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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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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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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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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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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12)

DUMMY

여섯 명의 기사가 죽었다.


-알버트 랭. 「이땅의 교황에 대하여」-




“마그누스, 잠깐!”


마그누스와 올리비아는 험프티의 흔적을 찾아 숲속을 뒤졌으나, 머리카락이며 발자국과 같은 그녀의 증거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부스럭꺼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산짐승들이 그들을 맞이했고, 날은 슬 어두워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왜 그러나?”


“곧 해가 질 거에요. 그만 돌아가요. 단장님도 걱정되고, 어두워지면 길을 찾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리고···”


그녀는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올리비아, 자네···”


“네? 왜요?”


멍하니 어두운 숲속을 응시하던 올리비아는 고개를 들어 올려 마그누스를 바라보았다. 동공은 떨렸고 활을 쥔 손은 부들거렸다.


“···무엇이 그리 두렵지?”


정답. 마그누스의 직감대로 올리비아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녀는 이마에 손을 짚고 한숨을 한번 푹 내쉬었다.


“숲의 공기가 이상해요. 동물들이 모두 한곳을 피해 도망치고 있어요. 지금도··· 우리들 뒤에서···”


수풀을 헤치는 소리와 함께 올리비아의 뒤쪽에서 사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짐승은 눈알을 까뒤집은 채 입에 거품을 물고 미친 듯 건너편 풀숲으로 달려갔다.


-까악! 까악!


까마귀들은 숲속의 고요함을 지웠다.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새들이 하늘을 검게 뒤덮었다.


“이게··· 무슨... 올리비아! 어떻게든 에드윈 씨를 찾아야 하네! 가능하겠나?”


“그, 그게. 동물들이 도망치는 곳 중심에 계시는 것... 같아요.”


마그누스는 올리비아를 들어 올려 그대로 어깨에 들쳐멨다. 그녀는 잠시 짧게 비명을 냈지만, 곧바로 다시 에드윈의 위치를 잡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수많은 동물이 마그누스를 향해 돌진했으나 그는 모든 걸 가볍게 피해냈다. 숲속은 무엇인가 때문에 위험했고, 에드윈은 그 중심에 있었다. 설령 험프티를 찾았다면··· 아니, 찾으면 안 됐다. 험프티를 보호하면서 타나토스를 상대하는 것은 그라 할지 여도 -아직 에드윈의 실력을 잘 알지는 못하나- 위험했다.


“올리비아! 어디로 가야 하지?”


“어··· 어, 잠시만요. 그대로! 바로 이 앞에!”


“좋았어! 에드윈 씨!”


마그누스는 에드윈의 이름을 크게 부르짖었다. 그 이유로 첫 번째는, 에드윈에게 자신들이 왔다는 걸 알리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로는 아마도 그가 상대하고 있을, 이 거대한 숲을 공포로 집어삼킨 그것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나무 사이를 헤쳐 에드윈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그의 점잖은 목소리뿐이었다.


“왜 그러나?”


터의 중간에 에드윈이 서 있었다. 험프티도 같이. 그러나 타나토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의아함보다는 무안함이 먼저 찾아왔다.


“어, 음. 험프티를 찾으셨군요. 어디 있었담.”


“산짐승을 쫓아간 듯하더군. 날이 지기 전에 찾아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못 찾을 뻔했어. 곧 어두워 질 것 같은데 여기서 야영하는 건 어떤가? 그보다 마그누스··· 어깨 위에 들쳐멘 올리비아는 좀 내려놓는 게 좋아 보이는군. 기사로서의 모범과는 거리가 먼 듯 하네만···”


마그누스는 얼굴을 붉히며 올리비아를 털썩 내려놓았다. 올리비아가 살짝 비명을 지르자 에드윈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네. 농담. 그리 급히 내려놓을 것 까지야··· 올리비아, 다친 곳은 없나?”


올리비아는 엎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운 것인지 통 일어나려 하질 않았다.


“다행이군. 아, 벌써 날이 어두워졌네... 그래, 날이 어두워졌어.”


에드윈의 얼굴에 잠깐동안 근심이 드리웠다. 아직은 마그누스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마음속에서 작게나마 타올랐다. 험프티는 웬일인지 조용했다. 얼굴은 살짝 성숙해진 듯, 차갑고 냉혹한 표정을 띠고 앉아서는 표정답지 않게 흙을 만지작거렸다. 에드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분위기는 아주 딱딱했다.


“험프티, 앞으로는 그렇게 말없이 뛰쳐나가면 안 돼. 알겠지?”


“...응.”


마찬가지였다.


“뭐, 이래저래 안전하니 일단은 다행이군요. 그럼 여기에 불을 피우겠습니다.”


“아니, 잠깐. 아무리 생각해도 숲속은 위험해 보이는군. 달도 밝은데 계속 걷는 건 어떤가? 대신 좀 안전한 낮에 자는걸세. 밤에 불을 피우면 위치가 발각될 수도 있으니.”


마그누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어두워지는 부분에는 드문드문 동물의 것으로 보이는 선혈 또한 묻어있었다.


“그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럼 계속해서 갑시다.”


올리비아도 그의 말에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물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숲을 헤쳐나갔다. 늦은 저녁을 걸친 뒤 강에 도착했다.


“올리비아. 달이 아주 밝네.”


달빛에 강물은 보석을 머금은 듯 푸르게 번쩍여 주변을 어둡지 않게 밝혔다. 혼자 보고 싶은 광경이어서, 그래서 올리비아는 마그누스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강을 따라 한 명은 앞을, 다른 한 명은 하늘을, 그 뒷사람은 강을, 맨 뒤에 선 사람은 바닥을 보며 걷는다. 자연이 다듬어온 곳에서, 인간이 더듬어온 길을 따라. 일행은 꽤 오랫동안 걸었다.


“기껏 화살을 사 왔는데, 쓸 일이 없네요.”


“그러게. 파리 한 마리, 물고기 한 마리 보이지 않는군. 물은 이렇게나 맑은데 말이야.”


역시 날짐승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마그누스. 어쩌면 며칠 뒤, 누군가는 죽을지도 몰라요.”


“왜 그래야 하지?”


“···엄청 난감한 대답인 거 알아요? 그러게요. 왜 죽어야 하는 거죠?”


“우리가 영웅이기 때문에?”


선두에 선 에드윈조차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말꼬리에 물음표를 붙였다. 아무도 말을 이으려 하지 않았지만, 올리비아는 시작한 대화를 끝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웅이라고 꼭 죽는 건 아니잖아요.”


“아주 당차기 그지없는 대답이군. 하지만 죽는 건 모두 영웅이 아니었던가?”


에드윈이 대답했다.


“예를 들면?”


“어느 누군가의 가장, 우상, 우리 앞에 주어진 모든 것들. 혹은 자기 자신.”


“우리 앞에 주어진 모든 것들··· 저기 저 나무 한 그루 조차도?”


“하하. 이번에는 아주 오만하기 그지없군. 대체 누가 자네에게 저 나무 한 그루를 준거지?”


“그러면 내 앞에 주어진 목숨을 건 모험은?”


에드윈은 올리비아가 말을 편히 한 것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날 밤의 잠꼬대라고 여길 뿐이었다. 마그누스 또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올리비아는 저기 저 뜬 커다란 달에, 잠시 몸을 실었을 뿐.


“가장과 우상은 지켜야 할 것이 있네, 자네 앞에 주어진 모험은 자네를 영웅으로 만들어 줄 거고. 만약 저 나무 한 그루가 자네의 것이었다면, 자네는 지켜야 할 것이 생기는걸세. 결국, 누군가는 다른 이의 영웅이라는 말이지. 올리비아. 달밤에 오랜 시간 몸을 싣지 말게. 떠내려갈지도 모른다네.”


“···죄송해요.”


올리비아의 표정은 잠에서 깬 듯한 표정도, 홀린 정신이 돌아온 표정도 아니었다. 아까 전과 같은 얼굴. 그녀는 뭣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에드윈은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끝이 난 이야기에 추신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량을 넉넉하게 챙겨온 건 옳은 판단이었다. 비록 마른 음식이었지만, 오랜 길을 걷는데 부른 배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그렇게 야영을 걸쳐서 보름. 강이 내려오는 곳에 포르토스가 있었다. 강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커다란 산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지붕이 주황색으로 칠해진 건물들로 쭉 둘러싸여 있었다.


최고의 항구도시라 불릴만했다. 하지만 정박한 배들은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며 기우뚱거렸고, 널따란 교량 위는 과하리만치 붉은색이었다. 사라진 인기척은 스산한 기운이 만들어냈다.


“마을이 조용하군.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걸.”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건만, 악취가 풀풀 피어올랐다. 대도시 하나가 텅 빈 채 버려져 있었다. 가장 먼저 그들을 반긴 것은 참혹한 시체들이었다.


“윽, 이건 목덜미가 물어 뜯겼어요. 덜렁거리는데요.”


“이 사체는 아예 두 동강이 나 버렸군. 적어도 내가 아는 타나토스는 이러지 않아.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적어도 인간은 아닐 겁니다.”


마그누스는 시체를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말했다. 끈적한 피가 그의 손에서 묻어 나왔다.


“두 동강 난 시체는 힘에 으스러진 듯 모두 살이 짓뭉개져 있습니다. 목덜미가 물어뜯긴 시체들도 상처는 작지만 마찬가지고요. 인간이 낼 수 있는 상처가 아닙니다. 아마 여관에서 만난 남자가 말한 데로···”


“어, 게새끼하고 염병할 잠자리?”


험프티 불쑥 지른 소리에, 마그누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윈은 시체를 살피던 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명 한두 마리가 아니라 그랬지. 여기에 시체들이 구석구석 있는걸 보아하니 이곳도 안전한 곳은 아니야. 그렇다고 넓은 곳으로 갔다간··· 잠자리 밥이 되겠군. 보게. 마침 저기 날아다니는구먼.”


에드윈이 가리킨 하늘에는 햇빛에 날개를 번쩍이며 고도를 유지하는, 잠자리 한 마리가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조금, 아니 많이 크다는 것이었지만.


“저건··· 크기만 보면 드래곤 플라이가 아니라 드래곤 그 자체인 것 같은데··· 적어도 2미터는 되겠어요. 어떡하죠? 쏠까요?”


올리비아는 화살을 꺼내 하늘을 겨누었다. 성수는 배낭 맨 아래에 있었고, 울르의 화살이 아닌 이상 맞춰봐야 금방 재생될 것이 뻔했지만, 에드윈은 남자가 한 말이 신경 쓰였다. 어차피 좁은 골목, 저런 날개로 여러 마리는 들어오기 힘들 터.


“한번 쏴 보게.”


팽. 화살이 활을 떠났다. 하늘을 향해 점이 되어 날아간 화살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녀석의 가슴팍을 뚫었고, 거대한 드래곤은 그대로 픽 추락해 버렸다.


“...음?"


날아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하늘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에드윈은 녀석이 떨어진 방향을 향해 달렸고, 그곳에는 녀석의 커다란 몸뚱어리가 있었다. 다리를 꿈지럭거리는 게 멈추면서 익숙한 재들이 흩날렸다.


“말도 안 되는군. 죽었어.”


“그냥 커다란 잠자리랑 다를 바 없군요.”


그림자는 땅을 뒤덮었고, 살랑이는 바람은 위에서 아래로 몰아쳤다. 하늘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게 요란스러웠다.


“많이도 불러모았군그래. 둘 중 하나 골라보게. 좁은 골목으로 도망치던가.”


-딱, 딱.


골목에서는 잠자리와 비슷한 크기의 게들이 집게를 흔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게거품이 땅 위에 흘러내렸다.


“...싸우는 선택지 밖에 남지 않았잖나. 올리비아? 단도 좀 빌리겠네.”


“왜요?”


“검이 부러져서.”


“네?”


“아무튼, 그렇게 됐네. 엄호 부탁하네. 마그누스! 게들을 맡아줘!”


잠자리는 턱을 부닥치며 달려들었다. 에드윈은 우선 두 손으로 단도를 쥐고, 어깨를 틀어 놈의 턱을 뒤로 흘려보냈다. 달걀 껍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에드윈의 손에 투명한 물이 튀었다.


“생각보다 단단하지는 않군. 일단 한 놈. 올리비아? 음··· 두 놈.”


올리비아는 활에서 손을 떼는 족족 놈들을 한 마리씩 떨어트렸다. 가루가 되어 사라진 지 세 마리째, 잠자리들은 덤빌 태세를 거두고 고도를 한 층 높여 거리를 벌렸다. 곧 다섯 마리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한 번에 몰려오면 어떻게 못 해요!”


“날개라도 맞춰보게! 면적이 넓으니까 세 마리 정도는 맞출 수 있겠지?”


“해볼게요!”


올리비아는 잠자리의 날개를 겨눴다. 한쪽으로 몰리는 순간. 그때를 보고, 잡아서, 틈새로. 당긴 시위를 놓는다. 날개가 찢어진 두 마리의 잠자리는 각각 오른쪽, 왼쪽으로 곤두박질 쳤다.


에드윈은 아까와 같이 오는 놈의 머리와 몸통 부분을 노려서 찌르고, 빼고, 베었다. 단도는 깊숙한 곳을 찔러 두 마리의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달려든 날벌레는 다섯이었다.


“올리비아!”


미처 잡지 못한 나머지 한 마리는 올리비아에게 달려들었다. 턱이 딱딱 부닥치는 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놈의 모자이크 같은 눈에는 올리비아의 얼굴이 비쳤고, 날갯짓에는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그녀는 그만,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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