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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님의 서재입니다.

서쪽 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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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최근연재일 :
2018.08.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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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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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2)

DUMMY

땅에 앉아 야윈 척추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길지만, 몸을 누인 이들에게는 짧은 밤. 어둠은 바위와 흙먼지를 차게 식혔고, 그 위에는 몸을 누인 이들이 있었다. 밤하늘 별들의 유랑이 끝나고 아침이 다가온다.


"마그누스. 일어나게."


에드윈은 곤히 잠든 마그누스를 깨웠다. 눈이 벌겋게 부은 그는, 어깨를 흔들자 금방 일어났으나 조금은 비몽사몽 한 것인지 주변을 연신 살폈다. 잠시 뒤 그는 상황을 깨닫고 에드윈에게 안부를 물었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요. 잠은 좀 푹 주무셨습니까?"


"그래. 편히 잤네. 자네는 좀 괜찮은가?"


"네. 괜찮습니다.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니 마음은 좀 편하군요."


"언제까지고 과거에 얽매여 있을 순 없지. 어떻게든 시체를 묻어야 할 테니깐."


마그누스는 조금 불편한 마음이 생겼지만, 말들에게 풀을 먹이는 에드윈에게 차마 질문을 건네지는 못했다. 도울 겸 모포를 접어 배낭에 넣었다. 준비할 채비를 끝내고, 다시 말을 몰고 캠프로 떠난다.


"캠프는 얼마쯤 남았습니까?"


"얼마 안 남았네. 조금만 더 가면 보일 것이야."


얼마나 달렸을까. 해가 아까보다 조금 더 높이 뜨고 나자 허름한 집들이 나타났다. 캠프라 불리는 마을들은 타나토스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임시 거주처였다. 속도에 박차를 가해 입구에 도착하자 그곳을 지키는 병사가 그들을 맞이했다.


"어디 소속이십니까?"


"바티칸 기사 수도회일세."


"아. 어서 오십시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 괴물들을 잡기 위해 결성된 기사단이라니. 나 참. 아, 그건 그렇고 두 분만 오셨습니까?"


병사의 말투에서는 묘하게 비아냥대는 어조가 섞여 있다. 에드윈은 조금씩 방울져 올라오는 분노를 애써 웃음으로 눌러담았다. 마그누스는 에드윈의 그런 심기를 눈치챘는지, 병사를 한 대 칠 듯 째려보았다. 충분히 분을 삭인 에드윈은 이곳의 대표를 만나고 싶노라며 그를 차분하게 설득했다.


"그러시다면 뭐, 직접 니수스 영감님을 뵈셔야겠군요. 어이!"


그의 부름에 저만치 있던 병사가 달려왔다.


"이분들을 니수스 영감님께 모셔다 드려."


병사의 얼굴에는 영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를 깔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한 뒤, 묵묵히 둘을 캠프 안으로 안내했다. 도착한 곳은 캠프의 정 중앙에 되는 곳에 있는, 다른 집들과 비슷하게 생긴 나무집이었다.


“말은 저곳에 묶어놓으십시오. 원래라면 니수스 영감님께 허락을 맡아야 하지만, 이곳에 말을 끌고 올 자가 또 얼마나 된다고.”


그는 이렇게 말하곤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분명 본적은 없지만, 어딘가 낯익은 뒷모습이다. 마구간에 말들을 묶어놓은 뒤 니수스의 집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누구십니까?"


작은 키에 삐쩍 마른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휘날릴 머리털 하나 없는 추레한 늙은 노인이었지만 어째선지 건강하다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자네가 이곳 대표인가?"


"네...제가 캠프를 대표하는 니수스이긴한데... 댁들은 누구십니까?"


니수스는 그의 앞에 서 있는, 건장한 두 사내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히 말했다.


"바티칸에서 온 기사들입니다. 이곳의 대표인 니수스 씨를 뵈러 왔습니다."


에드윈은 예의를 갖춰 공손하게 말했다.


"아! 거기서 오셨군요. 들어오십시오. 자, 허름하지만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니수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둘을 낡은 탁자에 앉히고는 주방으로 걸어 들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잠시 그러던 그는 둘 앞에 차를 대령했다.


"안녕하십니까. 기사단에서 오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기사 수도회, 뭐 기사단이라 해도 상관없겠지요. 바티칸 기사단의 단장직을 맡은 에드윈입니다. 그리고 이자는 마그누스. 같은 기사입니다."


에드윈의 말에 마그누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안이 벙벙한지 니수스와 에드윈의 얼굴을 계속해서 번갈아 봤다.


"내 자네를 손에서 놓아줄 줄 알았는가?"


에드윈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는 마그누스를 끝까지 데려갈 작정이었다. 그와 같은 인재는 드물었고, 같이 다니면 피곤하긴 해도 재미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에구,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두 분 다 높으신 분이셨군요. 타나토스 건으로 오신 게 맞으시지요?"


"네. 하지만 그 전에 여쭐 게 있습니다만. 이곳의 병사들을 이끄는 사람이 누굽니까?"


"아니, 그, 그게...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 건에 대해서라면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에드윈의 분노가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채 전에 니수스는 고개 숙여 사과의 뜻을 전했다.


“병사들에 관해서라면 항상 건의가 끝이질 않죠. 이 늙은이가 구차하게나마 변명을 해보자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곳은 아시는 대로 타나토스에게 가족은 잃은 자들과 주민들이 피난처로 온 캠프입니다. 다른 주민들과 같이 입구에 배치된 자들도 마찬가지죠. 그들의 마음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했어요. 그래서 여기 분위기가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아마도... 다른 캠프를 가도 비슷비슷할 겁니다."


"그러시다면 이번만큼은 너그럽게 넘어가도록 하죠. 어디, 인근 주민들의 대부분이 이곳으로 모인 겁니까?"


에드윈의 질문에 니수스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친절히 답했다.


"허허. 잘 모르시는군요. 한 마을의 모든 주민이 타나토스를 피해 이곳으로 올 수는 없습니다. 가뜩이나 주변에 마을이 많기도 하고요. 여기로 오는 건 오직 타나토스에게 피해를 본 자들과 재수 없게 타나토스의 활동범위에 들어가는 가구들뿐입니다. 나머지 주민들은 그냥 그것을 멀리하고 마을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갑니다."


"활동범위라는 말은 처음 듣는습니다만. 부끄럽게도 타나토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혹시라도 아시는 정보가 있다면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 늙은이가 도움된다면 영광이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니수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반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안에서 색이 바랜 종이 하나를 꺼내 에드윈에게 건넸다. 종이에는 더러운 글씨로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그 나름대로 이런저런 기록들을 이용해 추론을 이뤄낸 듯 보였다.


"첫 번째는 아까 말해 드린 바와 같이 활동반경이 정해져 있단 것입니다. 사실 반경이 얼마인진 아무도 모르지만, 그 안으로만 들어오지 않으면 그게 뭐든 관심도 보이지 않죠.”


"그렇담, 밖에서 활을 쏘는 방법은..."


“두 번째는, 그렇게 활동반경이 정해져 있지만 멀리서라도 위협을 받으면 또 쫓아온단 겁니다. 그 때문에 장난으로 돌멩이를 던진 가엾은 한 아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혹시 이곳으로 말을 몰고 오시다 타나토스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뇨, 없습니다.”


"그겁니다. 타나토스는 반드시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에서만 나타납니다. 그래서 모두 두려움에 떠는 것이죠. 어디서든 나타나고, 꼭 피해자가 발생하니 무섭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말이 피난민들이 모인 캠프지, 이곳에도 타나토스가 나타나지 않으란 법은 없습니다. 자, 여기까집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군요."


토벌에 있어서 유용한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식어가는 차를 다 마실 때 즈음 니수스가 다시 말을 꺼냈다.


"두 분께선 묵을 곳이 없으시지요? 허름하지만 외곽에 텅 빈 집 한 채가 있습니다. 안내해 드리죠. 따라오십시오."


니수스를 따라 문밖으로 나가자 마그누스의 눈에 말들이 밟혔다. 그는 사뭇 걱정되는 눈치로 니수스에게 물었다.


"말들은 어떡합니까?"


"캠프 내에 마구간은 이곳 아니면 입구 쪽밖에 없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제가 잘 보살펴 내일 아침 데려다놓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아쉽지만 잘 부탁드립다."


"어디, 꽤 오래 기르신 것 같은데. 저 녀석 들판에서 뛰어놀던 놈이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구간만 옮겨 다니는 녀석이 풍길 눈빛이 아니거든요. 밥도 참 많이 먹게 생긴 게 기운이 넘치는군요. 허허허.”


마그누스와 니수스는 나름 수다를 계속 이어 나갔다. 에드윈은 한 발짝 뒤에서 아까 하던 생각을 계속해서 헤아렸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외곽에 있는 한 허름한 집에 도착했다. 겉은 볼품없었지만, 안은 깨끗해 묵는 데 큰 지장은 없을 듯 보였다.


"편히 쉬십시오. 불편한 일이 있다면 저를 찾아오시면 됩니다."


"이렇게 묵을 곳도 마련해 주시고. 어찌 해야 할지..."


"아뇨. 당연히 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이 늙은이가 할 수 있다면 뭐든 해드려야죠.”


그는 빙긋이 웃어 보이고는 문을 닫았다.




"내일 정오에 놈들을 잡으러 갈 생각이니 오늘은 편히 쉬게. 시간은 많으니 바깥 구경을 하고 와도 좋고."


"엇, 그럼 저는 짐을 풀어놓고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에드윈 씨는 여기 쭉 계실 겁니까?"


"나는 잠시 생각해 둘 게 있어서 말이네..."


마그누스가 집을 나서고, 에드윈이 조용히 눈을 붙이자 세상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요해졌다.




짐을 풀어두고 나왔으나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길은 없었다. 그저 이곳저곳 캠프 안을 돌아다니던 마그누스는, 문뜩 고소한 냄새를 감지했다. 향기롭고 따뜻한 냄새. 그 향기의 근원을 찾고자 냄새가 강해지는 곳을 쫓았다. 이리저리 낮은 집 사이사이를 지나다닌 결과 캠프 내에 갖추어진 상가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역시 냄새는 빵집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어서 옵쇼!"


커다란 목소리로 그를 맞이하는 제빵사는 안쪽에서 빵을 만들 반죽을 텅텅 쳐대고 있었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향을 뽐내는 빵들이 즐비해 마그누스를 유혹했다. 마음에 드는 커다란 빵 하나를 집어 계산하려 하자, 그가 반죽을 치다 말고 다가와 말을 건넸다.


"처음 보는 얼굴과 복장이시군요. 어쩌다 이곳에 오시게 되셨습니까? 아, 빵은 동화 4닢입니다."


주머니를 뒤져 동화 4닢을 건네준 뒤, 위쪽 어느 기사단에서 사전조사차 나왔다고 간단히 설명하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곳에도 상가가 있긴 있군."


계산을 끝내고 안쪽으로 들어가 반죽 치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는 제빵사는 어떻게 또 그 작은 소리를 들었는지 커다란 목소리로 상가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른 캠프에도 웬만해선 다 상가가 있습니다. 이곳은 워낙에 다른 곳보다 크다 보니 어지간한건 다 갖춰져 있죠. 상인 길드, 수공업자 길드도 작지만 형성돼 있고, 수도회도 있습니다."


잠자코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자에 걸터앉은 마그누스는 그새 커다란 빵을 다 먹어치웠다. 제빵사에게 나중에 다시 오겠다 말하고 빵집을 나오자 몸을 조금 움직이고 싶어졌다. 이럴 때면 게르를 타고 벌판을 달리고는 했다.


한참을 방황하다 게르가 보고 싶어 상가 쪽을 쭉 돌아 니수스의 집을 향해 걸었다. 빵집에서 들은 대로 물건을 파는 곳, 길드조합, 대장간에 수도회까지 조금씩 부족하기는 해도 있을 것들은 대부분 갖춰져 있었다. 그렇게 상가에서 벗어났나 싶을 때, 건너편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마그누스를 향해 뛰어오며 소리쳤다.


"우아아! 괴물이다!"


아이들이 마그누스에게 떼거리로 달려들어 그의 커다란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어린아이들의 순진한 표정에 웃음이 절로 났다. 시간만 있었다면 맘껏 어울려 줬겠지만, 그는 갈 길이 바쁜 사내였다. 아이들에게 살짝 겁주기 위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놈들! 자꾸 그러면 시커먼 괴물이 잡아간다!"


마그누스는 이 말을 내뱉고는 아뿔싸 했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아떨어진다고, 한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나머지 아이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쳤고, 황량한 거리에는 마그누스와 펑펑 울고 있는 여자아이 둘만이 남게 되었다. 주변에 사람은 없었지만 언제 우는 소리를 듣고 주민들이 달려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 광경이 목격돼 입을 타고 소문이 퍼지게 된다면 기사가 될 자로서의 명예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기사단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로 번지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고 우는 애를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그누스는 고심 끝에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 아이를 잡아 번쩍 들어서는, 그의 널따란 어깨 위에 걸터앉혔다. 아이는 놀랐는지 울음을 그치고 연신 딸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마그누스가 최대한,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고분고분하고 상냥하게 말했다.


“괴물이 무섭니?”


아이는 ‘응’ 이라고 대답했다. 마그누스는 오싹한 느낌에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섰다. 아이는 그가 멈추자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 어리둥절해 있었다. 저 질문은 아이에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중에 누가 가장 괴물을 두려워 한단 말인가? 질문은 또한 마그누스 그에기 하는 것이기도했다.


마그누스는 예전에 보았던 타나토스의 오싹한 웃음이 떠올리고 있었다. 만약 그가 지금, 도망쳤었던 그때의 마그누스였다면. 그렇다면 그는 과거를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 자신은 어떤가? 자기 자신에게 내던진 질문에 대해 유심히 생각했다. 답이 정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마그누스는 망설임 없이 받아쳤다.


"까짓 놈들 다 덤비라 그래라! 내가 다 잡아주마!”


아이를 자신의 어깨에 태우고는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달렸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그를 보았다면 말 한 마리가 난폭하게 도로를 달리고 있는 줄로 오해했을 것이다. 그의 달리기는 아까 그에게서 도망쳐 숨을 고르고 있는 아이들을 금방 따라잡았다. 굉장한 속도로 달려오는 그와, 같이 도망쳐 온 줄로만 알았던 그들의 친구가 그의 어깨 위에서 신이 나며 다가오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있어 하나의 악몽같이 다가왔다. 어안이 벙벙해진 아이들 앞에 멈춰 서 여자아이를 어깨 위에서 내려주었다. 해맑게 웃으며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아이에게, 마그누스는 조용히 이름을 물었다.


"제 이름은 레이첼이예요! 아저씨는요?"


"아저씨는 마그누스라고 한단다. 나는 이만 가봐야 하니 조용히 놀다 들어가거라!"


뒤에서 손을 흔드는 레이첼에게 가볍게 작별인사를 건넨 그는 다시 게르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에 보는 눈이 없다는 걸 대충 확인한 그는 전속력으로 니수스의 집을 향해 달렸다. 몇 분도 안돼 그의 집에 도착한 마그누스는 곧장 마구간을 향했다. 마침 니수스가 말들에게 물을 먹이는 중이었다. 그를 발견한 니수스는 손을 털며 반겼다.


"마그누스 씨! 웬일인지요. 혹시 집에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바로 오실 일이..."


"아뇨. 다른 게 아니고 그냥 게르를 만나러 왔습니다. 니수스 씨가 잘 관리하는지 감시도 할 겸요. 하하하!”


니수스눈 피식 웃어 보인 뒤 마구간 문을 열었다.


"아까부터 갑갑해 하는 것 같더군요."


니수스는 마그누스의 생각을 가볍게 읽어낸 것인지 말고삐를 잡고 게르를 마구간에서 빼내었다. 마그누스는 게르 위에 올라 타 놈을 구보로 몰려다, 문득 레이첼을 떠올렸다.


"니수스 씨, 레이첼이란 아이를 아십니까?"


"레이첼... 이라면 상가 쪽 애들이랑 어울려 다니는 검은 머리 아가씨를 말씀하시는 거겠군요. 그 애는 보름 전에 가족을 잃고 발견되어 여기에 들어온 애입니다. 지금은 수도원에서 지내고 있는데, 처음엔 다른 아이들이랑 영 못 어울려 다니더니만 요새는 잘 부대껴 지내더군요.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혹시 애가 사고라도 쳤습니까? 그럴만한 애는 아닐 텐데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까 상가 쪽에서 우연히 만나서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겠다는 한마디와 함께 캠프 밖을 향해 천천히 구보로 말을 몬다. 입구를 나서자 그가 달려온 드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그래. 영 좀이 쑤신 모양이구나. 어디 한번 달려보자!"


게르가 히힝 소리를 내며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마그누스의 콧잔등이 바람을 갈랐다. 그와 게르는 한참 동안 그렇게 평야를 휘저었다.




마그누스는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빵을 한 아름 크게 싸 들고 말이다. 문득 상가에서 들었던 것들이 생각났는지 에드윈에게 소소하게 말을 건넸다.


"에드윈 씨, 저기 상가 쪽은 둘러보셨습니까? 캠프인데도 어지간히 있을 건 다 있더군요."


"나도 오후에 가보았다네. 잠시 대장간에 들릴 일이 있어서 말이네. 그런데 마그누스, 상가에서 듣기로는 엄청나기 빠른...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던데... 뭔가 찔리는 건 없는가?"


에드윈의 말에 마그누스의 얼굴이 파래졌다.


“오후에 니수스 씨의 집에 갈 때···”


"됐네, 됐어. 자네가 그렇게까지 달렸다면 이유가 있었겠지. 것보다 내가 가져온 것들 좀 보게나."


마그누스는 도저히 게르가 보고 싶어 뛰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는 황급히 에드윈이 가져온 물건으로 다가갔다. 그가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몇 가지 장비들이었다


"라이트 랜스, 방패... 그리고... 이건 뭡니까?"


"성수라네. 타나토스를 잡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 자, 이제부터 잘 듣게. 내일 할 일을 설명해 주도록 하겠네."


에드윈은 타나토스를 잡는 법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설명은 듣는 상대가 마그누스일지라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했다.


첫째. 일정 거리 이상에서 타나토스에게 성수를 던진다.


둘째. 무기로 타나토스를 잡는다.


"다만 커다란 놈들은 랜스로 한 방 먹이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 자루 정도 준비해 봤네. 자네는 말을 먼 곳에 매어놓고 합류하면 되네. 말들이 휘말리면 큰일이어서."


“알겠습니다. 잘 됐으면 좋겠군요.”


다시한번 설명을 끝마친 에드윈이 식사를 권했다. 마침 때도 저녁. 둘은 탁자에 앉아 마그누스가 가져온 빵을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참, 에드윈 씨.”


“왜 그러나?”


“상가 쪽에 수도회는 가보셨습니까?"


“물론 상가를 둘러보면서 보긴 봤지. 그런데?”


“아이들, 정말 순수하고 예쁘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에드윈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마그누스도 살짝 얼굴을 붉혔다.


“허허, 자네. 보기와는 아주 딴판이군 그래. 역시 재미있어. 기삿감으로 딱이야.”


오고가는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마그누스는 아예 탁자에 반쯤 엎드린 뒤 꺽꺽 소리를 내며 웃었다. 딱히 이유는 없지마는, 그날만큼은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방안을 밝힌 불은 다른 불들이 꺼질 때 쯤 누구도 모르게 훅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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