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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여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20
최근연재일 :
2018.01.29 15:2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022
추천수 :
39
글자수 :
35,608

작성
18.01.29 15:23
조회
310
추천
4
글자
9쪽

강한 여자 7화

DUMMY

수배자




라이트에 비친 별장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숲에 둘러싸인 붉은색 2층 벽돌 건물 뒤편이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이어서 별장은 마치 산성 같았다. 불을 환하게 밝힌 별장은 차가 현관 앞에 도착했지만 조용했다. 엔진이 꺼져도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는다.


“내리시죠.”


앞자리의 사내가 먼저 내리면서 장미에게 말했다. 장미는 잠자코 차에서 내렸다. 이곳은 용인 근처에 위치한 백동그룹 명예회장 조홍인의 별장이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시 사내가 외면한 채 말했으므로 장미는 발을 떼었다. 시내에서 만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사내는 지금까지 말을 딱 세 마디만 했다. 방금 두 마디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계단을 오른 장미가 현관문의 손잡이를 쥐고는 잠깐 뒤를 돌아보았다. 검정색 승용차는 마악 출발하고 있었다. 앞좌석에 앉은 두 사내의 옆모습이 보였다가 곧 지나갔다.


현관문을 연 장미는 숨을 삼켰다. 불을 환하게 켜놓은 응접실이 무척 넓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으므로 장미는 주춤했다.


“들어오세요.”


그때 옆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장미가 머리를 돌리자 단정한 차림의 중년 여자가 옆쪽 문에서 나왔다.


“2층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자가 안쪽의 계단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도 장미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장미가 든 가방을 본 모양이다.


“가방은 놓고 가세요, 아가씨. 제가 방에 가져다 두겠습니다.”


그러더니 덧붙였다.


“아가씨 방은 2층 복도 왼쪽 방입니다. 방문 앞에 꽃병이 놓여 있어서 찾기 쉬우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옷가방을 그 자리에 내려놓은 장미가 인사를 했지만 여자는 시선을 들지 않았다. 장미는 계단으로 다가갔다. 조홍인은 6천에 한 달 계약을 했다. 그러고는 김희선에게 선금으로 3천을 보내왔다. 잔금은 한 달 후에 준다는 것이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면서 장미는 등에 닿는 여자의 시선을 느꼈다. 한 달 동안 이곳에서 생활해야 되는 것이다. 조홍인은 별장에서 일절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한 달, 30일, 7백 20시간이다. 잠자는 시간은 8시간씩 2백 40시간. 밥 먹고, 씻고, 화장하고, 쉬는 시간을 하루 10시간 잡으면 3백 시간, 그리고 조홍인이 하루에 한 번씩 찝쩍거린다면 그걸 한 시간씩 잡고 30시간이다. 그동안 별 계산을 다해봤지만 역시 제일 견디기 힘 든 것이 그 30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30시간에 6천이다. 시간당 2백이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 위안이 되었다.


계단을 오르자 바로 2층 응접실이 드러났다. 소파에 앉아 있는 조홍인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조홍인이 웃었다. 온 얼굴이 주름살투성이였다. 그리고 반듯하지만 생기가 없는 저 틀니. 틀니를 볼 때마다 장미는 구역질이 났다.


“오, 왔구나.”


조홍인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셨어요, 회장님?”


장미가 웃음 띤 얼굴로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어, 여기 앉아라.”


옆쪽 소파를 손으로 가리켜 보인 조홍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동안 더 예뻐졌구나.”


“고맙습니다, 회장님.”


“너하고 같이 지내려고 이 별장에 오랜만에 들렀다.”


“너무 좋아요, 회장님.”


“아래층에서 아줌마 보았지? 그 사람 음식 솜씨가 아주 좋다.”


조홍인이 흡족한 듯 다시 얼굴을 펴고 웃었다.


“나도 만사를 제쳐두고 너하고 둘이서만 여기서 지낼란다. 흐흐흐.”


“저도 좋아요.”


남은 돈은 3천만 원이다. 선금 3천은 김희선이 먼저 주었으니 잔금은 그 여자의 몫이다.


이장미는 본명이 장미였다. 인터넷 사기로 이미 수배된 인물. 나이는 스물네 살, 삼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 1년쯤 지난 작년 초에 인터넷 사기로 수배자가 되었다. 박용수는 장미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고 있는 집 주소에다 장미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형, 집주인이 곧 올 거야.”


봉천동의 다세대주택 앞에 섰을 때 황택수가 말했다. 오늘은 일이 많아서 팀원이 두 개 조로 나뉘었다. 백용철과 천상태는 지금 신설동에 가 있다. 잠자코 걷기만 하는 강한의 뒤를 따르며 황택수가 말했다.


“오늘 보증금 돌려주면 내일 전세 입주자를 받을 수 있다는 거야. 집주인한테는 우리가 은인이지.”


강한은 앞장서서 골목으로 들어섰다.


채무자 윤명심. 서른일곱 살. 현재 채무 5백. 각서, 현금보관증 등 자료가 완벽해서 5백만 가져가면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지하실 방의 월세 보증금 5백이 살아 있는데다 집주인은 방만 빼주면 보증금을 당장이라도 준다는 것이었다. 주인은 지하방을 2천 전세로 내놓을 작정이었다. 따라서 주인과 삼자대면을 하고 보증금을 그 자리에서 대신 받은 후에 서비스로 지하 방의 세간을 골목 밖으로 내놓아 주면 된다. 다세대주택이어서 철제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으므로 그들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방의 현관문을 밀자 현관문도 열렸다.


“누구세요?”


안에서 묻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자가 나왔다. 창백한 얼굴, 낡은 스웨터에 치마를 걸친 마른 체격의 여자가 황택수를 보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아줌마, 오늘은 끝내야겠는데.”


좁은 거실 겸 주방으로 밀고 들어선 황택수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집주인이 곧 올 거요. 보증금 갖고. 무슨 말인지 아시겠져?”


강한은 벽에 붙여놓은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황택수의 말이 이어졌다.


“우린 두 달치 이자도 계산 안 했어. 그만하면 크게 봐준 거여. 아시겠져?”


그때 옆방에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나왔다.


“엄마.”


겁에 질린 아이가 여자의 한쪽 다리에 매달렸다. 여자가 아이를 안으며 말했다.


“그러세요.”


여자의 시선이 강한에게로 옮겨졌다. 시선을 받은 강한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여자의 눈에 초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강한의 뒤쪽을 향한 채 말을 이었다.


“가져가세요.”


“엄마.”


아이가 다시 부르자 쪼그리고 앉은 여자가 두 팔로 안았다.


“오냐, 아가.”


“우리, 그럼 어디로 가는 거야?”


아이가 또 묻자 여자는 머리만 끄덕였다. 그때 황택수가 말했다.


“아줌마, 우린 신사적으로 하는 거요. 다른 놈들 같았으면 벌써 두 달 전에 끝냈다구. 아시겠져?”


강한은 벽에 등을 붙이고 아이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토요일이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고 일찍 돌아온 것 같았다.


“엄마, 우리 어디로 가?”


하고 아이가 다시 물었을 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삼십대쯤의 비대한 사내가 들어섰다.


“아이구, 먼저 와 계셨네.”


사내가 황택수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집주인이었다. 보증금을 받고 월세 계약은 했지만 쫓아내고 싶어서 안달을 하던 중에 일이 잘되느라 그런지 황택수하고 말이 통한 것이다. 주인은 손에 돈 가방을 쥐고 있었다. 물론 보증금이었다.


“자, 그럼 시작을 하실까요?”


서둘러 방바닥에 앉은 사내가 웃음 띤 얼굴로 황택수를 보았다. 그러고는 힐끗 옆쪽에 앉은 강한에게 시선을 주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강한의 분위기가 조금 걸린 것 같았다. 그러나 강한이 외면했으므로 주인은 머리를 돌려 여자를 보았다.


“계약서 갖고 있지요? 여기 보증금 가져왔으니까 받았다는 영수증 써주시고······.”


그때 강한이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주인이 멍한 얼굴로 강한을, 그다음에는 황택수를 보았다. 황택수도 눈만 크게 떴으므로 주인의 시선이 다시 강한에게로 옮겨졌다. 강한이 주인을 노려보았다.


“이 돼지새끼가 아주 나쁜 놈이구만. 야, 이 개자식아, 월세 보증금만 돌려주면 바로 방 빼게 되는 거냐? 이런 호로 자식이 다 있나. 너, 잠깐 이리로 와 봐.”


하면서 강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멱살을 잡고 비틀어 올렸으므로 금방 숨이 막힌 주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너, 이런 식으로 돈 없는 사람 몇이나 길거리에다 내팽개쳤어! 말해.”


“이유, 숨······.”


사내는 강한의 멱살을 쥔 손을 잡았지만 힘으로 당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검붉게 된 사내가 발버둥까지 치자 강한이 손을 풀면서 벽에다 밀었다. 쿵, 소리와 함께 등과 머리를 벽에 부딪친 사내가 주저앉았다.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요.”


강한이 온몸을 굳히고는 숨도 쉬지 않는 듯한 여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3초쯤이 지나서야 말을 알아들은 여자가 아이를 안은 채 일어서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엎어졌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아이를 끌고 방으로 갔다. 강한이 다시 사내에게로 다가가 섰다.


“너, 이 새끼. 그따위 수작을 했다가는 내가 아주 회를 떠먹을 거야.”


하면서 가슴에 찬 가죽 칼집에서 길이 30센티미터짜리 회칼을 꺼내 사내의 볼에 붙였다. 찬 기운이 볼에 닿는 순간 사내는 몸서리를 쳤다. 두 눈은 잔뜩 치켜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죽은 동태 눈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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