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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법가 님의 서재입니다.

어쩌다 암살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퓨전

두끼만
작품등록일 :
2024.01.20 12:48
최근연재일 :
2024.04.04 19:1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83
추천수 :
3
글자수 :
144,568

작성
24.03.11 19:15
조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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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 죽여야 산다

DUMMY

공연장을 떠나면 죽인다!

늙은 마녀처럼 생긴 당파파의 말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오늘 공연의 마지막인 ‘초패왕’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막 밖이 시끄러워졌다.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탈명각의 첩자를 잡았습니다. 대감마님”


무슨 일인지 천막 틈으로 밖을 내다봤다.


“대감마님 억울합니다. 저는 단지 똥이 마려워 변소에 가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정윤수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비비며 빌고 있다. 붉은 흉갑을 착용한 혈마단 무사가 남자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


“닥쳐라, 너는 공연장을 빠져나가지 마라는 경고를 무시했다.”

“제가 첩자가 아니란 걸 증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저랑 같이 놀러 온 친구가 있습니다.”


사내가 구경꾼 사이에 있는 한 땅딸막한 사내를 가리키며 ‘저기 제 친구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철아, 나야 전풍!”


대철이라 불린 땅딸막한 사내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공포에 질린 사내가 두 손을 흔들었다.

저 손짓은 무얼 의미하지?

친구가 아니란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을 지목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저놈을 끌고 와라”


당파파가 외치자 혈마단 대원 두 명이 달려들어 대철의 양팔을 잡고 끌고 왔다. 수백 명의 사람이 있건만 누구 하나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


“네가 이놈과 한 패냐?”


당파파가 죽장에 숨겨진 칼을 뽑아 대철의 목에 댔다.

칼이 얼마나 날카롭게 갈았는지 햇살을 튕기며 은처럼 반짝인다. 살짝만 그어도 목에 드러난 파란 핏줄이 잘리며 빨간 피를 폭포처럼 쏟아낼 것이다.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얼굴을 뒤덮은 대철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모···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내가 부인하자 전풍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대철아, 나야 나, 전풍이라고! 삼십 년을 함께 한 친구를 어떻게 몰라본단 말이냐?”

“닥쳐라”


당파파가 검면으로 전풍의 얼굴을 때렸다. 핏물을 내뿜으며 전풍이 나뒹굴었다.

단지 구경하러 온 사람을 첩자로 몰아 죽일 듯이 때리는 대도 사람들은 말이 없다.

이 사람들은 길들여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겪다 보니 길들여진 것이다. 상식과 법률이 아닌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다. 성문에 사람 머리를 내 걸고 볼일 보러 화장실에 가려는 사람을 죽여도 저항하지 못한다. 폭력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만! “


정 대감이 손을 들어 피 비린내 나는 광경을 중단시켰다.


“재밌는 구경거리가 있는데 하찮은 것들 때문에 망치면 안 되지. 나중에 내가 심문할 테니 데리고 가라”


전풍은 혈마단 단원에게 잡혀 공연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광대들 공연 한번 보겠다고 온 사람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오줌이 마려우면 바지에 싸는 한이 있어도 공연장을 떠날 수 없다.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연을 빨리 끝내는 것이다.

나만 그런 생각을 가진 게 아니었는지 왕소팔 사부가 징을 치며 초패왕 공연을 알렸다.


“아그들아 다음 공연이 뭐다냐?”


왕소팔 사부가 공연장 앞줄에 앉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초패왕전”

“아따 우리 아그들이 귀신처럼 맞추네. 그럼 시방부터 항우와 우미인의 가슴절절한 사랑이 펼쳐질 테니께 눈 똑바로 뜨고 보랑께.”


징이 울리며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장막 뒤에서 지켜보는데 가관이다.

왕소팔 사부가 항우가 되어 십 만의 병력을 이끌고 유방과 맞서는데 부하는 달랑 장란 한 명이다. 유방은 삼십 만명이라는데 부하는 댕강마와 식인마가 전부다.

삽십 만 대 십 만이 세 명 대 두 명이 칼과 창을 들고 어지럽게 맞붙었다.


어제 공연에선 애들은 낄낄대고 어른들은 때려쳐라 소리치고 난리법석였는데 오늘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공포가 무겁게 공연장을ㄹ 짓누르고 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것도 있다.

내가 등장하자 다들 내 얼굴을 쳐다보느라 정신없다.

얼굴에 분 좀 바르고 입술에 연지 좀 찍은 것뿐인데 남자들이 침을 꼴깍, 꼴깍 삼킨다.


항우로 분장한 왕소팔 사부가 입에 머금은 술을 내뿜으며 비장하게 해하가를 읊는다.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덮는데

때가 불리하여, 오추마는 나아가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 할 것인가?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 한단 말이냐?


아무리 좋게 봐도 광대로 밖에 안 보이는 항우가 비장하게 말해봤자 사람들은 아무런 감동이 없다. 더구나 공포에 눌린 이 상황에선 말할 것도 없다.

항우가 해하가를 불렀으니 내가 답가를 부를 차례다.


발이 있어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는데

어찌하여 떠나지 못하는가?

눈은 빛을 볼 수 있고,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오추마여, 오추마여, 이를 어찌 견디란 말이냐?


내 말에 항우가 항소처럼 눈을 끔뻑인다.

내가 멋대로 가사를 바꿨다.

애꿎은 구경꾼을 잡아다 죽이네, 살리네 하는 이 상황에 사랑 타령이 먹힐 리 없다. 용기를 내서 정윤수 일당의 막 나가는 행태를 풍자했다. 곁눈질로 보니까 당파파가 눈꼬리를 올리며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다.


“천첩도 같이 싸울 테니 대왕의 칼을 주세요”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항우가 해하가의 마지막 구절을 되풀이하며 칼을 내밀었다.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데 번번이 대사를 까먹는다.

잘 됐다.


“내 검을 받아라 유방!”


복수의 시간이 왔다.

유방으론 분장한 고주망태 주태가 우희가 직접 나서니까 놀라서 딸꾹질을 한다.

목을 날려주마.


“이년 감히 우리 대왕에게 덤비다니 대갈통을 뽀사주마”


식인마가 도끼를 들고 뛰쳐나왔다. 이건 대본에 없는 건데 이 자식은 왜 이래?

에잇!


“아악”

목에 칼을 찌르는 시늉을 하며 쓰러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식인마는 당해낼 수 없다.


“대왕! 치욕을 당하느니 먼저 가겠습니다. 부디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어설픈 대사를 치고 후다닥 눈을 감았다.

부디 식인마가 도끼로 내리치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이 자식들은 하나같이 또라이라 믿을 수가 없다.


“이렇게 곱게 못 보낸다. 네 년의 머리를 가루로 만들어주마”


식인마 이 미친놈이 진짜로 가루를 만들 생각인지 도끼를 치켜들었다. 실눈을 뜨고 쳐다보다 안 되겠다 싶어 기어서라도 도망치려는데


“나쁜 놈아 죽어라!”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더니 식인마를 향해 돌멩이가 날아왔다.

그게 신호탄이었다. 여기저기서 돌멩이가 마구 날아왔다. 심지어 내게 유탄까지 날아왔다. 내가 이날을 위해 군대에서 각개전투를 배웠다. 낮은 포복으로 도망치는데 유방과 삼십 만 대군이 도망갔다.


“와! 이겼다!”


아이들이 또 다시 펄쩍펄쩍 뛰며 먼지를 일으켰다. 해하전투의 최종 승자가 항우도 유방도 아닌 애들이다.


연극이 끝나고 천막에 들어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는데 허리가 굽은 당파파가 죽장을 집고 장막을 걷고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왕소팔 사부가 어쩐 일이냐고 호들갑을 떨며 물어보자 당파파가 죽장을 들어 나를 가리켜 ‘저 아이에게 볼 일이 있다’고 말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됐다.


“네 이름이 뭐냐?”

“김병태입니다”


강담이란 이름을 말할 수 없어 내 본 이름을 말했다.

김병태란 이름을 내가 말하고 듣는데 울컥해진다.

이 살벌한 무림을 떠나 돌아갈 수 있으려나.


“팔을 내밀어봐라”

“예? 왜요?”

“닥치고 내밀어라!”


매부리코 할망구가 말하는데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른다.

눈빛만으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머리속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기에 저렇게 살벌한 눈빛을 하고 있을까?


악수하듯이 내밀자 할망구가 낚아채듯이 손목을 잡았다.

순간 ‘아악’ 비명을 질렀다. 팔목을 통해 꿈틀 뭔가 들어오는데 뱀 같았다.

너무 고통스러워 힘줄이 툭툭툭 불거졌다. 마취도 안 하고 내시경이 똥꼬로 들어오는 것 같은 고통이다.


너무 고통스러워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한지 모르겠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내 목을 쥐고 있다.

뱀이 들어가다 막혔는지 팔목 부근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올랐다.


“애 잡겄네, 아줌씨 이거 손 놓으쇼.”


왕소팔 사부가 할망구의 팔을 잡으려 하자 노친네의 죽장으로 팔을 쳐냈다.


“가만 있어라, 죽기 싫으면.”


땀을 비오듯 흘리며 학질 걸린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데 할망구가 손목을 놓았다.

무르팍이 꺾이며 모래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통이 끝났다는 안도와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분노가 교차했다.


“너에게 내공이 있었다면 목을 날렸을 것이다. 무공을 안 익힌 걸 다행으로 여겨라”

“도,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대감께서 널 만나고 싶어한다. 날 따라와라!”


독한 할망구.

내가 무공이 있는지 확인했구나.

난 내공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가진 것은 목숨뿐이다.


한데 어떻게 강담은 내공이 없는 거지.

탈명각 암살 조장이라면 내공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빙의하면서 완전 리셋된 건가?

험난한 무림을 살아가려면 도움되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아무 것도 없다.

참 지지리 복도 없다.


당파파를 따라 정윤수에게 갔다.

구경꾼들은 다 가고 정윤수 일행만 남았다.

수십 명의 혈마단 대원들이 정윤수를 두 겹으로 에워싸고 있다.

열 걸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정윤수를 마주했다.


“본관이 본 어떤 미인보다 예쁘구나!”


정윤수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는데 고맙다고 말해야 하나.

칭찬 같은데 나한테 별로 좋게 들리지 않는다.

여자보다 예뻐 뭐에 쓰겠는가.


“감사합니다”

“공연은 잘 봤다. 무섭지 않더냐?”

“매일 하는 거라 그렇게 무섭지 않습니다”

“그럼, 하얗게 질린 네 표정은 연기냐?”


두려움에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 속에 안 들어왔는데 정윤수가 알게 뭐람.


“허허 본관이 수많은 공연을 봤지만 너처럼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과찬이십니다. 저는 단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한 것뿐입니다. 대감님께서 재밌게 보셨다니 영광입니다.”

“너처럼 실감나게 연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네 연기를 더 보고 싶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너를 초대하는 것이다”


정윤수가 눈짓을 하자 당파파가 내게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받은 돈주머니가 묵직하다.

열어보니까 은자가 가득하다.

은자 한 냥에 쌀 두 섬이니까 돈주머니에 있는 은자만으로 십 년은 먹고 살겠다.

돈으로 날 살려는 모양이다.


“저희 식구들과 함께 가면 안 되나요?”

“난 단지 너만 원한다.”


머리를 숙이고 고민하는 척했다.

거금을 받았으니 승낙해야겠지.

안 받아도 승낙했겠지만..


왕소팔 꼭두쇠 또한 묵직한 전낭을 받았다.

‘잘가라’며 왕소팔 꼭두쇠 손을 흔드는데 눈빛이 야릇하다.

주태가 뭔가 말을 하려는 것처럼 뻐끔거리다 끝내 입을 다물었다. 눈에 습기가 차 있는 것이 울 것 같다. 술 좋아하는 인간들은 감정이 풍부하다. 겨우 며칠 봤는데 벌써 정이 든 모양이다.


‘조장, 부디 살아서 보자’


나를 멀리서 지켜보던 장천의 전음이 들렸다.

장천은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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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4. 죽여야 산다 24.04.04 10 0 9쪽
31 3. 죽여야 산다 24.03.14 24 0 9쪽
30 2. 죽여야 산다 24.03.12 18 0 11쪽
» 1. 죽여야 산다 24.03.11 19 0 11쪽
28 12. 암살의 서막 24.03.07 15 0 11쪽
27 11. 암살의 서막 24.03.06 18 0 11쪽
26 10. 암살의 서막 24.03.05 18 0 10쪽
25 9. 암살의 서막 24.03.04 18 0 9쪽
24 8. 암살의 서막 24.02.29 20 0 11쪽
23 7. 암살의 서막 24.02.28 20 0 10쪽
22 6. 암살의 서막 24.02.26 19 0 9쪽
21 5. 암살의 서막 24.02.23 23 0 9쪽
20 4. 암살의 서막 24.02.22 20 0 8쪽
19 3. 암살의 서막 24.02.20 21 0 11쪽
18 2. 암살의 서막 24.02.19 24 0 10쪽
17 1. 암살의 서막 24.02.16 27 0 11쪽
16 2. 당주 암살 24.02.14 25 0 10쪽
15 1. 당주 암살 24.02.12 26 0 9쪽
14 3.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8 33 0 11쪽
13 2.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7 30 0 9쪽
12 1.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6 29 0 10쪽
11 3.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5 26 0 12쪽
10 2.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1 30 0 10쪽
9 1.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1.31 29 0 11쪽
8 4. 보름 안에 살인을 24.01.30 29 0 9쪽
7 3.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9 30 0 10쪽
6 2.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6 40 0 11쪽
5 1.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5 34 0 10쪽
4 4. 어쩌다 무림에 24.01.24 35 0 10쪽
3 3. 어쩌다 무림에 +1 24.01.23 4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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