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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법가 님의 서재입니다.

어쩌다 암살자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퓨전

두끼만
작품등록일 :
2024.01.20 12:48
최근연재일 :
2024.04.04 19:15
연재수 :
32 회
조회수 :
897
추천수 :
3
글자수 :
144,568

작성
24.01.23 11:22
조회
40
추천
1
글자
11쪽

3. 어쩌다 무림에

DUMMY

목을 잘랐다.

칼질 한 번으로 장천은 천산마의 목을 잘랐다.

어떻게 사람 목을 무 자르듯 할 수 있단 말인가? 기계로 잘라도 저렇게 깔끔하게는 못 자를 것이다.

장천이 머리카락을 잡고 천산마의 머리를 들자 잘린 목에서 피가 쏟아져 바위를 핏빛으로 물들인다.


우욱

속이 메슥거려 바위에 대고 토했다.

먹은 게 없는지 신물만 올라온다. 속에 있는 걸 다 게워내고 하늘을 보자 빙빙 돈다. 어지럽다, 쓰러질 것 같다.


영화 촬영 때문에 우연히 도살장에 간 적이 있다.

돼지를 좁은 우리에 가둬 놓고 전기 다리미로 감전시켜 죽이는 현장을 봤다. 죽은 돼지를 갈고리에 걸어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고, 껍질을 벗기는 광경을 보고, 한 달 넘게 김치를 못 먹었다. 김치 국물이 돼지 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데 이건 돼지를 죽이는 건 비할 바도 아니다. 사람을 죽여 목을 잘랐다. 그것도 내가 죽인 사람이다. 돼지를 죽이는 걸 본 게 꿈처럼 느껴지고 지금이 현실처럼 느껴진다. 현실일수록 리얼하고 끔찍하다.


장천이 한 손으로 천산마의 상의를 벗겨 반쯤 눈 뜨고 있는 천산마의 머리를 싸맨다. 옷 속으로 들어가기 직전 천산마의 눈과 마주쳤다. 아직 살아있는 듯한 천산마의 눈이 묻고 있다.


‘넌 누구냐?’

‘나는 김병태··· 아 모르겠다.’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이제는 꿈인지, 현실인지 혼동이 온다. 난 사람을 죽였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가지만 제발 내가 살인자가 안 되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뜯는데 손바닥 가득 머리카락이 잡힌다. 이 풍성함, 이 매끄러움, 이 두꺼움, 이걸 얼마만에 느끼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꿈속의 나는, 머리 빠지기 시작한 초라한 김병태가 아니란 점이다.

나는 누구일까?

김병태인가, 강담인가?

내가 나비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내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다는 장자의 꿈이 생각난다. 혹시 강담이 김병태 꿈은 꾼 건 아닐까?


“그만 좀 머리카락 뜯어라. 머리카락 다 빠지겠다”


장천이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어라! 장천의 팔이 다시 자라났다.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팔이 다시 자라난 것이다. 그럼 그렇지 꿈이다. 꿈이니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언제 팔이 다시 자랐냐?”

“팔이 나무냐? 자라게! 내 오른팔이 의수란 것도 까먹었냐?”


장천이 팔을 들어 보여주는데 정말로 의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 팔과 구분하기 힘들다. 갈색 피부에 손가락까지 달렸다. 팔꿈치 못 미쳐서 끼운 흔적이 보인다.

이십일 세기 최신 의학 기술 못지 않은 솜씨다. 도대체 누가 의수를 만들었을까? 그것보다 더 큰 의문은 장천이 왜 팔을 잘렸냐다. 천산마 같은 고수와 싸우다 잘렸나?


내가 신기한듯 의수를 쳐다보자 장천이 의수를 들어올려 자세히 보여주며 말했다.


“천산마의 검을 이 의수로 막지 못 했다면 목이 잘린 건 나였다. 의수가 나를 한 번 살렸고 또 한 번 살린 건 너다. 꼼짝없이 천산마 검에 죽는 줄 알았는데 네가 벌떡 일어나 천산마를 찌르는 것 보고 놀랐다. 두 번이나 검에 찔리고도 멀쩡한데 너 혹시 불사신이라도 된 거냐?”

“하하, 여긴 꿈이잖아. 안 되는 게 뭐 있겠어?”

“헛소리를 하는 거 보니까 너 아무래도 머리를 심하게 다친 것 같다.”


장천이 농구공을 쥘 것 같은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 여기저기를 눌렀다. 혹시 어디 눌려지는 부분이 있는지 검사하는 것 같다.


검에 찔린 배가 문제지 머리는 괜찮다. 송곳으로 뱃속을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 덕분에 주사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은 사라졌다. 더 큰 통증이 작은 통증을 삼킨 것이다.

그래도 견딜만하다.

방금 배를 만져봤는데 천산마에게 찔린 상처가 말끔히 나았다. 꿈이라서 피부 재생 능력이 엄청나다. 이 아픔도 꿈을 깨면 사라질 것이다.


“가자”

“어디로?”

“작전에 실패하면 모이기로 한 우리 9조 집결 장소로 가야지. 몇 명이나 살았을까?”


그렇구나!

정윤수 암살 작전에 실패한 9조는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살기 위해 도망친 조원들이 어딘가에선 모일 것이다. 아마 암살 작전 전에 모일 장소를 미리 정해 뒀을 것이다.


“잠깐, 근처에 계곡 있지. 가서 얼굴 좀 씻자”

“천산마가 죽었으니까 쫓아오는 놈도 없을 거다. 얼굴도 씻고 물도 마시고 가자”


장천을 따라 졸졸졸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갔다. 꿈이 깨기 전에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 가장자에 쪼그리고 앉아 내 얼굴을 비춰봤다. 얼굴을 보는 순간 털썩 주저앉았다. 뾰족한 돌멩이가 엉덩이를 찔렀지만 아픈 줄 몰랐다.


“이게 내 얼굴이라고?”


웬 젊은이가 불신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웅덩이에 비친 이 남자는 누구인가?

난 이렇게 잘 생기지 않았다. 내 얼굴은 찐빵처럼 납작하고, 눈은 떴는지 안 떴는지 모를 정도이고, 코는 광대뼈보다 낮다. 난 이렇게 크고 맑은 눈은 티브이에서만 봤다. 이건 내 눈일 리 없다.


날카롭게 솟은 코와 올라간 입꼬리가 오만하게 보인다.

난 단 한 번도 오만한 표정을 지은 적이 없다. 납작한 코와, 커다란 입, 바람이 송송 통하는 이빨론 죽었다 깨어나도 오만한 표정을 지을 수 없다. 비웃음이나 안 사면 다행이다.


김병태는 지독하게 못 생겼고, 강담은 지독하게 잘 생겼다.

지금까지 지독하게 잘 생긴 강담이 지독하게 못 생긴 김병태 꿈을 꾸었단 말인가?

얼굴만 놓고 보자면 강담으로 살고 싶다. 하지만 매일 생사를 오가는 암살자로 살긴 싫다. 강담의 얼굴을 갖고 현실로 돌아가고 싶다.


“잘 생긴 것 아니까 작작 좀 봐라”

세수를 끝낸 장천이 허리춤에 걸린 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으며 걸어왔다.


“이게 내 얼굴 맞냐?”

“도대체 기억하는 건 뭐냐? 얼굴도 잊고, 과거도 잊고, 무공은 보나마나 기억나지 않을 테고 참 암담하다”

“내가 무공을 익혔다고?”

“말을 말자. 여기서 너 기억 살리려다간 한도 끝도 없을 테니까 가면서 이야기하자”


장천과 나란히 숲속을 걸었다.

나보다 장천은 머리 하나가 더 있는 거인이라서 보폭을 맞추기 힘들다. 난 반 뛰다시피 하며 걸었다.


“나는 어떤 놈이었냐?”

장천에게 가장 묻고 싶은 말을 했다. 목숨 걸고 장천이 날 구해주려 한 걸 보면 강담이 꽤 괜찮은 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꿈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강담이 어떤 인간인지 알아야 행동하기 편하다.


“글쎄··· 흠···. 넌 그렇게 좋은 인간은 아냐. 약간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고심 끝에 대답한 장천의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재수 없는··· 아니 강담이 재수 없는 인간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지?


“내가 왜 재수 없는 인간이지?”

“넌 좀 독단적이야”

“지금까지 내 맘대로 했다는 이야기냐?”

“어느 정도···”


탈명 군주 초반에 강담이 죽어서 어떤 성격인지 나오지 않는다. 무협지 특성상 주인공 빼고는 인물에 대한 깊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탈명 군주 주인공이 누구였더라?


“야 강담, 네가 참아라!”

“왜?”


장천이 나보고 강담이라 부르는데 내 입에서 ‘왜’라는 말이 나왔다. 난 불과 두 시간도 안 돼 김병태란 정체성을 잃고 강담이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엑스트라 생활을 오래 했더니 다른 이름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지나가는 행인 1, 총 맞고 죽은 병사 2, 주인공한테 얻어터지는 양아치 3, 이게 다 나를 거쳐간 이름이다. 지금까진 긴 이름이었는데 짧은 강담이란 이름이 맘에 든다.


“그럴 일이 있어.”


짜식이 내 눈을 피하며 말하는데 뭔가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뭘 참으란 말인가? 그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밤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갈길나무, 온갖 나무들이 경쟁하듯 하늘을 향해 치솟은 숲속을 한참 걸어갔다. 그러다 작은 공터가 나왔다. 숲이 원형 탈모 걸렸는지 그곳만 동그랗게 나무가 없었다. 장천이 멈춰서 하늘을 보길래 나도 따라했다.


무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장천은 엄마다.

엄마 따라 가는데 쫙 뺨을 맞았다.

장천이 아니라 웬 여자한테 맞았다. 무성한 이파리로 뒤덮인 나뭇가지가 흔들리더니 웬 여자가 호랑이처럼 튀어나와 내 뺨을 후려갈긴 것이다.


‘쫘악’ 찰진 타격음과 함께 턱 날아가는 줄 알았다.

나홀로 집에 캐빈처럼 양손을 뺨에 대고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여자를 쳐다봤다. 그 와중에 여자가 엄청 이쁘다. 우리처럼 위 아래 검은 옷을 입었는데 얼굴이 눈부시게 하얗다. 긴 속눈썹에 탱글탱글한 눈이 전지현을 닮았다.

전지현은 한 대에 만족 못하고 또 다시 손을 쳐들며 표독스럽게 말했다.


“조원들을 죽이고 너만 살아 돌아왔냐 이 나쁜 자식아!”

“저기요··· 그쪽이 말하는 조원들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난 김병···”


쫘악, 저번엔 오른쪽, 이번엔 왼쪽으로 얼굴이 돌아갔다. 여자에게 말하려고 뺨에 대고 있던 손을 내린 게 실수였다. 아아아악, 입밖으로 강냉이가 날아가는지 눈으로 추적하며 비틀거렸다. 내 평생 이렇게 찰지게 뺨을 맞은 건 처음이다.


“저기요 누구세요? 누구신데 제 뺨을 교회당 종치듯이 때리는 겁니까?”


저 자식 죽여버리겠다며 갈갈이 날뛰는 여자를 장천이 막지 않았으면 난 죽었다.

장천이 여자 팔을 잡고 한쪽으로 끌고가서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데 다 들린다. 여자가 악을 썼기 때문이다.


“강담 조장이 절벽에 떨어진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다. 수림아 네가 이해하라.”

“그럴 리 없어요. 저 자식 기억을 잃은 척하는 거예요. 저 새끼 때문에 우리 조원들이 무더기로 죽었어요. 내 말대로 시간을 들여서 계획을 추진했으면 조원들이 죽지 않았을 텐데 저 새끼가 앞뒤 안 가리고 급하게 공격을 시켜서 죽은 거에요. 저 새끼 죽이고 나도 죽을래요”


새끼, 쌔끼 하는데 내가 지 새끼도 아니고 정말 억울하다.

왜 내가 강담의 죄를 뒤집어써야 한단 말인가?

난 엄연히 김병태인데. 그렇다고 여자에게 내가 김병태라고 밝힐 수도 없다. 그랬다간 이 새끼가 말도 안 되는 수작을 피운다면 내 몸이 납작해질 때가지 밟아댈 것이다.


정말 무림이 싫다.

천산마 손을 벗어났더니 이젠 수림이란 여자가 날 죽이려 한다. 무림은 날 죽이려는 인간들로 득실댄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꼴을 당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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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10. 암살의 서막 24.03.05 20 0 10쪽
25 9. 암살의 서막 24.03.04 1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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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7. 암살의 서막 24.02.28 20 0 10쪽
22 6. 암살의 서막 24.02.26 19 0 9쪽
21 5. 암살의 서막 24.02.23 23 0 9쪽
20 4. 암살의 서막 24.02.22 20 0 8쪽
19 3. 암살의 서막 24.02.20 21 0 11쪽
18 2. 암살의 서막 24.02.19 2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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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 당주 암살 24.02.12 26 0 9쪽
14 3.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8 33 0 11쪽
13 2.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7 30 0 9쪽
12 1. 최고 미인과 하룻밤 24.02.06 2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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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2.01 30 0 10쪽
9 1. 열흘 안에 못 죽이면 내가 죽는다. 24.01.31 31 0 11쪽
8 4. 보름 안에 살인을 24.01.30 29 0 9쪽
7 3.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9 30 0 10쪽
6 2.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6 40 0 11쪽
5 1. 보름 안에 살인을 24.01.25 34 0 10쪽
4 4. 어쩌다 무림에 24.01.24 3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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