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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조회수 :
11,026
추천수 :
188
글자수 :
1,063,745

작성
22.06.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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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사로잔_늑대조와 사자조

DUMMY

기울어가는 햇살 한 자락을 배경 삼아 넓은 공터에 초보 용병들이 자리 잡았다. 중간에 도망친 사람들을 빼면 오십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사로잔과 해무찬은 초심자들은 늑대조와 사자조로 나누었다. 늑대와 사자의 구호를 알려주고 다루영에게 다음 순서를 맡겼다.


다루영은 그들에게 온몸의 근육을 푸는 방법과 무릎, 허리 관절을 위한 체조를 가르쳤다. 사로잔의 부탁으로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사로잔과 해무찬은 가까운 숲에서 나뭇가지를 골랐다. 무슨 일인지 따라온 아순치가 중얼거렸다.


“시범을 보인다니? 어차피 저들한테는 소용없어. 봐도 모를걸?”

“한 번도 본 적 없으니까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일단 보고 나면 눈이 달라져. 뭘 해야 할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거든.”


해무찬도 목검으로 쓸만한 단단한 나무토막을 골랐다.

“한 번 본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할 거야. 사로의 춤은.”

싱글벙글 웃으며 사로잔의 말에 힘을 실었다.


‘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거야? 춤이라니···.’

아순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천막으로 돌아갔다.

쉬고 있는 다른 용병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고 귀띔하고 다녔다.


초심자들 앞에 서서 해무찬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리는 도적 떼를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여태까지 검을 잡아본 적이 없다 해도 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 합니다. 사로와 저를 믿고 따르십시오. 오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겁니다.”


사로잔이 단단한 나뭇가지를 들고 일어섰다.

“스승님의 검법 솔거와 용와로 공격할 테니 막아.”

“좋아. 난 성성과 연호로 공격하지.”


사로잔이 두 조로 나뉜 사람들을 보고 손짓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늑대조와 사자조는 손뼉을 치며 각자의 구호를 외쳤다.


처음에는 속삭이던 소리가 반복할수록 조금씩 커졌다. 답답한 속이 뻥 뚫릴 정도로 크게 외치며 손뼉을 치자 마음도 들썩거렸다.


흥겨운 소리를 듣고 흩어져있던 다른 용병과 정예군도 뒤편으로 몰려왔다.

“뭐야? 공연하는 거야?”

“무슨 시범을 보인대.”

“시범? 저들도 용병 아냐?”


웅성거리는 소리에 호탄과 모주, 곽명까지 부장들과 함께 뒤편에 섰다. 곧이어 혜부거를 위한 의자도 마련되었다.


사로잔과 해무찬이 목검으로 쓸 나무토막을 사람들에게 내보였다.

“나뭇가지로 뭘 한다고? 저걸로 해태족이랑 싸우겠다고?”

“쉿! 저분이 우리 편이니 무조건 응원해야지.”


사로잔이 맡은 늑대조가 와아 함성을 터뜨렸다.

대체 무슨 시범이기에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다.


사로잔이 나뭇가지 끝에 기를 실었다.

가지는 힘있게 곧추서면서 예리한 기운으로 감싸였다. 발돋움 한 번에 그녀의 몸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솔개의 날개처럼 치솟은 그녀가 목검을 휘두르자 해무찬은 뒤로 펄쩍 뛰면서 공격을 막아냈다.

사뿐히 내려앉은 사로잔은 빙글 돌면서 목검을 휘돌려 해무찬의 반격을 피했다. 나무토막인데도 휘잉 소리가 바람을 갈랐다.


한 마리 붉은 사자와 검은 늑대가 바람을 할퀴며 아지랑이 같은 기운을 뿜어냈다.

그들의 기운이 쨍하고 부딪칠 때마다 사람들 손에는 땀이 맺혔고, 심장이 쿵쿵 뛰었다. 훅 밀려오는 뜨거운 기운에 손을 떠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다루영과 아순치였다.

‘뭐야? 여태까지 매일 봤어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전혀 달라. 내가 아는 사로와 찬이 아니야.’


다루영은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눈을 빛내는 해무찬을 보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순수하고 장난기 있고 어리숙한 해무찬이 아니었다.

심장의 빠른 움직임은 그녀의 얼굴까지 발그레 물들였다.


모주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장공거의 제자답군.’

사람을 제대로 찾아낸 것 같아 뿌듯했다.


그녀와는 달리 옆에 서 있던 호탄은 눈썹 사이에 힘을 주었다.

‘보통 무사가 아닌데? 첩자는 더더욱 아니야. 실력을 숨기지 않으니. 그래도 더 강한 검법까지는 들어가지 않는군.’


호탄은 일단 걱정과 불안을 접기로 했다. 정예군에게도 좋은 공부가 될 테니 잠자코 있었다.


의자에 앉아 사로잔을 보던 혜부거는 목과 가슴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다.

‘저 얼굴, 저 눈빛, 움직임까지 눈에 익어.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혜부거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입안에서 맴도는 이름을 찾아냈다.

‘거, 거···. 그래! 거모부!’


함께 수련하며 이름 때문에 놀림받던 사이였다. 혜부거 다음이 거모부라며 대련할 때 항상 짝이 되었다.

순단대륙에 갔을 때 두세 번 보았지만, 그것도 오래전 일이었다.

‘지금은 대로까지 올라갔다고 들었는데···.’


사로잔의 동작을 하나씩 뜯어보았다.

그의 눈이 허리띠에 멈추었다. 날고뛰느라 허리띠의 문양이 뒤집히고 펴지며 언뜻언뜻 지나갔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장공거? 아하하, 녀석···. 사로잔이구나. 그럼 저 해태족 녀석은 해무찬일 테고.’

모주가 보고한 명단에 따르면 이름이 사로와 찬이라고 했다.


‘엉뚱한 녀석들이네. 용각국에서 이름을 날릴 텐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와서 고생을 하누. 허허.‘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훌륭하게 자란 친구의 딸을 보니 뿌듯했다.


’나도 모른 척할 거다. 사로. 네가 언제까지 숨기나 볼까?‘

큰 소리로 웃으려 했으나 기침이 섞여 가슴이 따가웠다.


그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사로잔과 해무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늑대조와 사자조의 용병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사로와 찬 같은 무사가 스승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따르면 적어도 죽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완전히 초보자이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이라고는 기초 체력을 기르는 것과 기본자세뿐이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서 사자와 늑대의 춤이 잊히지 않았다.


솥단지와 수레를 정리하면서 틈틈이 배운 자세를 연습하고 서로 견주는 사람들을 보며 곽명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말했지만 혜부거 대장군은 껄껄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좋은 구경이니 자네도 즐기게. 우리에게도 좋은 공부가 되지 않나? 저들을 보니 시간이 짧은 게 안타깝군.‘


그들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호탄에게도 강력하게 주장했다. 처음에는 호탄도 찬성했다.

그런데 혜부거를 만나고 오더니, 그도 정반대로 돌아섰다.


”하하. 걱정하지 말게. 대장군님이 아시는 사람이더군. 자네도 들었을 거야. 장공거라고.“

”예. 장공거는 유명하지 않습니까?“

”타내 대모의 딸이라네. 찬은 해태족 뫄한의 아들이고.“

”에?“

곽명의 눈이 커졌다.


”그런 사람들이 왜 용병에 지원합니까?“

”견문을 넓히는 수행 중이라 하시네. 아무래도 용각국의 비르삼이 과제를 낸 것 같아.“

호탄이 검지를 입에 댔다.


”그렇군요. 그럼 저희도 모르는 것으로 해야겠군요.“

곽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


사로잔과 해무찬이 초보 용병들을 지도하는 사이 다루영은 의관 을나와 같이 일했고, 아순치는 서관 자홍과 시간을 보냈다.


자홍은 말을 못 하기에 수첩을 갖고 다니며 글로 썼다. 그가 글을 쓰는 속도는 다른 사람의 세 배 가까이 빨랐다.

말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대신 능력이 쓰기에 집중된 것처럼 보였다.


간역에서 필요한 물품을 보급받으며 잠시 쉬는 사이, 자홍의 마차에서 아순치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하, 둘이 애틋하기는 하지요.“

- 다들 부부라 하던데요. 찬과 다루는 부부이고, 당신과 사로는 애매하다고.

”그 둘이야, 곧 되겠죠. 많은 일을 겪다 보면 없던 정도 생기니까요.“


- 여기 오기 전에는 어디를 다녔습니까?

”올뫼국에요. 홍석산에 괴물이 나타났거든요. 어마어마한 검은 털바위가···.“


아순치는 말해도 될지 망설였다. 지금은 사람들이 털거미로 알고 있지 않나.

괴물 이야기가 흥미 있는 소재이기는 하나, 어떻게 괴물을 사람으로 돌렸는지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저 신기했다.


자홍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 괴물이 되었던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나요?

”아시는군요. 예. 사람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음귀라고 하지요?“

- 어느 쪽 사음귀였나요?


”어느 쪽이라니요?“

- 두 정귀 중에서.

”아, 그건 모릅니다. 반파홍귀가 아닐까 추측만 합니다.“


- 그럼 홍광파입니다. 암귀모 쪽은 염귀파이고요. 그들끼리도 치열하게 싸웁니다.

”두 파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이군요.“


아순치가 다른 질문을 하려는데 사로잔이 마차로 올라왔다. 손에는 물통을 들고 있었다.

”찻잎을 얻으러 왔습니다. 서관님 것이 제일 맛있더라고요.“


아순치가 사로잔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서관님이 백사귀파에 대해 잘 아시니 들어봐.“

”그래? 그럼, 귀사전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자홍의 눈이 배로 커졌다.

사로잔이 자리에 앉는 동안 그의 눈은 사로잔을 따라 움직였다.


- 귀사전을 어떻게 아십니까?

”그야, 용각섬을 찾으려고요. 우발수 너머라던데, 대체 우발수가 어디인지.“


- 찾을 수도 없거니와 알아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너른벌에서 태어난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자만 가능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 저도 모릅니다. 본 적이 없어서.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당신들이 사음귀의 봉인을 해제했다면 정귀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서관 자홍이 쓴 글을 읽고 사로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타나야 싸울 수 있으니까요.“

”사로,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냐? 어떻게 상대할지 방법을 알려달라고 해야지.“


출발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사로잔과 아순치는 부리나케 마차에서 내려왔다.


그녀의 자리는 행렬의 끝자락, 지금은 사자조와 늑대조가 된 사람들의 앞이었다.

그 옆이 아순치였고, 맨 끝에서 마감하는 역할이 해무찬과 다루영이었다.


”서관님 말이야. 아주 시원하게 잘 아시네. 어떻게 저렇게 잘 알지?“

”기록을 많이 보니 그럴 수도. 아무래도 서관의 역할이 그런 거니까.“

”요귀에 관해 샅샅이 물어봐야겠어. 우리도 대비해야 하니까.“

”좋은 생각이야.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빛뜰산이 어떤지 걱정이야. 엿새 정도면 도착할 텐데. 먼저 가볼 수도 없고. 월영국에도 익족이 없으니 천간이 아쉬워하겠구나. 비르삼도 익족이 없는 걸 무척 안타까워하시거든.“


”그 전령새가 축복인지 재앙인지 모르겠어. 존준이 걱정이야. 익족에 너무 많이 의지하니까.“

”대체 어떤 존재야? 전설을 보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는데.”

”늙지도 죽지도 않아. 마치 요귀처럼.“

아순치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전령새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너른벌에 겨우 여섯 마리뿐인데 익족이라 불리는 것도 우스웠다. 여태껏 자연스러웠던 것이 새로운 의문이 되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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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천계_아유라_연민 22.06.29 43 1 8쪽
93 천계_아유라_계획 22.06.29 41 1 8쪽
92 사로잔_위험 신호 22.06.28 42 1 11쪽
91 사로잔_임무 수행 22.06.28 48 1 12쪽
90 사로잔_설명과 증언 22.06.27 44 1 11쪽
89 사로잔_별의 심장 22.06.27 47 1 11쪽
88 사로잔_휘파람의 주인 22.06.26 40 1 10쪽
87 사로잔_정찰대 22.06.26 41 1 12쪽
86 사로잔_마른 협곡 22.06.25 46 2 12쪽
85 사로잔_흥겨운 만찬 22.06.25 43 1 11쪽
» 사로잔_늑대조와 사자조 22.06.24 43 1 12쪽
83 사로잔_의외의 임무 22.06.24 40 1 12쪽
82 사로잔_소년병 22.06.23 41 1 10쪽
81 사로잔_용병 모집소 22.06.23 43 1 11쪽
80 사로잔_소문과 소문 22.06.22 42 1 13쪽
79 사로잔_거리의 소년 경운 22.06.22 39 1 9쪽
78 사로잔_움트는 모략 22.06.21 42 1 9쪽
77 사로잔_마나고원 22.06.21 39 1 11쪽
76 사로잔_빛뜰산 22.06.20 40 1 11쪽
75 천계_호위무사 한울 22.06.20 41 1 10쪽
74 천계_염라성 아유라 22.06.19 40 1 10쪽
73 천계_진백성 율명 22.06.19 48 1 13쪽
72 아랑누_일상다반사 22.06.18 52 1 10쪽
71 아랑누_오두막의 공연 22.06.18 41 1 11쪽
70 아랑누_송환술 22.06.17 41 1 11쪽
69 아랑누_공조 22.06.17 41 1 10쪽
68 아랑누_유기의 사연 22.06.16 44 1 14쪽
67 아랑누_지하 사당 22.06.16 43 1 14쪽
66 아랑누_쇳디 22.06.15 43 1 11쪽
65 아랑누_극단 가빈 22.06.15 5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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