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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함무라비 스타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검성고길동
작품등록일 :
2019.08.29 20:16
최근연재일 :
2019.10.16 23:11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2,196,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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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6,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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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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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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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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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3화

DUMMY

돈?

100억? 150억?


진범에겐 별 것 아니다.

지배자가 달라는데 그깟 돈을 못 줄까.


문제는 백상기의 수금 방식이었다.

백상기가 말하는 ‘입금’은 일반적인 ‘입금’의 개념과는 조금 달랐다.


‘하늘은 왜 저런 놈을 그냥 두는 걸까..’


*

*


능력자들의 등장은 충격적이었지만, 사회는 생각보다 그들을 금방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능력자들이 자진해서 사회에 흡수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 그들은 사회에 흡수되려 한 것일까?

그들의 능력이면 괴수를 사냥하러 다니며 사회에 흡수될 필요도 없이, 사회가 그들 앞에 무릎꿇게 할 수 있지 않은가?


몇몇은 그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능력자가 괴수를 사냥할 정도의 전투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며.

목숨 건 전투를 선호하는 능력자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능력자라고 해서 모두가 손에 피를 묻힐 만한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닐 뿐더러, 그들 모두가 피에 굶주린 전투광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괴수와의 전투에 쓰지 않을 것이라면.

홀로 오롯할 수 없는 능력이라면.

그들의 능력은 사회에서도 쓸모없는 것이 아닌가?


손에서 초고온도 아닌 불이 찔끔찔끔 나와 봐야 어디에 쓸까.

비행 능력조차 못 되는, 위로 뜰 수만 있는 공중부양 능력은? 해 봐야 전깃줄에나 걸려 죽지 않으면 다행 아닌가?


그렇지 않았다.


제 아무리 쓸모없어 보이는 능력이라도, 시점을 돌려 사고해 보거나 발상을 전환해 보면 반드시 쓸 곳이 있었고.

능력자들은 그 곳을 파고들어 나름의 자리를 창출해 내었다.


손바닥에서 5cm 화염이 나오는 능력을 가진 자는 쉐프가 되었고.

‘최고의 불맛’이라는 찬사와 함께 미슐랭 3스타를 받았다.

어떤 공중부양 능력자는 최고의 초고층시설 관리자가 되었으며.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500m가 넘는 안테나타워 등 특수시설을 상시 수리 및 관리한다.


‘능력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그들이 찾아낸 답이었다.

그리고 그 답에서, ‘능력만 생기면 최소한 평타는 친다’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동의하는, 그들을 사회질서에 아무 탈 없이 편입시킨 일등 공신.


그것이 바로 총이다.


일반인이나 능력자에게나 총알은 평등했다.

몸에 구멍이 뚫리고 피가 쏟아지면 사람은 죽었다.


일반인들이 가진 무력으로도 능력자들이 통제된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 능력자들은 일반인들에게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다.

생소한 무언가를 가진 다소 위협적인 존재였을 뿐.


하지만 능력자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자들이 있었다.


이레귤러들이다.


지배자, 마스터, 절대자 등등 국가마다 다양한 별칭을 가진 이레귤러들.

그들에게는 일반인의 무력을, 심지어는 다른 능력자들의 능력을 무시할 만한 힘이 있었고. 그 중에는 천하를 오시할 만한, 사회질서를 아예 새로이 구축할 만한 능력을 가진 자도 있었다.


국가를 초월한 그들의 공통점은 돈으로 환심을 살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이레귤러들의 삶의 선택은 다양했다.


일부는 자신을 낮추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택했다.

그들은 일반인, 그리고 다른 능력자들의 존중을 받으면서 사회질서 속에서 살아갔다.


일부는 질서 위에서 질서를 지배하는 길을 택했다.

그들은 능력을 가지고 남들을 압도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지만. 그 압도를 통하여 사회질서가 무너지는 것까지를 원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만의 공고한 성을 짓고는, 그 성 위에서 개미같이 움직이는 남들을 내려다보기를 즐겼다.


일부는 은둔 혹은 방랑의 길을 택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고 여겼으며,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지구를 떠돌아 다니며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게 살아갔다.


일부는 철권의 길을, 일부는 권태의 길을....


그리고 나머지,

이레귤러 중 최악의 유형이 지금 모니터를 통하여 진범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일이 있어서 찾아뵙질 못했습니다.”


- 그러니까 얼른 와.


“예?”


- 오라고. 지금 해.


“지금 말이십니까..?”


- 왜? 꼬와?


“그...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접속을 해제하고 얼굴을 싸쥔 박진범.

그의 숨이 분노로 거칠어졌다가 점차 가라앉았다.


‘그런데 못 보던 주름살이 보이는 느낌인데.. 예전에 봤을 때보다 좀 나이를 먹은 것 같기도 하고..?’


*


VIP회의실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앉아 있는 백상기.

그 옆에서 안절부절하던 권 실장이 전화를 받자마자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권 실장과 함께 누군가가 문 안으로 들어오고.

권 실장이 문을 닫아 잠그자, 들어온 사람이 자신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벗겨내었다.


그가 백상기에게 다가와 깊이 허리를 숙인다.


“오랜만입니다, 백상기님.”


“진범이.”


“예.”


“내가 이렇게 널 찾아와야 돼?”


“아닙니다.”


“새끼가, 대역까지 쓰면서 날 속이려 들어? 내가 모를 것 같았냐?”


진범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백상기 님을 속이겠습니까.”


“그럼 누굴 속이려 든 거야?”


“....일단 상납금부터 드리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뒤로 돌아선 진범은, 이를 악물고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나가 있어.”


부하들이 모두 나가고.

책상 위에 앉은 백상기 앞에, 진범이 무릎을 꿇은 후.

엎드려서 고개를 숙인다.

흡사 절하는 자세처럼.


그리고 그 자세를 유지한 채로, 진범은 양손에 수표 한 장을 자신의 머리 위로 받쳐 올렸다.


“백상기 님, 오성의 헌금입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음.”


손 위에 놓인 수표가 낚아채이는 것을 느끼며, 진범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 모욕감.. 이미 마음에 굳은 살이 배겼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두 달 쉬었다고 다시 역치가 낮아진 모양이다.


보통 상납금을 받으면 그에 걸맞는 무언가를 제공하게 마련이다.

조폭은 뒷배와 보호를, 정치인은 권력과 정책 편의를, 법조인은 편파적 판결을 제공한다.


그러나 백상기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되물을 것이다.


‘개미가 사람에게 과자 부스러기를 바치면 사람은 감사해야 하는가?’


최악의 이레귤러들.

그들은,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 자들이었다.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고, 만들고 싶은 것은 만들고, 부수고 싶은 것은 부순다.

이 세상은 자기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들? 신경쓸 가치도 없는, 자신의 장난감이다.

그러라고 자신에게 그러한 힘이 주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백상기는 입금 행사를 좋아했다.


백상기가 지정한 곳에서, 대기업 수뇌부들이 머리 위로 손을 올려 수표를 바치는 것.

개미 같은 존재들이 개미집을 부수지 말아 달라고, 자신을 밟지 말아 달라고 공물을 바치는 것.

그는 수표가 아니라, 그 ‘행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서, 진범이 엎드린 채 이를 악물었다.


‘운이 없으려니까...’


원래대로라면 진범은 당연히 입금 행사에 참석했을 것이다.

박대홍이 노쇠한 이후에는 진범이 오성을 대표하여 이 행사에 참여해 왔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이 행사의 일정 관리를 최동수가 해 왔다는 것이다.

그가 인수인계도 제대로 못한 채 비명에 가고, 아버지에게도 사건이 생기고..

어쩌다 보니 두 번이나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두 번 빠졌다고 해서 통보도 없이 직접 찾아올 줄이야.

정신적으로 탈진할 지경인 진범에게 들려 오는 백상기의 목소리.


“음. 일어나.”


“감사합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진범에게, 백상기가 묻는다.


“그래서, 왜 숨었냐?”


“제 자신을 감추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너가? 그것도 대역을 쓸 정도로?”


잠시 깊은 고민에 빠진 진범.

이윽고 결단을 내린 진범은, 그를 흥미롭게 쳐다보는 백상기 앞에서 입을 열었다.


“그 놈이 살아 있습니다.”


“그 놈?”


“작년쯤.. 지배자 분들께서 한 번 저희 회사로 마실 나오신 적 있지 않으십니까.”


“그랬나? 잠시만.”


생각에 잠긴 백상기한테 진범이 말을 덧붙인다.


“듣기로는 최세헌 님이..”


눈을 번쩍 뜨는 백상기.


“그 새끼가 무슨 님이야. 최세헌이 네 님이야?”


“아.. 아닙니다. 듣기로는 최세헌..이 마지막에 포탈을 열어서 그 놈을 넣어 버리셨다고..”


백상기가 손바닥에 주먹을 부딪혔다.

드디어 떠오른 모양이었다.


“아! 그 때? 그 새끼가 살아 있다고?”


“예.”


백상기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세헌이 포탈에 수작을 부린 게 아니었나..? 살아 있을 리가 없는데...”


“저희도 연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모든 정황이 그 놈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걸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새끼가 뭐? 그냥 셔틀이었잖아.”


“그것이..”


진범은, 놈의 능력을 포함해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을 백상기에게 알려 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지배자의 눈이 번쩍였다.


“질병흡수가 아니라 상태이상흡수였다고?”


“그렇습니다.”


‘이세라.. 그 때 구라를 쳤다 이거지?’


‘뭐, 어쨌든 혼자 먹을 수 있겠군. 결과적으론 고맙게 됐어. 아니면.. 혹시? 이세라가?’


‘떠볼 필요는 있겠는데..’


백상기의 눈이 가늘어졌다가 원상 복귀하고.

조용히 중얼거리던 그가 질문을 이었다.


“대홍이가 그 때 왜 잡아갔다 그랬지?”


“아버지는 질병뿐 아니라 노화까지도 흡수시킬 생각이셨던 것 같습니다.”


“노화라. 너가 봤을 때는 어때?”


“노화가 상태이상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시도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백상기.

그가 씨익 웃었다.


“너 이거 누구에게 얘기한 적 있냐?”


‘이 질문에 저 눈빛...!’


박진범은 순간 바짝 긴장했다.

예측한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대답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저 놈은 종잡을 수 없는 놈이기에.


“....부하들 몇 명이 알고 있고, 비밀 클라우드 네트워크에서 정보를 관리 중입니다.”


“그래..?”


백상기가 뭔가 고민하는 듯 진범을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순간 진범은 확신했다.


‘지금이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죽을 거야.’


선수를 치는 진범.


“클라우드 네트워크는 제가 죽으면 모든 지배자님들께 공유될 겁니다.”


“응? 이 새끼 봐라. 누가 너 죽인대? 웃기는 새끼네. 진짜 죽여 줘?”


“아닙니다.”


“새끼... 눈치는 빨라가지고.”


“...”


“아무튼, 그 새끼가 너랑 그 최하영인가 하는 애 죽이러 온단 거잖아.”


“예. 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알았으니까, 입이나 잘 닫고 있어. 다른 애들이 알면.. 알지?”


다른 지배자들에게 절대로 함구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백상기는 문을 열고 사라졌다.


*

*

*


그 시각.

기민은 제세현의 가게에서 대화 중이었다.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별 말씀을요. 같이 가 드린 것뿐인데요.”


“덕분에 들어갈 수 있었죠. 그런 장소의 분위기를 꼭 한 번 느껴 보고 싶었어요. 매번 TV로만 보아 왔으니까요. 하필 어제 그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지만서도..”


말끝을 흐리는 기민을 보며, 이세라가 밝게 웃는다.


“사실 전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어요.”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아, 그 오성 회장 말씀이시군요. 그놈은 필시 미친 것이 분명합니다.”


세현, 기민, 세라가 박장대소하는 가운데.

테이블 위에 놓인 이세라의 폰이 울렸다.


액정에 이름이 떠 있다.


백상기.


고개를 돌리다 우연히 그 이름을 본 기민의 표정이 흠칫 굳었다.


작가의말

* 노땅아 님, 후원 감사합니다.


** 읽어 주심에 항상 감사합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좋은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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