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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여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20
최근연재일 :
2018.01.29 15:24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4,021
추천수 :
39
글자수 :
35,608

작성
18.01.29 15:21
조회
475
추천
6
글자
7쪽

강한 여자 2화

DUMMY

“뭐라구?”


와락 이맛살을 찌푸린 고동표가 강한을 노려보았다. 눈이 가늘어지고 얇은 입술을 앙다물고 있어서 섬뜩한 분위기를 풍겼다.


고동표의 별명은 살모사. 남대문 일대의 사채업자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재력을 가졌지만, 지금도 10년이 넘은 국산 똥차를 타고 30평짜리 연립주택에 사는 지독한 구두쇠 살모사다.


“너, 정말이야?”


하고 고동표가 확인하듯 이 사이로 물었을 때에야 뒤쪽에서 작은 소음들이 났다. 강한의 보고에 놀라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네, 사실입니다.”


시선을 내린 강한도 이 사이로 말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까······.”


고동표가 다시 눈을 가늘게 떴다.


“KTX에서 자는 사이에 돈 가방을 날치기 당했단 말이지?”


“네, 사장님.”


“네 옆에는 누가 앉았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그럼 그 여자가 가져간 건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인 강한이 시선을 내렸다. 이장미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고 저절로 어금니가 물려졌다. 음료수 병에는 성분은 모르지만 강력한 수면제가 섞여 있었다. 그 여자는 이동 매점 직원한테서 음료수 두 병을 사고는 한 병을 바꿔치기 해서 건넨 것이다. 물론 그녀가 준 명함은 가짜였다. 서울역에서 전화로 확인했더니 국일전자에 이장미란 여직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좋아.”


어금니를 질근질근 씹던 고동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책임을 져야겠다. 그 돈은 월급에서 깐다.”


“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7백 50만 원이니까 한 달에 1 백만 원씩 일곱 달 까고 마지막 달은 50만원이다.”


“네, 사장님.”


“이 자식아, 직원이니까 봐주는 거야.”


눈을 치켜뜬 고동표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병신 같은 놈, 돈을 옆에다 두고 자? 잠이 온단 말이냐? 현금을 옆에 놓고?”


“죄송합니다, 사장님.”


“보기 싫다. 내 앞에서 꺼져.”


강한은 허리를 꺾어 절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회전자금이 3백억 대가 넘는 사무실이지만 현재 사무실 안의 직원은 대여섯 명뿐이었다. 모두 수금을 나간 것이다. 말이 영업 사원이지 수금원인 것이다. 사무실 밖 복도로 나온 강한이 비상계단 옆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있는데 김양희가 다가와 동전을 넣었다.


“알바 하실래요?”


자판기를 향한 채 김양희가 물었기 때문에 강한이 옆모습을 보았다.


“무슨 알바인데?”


강한이 고동표의 대성금융에 입사한 것이 1년쯤 되었으니 영업사원 중에서는 고참 축에 들었다. 대성금융에는 스무 명 정도의 영업사원이 있는데 그중 팀장급이 다섯 명이고 강한은 그 팀장 중 한 사람이었다. 특히 강한은 대졸 사원인데다 영어가 유창해서 외국인 고객 전문이었다.


커피를 뽑은 김양희가 강한을 똑바로 보았다. 살결이 우유처럼 희고 매끄럽다. 눈이 맑은데다 항상 물기를 머금고 있어서 가냘픈 인상이었다. 팀장 중 한 명인 백기철이 은밀하게 말해준 바에 따르면 김양희는 고동표의 첩이라고 한다. 속된 말로 세컨드도 아니고 첩인 것이다. 그것은 단골로 데리고 노는 사이라는 뜻이었다.


“저기, 유경금융에서 돈 떼어먹고 도망간 부동산업자 한 사람이 우리 손님하고 친해요.”


김양희가 눈 주위를 붉히면서 말을 이었다.


“그건 유경금융 미스 최하고 저만 알고 있는 비밀이에요. 같이 서류정리를 하니까요.”


강한이 머리를 끄덕였다. 김양희와 옆 사무실 유경금융의 미스 최는 친구지간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도망 간 놈을 찾아내고 보상금을 받을 수가 있다.


 


요즘은 공중전화를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공중전화 부스는 항상 비어 있다. 역삼 전철역의 공중전화 부스에는 인조지만 꽃 화분까지 놓여 있어서 장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오후5시 반. 아직 퇴근시간 전이라 지하도 안은 한산했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자 곧 신호가 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딸깍.


“여보세요.”


동생 장선의 목소리. 그러나 장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심호흡을 세 번 하고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자 신호가 또 갔다. 한 번, 딸깍.


“언니.”


대뜸 장선이 장미를 불렀다. 둘 사이의 약속이다. 장선 주위에 경찰이나 수상한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이쪽 전화를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물론 처음 전화를 걸 때 받자마자 끊는 것은 장미라는 표시.


“어디니?”


장미가 묻자 장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응? 여기 동네 슈퍼. 라면 사러 나왔어.”


“엄마는?”


“집에.”


장미가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엄마 오늘 시장 안 갔어?”


“경비하고 싸웠대.”


“왜?”


“자리 때문에.”


어깨를 늘어뜨린 장미가 숨을 들이켰다가 뱉으면서 말했다.


“선아.” 


“응?”


“나, 누가 찾아오지 않았어?”


“뻔하지 뭐.”


“뭐가 뻔해?”


“경찰이 오늘도 다녀갔어.”


“······.”


“내가 엄마 모르게 나가 이야기해서 집에는 들어오지 않았어. 엄마는 모를 거야.”


“······.”


“좀 이상한 남자 둘이 어제 집 앞에다 차 대놓고 저녁때까지 있다가 갔어. 경찰은 아닌 것 같았는데······.”


“선아.”


“응?”


“저기, 너희 학교 앞에 오뎅집 있지? 너하고 같이 먹었던 그 맘씨 좋은 경상도 아줌마집.”


“아, 우정집. 근데 왜?”


“내가 내일 오전에 그 아줌마한테 봉투를 맡길 테니까 찾아가.”


“뭔데?”


“현금 5백만 원.”


놀란 장선이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장미가 또박또박 말했다.


“순대 싸갖고 가는 것처럼 갖고 가면 돼. 그 아줌마한테는 너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할 테니까 돈인 줄 모를 거야.”


“······.”


“그 돈으로 엄마 한약 지어드리고 네 용돈하고 생활비 써. 그래, 네가 알바해서 번 돈이라고 하면 되겠다.”


“언니.”


“그렇게 해. 넌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면 엄마가 알바 한줄 알겠지. 꼭 그렇게 해.”


“언니.”


“돈은 잘 숨겨두고. 네 친구들한테 나눠서 맡기든지. 넌 머리가 좋으니까 잘할 거야.”


“언니, 그 돈은······.”


“나쁜 돈 아냐.”


자르듯 말한 장미가 낮게 웃었다.


“진짜야.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이 돈은 깨끗해. 그럼 끊는다.”


그러고는 장선이 더 이상 잔소리를 하기 전에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 부스에서 나온 장미가 서너 걸음을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핸드백을 뒤져 명함 한 장을 꺼냈다.


“대성금융 영업부 제3팀장 강한.”


명함에는 그렇게 박혀 있었다.


“흥, 영업팀장?”


혼잣소리로 말한 장미가 쓴웃음을 짓더니 다시 발을 떼었다. 강한의 가방에는 명함만이 아니라 수금표와 이자를 계산한 낙서 장도 들어 있었다. 사채업자의 장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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