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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여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20
최근연재일 :
2018.01.29 15:2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017
추천수 :
39
글자수 :
35,608

작성
18.01.29 15:24
조회
388
추천
5
글자
9쪽

강한 여자 10화

DUMMY

양 사장은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교포였는데 프로덕션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윤리지가 미국에 CF 촬영을 갔을 때 스텝들과 함께 두 번 정도 밥 먹은 인연뿐이었다. 사십대 초반으로 이혼남이며 돈 자랑을 끊임없이 해대는 바람에 윤리지는 구역질이 났었다. 신장은 1백 70도 안 되었고 머리에 가발을 심은 것 같았으며 배까지 나왔다. 그런 놈은 정말 싫었다.


“알았어.”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한 최강문이 생각났다는 듯이 서둘러 물었다.


“참, 내일 몇 시에 데리러 갈까?”


“그건 모르겠어. 아직 회장님이 안 오셔서 말야.”


“오늘이 월급날이지?”


최강문이 묻자 윤리지는 가만있었다. 알고 있는 사실을 묻는 건 제 몫을 확실히 챙기겠다는 표시였다. 5천에서 절반을 떼어가는 것이다. 하긴 한창수한테 다리를 놓아준 것도 최강문이었으니 할 말은 없다. 계약을 그렇게 했으니까.


 


“참, 여기 있다.”


한창수가 잊었다는 듯이 탁자 밑에서 가방을 집어 들고 내밀었다. 돈 가방. 만 원권 뭉치가 가득 든 가방은 묵직해 보였다.


“고맙습니다.”


윤리지가 웃음 띤 얼굴로 가방을 두 손으로 받았다. 무겁다. 그러나 돈 가방이란 무거울수록 액수가 많은 것 아니겠는가? 한창수는 무슨 영문인지 매번 현금이 든 돈 가방을 주었고 윤리지는 무거워서 싫은 적은 없었다.


돈 가방을 힘들게 들고 현관을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최강문이 먼저 돈 가방부터 받았다. 최강문은 별장 안에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윤리지는 밴에 오르고 나서 별장을 보았다. 밴의 유리창은 모두 짙게 썬팅이 되어 있어서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윤리지는 주방 쪽 창가에 서 있는 김 씨를 보았다. 김 씨는 뚫어지게 이쪽을 보고 있었다. 윤리지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김 씨가 저렇게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모습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정문을 나온 밴은 일차선 도로를 천천히 달려 내려갔다. 별장에 오갈 때는 언제나 이렇게 단둘이었다. 비밀을 공유하는 식구가 많을수록 지출이 늘어나고 위험한 것이다. 오후 5시 반으로 접어들어서 산길에는 벌써 그림자가 덮였다. 다른 때는 한창수가 오후 2시면 보내주었는데 오늘은 점심을 먹고 나더니 윤리지를 침실로 끌어들여 한낮에 다시 질펀한 정사를 치러야만 했다.


“어?”


하고 운전을 하던 최강문이 낮게 외쳤으므로 눈을 감고 누워 있던 윤리지가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밴이 멈춰 섰고 최강문이 투덜거렸다.


“이런 지기미, 웬······.”


윤리지는 최강문의 어깨 너머로 길 위에 떨어진 바위를 보았다. 옆쪽 벼랑에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최강문이 투덜거리면서 밖으로 나가더니 몸을 굽히고 바위를 들었다. 그때였다. 윤리지는 반대쪽 숲에서 나타난 사내 한 명을 보았다. 장신이었다. 사내가 거침없이 다가왔지만 바위를 치우는 데 집중한 최강문은 아직 모르고 있다.


“오빠!”


위기감을 느낀 윤리지가 차 안에서 와락 소리치자 최강문이 머리를 돌려 옆으로 다가온 사내를 보았다. 놀란 최강문이 허리를 편 순간이었다. 윤리지는 사내의 발끝이 정확하게 최강문의 턱을 강타하는 것을 보았다. 찍힌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박혔다가 떼어졌다. 한 번의 발길질에 최강문이 뒤로 반듯이 넘어졌고 사내가 그 위로 달려들었다. 놀란 윤리지가 밴 안에서 아우성을 쳤다.


“사람 살려!”


그때 사내가 허리를 펴더니 곧장 밴으로 다가와 운전석 문을 열고는 뒷좌석의 윤리지를 쏘아보며 말했다.


“찍소리 말고 그대로 있어.”


굵고 낮았지만 섬뜩한 목소리였다. 숨을 멈춘 윤리지에게 사내가 덮어씌우듯이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여기서 악을 써봐야 소용없다.”


그러더니 손을 펴고 내밀었다.


“자, 핸드폰을 이리 주실까?”


아아, 핸드폰. 그때서야 윤리지는 핸드폰을 떠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사내의 시선을 받은 윤리지는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왜 이러는 거죠?”


겨우 그렇게 물었지만 사내는 차 열쇠를 뽑아 주머니에 넣더니 잠자코 문을 닫았다. 윤리지는 사내가 이제 겨우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는 최강문에게 다가가 발길로 옆구리를 차올리는 것을 보았다. 최강문의 몸이 새우처럼 굽혀졌다. 사내는 주머니에서 테이프를 꺼내 최강문의 손발을 익숙하게 감아 묶었다. 그러더니 꿈틀거리는 최강문의 허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가볍게 들어 올렸다. 윤리지는 눈만 치켜떴다. 밴으로 다가온 사내는 뒤쪽 문을 열더니 최강문을 던져 넣었다. 최강문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정색한 나주 댁이 장미를 보았다. 깊은 밤, 주위는 조용해서 앞에 앉은 나주 댁의 숨소리까지 들렸다. 나주 댁이 한 모금에 소주를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금고 안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는 자식들도 몰라. 오직 영감만 알지.”


장미는 외면했고 나주 댁의 말이 이어졌다.


“영감은 별장을 오갈 때 손가방 하나만 들고 다녀. 그 손가방이 지금 금고 안에 있다구.”


“······.”


“그 손가방에 영감의 재산이 다 들어 있는 거야. 이건 내 생각이지만.”


술잔을 내려놓은 나주 댁이 장미를 보았지만 시선은 마주치지 못했다.


“주식 관계 서류, 부동산서류, 그리고······.”


나주 댁의 목소리가 낮고 굵어졌다.


“시디(CD) 알아?”


“뭔데요?”


“양도성 예금증서.”


그때서야 장미의 시선을 받은 나주 댁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쯧쯧 혀를 찼다.


“고액권 수표나 마찬가지야. 사채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바꿔 줘. 소지인한테 말야.”


“······.”


“저 영감은 나하고 지낼 때도 보통 몇 백억은 갖고 다녔지. 시디로 말야. 아마 지금은 더 있을 걸?”


장미가 다시 외면했고 나주 댁은 제 잔에 소주를 채웠다. 밤 12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로 별장생활 13일째.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했지만 장미는 이제 한 시간이 하루 같았다. 오늘 오후에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별장 뒷마당에서 평평 울다가 나주 댁한테 들켰다. 나주 댁은 잠자코 바라만 보다가 몸을 돌렸는데 밤에 장미가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갑자기 2층 침실 안의 금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한 모금에 술을 삼킨 나주 댁이 말을 이었다.


“아침에 영감이 산책 나갔을 때 침실 금고를 열고 20억만 꺼내자구. 그래서 10억씩 나누는 거야.”


놀란 장미가 다시 시선을 주었지만 나주 댁은 거침없었다.


“1억짜리 열 장이야. 5억짜리면 두 장씩 나눠 갖는 것이고, 10억 짜리면 한 장씩. 사채시장에 가면 금방 바꿔줘. 신원 확인도 필요 없어. 이자만 좀 셀뿐이지.”


“아주머니.”


“금고 비밀번호는 내가 알아. 지금도 죽은 마나님 주민등록번호를 쓸 테니까. 내가 외우고 있어.”


“······.”


“딱 그것만 빼내 나눠 갖자는 거야. 그러다가 기한 채우고 떠나면 되는 거야. 저 영감은 빼갔는지도 모를 테니까.”


“······.”


“다른 데로 옮기면 기회가 없어져. 본가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제주도 별장에 따라가도 거긴 금고가 달라. 열쇠까지 있어야 되는데다 번호도 둘이야.”


“아주머니.”


마침내 머리까지 저으며 장미가 정색하고 나주 댁을 보았다.


“전 안 해요, 아주머니.”


그러고는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풀었다.


“그러니까 절 끌어들이지 마세요.”


나주 댁은 한동안 장미의 시선을 받더니 이윽고 길게 숨을 뱉고 나서 외면했다.


“그러지.”


“미안해요, 아주머니.”


“아니, 괜찮아. 할 수 없지, 뭐.”


쓴웃음을 지은 나주 댁이 잔에 술을 채웠다. 2층 침실 금고에 접근하려면 장미의 도움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조홍인은 밖에 나갈 때는 꼭 침실을 열쇠로 채운다.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올 때도 그렇다. 다만 아침에 늦잠을 자는 장미를 침실에 남겨놓고 한 시간 정도 산책을 나갈 때는 예외였다.


“흔적도 안 남는 일이어서 그랬어.”


이제는 나주 댁이 외면한 채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이렇게 영감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한 달에 겨우 1백 50만 원 받는 내 인생이나 거기 인생이 비슷한 것 같기도 했고.”


나주 댁이 감정이 북받쳤는지 손등으로 눈을 훔쳤다.


 


“일어나!”


누가 흔드는 바람에 장미는 잠에서 깨어났다. 목소리는 나주 댁. 흐린 눈을 비비면서 눈의 초점을 잡고 나자 나주 댁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드러났다.


“큰일 났어!”


서둘러 몸을 일으킨 장미에게 나주 댁이 소리쳤다.


“이걸 어쩌면 좋아!”


“아니, 왜, 왜요?”


그때서야 장미는 옆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창밖이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조홍인이 아침 산책을 나갈 시간이었다. 그때 나주 댁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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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여자 10화 18.01.29 389 5 9쪽
9 강한 여자 9화 18.01.29 323 3 8쪽
8 강한 여자 8화 18.01.29 306 4 7쪽
7 강한 여자 7화 18.01.29 310 4 9쪽
6 강한 여자 6화 18.01.29 334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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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강한 여자 4화 18.01.29 347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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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한 여자 2화 18.01.29 475 6 7쪽
1 강한 여자 1화 18.01.29 808 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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