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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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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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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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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사로잔_소문과 소문

DUMMY

엄안은 용각국의 수도 사반보다 두 배가량 크고 몇 배 더 활기찼다.

세 개의 대륙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이니 이름에 걸맞게 건물이며 거리가 웅장하고 화려했다.


“역시 이런 곳에 와야 돈의 흐름이 보이지.”

아순치는 장터 한구석에 앉아 사람들의 옷차림이며 장신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사람이 붐비는 장터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들뜬 사람은 아순치 뿐이었다.


사로잔은 나침반을 따라 어쩔 수 없이 엄안에 들어왔으나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성문에 들어서자마자 바늘이 그녀를 가리키며 멈추었으니 불안이 더 커졌다.


해무찬이 검불의 콧등을 쓰다듬으며 나침반을 기웃거렸다.

“뭐야? 바늘이 멈췄어?”

“그러게. 기분이 안 좋은데.”

“바늘이 멈춘 곳에 사건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그렇겠군.”


“이렇게 번화한 도시에 성물이 있을 리 없잖아?”

다루영의 물음에 사로잔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물이 있다 해도 벌써 털렸겠지.”

“걱정하지 마. 기다리라는 뜻이니. 조만간 크게 터질 거라고.”

해무찬이 위로인 듯 아닌 듯 위로하고 있을 때 사람 구경에 지친 아순치가 다가왔다.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면, 우리 연주에 돈 내는 사람이 곱절은 많아지겠네.”

“일단 숙소를 정하고 연주할 곳을 찾아야지. 싸고 적당한 곳을 찾아보자.”

사로잔이 나침반을 주머니에 넣고 나귀의 고삐를 잡았다.


해무찬이 사로잔을 가로막았다.

“사로, 여태까지 엄청나게 고생했잖아? 여기선 제대로 된 숙소에서 머물자.”

“저 건물을 좀 봐. 우리 사정에 가당키나 할 것 같아?”


“너랑 나는 그렇다고 쳐. 하지만 다루는 안 돼. 적어도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줘야지. 깨끗한 물과 맛있는 식사가 필요하다고. 다루는 소중하니까.”


해무찬이 다짐이라도 하듯 진중하게 주장하니 사로잔은 웃음이 터졌다. 눈에는 눈물도 찔끔 맺혔다.


옆에 있던 다루영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난 아무래도 괜찮아.”

“어허. 이번에는 사로도 동의해야 할걸?”

해무찬이 양손을 허리에 받치고 턱을 치켜들었다.


“알았어, 알았어. 네 정성이 그렇다면야.”

사로잔과 해무찬의 대화는 만담꾼의 이야기처럼 즐거웠다.

겉으로는 티격태격하는 것 같은데, 묘한 재미가 있었다. 즐겁게 듣던 아순치가 끼어들었다.


“숙소라면 거대상단 지부에 부탁해 볼게. 오랜만에 아저씨 얼굴도 보고.”

“오우, 엄안에 아저씨가 있어?”

해무찬이 한껏 기대에 부푼 얼굴로 그를 보았다.


“상단에서는 지부장을 아저씨라고 불러. 숙부는 너무 과하잖아?”

아순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해무찬의 어깨를 툭 쳤다.

“어쨌든 오늘은 괜찮은 숙소에서 쉬자고. 계속 노숙했더니 온몸이 뻐근해.”


해무찬이 기뻐하며 다루영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제대로 씻을 수 있겠구나.’

다루영은 콧노래를 부르며 나귀의 고삐를 끌었다.


*


거대상단의 엄안 지부는 광검국 부망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오가는 상인들로 붐볐다. 상인들을 위한 숙소도 아담하고 정겨웠다.


지부장이 아순치를 알아보고 뛰어나왔다.

“소단주님 활약이 대단하시던데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뭘요. 다 친구들 덕분이에요.”

“엄안에는···, 역시 그 보물을 찾으러?”

지부장은 큰 덩치에 비해 목소리가 가늘고 높았다.


말할 때마다 눈웃음을 지으며 두 손을 비비는 모양이 비위를 맞추는 것인지 불안증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눈치가 빠른 것으로 보아 사업수완이 뛰어나 보였다.


아순치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모실루에 손님방이 마련되었고, 응접실에 저녁 식사까지 준비되었다. 오랜만에 술도 곁들여졌다.


해무찬의 입에 침이 가득 고였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성찬이야?”


황무지에서 며칠을 보내고, 엄안까지 오느라 몹시 집이 그리웠다. 울적했던 마음은 잘 차려진 식탁에 완전히 녹아내렸다.


사로잔도 허겁지겁 음식을 밀어 넣었다. 산에서 들에서 닥치는 대로 찾아 먹을 때도 감사하고 만족하긴 했다.

시골 장터에서 사 먹는 음식도 나름대로 먹을 만했으나 전문 요리사가 만든 요리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배불리 먹고 나른해졌을 때 지부장이 술 한 병을 더 들고 들어왔다.

“소단주님, 이번에는 어디서 오는 길인가요?”

“남쪽에서요. 빛뜰산을 넘어왔어요.”

“빛뜰산이라고요!”

지부장의 눈이 커지더니 입술이 떨렸다.


아순치에게 바짝 다가와 소리를 낮췄다.

“빛뜰산에 도적 떼가 반란을 일으켰다는데 용케 피하셨군요.”

“도적 떼라고요? 그런 기미는 없었는데···.”

“그 일로 엄안이 발칵 뒤집혔어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쉬쉬하죠.”


아순치는 빛뜰산의 상황을 설명하려다가 말을 바꾸었다.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한답니까?”

“저희야 속속들이 알 수 없지요. 도적 떼의 규모가 엄청나다니 토벌대를 파견하려나 봅니다.”


지부장이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눌렀다.

“소단주님, 절대로 빛뜰산에서 왔다고 하지 마세요. 흉흉한 소문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폭발할지 모르니까요. 태풍전야라고나 할까요?”

그는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하고는 조심스럽게 나갔다.


아순치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반란이라면 어느 정도 기미가 보였을 텐데.”

“아무 일도 없었잖아?”

해무찬이 기분 좋게 취해서 술잔을 들어 향기를 맡았다.


아순치가 생각에 빠져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사이 사로잔은 의자 등받이에 한껏 기대고 늘어져서 고개만 까딱거렸다.

“아치. 단서는 내일 아침에 찾아보자. 꼼짝도 못 하겠어.”


돌아보니 사로잔 만이 아니라 다루영도 피곤에 절어 눈만 간신히 뜨고 있었다.

‘하긴. 그동안 너무 강행군이었어.’

아순치도 남은 술을 들이켰다. 지금 고민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도 미치도록 피곤했다.


*


아침 식사 자리에서 중대 발표를 한 사람은 사로잔이었다.

어젯밤에 녹초가 되었던 모습은 어디 가고 새벽부터 얼마나 거리를 돌아다녔는지 찬 기운을 잔뜩 묻히고 돌아왔다.


아순치는 어디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해무찬과 다루영은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칠곡죽을 오물거렸다.


사로잔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탁자를 두드렸다.

“용병을 모집한대.”

“무슨 용병? 전쟁이라도 났나?”

해무찬이 잠꼬대하듯 웅얼거렸다.


“우리 무기를 써 볼 좋은 기회야.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거든.”

“말하는 것을 보니 이미 결심했구나.”

다루영이 숟가락으로 떠먹던 죽을 그릇째 들이마셨다.


그릇을 내려놓을 때는 눈을 반짝 뜨고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사로잔이 간다면 그곳이 어디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갈 것이니 다른 의견은 없었다.


“돈도 벌고, 새 무기도 시험하자고,”

“그러니까 무슨 용병?”

해무찬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빛뜰산 피홍의 난 토벌.”

순간 해무찬은 막 삼킨 물을 뿜을 뻔했다. 사래가 들어 기침을 해댔다.


“잠깐, 잠깐. 그러니까 지금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자고?”

해무찬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어허! 이 사람 이거. 나침반이나 따라가자고. 웬 용병? 여태까지 바늘이 가리키던 곳과는 반대 방향이야.”


해무찬이 뭐라고 하든 사로잔은 이미 결심을 굳혔다.

“이번엔 반대편이야. 빛뜰산 서쪽이라고.”


사로잔도 반쯤 식사를 마쳤을 때 아순치가 뛰어 들어왔다.

“친구들, 내가 뭘 알아냈는지 맞혀봐.”

“아치도 용병에 참가하려고?”

해무찬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 벌써 알고 있었어?”

“잘 다녀와. 엄안은 내가 지키고 있을게.”

해무찬은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였다. 앞으로도 계속 만족하고 싶었다.

성물이고 여행이고 다 그만두고 다루영과 함께 용각국으로 돌아가 혼인을 올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것도 없었다.


아순치도 꼬르륵거리는 배를 쓰다듬으며 죽을 삼켰다.

“상원이 혜부거 대장군을 토벌대장으로 천거했대.”


“월영국 최고 실세라는 그 상원?”

사로잔이 미리 공부한 내용을 기억했다. 권력의 실세라는 수식어는 대체로 좋지 않은 평가와 어우러지는 단어였다.


“응? 혜부거 대장군?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해무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로잔이 쯧쯧 혀를 찼다.

“거모부 대로와 동문이야. 어릴 때 우리도 만났잖아?”


“맞다! 무휼의 아버지도 혜부거 대장군 밑에 있었다고 했어.”

다루영도 현월에서 허신에게 들은 말을 생각해 냈다.

‘혜부거 대장군님이 권력다툼에 희생양이 되면서 특수부대는 해체되었소.’


사로잔은 어릴 때 보았던 혜부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는 풍채 좋고 위엄 있는 중년의 무사였다. 고향으로 돌아간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토벌대장이라니.


“지금쯤 은퇴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줄 알았는데? 타내 대모님처럼.”

해무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순치가 야무지게 죽을 떠먹으며 덧붙였다.

“맞아. 은퇴한 지 석 달도 안 되었대.”

“그런데 왜 토벌대장으로 추천하지?”

다루영의 질문에 그는 방문을 바라보았다.


인기척이 없는 걸 확인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혜부거 대장군은 살아있는 전설이야. 천간보다 인기가 높아. 병사들을 자기 몸처럼 아끼고, 지략이 뛰어나고, 아무튼 존경받는 분이지.”

“거의 백전백승이라고 들은 적 있다.”

해무찬도 거들었다.


사로잔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다른 세력이 엄청나게 싫어하겠군. 이를테면 지철금 상원 같은?”

“맞았어!”

아순치가 그녀에게 손가락을 튕겼다.


사로잔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뭔가 이상해. 피홍의 난이라고 이름만 붙었지. 소문도 가지가지야. 게다가 토벌대에 무슨 용병? 왜 하필 은퇴한 대장군을 토벌대장으로 추천해? 이거, 이거. 묘한 냄새가 나.”


그녀가 일행을 둘러보았다.

“난 대장군을 위해 용병에 지원하겠어. 다루는?”

다루영은 그녀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힘주어 대답했다.

“난 무조건 사로를 따라갈 거야.”


이번에는 다루영이 해무찬을 바라보았다.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무사에게는 역시 악기보다 검이지! 내 실력을 보여주겠어.”

해무찬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다루영은 그의 과장된 몸짓에 깔깔 소리내어 웃었다.


해무찬 보다 더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사람은 아순치였다.

“어? 얘기가 그렇게 흘러?”


“그럼 뭐 하려고 했는데?”

사로잔이 묻자 그가 난감해했다.

“당연히 장사할 생각이었지. 토벌대가 움직이려면 돈과 물건이 흐르거든.”


“그런 건 지부장에게 맡겨.”

“그것도 그러네. 사로와 찬이 간다면 거기가 더 쫄깃하지. 별의 심장을 볼 수 있으면 더 좋고.”


“별의 심장이라니?”

다루영도 신기한 이름에 솔깃했다.


“불타는 땅이라는데. 도적 떼가 나타난 주변일 거야. 정확한 위치는 몇몇 수도자들만 알아. 이 년마다 각 대륙의 수도회 대표가 모여. 먼 곳에서는 젊은 수도사가 대리로 오지. 오고 가는 데만 반년이 걸리는 곳도 있으니까.”


“거기서 뭘 하는데?”

“의식 같은 걸 하겠지. 모든 것이 비밀에 싸인 장소. 은근히 구미가 당긴단 말이야.”


“왜 하필 거기야?”

사로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순치도 날카로운 바늘에 찔린 듯 순간 멈칫했다. 도적 떼의 근원지가 별의 심장과 가까운 곳이라니.

두 사람의 눈빛이 공중에서 맞부딪쳤다. 설마···.


해무찬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심드렁하게 말했다.

“우연의 일치 아닐까.”


“가보면 알겠지. 의도된 우연인지 아닌지.”

무언가 있다. 나침반이 가리키지 않아도 가야 한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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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사로잔_설명과 증언 22.06.27 44 1 11쪽
89 사로잔_별의 심장 22.06.27 47 1 11쪽
88 사로잔_휘파람의 주인 22.06.26 40 1 10쪽
87 사로잔_정찰대 22.06.26 41 1 12쪽
86 사로잔_마른 협곡 22.06.25 46 2 12쪽
85 사로잔_흥겨운 만찬 22.06.25 43 1 11쪽
84 사로잔_늑대조와 사자조 22.06.24 42 1 12쪽
83 사로잔_의외의 임무 22.06.24 40 1 12쪽
82 사로잔_소년병 22.06.23 41 1 10쪽
81 사로잔_용병 모집소 22.06.23 43 1 11쪽
» 사로잔_소문과 소문 22.06.22 42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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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사로잔_움트는 모략 22.06.21 42 1 9쪽
77 사로잔_마나고원 22.06.21 39 1 11쪽
76 사로잔_빛뜰산 22.06.20 40 1 11쪽
75 천계_호위무사 한울 22.06.20 41 1 10쪽
74 천계_염라성 아유라 22.06.19 4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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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아랑누_일상다반사 22.06.18 52 1 10쪽
71 아랑누_오두막의 공연 22.06.18 41 1 11쪽
70 아랑누_송환술 22.06.17 41 1 11쪽
69 아랑누_공조 22.06.17 41 1 10쪽
68 아랑누_유기의 사연 22.06.16 44 1 14쪽
67 아랑누_지하 사당 22.06.16 43 1 14쪽
66 아랑누_쇳디 22.06.15 43 1 11쪽
65 아랑누_극단 가빈 22.06.15 5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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