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Asapo 님의 서재입니다.

서쪽 땅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최근연재일 :
2018.08.10 06:0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3,681
추천수 :
1
글자수 :
247,285

작성
18.07.02 18:00
조회
82
추천
0
글자
12쪽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4)

DUMMY

"에드윈 씨, 저희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나라고 하고 싶은 건 아닐세. 하지만 이것도 명령이 아닌가. 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그누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앞이 컴컴했다. 밤이 돼서 어두운 탓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빈혈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닐 따름이다. 한낮에 건장한 몸을 이끌고 길을 거니는 둘은, 온몸을 덮는 로브를 뒤집어쓴 채 신원을 숨기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런답니까?"


"나야 모르지, 그저 명에 따르는 것 뿐이야. 차라리 떠나기 전 쪽지를 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인데..."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어떤 성격인지 가늠이 가는군요."


"그래도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성격은 아닐걸세."


로브에 후드까지 푹 뒤집어쓰고 수군대는 둘은 되려 사람들의 이목을 한꺼번에 끌어냈다. 몇몇 사람들은 높은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고개를 숙였고, 다른 사람들은 마을이 망할 때가 됐다며 갖가지 손가락질해댔다. 마지막 타나토스가 있는 곳은 마을의 중앙광장이었기 때문에 외곽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고맙게도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은 곧 하나둘 사라질 터였다.


"다 온 것 같네."


에드윈의 말에 마그누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붐비던 주변이 광장 앞에 도달하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안심하며 로브를 벗고 게르의 등 위에 널어놓듯 올렸다.


"많은 사람이 이동한 것 같군요. 어지간히 혈기가 왕성한 놈인듯합니다."


"그래 보이는군. 꽤 많은 집이 부서져 있고... 저길 보게나."


에드윈이 가리킨 곳에는 피투성이의 동상이 있었다. 그곳 말고도 여러 곳에 죽음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사망자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마그누스는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광장에는 셋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마그누스와 에드윈, 그리고 한 노인 앉아 있었다. 그의 존재를 눈치챈 에드윈은 다가가 여쭈었다.


"영감님, 이곳엔 어쩌다 오게 되신 겁니까? 이곳은 위험합니다. 밖으로 나가세요."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그누스는 불안했는지 노인에게 다가가 서둘러 나가달라며 재촉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답하지 않고 진문을 던질 뿐이었다. 쉰 목소리로 그들에게 한가지, 단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만약, 만약에 자네가 단 한 가지에 대해, 어떤 것이든 상관없네. 단 한 가지에 대한 모든 걸 알 수 있다면, 무엇을 알고 싶은가?"


노인의 생뚱맞은 질문에 둘은 얼굴을 찌푸려 보였다. 그들의 눈에는 그저 노망난 노인네가 위험한 장소에 앉아있는 것. 그것 말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마그누스는 성큼성큼 그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가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강제로라도 내보내겠습니다!"


"잠깐.”


에드윈은 손을 뻗어 노인에게 다가가는 마그누스를 가로막았다. 에드윈을 '정말 멋진 사람' 으로 평가한 노인은, 그에게로 발언권을 돌렸다.


"자네는?"


"인간의 정의에 대해.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짐승인지."


그 다운 대답이다. 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권태에 질린듯한 얼굴로, 살며시 웃어 보였다.


"검버섯 낀 이모습. 나는 전부터 못생긴 이 얼굴이 싫었어. 이제... 버릴 때가 된 거겠지."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광장 중앙으로 걸어가 벽돌로 된 바닥을 통통 쳤다. 그 소리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땅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일어나서는 안될 진동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만족스럽군.'


에드윈은 가만히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것인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짐을 풀기 시작했다. 마그누스와는 달랐다. 어리둥절해 자리에 서 있는 그에게 에드윈은 물건들을 던져주었다.


"마그누스! 이거 받게! 어서! 챙겨온 랜서 따위는 버리게! 말들, 말들은 어떡하지?"


허둥지둥 물건들을 챙기고, 버리고, 마그누스에게 건네준다. 말들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이리저리 날뛰다가 결국 광장을 벗어나 버렸다.


'제법 훌륭한 광경이지?'


진동 소리는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노인이 바라보는 대장간 쪽에서 그것의 귀가 보이기 시작한다. 마그누스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는 화난 얼굴로, 노인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 린 뒤 소리쳤다.


"이 미친 영감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노인은 마그누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외침에 그는 외마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웃으면, 세상은 밝아지지. 그게 설령 칠흙 같은 어둠이라 한다 해도 말이야."


"마그누스! 당장 이리로 오게! 그자를 놓고 이리로 와! 어서!"


에드윈의 부르짖음에 마그누스는 노인을 내팽겨치고 에드윈에게 달려갔다. 광장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쾅!


노인의 뒤에 있는 집 한 채가 무너졌고, 커다란 돌덩이들이 노인을 향해 튀었으나 그는 맞지 않았다. 둘은 비장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봤다. 무너진 집 뒤로 커다랗고 검은 짐승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오래 기다렸단다. 귀염둥아. 자, 시작하렴.”


발재간 한번에 노인은 그저 널따란 피 웅덩이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 미소를 마그누스는 기억한다. 그리고 둘이 기억했었던 것이 이곳에 있다. 마그누스의 턱에서 땀방울이 맺혀 떨어졌고, 에드윈은 침을 꼴깍 삼켰다. 둘의 앞에는 커다란 개의 모습을 한 타나토스가 서 있다. 이제는 대답하지 못하는 피 웅덩이와 함께.




개는 엄청난 크기의 몸을 이끌고 둥근 광장을 돌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이 흔들리는듯한 느낌이 울려 퍼졌다. 에드윈은 고아원에서 마주했었던 공포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은··· 대체···”


“늑대는 아니군. 개일세. 무지하게 커다란.”


타나토스가 으르렁거렸다. 언제라도 뛰쳐나가 둘을 덮칠법한 자세로 둘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어쩌면 좋죠?”


“사실 이런 놈, 아니 내 생각에 이놈보다는 작았지만··· 아무튼 이런 놈을 잡으려고 랜스를 챙겨왔는데... 어쩔 수 있나. 항상 하던 대로 하는 수밖에."


“그렇다면 성수부터 던져야겠군요. 지금 던집니까?”


“아니, 이런 커다란 놈은 성수 한두 병으론 어림도 없어. 가진 걸 다 끼얹어 줘야 정신 좀 차리겠지.”


에드윈은 자루를 들어 마그누스에게 건넸다. 안에서는 유리가 부딪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 방 먹이고 오게.”


에드윈은 이리 말하며 마그누스와 거리를 벌렸다.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옷 위로 뚝 뚝 떨어졌다. 일은, 에드윈의 조용한 손짓 한 번에 시작됐다. 그가 쥐고 있던 성수 병 하나를 개에게 던졌고, 그것은 성수 따위는 가소롭다는 듯 에드윈을 향해 담박질했다. 그사이 마그누스는 힘차게 뛰어올라 놈의 옆구리에 매달렸다. 자루를 몇 번 내려치자 썩 좋지 않은 축축함이 주먹에서 묻어나왔다.


놈의 커다란 발은 에드윈을 향했다. 커다란 크기였지만 에드윈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타나토스는 다른 쪽 발을 휘두르려다, 멈칫 눈을 돌려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를 힘겹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그누스는 그곳에 없었다. 그때 그는 놈의 등 위에서 커다란 도끼를 들어 올린 채, 내려찍을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거침없이 내려찍는다. 개는 놀라 펄쩍 뛰었고, 에드윈은 그새를 놓치지 않고 양손으로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들었다. 아무리 크다 해도 이제는 진흙더미일 뿐이다. 일격에 다리가 잘려나간 개는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마그누스! 괜찮은가!”


에드윈은 소리를 높여 마그누스를 불렀다. 혹여 커다란 몸뚱어리에 깔리진 않았을까 슬쩍 걱정된 까닭이었다.


“예! 괜찮습니다. 마무리하죠!”


쓰러진 개의 커다란 몸뚱아리 건너편에서 마그누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에드윈은 우선 서둘러 앞발을 뭉개버렸다. 이것으로 타나토스는 잠시동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에드윈은 불길했다. 얼굴에서 드러나는 교활함. 고양이, 쥐의 멍청한 얼굴 따위가 아닌 교활한 웃음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뒷다리마저 자르고자 뒤쪽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쐐액!


에드윈이 검을 들어 올리려는 그때, 거대한 무언가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는 가까스로 고개를 숙여 피했지만, 머리카락이 살짝 닿았음을 느꼈다. 늦었더라면 머리가 터졌을 것이다.


'뭐지?'


짧은 시간을 이용해 그것의 정체를 유추해 내고자 분주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아주 단순하지만, 잊어버리고 있었던. 에드윈의 작은 실수가 머릿속을 꿰뚫는다.


꼬리였다. 꼬리를 자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꼬리가 다시 그의 머리 뒤에서 뒤돌아 올 것이라는 걸 의미했다. 서둘러 몸을 납작 엎드렸다. 곧바로 위에서 쉭.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에드윈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에드윈은 여전히 불안했다. 아까부터 들려오는 진흙 터지는 소리와, 에드윈을 향해 날아들어 온 꼬리. 생각해 보면, 꼬리는 에드윈을 향해서만 날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그누스! 엎드려!”


건너편에서 하늘이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드윈은 그 비명에 우선 안도했다. 마그누스의 비명은 아직 그가 죽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 안도감도 잠시. 시간은 둘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잠시 뒤면 재생을 끝낸 놈이 다시 일어날 게 분명했다.


“마그누스!”


“네!”


“다친 곳은 없는가!”


“예! 놀라서 지른 소리였습니다!”


“움직일 순 있겠나?”


마그누스는 잠시 동안 침묵했다. 빠져나갈 상황이 되는지 파악하는 중이었다.


“안될 것 같습니다!”


“마그누스, 내 말 잘 듣게!”


“네!”


“셋을 세겠네. 그러면 찌르게나!”


“···네?”


“그리고 도망쳐! 하나!”


“잠시만요!”


“둘! 셋!”


둘의 기합에 이어 타나토스는 비명을 내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놈의 불안전한 다리 사이로 보이는 엎드린 마그누스, 바로 머리 옆을 내려찍는 타나토스의 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면 보이는.


작은 반짝임.


“마그누스! 지금이네! 일어서게!”


-펑!


폭약 터지는 소리와 함께 타나토스의 머리가 터져 조각났다. 에드윈과 마그누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시 검과 도끼를 들어 올려서, 들고, 찍고, 벤다. 더 이상 놈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최후에는 여느 때 처럼 싸늘한 재가 된다. 공기 중으로, 공기 중으로. 향기로운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사라져간다.


“에드윈 씨. 괜찮습니까!”


마그누스는 에드윈을 향해 걸어왔다. 다친 곳은 없는듯 했지만, 걱정이 서렸다.


“난 괜찮네. 자네는?”


“저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건 대체···”


타나토스가 사라진 자리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화살이었다. 평범한 화살과는 다른 재질에, 은빛으로 빛나고, 무지개빛을 띄는. 하지만 구경도 잠시, 다른 손이 나타나 에드윈의 손에서 화살을 잡아챘다. 파란 스카프로 얼굴을 감싸고 모자를 눌러쓴 활잡이. 낯선 모습에 에드윈은 조심히 말을 건넸다.


“자네는 누구지?”


그의 질문에 답해온건 뜻밖의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에드윈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내 질문에 먼저 답해줘요. 제 할아버지를 어떻게 한 거죠?”


목소리는 떨리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몸은 미미하게 떨려 어쩌면 살짝 애처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에드윈은 침착하게 답했다.


“아까 그자가 자네의 할아버님 되시는 분이신가 보군. 나도 물어볼 게 많다만. 자네 질문에 먼저 답해주겠네. 유감스럽게도, 조금 전에 작고하셨다네.


“아니요! 그 말이 아니에요. 그건 저도 저곳에 숨어서 봤어요.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어제 돌아가셨는걸요.”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모자를 쓰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거친 들숨과 짧은 날숨은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대변했다. 분명 애처롭다. 애처로운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에드윈은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베풀어 주었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듯하군. 우선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떤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서쪽 땅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12) 18.07.10 33 0 13쪽
12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11) 18.07.09 34 0 16쪽
11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10) 18.07.08 42 0 25쪽
10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9) 18.07.07 25 0 16쪽
9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8) 18.07.06 43 0 14쪽
8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7) 18.07.05 38 0 20쪽
7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6) 18.07.04 51 0 14쪽
6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5) 18.07.03 66 0 22쪽
»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4) 18.07.02 83 0 12쪽
4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3) 18.07.01 77 0 16쪽
3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2) 18.06.30 92 0 19쪽
2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1) 18.06.29 162 0 14쪽
1 잃어버리는 이야기의 시작 +2 18.06.28 392 0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