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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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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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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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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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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는 이야기 - 다섯번째 질투 (2)

DUMMY

기사라고 불리는 자는 과묵했었다. 과묵하지 않은 리젠은 과묵하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는 잘 몰랐으나,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조용한 사람.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말수가 적고 침착한 사람을 두고 '과묵하다' 라고 하지 않는가. 여관 안에서는 따뜻한 미소 하나 없는 차가운 사람이었지만 밖에 나와서는 썩 그리 얼어있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과묵한 기사님이라 칭하기로 했다. 아무튼.


"과묵한 기사님! 여관에는 뭐하러 가신 건가요?"


"술 마시러 간 건데, 주인장을 쓰러트려 버렸으니 큰일이군."


"혼자 다니세요? 혹시 이쪽 땅 주인인가? 변경 백작이세요?"


"아니. 내 땅은 다른 곳에 있다. 저기 좀 먼 곳에 말이지..."


데오른이 보기에 썩 과묵한 기사님은 아닌 듯 보였다. 또한 그가 왜 둘을 용서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쓰러진 여관주인이 보장하기에 따르면, 그는 확실히 기사였다. 둘이 그토록 보고자 했던 동쪽의 기사 말이다. 검은 겉옷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긴 하였으나 속에는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백색 옷을 입고 있었다. 리젠은 데오른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눈에 빛을 내며 '됐어!' 하는 표정을 보였다. 데오른은 그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알고자 하는 것을 물었다.


"백색 옷에 십자가를 보니 바티칸의 12기사들 중 한 분이신가 봐요. 병사들은 어디 있나요?"


"꼬맹이. 눈썰미가 예리하군. 조금만 더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다. 근데 너희들은 왜 밀입국을 한 거냐? 검도 지니고 있는걸 보면 그냥 나온 건 아닌가 본데."


"저희들은요! 기사님을! 뵈러! 왔어요!"


리젠은 하고자 하는 말을 확실히 하려 일일이 목소리에 강조를 넣어 말했다. 그에 기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기사? 나를? 너희들이? 대체 왜?"


"그게 말이죠! 저희들 꿈이! 기사가! 되는! 거라서!"


"이제 그만해도 된다."


"아, 넵. 꿈이 기사가 되는 거라서, 견습 기사로 받아달라 하려고..."


기사는 입을 삐죽 내밀고 혀를 쯧 찼다. 그는 정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데오른은 그의 눈에 비친 상에 두 덩어리의 오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리젠은 모르고 있었지만.


"여기로 온 거면 남쪽에서 왔겠군. 뭐, 그쪽에서는 안 받아줄 만도 하지. 싸움광 레스녹츠 남매랑 인간 예티 파더베어. 셋 중 누굴 만났냐?"


"아빠 곰이요!"


"뭐라든?"


"꺼지래요."


기사는 웃음을 터트렸고, 리젠은 이유는 몰랐으나 덩달아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음을 멈췄다. 리젠은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쌤통이란 거죠?"


"맞다."


리젠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고, 기사도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 흐름에 따라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데오른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둘의 웃음이 다시 멈췄다.


"그래서 스콰이어로 받아 줄래요?"


"그건 안 되는데, 병사 정도로는 받아줄 수 있다. 공을 세우면 내 밑으로 오게 해주지."


"좋네요. 쿨하고 인자하고 자상하고 웃음 많고 재치있고 아름답고... 어, 또 뭐가 있지? 아무튼 잘생기고 과묵하신 기사님. 제 이름은 리젠이고, 이 친구는 데오른이에요."


데오른은 '보통 저것들을 가지고는 과묵하다 안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였으나, 말을 꺼낸 사람이 리젠이라는 사실에 그 말을 금방 납득해버렸다. 무려 교회가 불탈 때도 예쁘다고 춤을 추고 여관에서도 이유모를 행동을 한 리젠이 아닌가.


"팽 가윈 도그람이라고 한다. 10군의 백인대장이고, 이쪽 부근의 무리 토벌을 담당하지. 잘 부탁한다."


"예? 백인대장이요?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백인대장이얏!"


데오른은 잠깐동안 둘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잠시 뒤 리젠이 아주 큰일 날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녀의 입을 막아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가윈은 리젠의 개그를 그럭저럭 넘겨버렸고, 데오른은 사랑하는 그녀가 생각보다 겁이 없다는 사실에 되레 겁먹어버렸다. 작은 나름에 살 때는 이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리젠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물을 튕겼다.


계속해서 벌판을 걷자 줄지어있는 막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가를 그려놓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병사들은 취사 준비에 열성이었다. 막사에 다다르자 한 병사가 달려왔다.


"또 아무 말 없이 여관에 다녀오신 겁니까? 취사가 끝나면 막사를 걷고 이동해야 합니다. 근방 북쪽에 소규모의 무리가 나타나서 말입니다. 그런데 데리고 오신 건 대체..."


"시끄러. 차기 병사들이다. 네놈이 알아서 관리해."


가윈은 데오른과 리젠을 각각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린 뒤, 병사를 향해 휙 집어 던졌다. 병사는 가까스로 넘어지려는 둘을 잡아 세웠고, 대신해서 자기가 넘어져 버렸으나, 가윈은 무신경하게 끼니를 때우러 저리 가버렸다. 병사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너희들은 누구냐?"


"어, 음. 기사가 되고 싶어서 요 근방을 지나다니다가, 여관에서 어쩌다 위험에 처했는데, 기사님이 주먹 한 방에 악당을 때려눕히고, 아, 씨. 뭐라고 해야 하지? 병사님. 밥은 드셨어요? 우선 밥부터 먹고 생각하죠."


병사는 그녀의 말에 찬성한 듯,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데리고 배식을 받으러 갔다. 다른 병사들은 데오른과 리젠을 보고 흠칫 놀랬으나, 금방 고개를 끄덕거리며 무언가에 수긍하고는 친절하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데오른은 음식을 먹다 말고 병사에게 물었다.


"저, 왜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죠? 역시 수도승이라 도량이 깊은 거군요?"


"물론 그런 것도 있고, 대장님이 대장님인 탓도 있지. 저번에는 갑자기 사라지셔서는 아기곰을 데려왔는데. 사람 둘 쯤이야."


"아기곰이요? 보고 싶어요! 어디에 있나요? 귀엽겠다!"


리젠이 허둥거렸다. 병사는 그녀의 반응에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한 시간 뒤 자식을 찾아 내려온 어미 곰에게 막사가 작살났지. 지금은 상상도 하기 싫다."


병사는 스튜를 맛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물론 데오른과 리젠이 맡기에도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이, 상한 듯 보이지는 않았으나 끓이는 솜씨가 영 별로였나보다. 병사는 스튜를 순식간에 마셔버렸다.


"그래서, 어쩌다가 대장님을 만나게 된 거냐?"


"기사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몇 달 전 집을 나와서 스콰이어를 받아 줄 기사를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저기 여관에서 용병들이랑 시비가 붙었고, 기사님이 저희 둘을 구해주셨어요."


데오른은 나서려는 리젠의 입을 막고 침착하게 설명했다. 리젠은 뚱하니 데오른을 쳐다보다가 그의 손을 억지로 떼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는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용병들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게 좋아. 지금은 아니었지만, 한창 서쪽 변경에서 싸움이 일어날 때는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았거든. 다른 국가에 소속된 용병끼리는 어제까지만 해도 아는 사이였던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짜고 치는 도박판 식으로 돈만 먹고 싸우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지."


"지금 있는 용병들은요? 상인들에게 고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렇거나, 아니면 지금 일어나는 전쟁에 고용되거나. 하지만 아직도 용병은 못 믿어. 부수입에 미쳐서는 마을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는 것들도 놈들이 저지르는 일이었다. 도적 떼랑 다를 게 없는 녀석들이야."


"어쩐지 성격이 사납더라니. 아. 잠깐만요. 혹시 식초 한 바가지랑 목욕할 장소를 구할 수 있을까요?"


리젠은 몸 여기저기를 긁적이며 물었다. 둘은 심히 꾀죄죄하면서 더러웠고, 몸에서는 하얀 무언가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병사는 멀리 있는 막사를 가리켰다.


"우리 수도승들은 술을 마시지 않아. 그래서 받은 술들은 대부분 식초로 변해버리곤 하지. 달라 하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목욕은 저곳에서. 막사를 걷기 전에 어서 끝내도록."


"알겠어요! 아, 병사님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내 이름? 흠... 앞으로 계속해서 같이 지낼 테니 알아둬야겠지. 미콜이라고 한다"


"네! 미콜 선배님! 얼른 다녀올게요! 데오른. 가자!"


둘은 깨끗하게 비운 그릇은 두고 막사로 달려갔다. 미콜은 그들이 두고 간 그릇들을 챙긴 뒤, 그것들을 잿물에 담갔다. 검은 잿물에는 용감하지 못했던 한 사람이 비쳐보였디.


"용병 출신 수도승이 용병을 욕하다니. 나도 한참 멀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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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5) 18.07.23 8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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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3) 18.07.21 115 0 12쪽
22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2) 18.07.20 7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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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물세번째 기쁨 (2) 18.07.14 11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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