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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로 님의 서재입니다.

드래곤의 아들, 유희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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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로
작품등록일 :
2019.04.14 02:12
최근연재일 :
2019.05.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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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글자수 :
200,291

작성
19.04.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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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푸른 수호자 06

DUMMY

“허억··· 허억···”


정신이 어렴풋이 들었을 때, 나는 황야의 대지에 몸을 힘없이 누인 채였다. 온 몸에 식은 땀이 가득하다. 그리고 온 몸을 적신 땀보다 진한 오우거들의 푸른색 피가 대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끝났나. 끝난 것 같다.


더 이상 나를 공격해 오는 녀석들이 없었다. 란이 있는 쪽에서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전투가 끝난 것이다. 나는 힘없이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펴 보았다.


“···.”


살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와 오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 란이 서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모두 어딘가 잘리고 베인 채로 대지 위에 몸을 눕히고 있었다. 그 모두가 죽어 있었다.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라.


젠장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갑자기 이게 다 무슨 개 같은 상황이냐고.


하늘 위의 달은 여전히 떠 있다. 힘이 다 빠진 나를 조롱하듯이 저 위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란이 나에게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내 시야에 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란은 지쳐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이 나보다 격렬한 전투를 했기 때문일까, 녀석의 푸른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엉겨붙은 푸른색 핏물이 고여있다. 이곳 저곳 까진 곳도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성년의 드래곤도 아니고 헤츨링에게 오우거 수십 마리는 꽤나 버거운 상대였으리라.


“끝난 거야?”


내가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묻자, 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임마. 다 끝났다.”


털썩.


란이 내 곁에 드러 눕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돌려 란을 볼 힘도 없었다.


란이 문득 내게 물었다.


“너, 왜 그러고 있었던 거야?”


“뭐가?”


“왜 바로 오우거들을 죽이지 않고 있었던 거냐고.”


“···.나도 몰라.”


그렇게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차마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 두려워서 망설였다고는 죽어도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란은 마치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말을 꺼냈다.


“예전에 인간들 이야기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중에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검사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거든. 설마 그런 거냐?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 나는 고고하다. 그런?”


“···닥쳐.”


왠지 정곡을 찔린 나는 드물게도 거친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란은 닥치지 않았다. 녀석이 내게 물었다.


“음, 그래. 그건 그럴 수 있다 쳐. 하지만 말이야, 너 만약 지금 마주친 게 이 오우거들이 아니라 납치범들이었으면 어쨌을 거냐?”


“···어쩌냐니, 네 동생과 납치당한 마을 사람들을 구한다. 그게 끝 아냐?”


내 대답에 녀석은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만약 그 녀석들이 엄청 쎄면? 너만큼 센 인간이야 거의 없다 쳐도, 수가 많아서 도저히 납치범들을 죽이지 않고는 내 동생과 마을사람들을 구할 수 없다면? 그럼 어쩌려고 했냐?”


“···.”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랬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은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오늘의 지금 이 시간을 제외하면 말이다.


마리 경을 처음 만나 산을 내려가며 키메라들을 제압할 때도, 피오렌 마을에서 영주와 영주의 아들놈으로부터 누피네 가족들과 톰을 구할 때에도. 거기 있는 녀석들은 모두 내가 장난처럼 상대해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도 죽지 않고, 크게 다치지 않고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자가 아니다.


언제까지고 손 안에서 가지고 놀 듯 쉬운 녀석들만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 중 하나와 싸워야 할 일이 분명히 있겠지.


그럼 나는 또 오늘과 같이 상대를 죽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말이 없는 가운데, 란이 다시 한 번 내게 물었다.


“넌, 납치범들을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겠어?”


“···그건···”


나는 말을 흐렸다.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냐니. 당연히 없다.


란이 말했다.


“역시 드래곤에게 키워졌다고 해도, 넌 인간이군.”


생각해보면 드래곤들이 살인의 딜레마에 빠졌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방금 전 란의 전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드래곤들은 적을 죽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본인들이 이 세계에서 가장 고등한 생물이라는 자만심 때문일까, 아니면 본래 마족의 손에서 중간계를 지키기 위해 주신이 만들어낸 생물이라는 전설답게, 그 존재가 전투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까.


아마 란이 보기에 나는 지금 엄청 한심해 보일 것이다.


잠시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조용히 숨을 고르는 소리만 황야를 울렸다.


갑자기 란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뻗어 주문을 캐스팅 했다.


“디그(dig)”


란의 영창과 함께 황야에 거대한 구덩이가 패였다.”


그리고 란은 손을 뻗어 오우거들의 시체를 향해 영창했다.


“무브 오브젝트(move object)”


그 한 마디에, 수십 개의 오우거의 시체들이 한꺼번에 공중에 떠올라, 이내 구덩이에 쌓이기 시작했다. 이내 시체들이 정리되자, 란은 다시 한 번 마법을 영창해 구덩이를 깔끔하게 덮어버렸다.


“···괜히 날이 밝은 뒤에 마을 사람들이 봐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란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그렇게 말했다.


“일어나, 가자.”


란이 내게 손을 뻗었다. 나는 말없이 란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가. 아니면 아까 오우거 녀석들에게 하도 얻어맞아서 그런가. 하긴, 내 인생에 그렇게 화려하게 구타당한 적도 처음이니까.


잠시 말없이 걸어가다가, 란이 조금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나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납치범들은 나 혼자 찾는 게 좋겠어. 레온. 넌 우리 집에서 쉬고 있어. 남은 내 동생들도 지킬 겸.”


“···너희 집?”


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분하지만 지금은 란의 말에 이견을 달 수 없다. 란의 말처럼 지금 당장 납치범을 만나 납치범과 서로 죽고 죽이는 전투를 해야 한다면···. 나는 역시 자신이 없었다.


란을 따라 황무지를 걸어 도시 ‘말란’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서서히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오우거들이 어디서 나타난 걸까? 그것도 그렇게나 많은 수의 오우거가.”


문득 내 물음에 란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 생각엔, 아마 도시를 습격하러 가던 게 아닐까 하는데.”


“...오우거가 무리를 이뤄서 도시를 습격한다고?”


오우거에 대한 상식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된다고 혀를 내두를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방금 그 오우거 무리와 맞서 싸운 것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응. 오우거 녀석들, 정확히 도시를 향하고 있었어. 이곳은 알다시피 대륙의 최동부라 저 도시 말고는 아무것도 없고.

도시를 습격하는 것 말고는 달리 이유를 찾기도 힘든 걸."


음. 그런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다시 란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체 왜? 그것도 그렇게 집단으로? 오우거들은 원래 집단행동을 하지 않잖아?”


하지만 인간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드래곤으로서도 내 물음에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다. 이내 란은 무척 짜증스럽다는 듯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크러트리며 대답했다.


“아 몰라, 오우거랑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떻게 알겠냐!"


역시, 녀석도 방금 전의 전투로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을 만큼 지친 것이 틀림 없다. 란은 시원스럽게 내 어깨에 자신의 팔을 걸치며 말했다.


“자, 자.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일단 우리 집에 가자. 동생들 아침도 챙겨줘야 하니까.”


란과 나는 졸린 눈을 비비고 성문 앞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의 사이를 통과해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앞에서 '오우거 대 드래곤+인간 연합'의 대 혈투가 벌어진 도시 치고는 지나치게 느긋하구만.


나는 어느새 느긋하게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는 란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너 집도 있어? 동생들은 또 누구야? 너 여동생 한 명밖에 없다며?”


내가 묻자 란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그렇게 말했나? 아냐, 그보다 훨씬 많지. 소개해 줄 테니까 따라오라고.”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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