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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님의 서재입니다.

서쪽 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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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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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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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9)

DUMMY

해. 그것은 더는 노을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지평선 아래로 몸을 숨겼다. 모든 것을 움직이는 동력. 동력은 세계를 끝냈고, 전쟁을 끝냈고, 제국을 끝냈다. 음유시인들이 냉혈한이라 칭하는 동력의 이름은, 바로 시간.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존재조차 죽음이라는 창조로 끌어내는 시간은, 당연히 대성당에서도 차갑지 못해 싸늘한 향기를 풍기며 지나갔다.


그간 에드윈과 올리비아는 자신의 방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마그누스는 홀로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방을 들락날락하며 식사를 하러나온 병사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곤 했다. 그마저도 딱히 오래가진 못하였으나.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이른 잠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새벽은, 밤을 죽이고 어떻게든 찾아왔다. 그 새벽의 푸른빛에 마그누스는 잠에서 깨어났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조물(造物)이 세상에 명암을 주입해가는 과정이 뚜렷하게 보였다.


-똑똑똑


누군가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마그누스는 어째선지 깜짝 놀라 벗어두었던 웃옷을 재빨리 챙겨입으며,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게. 새심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여 노크 소리에 답해주었다.


“누구인가?”


“올리비아예요. 웬일로 일찍 일어났네요.”


“내가 만날 늦잠만 자는 건 아니라서.”


잠금쇠를 풀고 문을 열자 올리비아가 보였다. 그녀는 이미 어제와 비슷한 차림으로 준비를 끝마친 듯했다. 긴 천 옷과 긴 바지에 푸른 스카프. 어쩌면 푸른 스카프 때문에 비슷해 보이는 걸지도 몰랐다. 턱 아래 살짝 삐져나온 문양이 눈에 띄었다. 그대로 올리비아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 하니 그녀는 어색한 미소로 이에 답해주었다.


“음... 헤헤. 안녕히 주무셨어요? 단장님이 한 시간 뒤에 나오래요.”


“허허, 갑자기 존대는. 잘 주무셨고말고. 에드윈 씨에게도 알겠다고 전해드리게. 자네 짐도 같이 들고 가면 되지?”


“그러기엔 조금 미안한데.”


올리비아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색한 미소를 풀고 배시시 웃어 보였다.


“흥, 솜뭉치처럼 가벼운데 뭘.”


“그러면 잘 부탁해요. 참고로 지금이 다섯시에요. 여섯시 까진 나와야 해요.”


“자네도 일찍 준비를 끝낸 것 같고, 에드윈 씨는 보나 마나 준비가 끝났을 터인데. 괜히 미안하구먼.”


“미안할 건 또 뭐람. 준비하고 제시간에 나오기나 해요. 그럼 이만.”


올리비아는 그대로 오른발을 중심 삼아 빙그르르 돈 뒤, 자신의 방이 있는 4층으로 슝 올라갔다. 생각외의 어색함에 마그누스의 몸이 쭈뼛거렸으나, 딱히 석연치 않게 생각하며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막 열린 식당에서는 포근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냄새에 취해 식당으로 들어가서 수프, 빵 따위와 소시지, 채소까지 두 그릇씩 가져와 텅 빈 식당에 홀로 앉았다.


“가끔은 혼자도 괜찮지.”


라고 혼잣말하며 마그누스는, 수프와 빵, 아주 살짝 탄 듯 만 듯 바삭한 소시지를 느긋하게 음미했다 먹어치웠다. 앞으로 한 달은 이렇게 편하게 식사를 하지 못하리라.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식당 밖을 나왔다. 자신의 방으로 가 어제 꺼내두었던 손거울을 다시 넣고, 평소에 입던 옷과 바지를 챙겨입었다. 마지막으로 올리비아의 배낭이 담긴 자신의 큰 배낭을 멘다. 몸집이 2배는 불어나 버렸다. 완벽하다고 판단을 내리고, 1층으로 내려가 성당 밖 벽돌 바닥에 발을 올렸다. 저 앞에 에드윈 씨와 손을 흔드는 올리비아가 보였다.


마그누스는 웃으며 벽돌 바닥 위에 나머지 한 발짝을 올렸고, 그리고, 그리고 종이 울렸다. 마그누스의 시선이 성당을 향했다. 다시 한번 더 크게 종이 울렸다. 아침을 알리는 종소리. 성당을 향한 시선을 앞으로 옮기니 올리비아가 신이 나서 양손을 흔들어대는 게 보였다. 정전기가 흐르듯 온몸에 전율이 흘러내렸다.


“자네라면 늦을 줄 알았는데.”


에드윈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마그누스는 괜히 섭섭하단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만날 늦잠만 자는 건 아니라서 말입니다.”


마그누스는 자신이 한 말에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단장님, 이제 어디로 가면 되죠?”


“일단 바티칸에서 벗어나야겠지. 북쪽으로 가는 거면 이 큰길로 쭉 걸어가면 되네. 대성당 정문을 북쪽을 가리키고 있으니깐.”


에드윈은 텅 빈 북쪽 시장 거리를 가리켰다. 성당은 바티칸의 중심에 있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꾸며진 아치 모양의 문이 보였다.


“있잖아요, 단장님.”


북쪽 입구에 다다른 올리비아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걷기만 하는 에드윈을 불렀다.


"왜 그러나?”


“혹시, 여기 오시기 전에 뭐 하고 사셨나요?”


에드윈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걸었다. 어쩌면 올리비아의 질문을 무시하는 듯 보이기도 했으나, 사실 그는 꽤 오랜 시간동안 생각을 기울였다. 그는 올리비아가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나 하고 의심할 참이 되어서야 질문에 답해 주었다


“그냥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먹고 살았을 뿐이네.”


에드윈은 생각해낸 자신이 대견하기라도 했는지 아주 명쾌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올리비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또 에드윈을 추궁했다.


“엥? 그럼 거지였단 거잖아요. 거짓말.”


“거짓말이라... 그래,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실론의 수도 옆 작은 마을의 병사였었네. 그리고··· 그리고··· 그래, 그렇게 됐지."


에드윈은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눈동자를 허공에 두고 이리저리 굴리다가, 눈을 감고, 관자놀이에 손을 올리고, 숨을 한번 들이쉬어 호흡을 진정시킨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되도록 과거 이야기는 묻지 말아 주게. 잃어버린 이야기일 뿐이니깐.”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걷는 데에만 정신을 기울였다.


사크라토론은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초원의 계속이었다. 가끔 작은 숲이나 호수가 보이긴 했지만, 절대적으로 평야가 영토 대부분을 차지했다. 바닥에는 짧은 잔디들이 푹신하게 깔려있어 충실하게 완충 역할을 해냈다.


“지금까지 걸으면서 잔디밭이 아닌 곳을 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국토 전체가 이럴 수 있죠?”


“이, 이곳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한 땅이니깐.”


부스럭부스럭. 향긋하게 올라오는 풀 내음과 잔디 밟히는 소리. 저 건너 숲에서는 새들이 지지배배 이야기하고 있겠지. 그러나 일행에게 다가온 건 잠깐의 정적이었다.


“···마그누스, 뭐라고요?”


“뭐가,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거짓말 말아요. 분명 내 뒤에서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는데. 아! 단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이상하게도 싸한 높새바람이 쉭쉭 뱀 소리를 내며 불어왔다. 올리비아는 바람을 맞는 순간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왼쪽 어깨가 욱신거리고, 목 아래가 조금씩 달아올랐다. 채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모든 감각이 고통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대로 털썩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려 버렸다. 올리비아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올리비아? 올리비아! 무슨 일이야!”


“다···단장님··· 넷··· 네··· 넷··· 뒤···”


그녀는 무언가를 다급히 전달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리기는 하였으나, 쥐라도 난 것처럼 입술을 벌벌 떨기만 하고 어떠한 문장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올리비아는 어쩔 수 없이 입술을 힘껏 깨물었다. 비릿하고 짠맛이 혀를 자극함과 동시에 턱과 입술이 잠시 자유로워지는 시간이 있었다.


“네··· 네 명! 마그누스 옆에!”


올리비아의 말에 마그누스는 어리둥절한 채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에드윈은 고개를 돌려 마그누스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는 마그누스뿐. 다른 무언가는 털끝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다른 사람이 있는지 빠르게 확인했다.


하지만 그곳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왼쪽을 확인하려 들었다. 목과 눈동자가 그 무엇보다 빠르게 돌아가려는 그 순간. 그 잠시 순간, 에드윈의 눈에는 검은 형체가 포착되었다.


그곳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그누스! 왼쪽에!”


마그누스가 꺼림칙함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목보다 주먹이 더 빠를 수 있다 자신한 것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바위며 강철도 부술 수 있다 자신한 그의 주먹이었다. 분명 그랬다. 그러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막혔다.


비단같이 부드러운 무언가에 그의 주먹이 스르륵 감기며 힘을 잃었다.


“가, 갑자기 그, 그렇게 주먹을 휘, 휘두르면 안 돼."


누구도 기척을 느낄 수 없게 다가온 ‘그것’ 은, 분명 이 땅에서는 보여선 안 될 타나토스 따위는 아니었다. 인간이었다. 아까 올리비아가 들은 목소리와 같은, 미약한 중저음을 가진 소녀가 그곳에 있었다.


“네가 그런 건가? 올리비아를 어떻게 한 거지?”


올리비아는 그대로 몸을 웅크린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심히 고통스러운지 소리 사이사이에서는 신음이 섞여 나왔다.


“오, 오랜만이네··· 나, 나 때문인 건 맞지만 , 내, 내가 그런 건 아니야. 에, 에드윈? 화살. 화살을 그녀에게서 머, 멀리 떨어트려.”


에드윈은 소녀의 말에 따라 올리비아의 어깨를 잡아당겨 그녀를 뒤로 눕힌 뒤 허리춤을 뒤져 울르의 화살을 꺼냈다. 화살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몸에서 화살을 떨어트리자 올리비아의 거친 호흡은 곧장 진정되었고, 그녀는 다시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며 몸을 축 늘어뜨렸다. 에드윈은 호흡을 통해 잠들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자, 잘했어. 귀한 화살을 들고 있었네...”


에드윈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허리춤에서 바스타드 소드를 빼 들어 소녀를 겨누었다. 몸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뜨거워져 있었으나, 머리는 아직도 차가움을 유지했다.


“널 그대로 보내줄 생각은 없다.”


“나, 나도 순순히 물러간 생각은 없어.”


소녀는 검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흥이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다기에는 너무나도 말끔한 얼굴이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마그누스!”


“네··· 네?”


마그누스는 아까 자신의 왼 주먹이 아무런 이야깃거리를 남기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에드윈은 단호하게 명령했다.


“묶어.”


배낭에서 밧줄을 꺼내 들어 그녀의 몸을 둘둘 묶는다. 딱히 저항하지 않는 소녀 덕분에 매듭은 아주 튼튼하게 매어졌고, 에드윈은 그제야 안심하며 바스타드 소드를 다시 칼집에 되돌려 넣었다.


“아, 아까 쓰러진 여자. 올리비아였나? 아, 아마 내일은 돼야 깨어날 거야. 그, 그래서... 이곳에서 기다릴래? 그리고 화, 화살은 되도록 저 멀리 떨어트려 두는 게···”


“녀석아, 조용히 해.”


마그누스는 핀잔을 주었다. 에드윈은 올리비아를 어떻게든 데리고 갈 것인지, 아니면 하루 쉬고 갈 것인지 고민했다. 가려고 한다면 마그누스가 올리비아를 들어서라도 출발은 할 수 있었다. 그라면 그러고도 거뜬한 사내니깐. 하지만 문제는 에드윈의 손에 들려진 화살에 있었다. 그것이 올리비아에게 다시 어떤 영향을 줄지 몰랐다.


“확실히 멀리만 떨어트려 놓는다면 괜찮은 거겠지?”


“무, 물론이야. 거짓말은 하지 않아.”


에드윈은 얼핏 보이는 호숫가로 달려가 평탄한 돌 위에 화살을 올렸다. 다시 일행에게로 돌아온 에드윈은 묶여있는 소녀에게로 다가가 마주 보고 앉았다.


“몇 가지 질문할 게 있다. 어디서부터 우릴 쫓아왔지? 정체가 뭔지 밝혀라. 그리고 화살에 대해 어떻게 아는지까지도.”


그녀는 에드윈의 질문에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마그누스가 보기에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으~렇게 물어보면 기억하기 힘들어, 어~. 하하하··· 하지만 특별히 답해줄게. 대, 대성당에서부터 너희들을 쫒아왔고, 정체? 내가 누군지는··· 나도 몰라.”


“그게 말이 되냐?”


소녀의 느릿느릿한 대답을 듣다 못 한 마그누스는 그만 그녀의 머리를 꽁 때려 버렸다. 소녀는 앞으로 툭 고꾸라졌다.


“아파~ 하, 하지만 난 진짜 내 이름도 모르는데···”


“이만 됐다. 세 번째 질문에는?”


“세 번째는, 그 화살을 어떻게 알았냐면, 그건... 못 알려줘!”


그녀는 빵긋 웃음을 터트렸다. 에드윈은 무표정으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그녀를 바로 보았다. 길게 뻗은 흑발에 창백하리만치 허연 피부와 검은 눈동자. 그리고 오랜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닮아 빠진 옷차림은 어딘가 낯익은 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에드윈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또 질문이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 그건, 언젠가 만난 적이 있으니깐. 그러니깐 아는 거야.”


“유감스럽게도 난 네가 기억나지 않는군. 그럼 마지막 질문이다, 우리를 해칠 생각이 있나?”


“해칠 생각은 딱히 없는데, 대신, 그, 그러니깐, 나도 그 기사단에 끼워줘.”


마그누스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여차하면 또 한대 머리를 쳐야 하나 고민을 하던 도중, 에드윈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마그누스. 풀어주도록.”


“진심입니까? 정말요?”


“기사로서 맹세했네. 해칠 생각이 없다고.”


“기사라니요! 기사가 애들 장난입니까?”


“보통 애들은 자네의 주먹에 맞으면 죽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마그누스는 아픈 곳이라도 찔린 듯 ‘윽’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투덜거리며 자신이 정성스레 묶은 밧줄은 다시 풀었다. 소녀는 몸이 뻐근했는지 기지개를 쭉 켰다.


“그래, 이름이 없다 그랬나?”


“으, 응. 원래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 헤헤헤···”


“네 이름은 험프티가 좋겠군. 마음에 안 드나?”


“이름? 이름··· 이름이 생겼네? 험프티··· 험프티?


마그누스는 속으로 에드윈의 작명 감각이 영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녀는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험프티, 험프티, 험프티, 험프티···"




꼬박 한참 뒤에야 해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그누스와 에드윈은 준비해온 마른고기와 비스킷, 즉석에서 따온 나무 열매로 대충 끼니를 때웠다. 험프티는 음식을 거부한 채 가만히 생각에 잠겨, 이따금 실없는 웃음을 짓고는 했다.


불은 여느 때와 같이 마그누스가 피웠다. 어디를 가도 피어있는 잔디 덕에 그는 구덩이를 하나 파야만 했다. 올리비아는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깨어날 줄을 몰랐다. 항상 그래왔듯 불 앞은 개인의 시간이었다.


“아아~ 시, 싫어. 난 조용한 게 싫어. 뭐, 뭐라도 좋으니깐, 물어볼 건 없어?”


“물어보면, 답해주긴 할 거냐?”


표정에 조금의 불만을 남긴 채 불을 바라보는 마그누스만이 험프티의 유일한 이야기 상대였다. 불 때문인지는 몰라도 험프티의 시커먼 눈동자는 밝게 번뜩였다.


“으, 응! 아는 선에서는 되도록 말해줄게. 안 되는 것도 있긴 하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닌데, 고향은?”


“음··· 모, 몰라.”


“그럼 가족은?”


“오빠!”


“어디 있는데?”


“그건 몰라.”


“그냥 말을 말자.”


“아으우으우우···”


험프티는 짐승 같은 신음을 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자기도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인지, 생각해내려는 듯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으나 금방 포기하고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할 일이 없다면 일찍 자는 것도 좋지. 내일 새벽에 또 출발해야 할 테니깐. 자네도 일찍 자두게.”


에드윈은 이렇게 말하고는 모포를 덮고 자리에 누웠다. 마그누스는 오늘 하루 일어난 일을 되새김질하며 따라 누웠다. 험프티에게 모포를 양보하느라 여분 옷을 모포 삼아 덮어야 했지만, 추위는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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