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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법가 님의 서재입니다.

어쩌다 암살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퓨전

두끼만
작품등록일 :
2024.01.20 12:48
최근연재일 :
2024.04.04 19:1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89
추천수 :
3
글자수 :
144,568

작성
24.01.31 19:15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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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DUMMY

나는 산을 좋아한다.

내가 김병태로 살았을 땐 이틀에 한 번 꼴로 산에 올랐다.

사람들은 날 거부해도 산은 언제나 날 반겼다. 처음엔 정상에 오르는 재미로 찾았고 시간이 지나자 그냥 산에 오르는 게 좋았다. 한발, 한발 힘들게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

산은 나에게 과정의 즐거움을 알려줬다. 하지만 현실은 자격증, 대학 졸업장 같은 결과를 원한다.


정상을 밟아도 말이 없고, 올라가다 중간에 돌아가도 말이 없는 산이 있기에 그나마 치열한 현실을 견뎌낼 수 있다.

이 순간 내가 강담인지, 김병태인지는 중요치 않다. 산이 있으니까 오르겠다. 그리고 무영당 당주 석날두의 비자금이 진짜로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신룡곡이 어디냐?”


가파른 산등성이를 올라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장천에게 물었다. 생각보다 산이 가파르다. 세 개의 봉우리를 넘었는데 정상까지 갈 길이 멀다.


“어라! 신룡곡을 기억하네. 너 정말로 기억 상실 걸린 것 맞아?”

“기억나는 것도 있고 안 나는 것도 있어. 그것보다 신룡곡이 어디냐?”

“저기 높다란 봉우리 보이지? 저기가 만석산 정상인 장군봉이야. 장군봉을 넘어서 내려가면 계곡이 나오는데 거기가 신룡곡이다.”

“신룡곡에 신룡 폭포 있지?”

“신룡 폭포까지 알고 기억이 돌아왔네. 한데 신룡 폭포는 왜 찾냐? 구경하게?”

“내가 꿈을 꿨는데 멧돼지가 한 밤중에 커다란 금덩이를 물고 신룡 폭포 뒤에 있는 동굴로 들어가는 걸 봤어. 그래서 금덩이 찾으려고.”

“아직 꿈에서 덜 깼냐?”

“너 멧돼지 하면 떠오르는 게 없냐?”

“멧돼지면 석날두지. 날두 새끼 딱 보면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눈이 째진 게 멧돼지처럼 생겼잖아. 먹는 욕심도 드럽게 많고. 한데 그 새끼가 뭐 어쨌다···. 너, 멧돼지가 동굴에 금을 숨기는 걸 봤구나?”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멧돼지가 돈을 숨기는 것을 본 건 아니다.

단지 탈명군주 책에 석날두가 신룡폭포 뒤 동굴에 비자금을 숨겼다는 내용을 읽은 것뿐이다. 탈명군주 책대로 이뤄지는 세계라면 석날두가 동굴에 돈을 숨겼으리라고 추리했을 뿐이다. 어쨌든 눈으로 보기 전까진 확신할 수 없다.


“언제 봤냐?”

“꿈에서”

“죽인다”

“하하, 진짜로 봤어. 단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날 뿐이야.”


‘너 가서 아무것도 없으면 죽는다’ 장천이 투덜거리며 앞장섰다. 돈 앞에 장사 없다고 내 말을 믿고 싶은 눈치다.


장군봉에 오르지 않고 우회해서 내려갔다.

생긴 게 곰이라서 그런지 장천은 산도 잘 탄다. 서쪽 하늘이 노을로 물들 무렵 신룡폭포에 도착했다.


오십 미터도 넘는 높이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일직선으로 떨어졌다. 물줄기가 공중에서 떨어지다 수증기가 되어 얼굴을 축축히 적셨다. 지금이 이십 일 세기라면 관광객으로 들끓었을 텐데 폭포 주변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조금 이상하긴 하다. 관광객이 없다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잦을 수밖에 없는 폭포 뒤 동굴에 멧돼지가 보물을 숨겼을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장천이 폭포수 뒤편 절벽을 샅샅이 뒤졌지만 동굴은 보이지 않는다.


“네 말 믿고 뒤졌다가 괜한 헛고생했다.”


장천이 폭포수로 젖은 머리카락을 올백으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올백으로 하니까 장천이 포스가 넘친다. 외모로 보면 장군감인데 암살자나 하고 있으니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


“만석산에 폭포가 여기뿐이냐?”

“폭포야 많지. 하지만 신룡 폭포는 여기뿐이야.”

“신룡 폭포 말고 이름 붙은 폭포는 없나?”


내 기억이 확실치 않아서 물어봤다. 누가 한 번 읽은 무협지를 다 기억한단 말인가? 밤 새서 공부한 것도 다 까먹는데···


“수룡 폭포가 있긴 해. 한데 거기는 폭포랄 것도 없어. 그냥 가는 물줄기야”


살수라서 그런지 장천이 근방 지리에 대해 훤하다.

전쟁터의 병사는 지리를 알아야 살 가능성이 높다.


“내가 잘못 알았을 지 모르니까 수룡 폭포로 가 보자”

“수룡 폭포라면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었는데... 아! 너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냐.”


장천이 투덜거리며 앞장섰다. 수룡 폭포가 제발 맞기를 바랐다. 돈이 없으면 정윤수를 유인해 내려는 내 계획은 초반부터 와르르 무너진다.


수룡 폭포는 만석산 중턱에 있었다. 장천 말 대로 폭포랄 것도 없는 가는 물줄기였다.

삼십 미터 높이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진 물줄기가 작은 소를 이뤘다. 주변엔 수목이 무성하고 사람들이 왔다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절벽은 경사진 형태인데 바위가 엇갈려 쌓여 있는 형태다.

돌아다니면서 동굴이 있는지 찾아봤다. 바위 사이에 작은 틈을 발견했는데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다. 뱀이 숨기 딱 좋은 장소지, 보물을 숨기기엔 너무 작다.


“멧돼지가 이런 산 속에 돈을 숨길 리 없지. 아마 당주실 마루 밑이나 벽에 숨겼을 것이다.”


장천이 찾는 걸 포기하고 주머니에서 연초를 꺼내 종이에 말아 피웠다. 끊은 지 삼 년이나 됐는데 담배 피고 싶다. 뭔가 안 되거나 좌절했을 때 특히나 더 피고 싶다.


“멧돼지가 바보라면 벽에다 숨겼겠지.”

“무슨 소리야?”

“사도맹이 우리가 숨은 곳을 알면 가만 놔두겠냐? 당장에 공격해서 싹 다 불태워버릴 걸. 그러면 멧돼지 돈도 불과 함께 사라지겠지.”

“흠, 그럴 수 있겠군. 근데 왜 동굴이 안 보이냐?”


흔들리는 바위가 없나 찾아보는데 수상한 바위를 발견했다. 다른 바윗돌은 이끼가 무성한데 한 바윗돌만 이끼가 별로 없다. 원래 이곳에 없던 바윗돌을 옮겨온 것 같다.


“장천아, 여기 이 바위 좀 들어볼래?”


삼백 킬로그램은 넘어 보이는 바윗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호동이 밀어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바윗돌이었다. 하지만 여긴 무림 아닌가? 장천의 무공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배고파서 이렇게 무거운 바윗돌은 못 들어.”

“이렇게 큰 바위를 어떻게 드냐, 그냥 밀어.”


양손에 퉤퉤 침을 뱉고 장천이 바윗돌 앞에 섰다. 바윗돌 높이가 장천의 가슴에 닿는다. 막상 시키긴 했지만 장천이 허리를 다칠까 걱정된다.


“내가 도와줄까?”

“혼자 해도 돼”

내 말 대로 하지 않고 장천이 양팔로 바윗돌을 감싸 안고 뽑으려고 한다.

바윗돌이 들썩이는 걸 보고 놀라 턱이 빠졌다. 하지만 놀래긴 일렀다. ‘끄응’ 장천이 힘을 쓰자 바윗돌이 들렸다. ‘끙차’ 장천이 바윗돌을 허리 높이까지 들어올려 옆으로 던졌다.

쿠웅

바윗돌이 산사태를 일으키며 내려가다 거대한 나무를 부러뜨리고 멈췄다.

흘러내린 침을 닦았다.

무림은 상식을 벗어나는 곳이다.


“어라, 정말 동굴이 있네!”


장천이 허리를 숙이고 동굴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입구가 무릎 꿇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작다.


캄캄한 동굴 안을 들여다봤더니 눈이 어둠에 적응하며 보이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다.

동굴에 전등이 달려 있을 리 없는데 보인다. 강담의 몸이기 때문인가? 강담은 무공을 익혔으니 어둠 속도 보일 것이다.


동굴 입구가 좁기 때문에 몸이 작은 내가 앞장섰다.

물 이끼 냄새가 동굴에서 풍겼다. 보물만 아니라면 축축한 이런 동굴에 절대로 안 들어갔을 것이다.

동굴이 갈수록 좁아졌다. 덩치 큰 장천이 못 따라올까 봐 돌아봤다.


“괜찮냐?”

순간 내 귀를 스치며 화살이 벽에 꽂혔다.

너무 놀라 심장 내려 앉는 소리가 들렸다. 귀에서 흘러내린 피가 귓불을 타고 떨어진다. 고개를 조금만 늦게 돌렸다면 관자놀이에 화살이 꽂혔을 것이다.


“기관이 설치된 걸 보니까 멧돼지가 진짜로 보물을 숨긴 것 같다”

“나 죽을 뻔한 것 안 보이냐?”

“안 죽었잖아. 내가 앞장설 테니까 위치를 바꾸자.”


동굴 입구까지 기어나와 위치를 바꿨다.

장천이 앞장서는데 불안하다. 눈먼 화살에 머리를 맞아 꿰 뚫리는 장천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 걱정과 달리 장천은 태연하게 주먹으로 벽을 치며 전진했다.

내가 화살 맞을 뻔한 자리에서 벽을 치자 또 다시 화살이 흙벽에 꽂혔다. 워낙 가까운 데서 일어난 일이라 벽에 꽂힌 화살대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파르르 떨리는 소리까지 들린다.


“벽에다 연노를 숨겨놨군. 벽을 건드리면 발사되는 구조야. 이건 기관이랄 것도 없어”


장천이 흙벽을 쳐서 연노를 끄집어냈다. 연노는 석궁과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석궁에 비해 연노는 한 손으로 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화살이 발사된 곳을 지나자 동굴이 차츰 넓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서서 걸을 수 있게 됐다.

장천이 걸어가자 바짝 뒤에 따라붙었다. 갑자기 쏟아질 화살도 무섭지만 박쥐가 나타날까 두렵다. 박쥐 입에 수백 종의 바이러스가 서식한다는 데 물리면 코로나보다 백배는 강한 바이러스에 감염돼 피를 토하고 죽을 것이다.


“입구는 좁고 안은 넓은 이런 동굴을 멧돼지가 어떻게 찾았을까?” 장천이 물었다.

“혈안이 돼서 돈 숨길 곳을 찾았겠지”

“동굴이 너무 넓지 않냐? 우리도 혈안이 돼서 돈 숨긴 곳을 찾아야 하나?”

“우리 눈이 아니라 멧돼지의 눈으로 찾아야 돼. 그래야 찾을 수 있어”


말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보물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동굴이 생각 외로 길기 때문이다. 멧돼지의 눈으로 보자. 멧돼지라면 어디에 숨겼을까?


사람 심리상 동굴 입구 근처에 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깊숙한 안쪽, 자기만 알고, 아무도 모르는 그런 장소가 어디 있을까?

얼마 가지 않아 커다란 공동이 나타났다. 공동 천장이 아파트 삼층보다 높아 보인다. 공동 한 가운데를 지하수가 흐른다.


장천이 양손으로 지하수 물을 떠서 목을 축였다. 장천의 저런 담대함이 부럽다. 난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을까 봐 못 마시겠다.


“멧돼지가 여기서 더 들어가지는 않았을 거야”


장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입구에서 너무 멀면 비자금을 넣었다 빼기가 힘들다.

공동은 멧돼지가 보물을 숨기기에 적당한 거리다. 그렇다면 여기 어디일 텐데. 공동 한 가운데 연못을 이룬 지하수가 보인다. 영화를 보면 연못 안쪽에 다른 동굴과 연결된 통로가 있던데.


“혹시 연못 안에 다른 동굴과 연결된 통로가 있는 게 아닐까?”

“살이 뒤룩뒤룩 찐 멧돼지가 물에 들어갔겠냐?”


장천 말이 맞다. 부하들에게 받은 돈과 보물을 숨기려고 귀찮게 물 속을 드나드는 짓은 안 할 것이다.

지하 공동은 우리가 들어온 입구 말고도 여기저기 뚫려 있다.

그렇다면···


“토끼가 굴을 팠나? 입구가 많네”

“이 많은 동굴 어딘 가에 숨겼을 텐데 다 뒤질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장천이 아치 모양으로 뚫린 동굴 입구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장천에게 멧돼지의 눈으로 보라고 했다. 나 역시 멧돼지의 눈으로 봐야 한다. 멧돼지가 물에 들어가는 걸 귀찮아 했다면 더 깊이 들어가는 것도 싫어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어딘가에 숨겼을 텐데···

그게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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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4. 죽여야 산다 24.04.04 10 0 9쪽
31 3. 죽여야 산다 24.03.14 24 0 9쪽
30 2. 죽여야 산다 24.03.12 19 0 11쪽
29 1. 죽여야 산다 24.03.11 19 0 11쪽
28 12. 암살의 서막 24.03.07 15 0 11쪽
27 11. 암살의 서막 24.03.06 18 0 11쪽
26 10. 암살의 서막 24.03.05 19 0 10쪽
25 9. 암살의 서막 24.03.04 19 0 9쪽
24 8. 암살의 서막 24.02.29 20 0 11쪽
23 7. 암살의 서막 24.02.28 20 0 10쪽
22 6. 암살의 서막 24.02.26 19 0 9쪽
21 5. 암살의 서막 24.02.23 23 0 9쪽
20 4. 암살의 서막 24.02.22 20 0 8쪽
19 3. 암살의 서막 24.02.20 21 0 11쪽
18 2. 암살의 서막 24.02.19 25 0 10쪽
17 1. 암살의 서막 24.02.16 27 0 11쪽
16 2. 당주 암살 24.02.14 25 0 10쪽
15 1. 당주 암살 24.02.12 26 0 9쪽
14 3.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8 33 0 11쪽
13 2.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7 30 0 9쪽
12 1.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6 29 0 10쪽
11 3.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5 27 0 12쪽
10 2.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1 30 0 10쪽
» 1.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1.31 30 0 11쪽
8 4. 보름 안에 살인을 24.01.30 29 0 9쪽
7 3.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9 30 0 10쪽
6 2.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6 40 0 11쪽
5 1.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5 34 0 10쪽
4 4. 어쩌다 무림에 24.01.24 35 0 10쪽
3 3. 어쩌다 무림에 +1 24.01.23 4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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