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오빤 함무라비 스타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검성고길동
작품등록일 :
2019.08.29 20:16
최근연재일 :
2019.10.16 23:11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2,196,219
추천수 :
59,739
글자수 :
216,488

작성
19.10.08 23:05
조회
40,359
추천
1,367
글자
12쪽

32화

DUMMY

기민이 급히 이세라의 본가로 향했다.

언젠가 닥칠 일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지만 뭔가 이상하다.


‘외국으로 벌써 정보가 퍼졌다고? 예상한 시기보다 너무 빨라.’


이세라와 제세현이 그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오셨군요. 여기서 이야기하시죠.”


그녀가 구석에 있는 한적한 방으로 기민을 인도했다.

방에는 회의에 적당해 보이는 널찍한 테이블이 있었고.

자리에 앉은 기민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에 대한 정보가 외국에 퍼졌다니.. 퍼진 정보의 내용이 뭡니까?”


“그게 좀 이상한데요.”


묘해지는 이세라의 표정.


“엄밀히 말하면 기민 씨에 대한 정보가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시죠?”


이해하지 못한 기민이 되묻고.


“상태이상흡수 능력자가 한국, 서울에 있다. 이게 퍼진 정보의 끝이에요.”


그녀의 말에, 이제 기민의 표정도 묘해지고 말았다.


“...예?”


“진짜 그게 끝입니다. 선생님. 딱 거기까지더군요.”


제세현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방출에 관한 내용도 없이. 그냥 흡수능력자라는 식으로 퍼졌다고요?”


“그렇던데요.”


“아무런 추가자료도 없이요?”


“네.”


이세라의 답을 듣던 기민의 표정이 어이없게 변했다.

정보는 그것을 믿어 줄 사람이 있을 때 가치가 생기는 것인데.

증거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런 능력자가 어디에 있다’라는 정보만이 퍼졌다?


“아무도 안 믿을 것 같은데요. 믿는 사람이 있긴 합니까?”


“그게.. 뭐랄까요. 믿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말끝을 흐리는 이세라.

그녀를 이어 세현이 입을 열었다.


“허황된 전설을 쫓아 평생을 허비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습니까. 선생님의 능력은 어찌 보면.. 구시대적 비유이긴 하지만. 1만 년 묵은 산삼과도 같습니다. 저런 정보를 믿는 사람이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겠지요.”


“하긴,.. 그럴 수 있지요.”


기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세라를 바라보았다.


“혹시 정보의 발원지를 추적해 주실 수 있나요?”


“이미 시도해 봤는데 한국은 아니에요. 경로가 너무 희석돼서.. 확신할 수 없긴 한데 미국 쪽으로 보여요.”


“한국이 아니다..라.”


기민이 생각에 빠졌다.


‘나를 저격한 정보가, 한국이 아니라 외국에 퍼졌다.’


‘내 능력을 아는 자들은..’


그의 머릿속에 여럿이 스쳐간다.

오성의 박진범, 지배자 백상기, 이세라 일원들...


일단 이세라 일원들을 배제한다.


‘이 사람들이 굳이 정보를 퍼뜨릴 이유가 없어.’


다음으로 백상기를 배제한다.


‘이 자식이 남 좋은 일 하려고 정보를 퍼뜨린다고?’


남는 것은 오성의 박진범인데.

기민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 정보를 퍼뜨리면 백상기에게 무슨 꼴이 날지를 알 것인데..’


범인으로 확정하자니 뭔가 미심쩍고.

그렇다고 배제하자니 그것도 껄쩍지근하다.


‘박진범이 미친 건가?’


답이 나오질 않아 고심하던 기민이,

이세라와 제세현에게 고민을 공유했다.


“오성 말고는 딱히 퍼뜨릴 누군가가 없는 것 같은데.. 좀 애매하네요.”


“그렇죠?”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여는 이세라.


“혹시 이거랑 관련이 있을까요? 백상기가 갑자기 외국인 하나 찾을 수 있겠냐고 묻던데요.”


“외국인이요?”


“네. 그런데 인상착의고 뭐고 아무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러면 좀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답해 준 적이 있었거든요.”


“그 외국인이 뭔가 정보를 들은 건가요?”


“눈치로 봐서는 아닌 것 같아요.”


“정보를 얻어 간 게 아니면 관련은 없어 보이네요. 정보를 퍼뜨리려면 최소한 정보를 알아야 하니까..”


“하긴.. 그러네요.”


한참 고민하던 이세라가 다시 입을 연다.


“아! 그럼 이건 어때요? 백상기에게 박진범이 정보를 누설했다고 말하는 거에요. 그럼 백상기가 알아서 자체조사를..”


이세라가 낸 아이디어에,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젓는 기민.


“죄송한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백상기가 박진범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박진범은 제 손으로 죽여야 해서요.”


“아.. 기민 씨 의견을 존중해요.”


“그리고 여차하면 세라 씨도 곤란해질 수 있어요.”


기민이 고개를 끄덕이던 세라를 쳐다보자, 세라가 놀란 듯 기민의 눈길을 받아낸다.


“정보가 퍼진 사실을 알게 된 백상기 입장에서는 당연히 세라 씨도 의심해 볼 거에요. 비밀을 아는 사람이 애초에 몇 안 되니까요. 전부 의심해 보겠죠.”


마침 타이밍에 맞게 제세현이 차를 내 온다.

입을 살짝 적신 기민이 말을 이었다.


“백상기는 박진범도 의심하겠지만.. 그게 백상기가 세라 씨를 의심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는 못 돼요. 세라 씨가 의심받는 상황에서 괜히 박진범을 모함하는 듯한 발언을 하게 된다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해했어요. 괜한 의심을 사게 된다는 거군요.”


이세라와 제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떡하죠?”


“그냥 백상기에게 알려 줍시다. 외국에 정보가 퍼지고 있다고. 명색이 지배자인데, 그 정도로 퍼지고 있다면 백상기도 곧 알게 될 거에요. 어차피 곧 알게 될 정보라면 세라 씨가 먼저 알려 주는 게 이미지에 더 좋을 거고요.”


“흠.. 알았어요.”


“그리고 일단 퍼진 정보라면 우리도 이용해야죠. 우리도 똑같이 해 줍시다.”


“똑같이라니요?”


기민의 눈이 빛났다.


“우리도 외국에 정보를 퍼뜨려야죠. 우리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면서요.”


“어떤 정보를..?”


“백상기에게 다 떠넘겨 버리는 건 어때요?”


기민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백상기가 상태이상흡수 능력자를 데리고 독점하는 중’이라던지.”


“재밌겠네요. 그 놈에게 외국인 친구가 좀 생기려나?”


“한국 망신이나 시킬 것 같은데.”


제세현의 말에 나머지가 깔깔 웃었다.


“다른 아이디어도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기민이 부드럽게 말하는데.

제세현이 무언가 떠오른 듯, 이세라를 쿡 찌른다.


“세라야. 그거, 선생님도 같이 가시면 좋지 않겠어?”


“네? 아.. 회의요? 그러네요. 기민 씨.”


이세라가 재미있겠다는 표정으로 기민을 바라보았다.


“예?”


“조만간 지배자회의가 있는데. 같이 가실래요?”


“지배자..회의요?”


“네. 사실 ‘지배자’라는 지위가 따로 있는 게 아닌 건 아시죠?”


“‘지배자들’이라는 모임 소속 분들에게 붙는 이름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사실상 허울뿐인 모임이긴 한데, 그래도.. 모임이니까. 가끔 얼굴 보고 중요한 정보 있으면 나누자는 용도로 1년에 두어 번 만나는 거죠.”


“아하.”


“말만 회의지 사실 금방 끝나요. 서로 별로 안 친해서 잡담도 많이 안 하거든요. 기민 씨 정찰도 하실 겸.. 한 번 따라와 보시는 건 어때요?”


‘호오.’


“저야 감사하죠. 그런 모임이 있다니 다행입니다.”


*

*

*

*


“그냥 아무 말씀 하지 말고 계세요. 웬만한 건 삼촌이나 할아범이 다 커버해 줄 거에요.”


“그러지요.”


기민은 제세현, 임학동과 동일한 스타일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오늘 그의 컨셉은 ‘전도유망한 신입 집사’였기 때문이다.


세라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인 그가 주위를 조심스레 둘러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제세현과 임학동의 뒤를 따른다.


‘호텔을 통으로 빌리다니.. 돈 낭비도 정말 가지가지군. 개인 별장도 없나?’


기민이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 부근에 도착한 것일까.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회의는 은근 금방 끝나니까, 오래는 안 걸릴 거에요.”


이세라가 어디론가 휙 사라지자.

집사들은 작은 로비 같은 공간에 남겨졌다.


“곧 지배자들이 올 겁니다. 잘 지켜봐 두세요.”


임학동이 기민에게 속삭이고.

이윽고 지배자들이 하나씩 도착하기 시작한다.


우현정, 김성규...


그들의 얼굴을 보자, 기민의 감회가 새로웠다.


‘오성에서는 너희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지.’


그 당시에는 기민은 그들의 목소리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기민은 그 때 의자에 묶인 채 바닥을 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너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 놓은 것이 있으니 기다려라.’


기민이 티가 안 날 정도의 시선각도를 유지한 채, 지나가는 지배자들을 계속하여 주시했다.


지배자들이 도착하면서, 작은 로비가 그들의 수행원으로 슬슬 들어차기 시작하고.

그리고 순간 로비가 술렁이다 급격히 잠잠해진다.


최세헌이다.


저벅 저벅 걸어오는데, 품새를 보아하니 단 한 명의 수행원도 데리고 오지 않은 듯했다.

아무 말 없이 걸어 들어온 그는 그대로 회의 장소로 사라졌는데.


기민은 언뜻 이런 중얼거림을 들은 것 같았다.


“와.. 멘탈 대단하네.”


“쪽팔려서 못 올 줄 알았는데.”


행여나 저 안쪽에서 이루어지는 주인들의 회의를 방해할까,

수행원들이 속닥이는 가운데 마지막 한 명이 나타나고.


그리고 작은 로비는 술렁이는 게 아니라 정적에 빠져 버렸다.


백상기.

여유롭게 걸어 들어온 그는,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

*


회의실은 고풍스럽게 잘 꾸며 놓은 멋진 곳이었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멋지지 않았다.


“아.. 냄새. 뭐야. 좀 씻고 오던가.”


우현정이 얼굴을 찌푸리고.


“벌레 몇 마리 잡았어.”


백상기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다.


“냄새 맡기 싫으면 빨리 끝내면 되잖아.”


얼른 회의 끝내고 헤어지는 게 어떻냐는 백상기의 말에, 누군가가 피식 웃는다.


“그렇게 빨리 끝내고 싶으면 안 오는 게 더 낫지 않나?”


“오, 이게 누구야. 세헌이 아니야. 그 때 쳐맞은 부분은 아프지 않고?”


“아픈 건 네 주먹이겠지. 내 몸에 닿기는 했나?”


삽시간에 날카로워지는 분위기에, 김성규가 중재에 나섰다.


“그만해. 회의 진짜 금방 끝날 건데, 싸우지 말고 얼른 끝내고 밥이나 먹자. 우리 얼굴 보기 힘들잖아.”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에 힘입어, 김성규가 말을 이었다.


“자... 안건이 있는 분? 혹은 애로사항이 있는 분?”


누군가의 손이 올라간다.


“최...세헌 씨, 말씀하시죠.”


‘최세헌?’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더듬거리는 김성규.


“백상기 씨.”


답도 않은 채 최세헌을 바라보는 백상기.


“벌레를 몇 마리 잡고 오셨다고 했는데.. 벌레가 외국산인 것 같던데? 외국 벌레에게 인기가 많으신가 봅니다.”


이죽거리는 최세헌.

백상기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선다.


“아.. 외국 벌레. 벌레가 왜 나오는지 몰라서 그러는데, 좀 아는 거라도 있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고. 백상기 씨가 좋은 거 혼자 드신다는 소문은 좀 많이 들었지. 잘 죽지도 않는 몸인데 좋은 것까지 혼자 드실 필요 있나?”


발끈할 줄 알았던 백상기는 의외로 냉정했다.


“그 헛소문을 최세헌이 알 정도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다 들었겠구만.”


백상기의 혼잣말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고.

백상기와 최세헌의 눈이 마주쳤다.


“또 알고 있는 거 있냐?”


“너 요새 오성이랑 찐하게 논다며? 박진범이나 한 번 조져 볼까 하는데.”


*

*

*


회의는 파했고.

예정되었던 식사 자리는 무산되었으며.

망가진 회의실과 로비의 손해배상은 우현정이 맡았다.

그나마 다른 지배자들의 중재로 이 정도로 끝난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기민이 입을 떼었다.


“오늘 지배자들을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다투는 가운데에도 다들 기본적으로 두려움이란 감정이 결여되어 있더군요. 뭐랄까.. 삶에 초연한 느낌?”


“그건 지배자들을 죽이기가 어려워서 그럴 거에요. 사실 그래서 지배자인 거거든요.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 그게 최소한의 조건이에요.”


“그렇군요.”


기민이 의미있는 웃음을 짓자.

이세라가 그 의미를 깨달았다.


“아.. 결정하셨군요.”


“네, 오늘 직접 보고 나니 확신이 섰습니다. 지배자들에게 두려움이란 걸 좀 알려 주려고요.”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밤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오빤 함무라비 스타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원 감사드립니다. (19. 10. 24.) 19.09.24 89,454 0 -
40 후기 +333 19.10.16 30,979 1,114 3쪽
39 39화 - 완 +164 19.10.16 28,487 1,076 12쪽
38 38화 +62 19.10.15 30,369 1,196 11쪽
37 37화 +102 19.10.14 31,294 1,314 13쪽
36 36화 +39 19.10.13 33,492 1,167 11쪽
35 35화 +49 19.10.12 35,328 1,140 10쪽
34 34화 +52 19.10.10 39,513 1,299 14쪽
33 33화 +59 19.10.09 38,902 1,241 12쪽
» 32화 +58 19.10.08 40,360 1,367 12쪽
31 31화 +48 19.10.07 41,879 1,349 11쪽
30 30화 +43 19.10.06 44,232 1,360 11쪽
29 29화 +37 19.10.04 48,132 1,468 11쪽
28 28화 +48 19.10.03 47,923 1,599 13쪽
27 27화 +91 19.10.02 48,903 1,543 11쪽
26 26화 +47 19.10.01 51,877 1,488 12쪽
25 25화 +61 19.09.30 54,778 1,569 11쪽
24 24화 +85 19.09.28 60,274 1,601 12쪽
23 23화 +64 19.09.27 58,962 1,568 12쪽
22 22화 +61 19.09.26 59,978 1,649 11쪽
21 21화 +68 19.09.25 60,471 1,654 11쪽
20 20화 +112 19.09.24 60,484 1,679 13쪽
19 19화 +90 19.09.23 60,885 1,766 14쪽
18 18화 +79 19.09.21 61,782 1,654 11쪽
17 17화 +66 19.09.20 60,468 1,710 13쪽
16 16화 +44 19.09.19 60,337 1,707 11쪽
15 15화 +44 19.09.18 60,249 1,672 13쪽
14 14화 +40 19.09.13 59,763 1,654 14쪽
13 13화 +24 19.09.13 58,528 1,605 12쪽
12 12화 +30 19.09.11 59,327 1,48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