평상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장천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웃더니 허리에 찬 호리병을 뽑아 한 모금 마시고 건넸다. 물인 줄 알고 마셨는데 술이다. 켁켁 술이 목에 걸려 벌떡 일어났다.


“니기미 경치 좆나게 좋네”


장천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말하는데 장관이다.

그 어떤 그림과 영화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숨이 막혔다.

내가 이걸 보려고 죽을둥, 살둥 여기를 올라왔구나. 돈이 없어 놀러다닌 적이 거의 없는데 책 속 세상에 들어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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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2. 암살의 서막 24.03.07 15 0 11쪽
27 11. 암살의 서막 24.03.06 18 0 11쪽
26 10. 암살의 서막 24.03.05 18 0 10쪽
25 9. 암살의 서막 24.03.04 19 0 9쪽
24 8. 암살의 서막 24.02.29 20 0 11쪽
23 7. 암살의 서막 24.02.28 20 0 10쪽
22 6. 암살의 서막 24.02.26 19 0 9쪽
21 5. 암살의 서막 24.02.23 23 0 9쪽
20 4. 암살의 서막 24.02.22 20 0 8쪽
19 3. 암살의 서막 24.02.20 21 0 11쪽
» 2. 암살의 서막 24.02.19 25 0 10쪽
17 1. 암살의 서막 24.02.16 27 0 11쪽
16 2. 당주 암살 24.02.14 25 0 10쪽
15 1. 당주 암살 24.02.12 26 0 9쪽
14 3.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8 33 0 11쪽
13 2.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7 30 0 9쪽
12 1.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6 29 0 10쪽
11 3.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5 26 0 12쪽
10 2.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1 30 0 10쪽
9 1.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1.31 29 0 11쪽
8 4. 보름 안에 살인을 24.01.30 29 0 9쪽
7 3.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9 30 0 10쪽
6 2.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6 40 0 11쪽
5 1.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5 3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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