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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님의 서재입니다.

서쪽 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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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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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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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11)

DUMMY

슬피 우는 박쥐에게 노인이 다가와 물었다. “이 미련한 짐승아, 모두가 그들을 축복하건만 왜 혼자 울고 있는 게냐?” 박쥐는 울음을 그치고 바위에 걸터앉았다. 눈물은 여전히 방울방울 져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과거를 보았습니다. 동굴 속에 가만히 앉아 결과를 바라보았습니다. 일곱 번째 마지막 기사를 잊지 마세요. 세상을 바꾸는 걸 막으세요. 그것도 안된다면, 마지막 기사를 구하세요. 모든 기사가 죽는다 하더라도."


-알버트 랭. 「이 땅의 교황에 대하여」-




아침은 드시고 가시겠습니까?”


“세 명분만 주시게. 돈은 여기서 바로 지불하지. 곧바로 출발해야 해서.”


“닭고기 스튜랑 베이컨에, 빵 두 개씩 삼 인분. 동화 50닢입니다.”


마그누스는 은화 하나를 반으로 똑 잘라 건네주었다.


“앞으로 또 지긋하게 말린 음식만 먹겠네요. 북쪽에 사냥할만한 건 있을까요?”


올리비아는 하품을 내뱉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험프티는 언제나 같은, 멍한 표정으로 올리비아를 쭐레쭐레 따랐다.


“아침 먹고 바로 출발할걸세. 짐은 다 챙겼겠지?”


“아니, 그보다도 손님들. 겨울옷은 챙기셨습니까?”


파킨스가 주방에서 벌컥 튀어나오며 물었다. 올리비아는 자신의 배낭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 덕분에 이제 배낭을 메게 됐지만요. 혹시 눈이 오지는 않겠죠?”


이미 험프티가 말해주었으나, 올리비아는 확실히 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파킨스에게 물었다. 파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맥을 타시는 게 아니라면 지금 눈을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 겨울옷도 챙기셨다니 괜찮겠군요. 국경을 넘으면 갑자기 추워질 테니 조심하십시오. 여보? 아직이야?”


주방에서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인과 함께 여관은 운영하시나 봐요. 일손이 부족하지는 않으세요?”


“원래는 아들 두 놈도 거들었었는데, 지금은 저기 남쪽으로 내려갔습죠. 원체 도움이 안 돼서, 있으나 없으나 입니다. 하하하! ”


다시 부엌에서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파킨스는 주방을 들락날락하며 아침세트 3인분을 가져왔다.


“샐러드가 원래 메뉴에 있었나?”


“서비스입니다, 서비스. 대신 아들놈들 좀 만나게 되시면, 부모 얼굴 좀 보러 오라고 전해주십시오. 천천히 드시다 가시면 됩니다. 네에! 네!”


파킨스는 급하게 말을 마무리 짓고 위층에서 내려오는 사내 둘의 부름에 쪼르르 달려갔다. 따끈한 스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가볍게 한 숟갈 입에 넣자 몸 안 깊숙한 곳에 뭉쳐있던 차가운 공기가 사르르 풀렸다.


“진저드형제는 잘 지내고 있을까요?”


입을 연 건 올리비아였다. 그녀는 언제나 마그누스보다 빠르면 빨랐지, 느리지는 않았다. 둘의 닭고기 스튜는 이미 마지막 한 숟갈로 들어 올려진 후였다.


“잘 지내고 있겠지. 마그누스, 다음에 다우네른 캠프에 갈 때 한 번쯤 들러보게나.


“네, 알겠습니다.”


그새 베이컨 석 줄이 끝난다. 마그누스와 올리비아의 손은 이제 빵을 향해 있었다. 에드윈은 둘의 치열한 움직임을 보며 중얼거렸다.


“티타임은 글러 먹었군 그래.”




해가 쨍하긴 해도 역시 북쪽 마을의 아침은 여간 쌀쌀한 게 아니었다. 올리비아는 국경을 넘기도 전에 털 달린 웃옷을 꺼내서, 몸을 두텁게 감싸기 시작했다.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국경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방법은 남쪽이건 북쪽이건 간에 그리 다를 게 없었다. 다만 나가는 건 신분증 하나로 자유롭다는 것. 마찬가지로 에드윈이 무언가를 보여주자 순식간에 통과가 끝났다.


“국경 하나 넘자마자 이렇게 추워지다니.”


마그누스는 가방에서 겨울옷과 장갑, 털신을 꺼내 에드윈과 험프티에게 건네주고는 자신의 것도 챙겨 주섬주섬 입었다. 배낭에 공간이 훅 줄어들어 올리비아는 다시 자신의 배낭을 마그누스에게 맡길 수 있었다.


“잔디도 하나 없네요. 완전히 황무지에요. 나무랑 숲도 침엽수림뿐이고··· 아으, 추워라.”


올리비아는 털장갑과 털신을 마저 신으며 투덜거렸다. 다행이라면 말마따나 눈이 오지 않았다는 것. 삼일이라는 시간을 익숙하지 않은 고통 속에서 지내고, 포르토스 강에 가까워졌다. 저 멀리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선두에 선 에드윈은 손을 옆으로 쭉 펴 뒤따라 오는 일행을 저지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흙을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핏자국이 있군. 도적들인가?”


방울방울 떨어져 있는 핏자국들은, 강에 가까워지자 또 하나의 같은 강으로 변했다. 도착한 그들을 맞이해준 것은 시체 몇 구와 피부가 허연 두 남자였다. 왼편에 선 자는 발로 시체를 툭툭 치며 북쪽 방언으로 일행에게 물었다.


“댁들은 늰지? 이놈들과 같은 쪽이라?”


“그건 내가 묻고 싶네만. 자네들은 누구인가?”


에드윈의 질문에 오른쪽에 선 남자는 그들 뒤에 미어진 작은 배를 두드렸다.


“우리? 보면 모르늬? 뱃사공이오라.”


“뱃사공? 그럼 이자들은?”


“뭬긴. 도적 떼 들이우라. 타지서 왔는감?”


에드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여섯의 적을 상대한 걸로 보아 실력이 보통은 아닌 듯 보였다. 뱃사공들은 코웃음을 치며 에드윈에게 다가왔다.


“배를 타려고 그러늬나? 마침 잘 왔수. 이놈들 치우는 것 좀 도우시라.”


“도와주면, 태워줄건가?”


“물론 뱃삯은 받지비. 그란데 좀 비싸. 고기 삼십 덩이. 살아있는 거면 더 좋고. 싫으면 다른데 찾아가고. 다른 곳이 있으면 말이지."


“뭐?”


에드윈은 형제가 내세우는 터무니 없는 가치에 놀라 소리쳤다. 마그누스는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럽게 에드윈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전했다.


“그러고 보니 북쪽 주민들에게는 화폐가 통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동과 은도 식량에 비교하면 돌덩이나 다를 바 없다고..."


“그걸 이제 말해주면 어찌하나?”


에드윈은 골치 아프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쩔 수 없지. 마그누스, 전에 내가 준 거, 혹시 사용했나?”


“아니요. 아직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큰 돈인 것 같아서요."


“지금 생각에도 과한 것 같긴 하네. 이제 짐을 덜어줘야겠지. 이 보게들! 금화 한 닢 주겠네. 이거면 둘이서 일 년은 거뜬할걸세."


마그누스는 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둔 금화를 꺼내 뱃사공에게 건넸다. 사공 둘은 금화를 들고, 햇빛에 비춰보기도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다가 감탄사를 자아냈다.


“이 정도 크기의 금이라면 과하늬. 아주 과하기 그지없지. 하지만 거스름돈은 없다네!”


다른 남자는 그에 맞받아치듯, 가슴을 쿵쿵 치면서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받으면 우리야 절대 거절 못하븨. 시체가 어디 보자··· 여섯 구늬라. 각자 한 구씩 끌고 오라! 얼라! 괜찮겠나?”


뱃사공은 험프티를 보며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체의 다리를 잡아 질질 끌어 보였다. 사공들은 됐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시체를 가지고는 어딘가로 향했다. 몇 분 뒤 소나무 숲 앞에 도착한 그들은 시체를 안쪽으로 내던졌다.


“보자. 한 놈, 둘, 셋에, 넷, 오··· 뭬야, 한 놈 어디 갔어?”


“상관 말그라. 어차피 살아서는 못 갈긔니. 돈값이나 하러 가야 않늬?”


“찝찝하게시리. 뭐 오늘 이후로는 여기를 뜰게니 상관은 없겠지. 훠이! 돌아가세.”


다시 발길을 돌려 강을 향해 걸었다. 배는 나무에 묶여 단단히 정박한 채 물살에 기우뚱거렸다.


“저기 저 형씨 몸집이 좀 크기는 해도 괜찮겠긘. 빨리 탑승하게. 준비됐수? 하나, 둘!”


여섯 명이 모두 배에 오르자 사공이 배를 묶어두었던 밧줄을 칼로 끊었다. 둘이서 노를 젓자 배가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시체를 보니 검술에 능숙하더군. 분명 급소만 찔렀지?”


“흥, 이 황무지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정도는 기본인듸. 옆집 아낙네도 할 실력 아닌감?”


“하하, 재미있군. 그래, 둘은 형제지간이지?”


“그렇수. 후! 어기! 어차!”


기합 소리와 함께 노를 젓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거세게 휘날렸다. 험프티의 머리카락은, 휘날리면서도 그사이 여백 하나 남기지 않아 마치 검은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쓴 듯 보였다. 꽤 오랜 시간 노를 저었는데도 형제는 지칠 줄을 몰랐다. 그들도 뭣 모르지는 않기 때문에 필히 유역이 좁은 곳에서 사공일을 하는 것이겠지만, 노동의 대가를 위해 바다같이 넓은 강을 헤치고 파도처럼 험한 물살을 갈라야만 했다. 허나 사람 여섯을 태운 돛 하나 없는 배가 강을 가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모되지 않았다.


“아이구! 대다, 대. 도착했네! 놓고 가는 건 없는가? 돌아올 때는 알아서 빙 둘러가시라! 잘 가시게!"


형제는 작별인사와 함께 다시 노를 저어왔던 강을 되돌아갔다.


“이삼일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 바로 강을 건너왔군. 저들이 없었으면 큰일 날뻔했어.”


“다행이네요. 덕분에 반 년 치 노동 값을 치러야 하긴 했지만... 이제 강을 따라 쭉 가기만 하면 포르토스 시가 나오는 거죠? 다행히 물이 부족할 일은 없겠어요.”


올리비아는 지도를 펼쳐보며 말했다. 강은 곧게 뻗어 있었고, 딱히 험해 보이는 길은 없었다. 약간 으스스해 보이는 침엽수림이 위로 펼쳐져 강을 감싸고 있기는 했지만, 먹을 게 부족하지도 않았으니 미치지 않고서야 숲으로 들어갈 일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숲 안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눈들이 서로 속닥이는 것을, 험프티 외에는 누구도 듣지 못했다.


“대장요, 저들이 우리 애들 죽인 놈인지라?”


“전서구한테 받은 거로 보아 맞는것 같으라. 니 눈에는 누가 제일 맛나보이듸?”


“저 여자, 아니면 꼬맹이 아늬비? 대장 뜻대로 하시라.”


숲속의 도적들은 여자 둘과 남자 둘로 이루어진 한 무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 덩치가 큰 무리의 우두머리는 게걸스럽게 입맛을 다셨다.


“놈들, 상놈들 죽은 건 둘째치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어서 그리 곪주렸는데, 재수인지라. 언제 갈까? 잘 때? 아, 그리고 오늘 일은 두목한테 말하지 말그라. 혼날 게 분명하지."


그의 뒤에 선 스무 명 남짓의 도적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하나둘 발소리를 죽이면서 재빠르게 숲 깊숙한 곳으로 사라져 갔다.




“험프티? 왜 그래?”


험프티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우두둑 꺾은채 자리에 멈춰섰다. 기괴한 리듬의 호흡을 들이쉬더니, 빠른 담박질로 날아가듯 사라졌다. 올리비아가 채 낚아채기도 전에 그녀는 숲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야! 어디가! 야! 단장님, 찾아갈까요?”


에드윈은 잠자코 험프티가 달려나간 방향을 지켜보다가, 이어서 그녀를 찾는 데에 한 표 동의를 던졌다. 시간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역시 버리고 가는 것은 아니라 판단했다.


“제길, 어디로 갔는지 발자국도 남지 않았군. 마그누스! 올리비아! 갈라져서 찾지. 나는 저쪽으로 가볼 테니 자네들은 반대쪽으로 가보게!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여기로 돌아오는걸세!”


올리비아는 에드윈은 홀로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에드윈은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나무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기척을 찾아보려 했으나 숲속에 수많은 생물들은 자신의 위치를 과시했다. 곧 그녀는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올리비아가 숲속을 뛰며 마그누스에게 분을 풀었다.


"험프티도 그렇고 단장님도 그렇고, 절 무시하는 건 아니겠죠?"




일행들을 두고 홀로 뛰쳐나온 에드윈은, 험프티를 찾아 나무 사이를 헤치고 달렸다. 마그누스와 올리비아가 자신을 찾아서는 안 됐다. 냄새가, 피비린내가 풍기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데려올 수는 없었다. 험프티를 찾아야만 했다.




“살리븨! 제발!”


“하하하... 히히, 헤헤헤!”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이 남자. 도적 떼의 우두머리가 되는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사냥감을 쫓으며 밤을 기다렸다. 숲속은 그들의 영역이었다.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그랬을 터였다. 그랬는데 –


“있잖아, 있잖아.”


“사, 살려 줄라고?”


“살려줄게, 그 대신 있잖아.”


-소녀가 발견되고, 부하들이 입맛을 다시고, 그리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부하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리고 흑발 머리 소녀가 자신의 옆에 있는 부하를 통째로 삼켜버린 뒤, 우두머리는 무릎을 꿇고,


“내 친구가 말이야, 너희들을 보면 팔로 걸어 다니게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어.”


“응? 뭐, 뭐?”


그녀가 자신의 다리를 없애 버리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비명조차도 낼 수 없었다. 소녀는 계속해서 알지 못할 말을 하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깐, 팔로 걸으라는 말이야. 팔은 남겨줬잖아?"


남자는 어째서 자신이 살아있는지 또한 알 수 없었다. 어떻게든 살고자 배를 흙바닥에 털썩 떨어트리고, 숲속으로 도망치려 앞으로 팔을 뻗었다. 차가운 흙이 손톱 사이에 끼는 것은 썩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된 건지.


“벌레처럼 기어 다니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소녀, 아니 괴물. 그것은 자신에게로 걸어왔다.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렸다. 온몸이 떨리고 추위와 공포에 이빨이 딱딱 부닥쳤다.


“살리븨, 살리븨라. 기회를 한 번만, 한 번만 주라. 응? 내가 잘못한 것이···”


“그치만, 미안해.”


괴물은 이빨을 드러내며 상냥하게 웃는다. 입가에 묻은 피가 그리도 두렵게 느껴져 몸이 계속해서 떨려왔다. 등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동시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지막이 신음을, 마지막 온기와 함께 내뱉는게 고작이었다.


“험프티!”


시체를 처리하고 있자니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어? 에드윈?”


그녀의 뒤에는 에드윈이 서서, 험프티를 노려보고 있었다. 험프티는 반갑다는 듯 두 팔을 벌려 그를 맞이했다.


“어서 와! 혼자 왔어?”


“그래, 혼자 왔다.”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실려있었다. 그러나 그 감정에 분노는 티끌만치도 묻어 있지 않았다. 험프티는 신이 나 소리쳤다.


“하하하! 있잖아, 에드윈? 아니, 레이시스, 아니 스텐! 미안해. 다 기억해 버렸어. 미안해. 그런데 있잖아. 있잖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그녀는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일그러뜨렸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인지, 무엇이 기억났다는 건지 에드윈은 당최 알 턱이 없었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에드윈은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위험하잖아.”


험프티는 상기된 목소리를 착 가라앉히며,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 던졌고, 그것이 날아들어 에드윈의 검에 맞은 뒤, 엄청난 울림과 함께 검이 깨지며, 그 파편에서 나온 빛이 에드윈의 눈을 비출 때, 바로 그때.


험프티는 이미 에드윈을 자리에 눕힌 뒤였다.


“있잖아, 있잖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깐, 이틀 동안, 이틀 동안, 이틀 동안··· 그동안 말이야, 어째서.“


죽은 주인의 전서구는 성급히 날갯짓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묻어버리려 했으나, 불행하게도 때는 이미 에드윈이 그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해 버린 후였다.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의문이 손을 뻗고 기어 나왔다.


“그러니깐.”


목에 커다란 압력이 느껴졌다.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었다. 험프티의 손이 에드윈의 목을 지그시 눌러 부수고 있었다. 목과 입에서는 피가 꿀렁꿀렁 솟구쳐 나왔다.


“그러니깐, 너도.“


전서구의 날갯짓은, 다시 한번 그녀의 목소리 묻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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