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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함무라비 스타일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검성고길동
작품등록일 :
2019.08.29 20:16
최근연재일 :
2019.10.16 23:11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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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6,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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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6,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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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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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8화

DUMMY

빈소가 마련된 오성병원 장례식장에는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히 와야지.. 대홍이가 갔는데.”


“아버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영정에 두 번 절한 피아그룹 회장이 박진범의 손을 부여잡는다.


“그래도 그 친구가 자식농사는 참 잘 지었다니까. 네가 있으니 오성은 걱정이 없어. 그 친구도 고민 없이 갔을 게다.”


진범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


“힘드네.”


“고생하셨습니다.”


장례식 첫날에만 맞절을 수백 번은 했을 것이다.


발인 후 화장까지 마치고 나온 진범이 허리를 두들겼다.

실장이 타이밍을 놓칠세라 잽싸게 굽실거리고.

진범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괜찮은 때에 가서 다행이야.”


“맞습니다. 그룹 승계 작업, 비자금 작업 등등 전부 탈없이 마무리 될 때까지 버텨 주셨으니까요.”


그 때.

맞장구치는 전무이사 옆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한 사람.

신경질적으로 생긴, 마르고 안경 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이제 가 봐도 될까요? 오늘 중요한 샘플이 나오는 날이라.”


좌중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이 소장, 가긴 어딜 가? 오늘부터 오성에 박진범 회장님의 시대가 열리는 날 아닌가. 한국에 비유하면 개천절이고, 일본으로 따지면 새로운 연호가 오픈된 날이라 이거야. 아무리 중요한 연구래도 이런 날에는 좀 남아 있어야지.”


실장이 웃으며 분위기를 눙치려 한다.

하지만 소장이라 불리운 남자는 꿋꿋이 자리에 멈추어 서 있었다.


진범이 걸음을 멈추고, 소장을 돌아보았다.


“진전은 있나?”


“예. 기대하셔도 됩니다.”


소장의 말에, 놀랍게도 진범이 환하게 웃었다.

장례식 이후의 가장 밝은 미소였다.


“좋아. 얼른 가 보게.”


“예. 그럼 전 이만.”


소장이 기다렸다는 듯 반대방향으로 사라진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돌아서서 걷기 시작하는 진범.

이 상황에서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부하들이 황급히 새로운 회장의 뒤를 따랐다.


*

*

*


장례가 끝난 바로 다음 날.

회장의 가장 믿을 만한 측근들만 들어올 수 있는 VIP 회의실.


회의실에는 이미 여러 명이 앉아 있었다.


화면과 PPT 점검을 마친 실장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앉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들은 박진범이 들어와 앉고 나서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발표대에 선 실장이 레이저포인터를 켰다.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음.”


“먼저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프로젝터에 영상이 나타난다.


동영상은 CCTV 촬영 영상으로 보였는데, 한 사람을 클로즈업하여 쭉 따라가고 있었다.


깊이 눌러 쓴 야구모자와, 얼굴의 절반 이상을 가리는 타이트한 마스크.

얼굴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 수준이다.

키와 몸매를 통하여 그가 남자라는 것만 겨우 추정할 수 있었다.


회전문을 통과하여 병원에 들어온 남자가 두리번거리다 지하로 향한다.


영상을 보던 박진범이 중얼거렸다.


“관제실 쪽이군. CCTV를 마비시키러 갔으면 영상은 아마 여기까진가?”



그 부근을 서성거리던 남자 앞으로 보안요원이 지나가자, 남자가 보안요원을 슬며시 따라간다.

보안요원이 카드키를 찍고 관제실 안으로 들어가자, 그와 교대하여 관제실을 나온 다른 보안요원.


그리고 관제실에서 나온 보안요원에게 남자가 접근했다.


남자가 근접하는 순간 보안요원이 크게 휘청이더니 무너진다.

쓰러지는 보안요원의 몸을 절묘하게 받쳐든 남자. 그는 보안요원의 목에 걸린 카드키를 벗겨내고는, 보안요원을 받쳐든 채로 관제실을 열고 들어간다.


그리고는, 박진범의 말대로였다.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박진범이 실장을 가리키고는 질문했다.


“보안요원들은 단순히 잠든 건가? 아니면..”


“혈액에서 수면제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능력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흠. 아까 영상에서 보안요원 쓰러지는 부분. 다시 틀어 봐.”


실장이 해당 부분을 다시 재생한다.


“계속 반복해.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그 부분을 10번 가까이 돌려 본 박진범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확실히 도구를 쓴 것 같지는 않군. 능력이라.. 좀 더 확대해서 볼 수 있나?”


“저희도 확대를 시도해 보았으나.. CCTV 성능이 그렇게까지는 좋지 않은지라.”


실장이 버튼을 누르자, 너무 낮은 해상도 때문에 픽셀이 드러나 버린 영상이 나왔다.

박진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일단 넘어가지. 다음.”


실장은 레이저포인터 겸용 리모콘을 눌러 화면을 넘겼다.

화면에는 최동수 사건에서의 CCTV 사진이 떠 있었다.


“다음. 최동수 사건과의 비교입니다.”


“외견상으로는 거의 비슷해 보이는군.”


“예.”


“최동수의 경우와 동일인일까?”


실장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예, 저희 전략실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


“유사한 복장으로, 병상에 누운 오성의 주요인물들에게 접근한다는 점이 동일합니다.”


“사용된 능력이 다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최동수의 경우는 질병이었지 않나. 보안요원들이 잠든 것이 혹시 수면병 증상이라도 돼?”


“그건 아닙니다만..”


박진범은 옆에 놓인 생수병을 따서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질문을 이었다.


“아무튼, 수면능력까지 가진 것으로 보인다? 알았어. 그럼 아버지 건에서만 CCTV를 망가뜨린 이유는?”


“최동수 전 실장의 경우 일반실이었기에 편하게 진입할 수 있었지만, 전 회장님의 경우 특실이라.. 보안을 돌파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보안 돌파라.. 추론되는 동기는?”


“동기는.. 아마 복수일 것으로 보입니다.”


“복수라. 최동수야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아버지의 경우는 좀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박진범이 고개를 기울였다.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최동수 전 실장의 경우는 놈이 직접 신체에 해를 끼친 게 맞지만, 박대홍 전 회장님의 경우 놈은 전 회장님께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요.”


“그렇지. 놈이 아버지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며.”


“그렇습니다만.. 복수하려고 들어갔다가 의식을 잃은 전 회장님을 뵙고는 마음이 약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박 원장이 부검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부검 소견에서 문제될 만한 소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랬지. 부검까지 했었지.. 병원장이.”


박진범이 책상을 톡, 톡 두들겼다.


‘마음이 약해졌다?’


‘그럴 리가.’


만약 최동수 사건과 동일 인물이라면..

박진범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 놈이 마음이 약해졌다고? 최동수에게 부린 수작을 보면 그건 말이 안 되는데.’


그 순간 박진범의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

그가 벌떡 일어났다.


‘마음이 약해진 것이 아니었다면?’


‘놈이 아버지가 쓰러져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와서 얼굴만 보고 가려고 이런 번거로운 짓을 했다고? 그건 아니지.’


그의 눈이 가늘어진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언가 일어난 것이었다면?’


‘놈이 무언가 저질렀지만 그것이 흔적이 남지 않은 것뿐이라면?’


‘놈이.... 정말로 복수하러 온 것이었고, 복수를 성공한 것이었다면?’


‘놈은 왜 CCTV를 망가뜨린 걸까? 진짜로 보안 때문만인 걸까?’


“이봐, 권 실장.”


“예.”


“이번에도 싸이코메트리 불렀나? 최동수 때와 똑같은 사람으로?”


“아니오. 지금 그 친구가 해외에 좀 오래 나가 있을 예정이라 어쩔 수 없이 다른 친구를 불렀는데.. 이 친구 능력이 좀 애매합니다. 최 실장 때 부른 친구의 열화판에 가깝습니다.”


“핵심만.”


“물건의 기억을 읽긴 읽는데 보는 것만 가능합니다. 심지어 앞이 막혀 있으면 보질 못합니다. 물건이 눈을 떠서 보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의자와 침상에 시도해 봤습니다만, 의자에서는 그 놈의 엉덩이만, 침상에서는 전 회장님의 등만 보였다고 합니다.”


박진범이 눈을 번뜩였다.


“그 친구에게 천장의 기억을 읽으라고 할 순 없나?”


“적어도 물건에 사람이 닿아야 그 기억이 남는다고 하더군요. 관련 기억이 없으면 읽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하신다면 시도해 보겠지만.. 놈이 천장을 만졌을 것 같진 않습니다.”


실장이 난색을 표한다.

진범은 다시 장고에 빠졌다.


‘내 생각이 맞다면.. 놈의 복수에는 반드시 [그 행동]이 필요했을 것이다.’


진범이 느릿하게 입을 뗀다.


“그럼 이번에는 그 친구에게 말이야.... 싸이코메트리를...”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말을 잇는다.


“.....아버지가 착용했던 산소 호흡기에 해 보라고 해.”


“예? 아...! 당장.. 당장 연락해 보겠습니다!”


*


실장은 열화판 사이코메트리 능력자와 함께 다시 오성병원으로 떠났고, 박진범은 회의실 안을 계속하여 서성거렸다.


턱턱턱턱-


요란한 달음질 소리가 들리고, 권 실장이 구둣발로 허둥거리며 뛰어들어온다.


“회장님... 헉, 헉.”


박진범이 그가 마시던 생수병을 내민다.

황송하다는 듯 받아드는 실장.

두어 번 벌컥벌컥 마시고는 책상에 내려놓은 후, 입을 뗀다.


“회장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회의실 내의 모든 눈이 실장에게로 향했다.


“어느 순간부터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 보였다고 합니다.”


진범이 눈쌀을 찌푸렸다.


“핵심만.”


“산소 호흡기가 전 회장님으로부터 벗겨진 기억이 있답니다.”


회의실에 충격이 내려앉으려는 순간.

진범이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있겠지. 너 진짜 그딴 식으로 보고할래?”


“예?”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는 당연히 호흡기 벗겨야 할 거 아냐. 그러니까 그런 기억이 있겠지. 야. 진짜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똑바로 안해?”


“죄... 죄송합니다. 그게, 두 번 벗겨졌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사죄한 실장의 발언에 회의실이 잠시 술렁였다.


두 번?


그렇다면 그것은 전 회장이 사망하기 전,

괴한이 침입한 동안 산소호흡기가 벗겨진 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진범이 고개를 돌렸다.


“원장.”


“예, 회장님.”


“아버지가 산소 호흡기를 빼고 잠시라도 생존하실 수 있었나?”


“불가능합니다. 진짜로 산소 호흡기가 빠진 것이라면 바로 코드 블루, 긴급상황이 뜨고 의료진이 달려들어갔을 겁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게 뜨질 않았지.”


“예.”


“무얼 의미한다고 생각하나?”


오성병원장이 입을 달싹이다가, 힘겹게 답했다.


“권 실장의 말이 맞다면.. 전 회장님은 그 당시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상태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뭔가?”


“정말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가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전 회장님의 마지막에 산소호흡기를 제거한 것도, 심지어 그 분을 부검한 것도 저이지 않습니까. 이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현상입니다.”


“그래? 난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씨익 웃은 진범.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단서가 연결되었다.

진범은 입을 열고는 폭탄을 투하했다.


“놈이 누군지 대충이나마 알 것 같다.”


회의실이 크게 술렁였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절기인데 감기 조심하세요.


p.s. 소개글과 제목 수정을 고민 중입니다.


p.s.2. 비축이 거의 떨어졌는지라, 내일은 쉬면서 비축을 쌓아야 될 것 같습니다. 양해를 구해봅니다... 꾸벅_ _)


행복한 주말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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