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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여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20
최근연재일 :
2018.01.29 15:2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3,976
추천수 :
39
글자수 :
35,608

작성
18.01.29 15:22
조회
385
추천
3
글자
9쪽

강한 여자 3화

DUMMY

강한이 청평의 모텔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3시 반.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은 것은 오는 길에 차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회사차를 끌고 왔는데 갑자기 엔진이 꺼져버리는 바람에 차를 길가에 버려두고 택시를 불러 탄 것이다.


“205호실.”


강한이 주차장에 세워진 검정색 승용차 조수석에 앉자마자 운전석에 앉은 천상태가 말했다.


“넷이 다 들어갔는데 방에서 떼로 하는지는 모르겠어.”


“문 사장이 데리고 들어갔다면서?”


강한이 묻자 앞쪽에 시선을 준 채로 천상태가 머리를 끄덕였다.


“여자 대주는 거지. 하나는 제 애인이고.”


천상태는 강한의 팀원으로 추적 담당이다. 대성금융 영업부는 5개 팀으로 나뉘어 있고 그중 하나는 정보팀이다. 정보팀은 채무자에 대한 자료 수집이 주 업무로 수사기관 출신의 팀장이 지휘한다. 그리고 각 팀은 행정, 추적, 수금 담당으로 세분화되었다. 행정은 서류 확인 및 증거 확보를 맡고 추적은 미행, 도청, 촬영 전문이다. 수금 업무는 팀장이 한두 명 정도의 악질 팀원과 함께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문 사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구.”


그렇게 결정을 내린 강한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문영수 사장은 대성금융의 고객으로 신용이 아주 좋았다. 1억대 단기자금을 자주 빌려 썼는데 거래를 튼 지 6개월이 넘었어도 실수 한 번 하지 않았다. 중국과 무역을 한다고 했지만 밀수업자라는 소문이었다. 그 문 사장이 유경금융에서 돈을 떼어먹고 잠적한 부동산업자 임윤호를 보증인으로 한 번 세웠던 사실이 김양희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유경금융과 대성금융은 경쟁관계였고 때로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안전빵인 대기업 동호그룹 어음을 서로 할인 해주려고 다뤘을 때가 그렇다. 어쨌든 김양희가 유경금융에서 임윤호 사건을 알아내 이쪽 자료와 검토해본 것은 서로 정보 교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경금융 쪽에 정보 제공자가 있을 것이었다.


“형, 얼마라고 했지?”


불쑥 천상태가 물었으므로 강한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며칠 전 KTX에서 약을 먹인 이장미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가?”


강한이 묻자 천상태가 가는 눈을 더 가늘게 뜨고 턱으로 모텔을 가리켰다.


“저기, 저 자식이 떼어먹은 돈 말야.”


“1억 8천.”


“우리한테 얼마 준다는데?”


“공식 대가는 받아야지.”


“몇 급?”


“최하 2급.”


받기를 포기한 상태는 1급으로, 그 돈을 받아내었다면 받은 금액의 절반이 공식 요금이다. 2급은 확률이 반반인 경우로 받은 금액의 20퍼센트가 수당이다.


“그렇다면······.”


다시 눈을 가늘게 떴던 천상태가 강한에게 물었다.


“김양희한테는 얼마 주기로 했지?”


“걔하고는 아직 이야기 안 했어.”


“나한테는 얼마 줄 건데?”


강한이 잠자코 천상태를 보았다.


스물여섯 살, 고아, 고졸, 나이트클럽 웨이터 경력 3년, 심부름 센터 경력 2년을 거친 후에 대성금융으로 옮겨왔고 군에는 가지 않았다. 강한이 겪어본 바에 의하면 눈치가 빠르고 민첩하지만 입은 무겁다. 믿을 만했다. 그래서 이 일을 맡긴 것이다.


“6백.”


“6백?”


눈을 치켜떴던 천상태가 곧 시선을 내리더니 머리를 끄덕였지만 기쁜 표정은 아니었다.


“6등분이야.”


앞쪽을 향한 채 강한이 말했다.


“김양희, 정보 제공자 그리고 우리 네 명 까지.”


“아니, 그럼······.”


천상태가 머리를 돌려 강한을 보았다.


“택수하고 용철이까지?”


황택수와 백용철도 팀원이었다.


 


문영수가 여자 한 명과 함께 모텔에서 나왔을 때는 한 시간 반쯤이 지난 오후 5시경이었다.


낮에 모텔에서 나온 남녀의 행동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강한은 채무자들 뒷덜미를 잡느라 자주 모텔 밖에서 기다렸던 덕분에 그 모습에 익숙했다. 남녀는 서로 외면한 채 차에 오른다. 꼭 싸우고 나온 것 같다. 웃는 꼴은 본 적이 없고 초조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문영수와 여자는 웃고 있었다. 차에 다가선 문영수의 어깨를 여자가 주먹으로 때리고 발끝으로 종아리를 가볍게 차기까지 하면서 웃었다.


“지랄들하고.”


차 안에서 그 꼴을 보던 천상태가 마침내 한마디 했다.


“방에서 떼로 놀다가 온 모양이야, 형.”


천상태가 이제는 틀림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문영수는 여자와 차에 타더니 힘차게 언덕을 올라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는 내막이 확실해졌다. 모텔에 숨어 있는 임윤호에게 문영수가 여자를 붙여주고 간 것이다. 방에서 넷이 떼로 놀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자, 가자.”


강한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말하더니 차에서 내렸다. 천상태는 조금 긴장한 것 같았다. 천상태는 몸도 빠르고 눈치도 빠르지만 주먹이 약했다. 이 세계에서 말하는 주먹이란 깡이고 독기다. 실력과 함께 근성이 필요한 것이다.


강한이 대성금융에 입사한 지 반년 만에 팀장으로 승진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강한은 잔인했고 철저했다. 그리고 겁나는 싸움꾼이었다. 한번은 채무자가 경호원 둘을 데리고 덤벼들었다가 셋 다 전치 3개월의 중상을 입고 입원을 했다.


강한의 싸움 기술은 태권도, 합기도, 유도, 가라테, 우슈, 킥복싱에다 이로 물고 손가락으로 눈이나 급소를 찌르는 방법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강한의 기술을 본 팀장 하나는 대번에 얼어서 그 후부터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다가 회사를 떠났다. 이 세계에서 소문은 금방 퍼진다. 강한이 특전사 출신으로 살인 기술 교관이었다는 소문까지 났지만 천상태는 물어 보지 못했다.


두 사람은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느라고 넋을 잃은 카운터 여종업원의 뒤를 소리 없이 지나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205호실은 복도 끝 방이었다. 양탄자가 깔린 복도를 걸어 방문 앞에 섰다. 강한의 눈짓을 받은 천상태가 노크를 했다. 천상태는 턱을 들고 눈썹을 내리깔면 아주 양순한 표정이 된다. 웨이터 경험을 통해 단련된 표정이었다.


“누구세요?”


안에서 여자 목소리가 울렸으므로 천상태는 턱을 더 들었다. 강한은 옆쪽 벽에 등을 붙이고는 천상태의 옆모습을 보았다.


“네, 히터를 잠깐만 손을 보려구요.”


천상태가 한껏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지금 여자는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을 것이다.


“1분이면 됩니다, 사모님.”


“잠깐만요.”


달그락거리며 체인을 푸는 소리가 났다. 만일 여자나 임윤호가 문을 열어주지 않더라도 들어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2층이니까 뒤로 돌아서 베란다로 올라갈 수도 있고, 옆방을 통해 건너가거나 여차하면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도 있다. 물론 부서진 문 값은 임윤호의 부담이며 신고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문이 열리자 천상태가 여자를 밀치며 안으로 들어갔고 강한이 뒤를 따랐다.


“어머머.”


하면서 여자가 놀라 비틀거렸지만 천상태가 문의 고리를 잠그면서 빙긋 웃어주었다.


“씨바, 입 닥치고 가만있어.”


강한은 그 사이에 침대 끝에서 엉거주춤 일어난 사내와 눈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임윤호는 키가 컸고 체중이 꽤 되었다. 1미터 85센티미터 정도에 100킬로그램은 될 것 같았다. 키는 강한과 비슷했지만 체중이 20킬로그램 정도 더 나가 보였다.


그때 임윤호가 입을 열었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두 놈이 온 거냐?”


지금까지 천상태는 강한의 실력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등을 문에 딱 붙이고 숨도 죽인 채 두 사람을 주시했다. 여자도 사태를 눈치 챈 것 같았다. 입을 두어 번 벌렸다가 닫더니 벽에 붙어 선다. 그때 성큼성큼 다가간 강한이 임윤호의 1미터쯤 앞에서 멈춰 섰다. 어깨가 내려갔고 두 손도 늘어뜨린 데다 상체까지 조금 앞으로 기울었다. 천상태는 강한의 자세가 꼭 고릴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굽어보는 고릴라.


“너희들 누구야?”


하고 다시 임윤호가 물었다. 임윤호의 어깨는 치켜 올라갔고 두 손은 허리를 짚었다. 눈을 치켜뜨고 있어서 기세로만 보면 압도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새끼들이······.”


임윤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더니 손으로 강한의 턱을 가리켰다.


“너희들, 유경에서 온 놈들 아니지? 내가 그쪽 팀은 다 안다. 이런 시발놈들, 얼치기 현상금 사냥꾼들 아녀?”


강한은 그래도 가만있었으므로 천상태는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분위기가 점점 일촉즉발의 상태로 되어간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감각이 둔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벽에 기대섰던 여자였다. 사십대 초반이나 중반쯤 됐을까. 얼굴 화장이 다 지워져서 부석부석했지만 반팔 셔츠 밑에서 솟은 젖가슴은 풍만했고 반바지를 입은 다리도 잘 빠졌다. 여자는 임윤호의 기세를 믿고 소리쳤다.


“당신들 누구야! 빨랑 안 나가! 젊은 자식들이 겁 대가리 없이 여기가 어디 라고 들어 와서는······.”


그 순간이었다. 천상태는 임윤호가 갑자기 허리를 꺾는 장면부터 보았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쪽에다 한눈을 팔았기 때문이다. 순간 신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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