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우선은 벗어나야 숨을 쉬겠다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런 기가 막힌 우연이 있나.
여기 김유정은 처음 먹은 술에
맛이 가고,
나는 이제껏 먹어 본 술 중에
이런 맛은 없어 기절했다는 건데
둘 다 처음인 것이랑 같은 말을
내뱉었다는 것으로 억지스런
현상을 겪을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 무슨 로또에 걸릴 확률도
아니고 그냥 말 한번 겹쳤다고
이런 일을 겪는 다면 대한민국
천지에 수십 명, 수백 명이 타임
슬립 하겠네. 너도 나도 타임슬립
경험담이 줄을 이을 테고 뭔 말
갖지도 않은. '
우연을 억지로 끼워 맞춘다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게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혹여 또 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는지 싶어 곧바로
질문했다.
“ 그 말 말고 또 별다른 건
없었어? 평상시 내가 할 리 없는
행동을 했거나 특별한 일이
있거나 하진 않았나? "
“ 글쎄. 나 역시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던 터라 내가 온전한 정신
이었다면 자네가 그리 나발을
열심히 불어대도록 두었겠는가. "
별다른 게 없었다라...
분명 무엇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귀를 쫑긋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허무 그 자체였다. 갑자기 기운이
쑤욱 빠지는 걸 느끼며 말이 없자
눈치 빠른 다온은 두 사람이서
해야 할 말이 있으려나 싶어
요기 거리라도 시키고 있을 테니
이야기 나누고 있으라며 살며시
자리를 피해주었다.
“ 유정이 ”
“ 왜? ”
“ 솔직히 어제는 좀 평상시와
다르긴 했어. "
“ 무? 무엇을 말야? ”
녀석은 다온이가 부재하기 무섭게
말이 가벼워졌다. 이로 보았을 때
분명 유정이와 석환이는 제법 친한
사이인 듯.
“ 주루를 가자고 제안한 것은 내가
아니고 너였거든. "
“ 내가? ”
뜻밖의 대답이다. 아무래도 아깐
다온이가 있어 차마 이 말까진
하지 못하였었나보다.
“ 그래서 소아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했지. 평소라면 내가
아무리 꾀어도 절대 넘어오질
않았으니. "
그럴지도 FM같은 스타일이라
어머니가 아니 된다면 무조건
따랐을 테니. 그런 유정이에게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인지
그건 그렇고 소아라니
그 사람은 또 누구?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고 하는
석환의 물음에 대충 때려잡은 난
천천히 말을 이었다.
“ 내가 소아낭자와 딱히 일이
무어 있을라고. ”
“ 좀 솔직해 보지. 사람 마음이
어찌 한길만 있어 살다보면 다른
길로 갈 수도 있고 "
‘ 어쭈~ 요것 봐라. 너라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
김유정이라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집안에서 맺어준 이를 두고
한 눈을 팔까? 그리고 어머니
무서워서라도 큰일 날 소리지.
근데 정말 유정이가 먼저 술
먹자고 했다고? 먹어보지도
않은 것을 먹자고 했다니 유정아
진짜 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빙의든 타임슬립이든 처음엔
느끼지 못하다가도 어느 순간
번개를 맞듯 머리에 스쳐지나
가는 데 이건 뭐 완전 백지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유정이의 부모나
다온이를 통해 원래 유정이의
성격을 유추해서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 술 먹고 꽐라 속 기억은 술
먹으면 다시 떠오르기도 하는 데
석환이랑 다시 한 번 더 가봐야
하나. '
거기까지 생각하다 중단했다.
안 그래도 어머니의 눈 밖에 난
녀석이랑 또 같은 실수를 반복
한다면 영영 만날 수 없다. 그럼
돌아갈 방도도 찾기 어려워지니
그건 안 될 일이다.
“ 네가 생각하는 그건 절대
아니야. ”
“ 아니~ 내가 무엇을 이야기
하였다고.”
“ 정혼자를 두고 한 눈이라도
팔았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거
아니야? "
“ 진짜 마음이라도 준 것이야? ”
“ 야 너 진짜~ ”
“ 농일세. 농~ 내가 아는
유정이라면 그리 하지 못할
위인이지. 그냥 한번 던져 본
건데 뭘 그리 발끈하긴 이러니
더 수상해지는데? "
‘ 아~ 이 자식 어머니가 너랑
상종하는 거 싫어 하는 이유가
있네. 아 진짜 이걸 그냥~ '
완전 밉상 캐릭터다. 어떻게
유정인 이걸 친구라고 곁에 둔
건지. 능글능글 뱀처럼 아주그냥
놀리고 혼자 큭큭 거리는 게
‘ 다온이는 너한테 절~~대!!
안 준다. 요놈아~ 나중에 울고
불며 매달리지나 마라~ '
이때 문을 열고 상이 들어오며
뒤따르는 다온이를 발견한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다온이를
잡아 끌었다.
“ 가자. ”
“ 네? 오늘 내내 제대로 끼니를
채우시지도 못해 허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우선 식사부터 "
“ 내 입맛이 떨어져서 넘어가지
않을 것 같구나. 무엇보다 물어
볼 것이 더 이상 없으니 자네도
몸이 성치 않은 데 여기서 충분히
먹고 쉰 뒤 알아서 돌아가게~ "
“ 오라버니~ ”
“ 아무래도 몸이 상한 것이 완전히
낫지 않았는지 머리가 아프구나.
돌아가서 쉬어야겠다. "
“ 그치만 ”
“ 다온아. 시집도 가지 않은
처자가 아무리 오래비의 벗이라고
하여도 외간남자가 아니더냐.
오래 시간을 두어서 좋을 게 없어.
오래비 때문에 괜한 구설수에
오른다면 어찌 어머니의 얼굴을
뵐 수 있겠느냐. 오늘은 우선
돌아갔다 기회를 봐 다시
나오도록 하자꾸나. "
“ 유정이~ ”
“ 내가 그 날 기억이 도통
생각이 나질 않으니 아무래도 좀
시간이 필요할 듯 하이. 혹여
자네도 생각이 나는 게 있다면
내게 연통을 주게. 이리 추운 날
밖에서 보지 말고 따뜻한
아랫목이 있는 집에서 그래!
자네 집에서 보세. "
더 이상 있어봐야 소득
하나 없을 것을 시간 낭비이겠다
싶어 난 서둘러 다온이를 일으켜
세웠다. 어차피 잠시 나온 셈이라
곧바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못 내 서운해 퉁퉁
부은 얼굴로 따라 나서는 다온이를
보자니 아무래도 들어가기 전
달래 주어야 할 것 같아 일부러
시전을 둘렀다. 나라면 뭘 그렇게
삐져서는 그러냐고 뭐라 톡 쏘아
붙였겠지만 여기 유정이는
어디까지나 꽃바람 흩날리는
다온이 오빠 댕댕이 김유정이니
아까도 다온이가 들어 오지
않았다면 석환이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다 겨우 참았다.
‘ 난 다온이의 착한 오빠다.
난 댕댕이 캐릭터다~ ’
스스로 암시라도 걸어야겠다.
불쑥불쑥 26살 여자
김유정이 나오려고 하니 참.
“ 시간이 없으시다 면서 뭣
하러 이 곳에는 들르십니까? "
빨리 가지 않고 여긴 왜 오냐고
쏘아붙이는 다온이다. 이에 난
살포시 옆으로 바싹 붙어서
말을 하였다. 꽃바람 후후
불어가며
“ 행랑아범에겐 네 옷감을 보러
가겠다고 해 놓고 그냥 빈손으로
가면 어머니께 괜한 소리를 듣지
않겠느냐. 오래비가 벗을 잃을까봐
걱정되어 일부러 핑계까지 둘러
대며 나를 데리고 나와 준 너를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지. "
“ 그냥 맘에 드는 게 없었다
말씀 올리면 그만 인 것을요. "
“ 아직도 모르겠느냐? ”
“ 무엇을 말입니까? ”
“ 멀리 내다보시는 분이시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너를 믿고
나를 맡기었는데 눈에 보이는
거짓말에 속으실 분이 아니니
실망은 배가 되지 않겠느냐.
최소한 무엇이라도 건지고 들어
간다면 알면서도 한번은
눈감아주실 것이다. "
“ 네에~네에 알겠습니다아. ”
눈치 빠른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되어서 그렇다고 이야기를
해 주면 조금은 풀릴 줄
알았는데 머리로만 이해했는지
표정은 여전히 삐친모드.
‘ 으이구 그렇게 서운해?
하기야 제일 가까운 오빠 친구들이
멋져 보일 나이기는 하지. 그치만
다온아 세상의 절반이
아~ 조선시대라면 아주그냥
뒤 덮을 정도로 많은 게 남자일
텐데. 이 사람도 만나보고
저 사람도 만나 봐야지. 에휴...
뭘 그리 목을 매니. '
믿었던 김유정오작교가
1시간도 못 버티고 부서진데다
견우직녀는 칠월칠석이라는
날이라도 딱 정해져 있지만
다온이와 석환이의 만남은
기약도 없어 더더욱 표정이
어두워지기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다온이를 불렀다.
“ 다온아 ”
“ 네. ”
“ 사내란 무릇 바람과도
같단다. 오늘은 살랑살랑 봄바람
같다가도 순간 차가운 비바람으로
바뀔지 모르니 너무 기울지 말고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를 만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들이도록
해라. 내 아무리 아끼는 벗이라
고는 하나 핏줄보다 귀하겠느냐. "
“ 아...아니~ 오..오라버니도
참~ 전 그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재미있어 따라나선
것입니다. "
심증을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에
그냥 한번 찔러봤을 뿐인 데
제대로 낚이었다.
‘ 아유~ 귀여워. 어쩜 숨길 줄을
모르니. 입으로는 다 컸다고
하지만 으음~ 으음 이 언니
앞에선 아직 얼굴에 솜털이
그대로인 보송보송 애기인걸.
좋을 때다. 원래 다 그렇게
시작하지 후후.
뭘 새삼 부끄러워하기는 큭큭 '
“ 다온아~ 오라비 숨이 차구나.
천천히 좀 가자~ 포목점에 가기
전에 네게 어울리는 머리장식도
구경하고 말이다. "
귓불까지 빨갛게 물들인 채
먼저 성큼성큼 걸어가는 다온이가
귀여워 뭐라도 해 주고 싶다.
어쩌면 원래 몸 주인인 유정이도
그래서 다온이 앞에선 무장해제였을
테지. 그렇게 난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듯 앞서가는 다온이를
쫓아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 어머니 부르셨습니까? ”
사이좋은 남매가 오붓하게
외출을 마치고 들어온 것이
안채로 전달되었는지 오자마자
호출이 와 편한 옷으로 갈아
입지도 못하고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 다온이와 외출하였다고. ”
“ 네. ”
“ 좌중하고 있으라 했거늘 ”
“ 방 안에만 있으려니 답답
해져 오히려 머리가 아파오기에
다온이에게 부탁을 한 것입니다. "
“ 보름 후엔 휴학시기가 끝나고
곧 성균관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데 이리 상해서는 "
‘ 휴학 시기라니.
방학을 말하는 건가? ’
성균관에 유생들은 대과를
치르기 전까진 기숙생활을 하니
지금 내가 집에 있는 게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방학기간이라는 것이
이때도 있었나 보다.
‘ 하기야 성균관에 기혼자도
있으니 처자식 두고 독수공방은
무리지 암. 근데 결혼 안 한
솔로들에겐 차라리 학교에서
지내는 게 낫지. 집에 명절이다뭐다
하며 갈 때마다 취업은 언제 하냐
취업 하고 나면 결혼은 언제 하냐
도대체 끝이 없어 끝이 아직
유정이가 어려서 어머니가 결혼
이야기는 안 하는 모양인데
조만간 여기서도 그러겠지. 으~~ '
“ 내 말 듣고 있느냐? ”
“ 네? 네. ”
“ 걱정이구나. 올해 대사헌의
아들도 성균관에 입학 한다고. "
“ 네. 같이 수학하였으면
좋았겠지만 사형사제로도 충분히
지낼 수... "
“ 네게 벗이 그 뿐이냐? ”
“ 네? ”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 눈치를
대놓고 내신다. 대한민국에서야
초중고를 다니면서 아싸가 아닌
이상 최소 3~4명의 친구가 있기
마련. 뭐 그것이 모두 다 속내를
교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나 같은 경우도
이든이 외에 떨어져 있어서
그렇지 연락하는 쭈야가 있다.
그러니 유정이에게도 친구가
더 있겠지. 그러나 기억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내가 유정이 친구가
몇 명인지 그네들이 다 같이
동문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뭐라 답을 드릴 수 없어 침묵하니
그것을 알 리 없으신 꼰대의
눈빛이 한층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꼰대는 어느 세상에 존재한다.
부드러운 꼰대
엄한 꼰대
귀여운 꼰대
피곤한 꼰대 등등등
언젠가 나도 꼰대가 될 텐데
이왕이면 수식어가
웃기거나 재밌는 꼰대가 되고
싶다.
음허허허~
욕심 많은 사과c 였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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