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Asapo 님의 서재입니다.

서쪽 땅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최근연재일 :
2018.08.10 06:0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3,677
추천수 :
1
글자수 :
247,285

작성
18.07.30 06:00
조회
77
추천
0
글자
10쪽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무번째 비겁함 (2)

DUMMY

"이리 와보게! 여기는 여기는 없는 게 없다네! 뭘 찾는 건가? 옛 드래곤의 이빨? 사악한 짐승의 가죽? 전설의 연금술사가 만든 마법의 물약? 그것도 아니면 왕 사냥꾼 헨리의 보검?"


"드래곤 이빨이 아니라 상아로 만든 장식품이고, 그냥 소가죽에다 과일주스잖아요. 이건... 검이 아니라 갈고리 같이 생겼는데요?"


"예끼!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신비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기분이나 내는 거라고. 거 참, 사람 피곤하게시리."


에드윈과 험프티가 떠나가고, 시장 한복판에 버려진 셋은 노점상과 상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세실의 눈에 밟힌 한 노점. 갖가지 수상한 이름을 내걸고 통일성 하나 없는 흔한 물건들을 내다 팔고 있는 이상한 노점일 뿐이었으나, 세실은 '왕 사냥꾼'이라는 수상한 이름에 이끌려 노점으로 다가갔다. 상인은 은근한 사심을 드러내며 갖가지 설명을 해 주었다.


"왕 사냥꾼이란건 말이지. 몇 십년 전 큰 전쟁 때, 왕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모두 살해한 어느 미친 인간을 부르는 이름이라네. 그가 사용했던 검이 바로 이 검이지. 갈고리 같이 튀어나온 부분에 독을 묻힌 뒤, 목에 걸고... 쓱!"


"예? 그때 왕들은 모두 아직 살아 있잖아요? 전쟁은 사크라토론에서 진행된 협상으로 끝이 난 거고, 분열 전쟁 때 왕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면 모두 기사들이었을 건데, 어떻게 그 많은 병사를 뚫고 들어가서 암살을 해요?"


올리비아는 노점 상인의 말을 맞받아쳤다. 상인은 그녀의 말에 얼굴이 시뻘겋게 붉히더니 언성을 높혔다.


"니가 봤냐? 니가 봤어? 안 살 거면 나가! 괜한 딴지 걸지 말고!"


"성당에서 몇 번 뵌 적 있거든요! 성격 참..."


도망치듯 자리를 뜬 셋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룰렛과 격파 행사에도 참여해 봤지만, 사람들은 열세 번 연속으로 룰렛을 맞춘 세실과 철판을 때려 부수는 마그누스를 보고 버럭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세실은 시무룩해져 있었고, 마그누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더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진 셋은 그저 벽돌 턱에 걸터앉아 거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에드윈 씨와 험프티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난들 알아요? 둘 다 하는 짓은 비슷해가지고, 도대체 뭘 하러 간 건지..."


거리에는 노점과 상가, 그리고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단순히 많은 사람 때문에 그리 혼란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마치 축제가 벌어진 듯한 열기가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올리비아, 마그누스. 저기 좀 봐요."


백색 옷을 입은 병사들. 어림잡아 백 명 정도 되어 보이는 하나의 큰 군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선봉에 선 기사의 흉갑에는 십자가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머리는 피처럼 붉었고 한쪽 눈에는 큰 흉터가 나 있는 기사는, 앉아있는 셋을 발견한 뒤 위풍당당한 걸음세로 다가왔다. 마그누스와 올리비아는 익숙한 표정(바티칸에서 본듯한 얼굴이었다)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아, 레드웰 레스녹츠인가. 반갑네."


"안녕하십니까. 길잃은 자들이여. 추대하는 북방의 기사가 그대들을 맞이합니다."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주위의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짜고짜 한쪽 무릎을 굽혔다. 당황한 세실과 달리 올리비아와 마그누스는 아주 지겹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가워요. 여기에는 무슨 일이에요? 그리고 사람 많은 곳에서는 그런 인사 좀 하지 말아요. 오늘로 몇 번째인지..."


"군량이 다 떨어져 구매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자는 누구입니까?"


그녀의 눈은 줄곧 세실을 향해 있었다. 세실은 전에도 느꼈던 익숙한 느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새로 방랑자가 된 세실이에요. 그... 잘 부탁드려요."


세실의 예상대로 그녀는 무릎을 꿇으려 했다. 세실은 그런 그녀를 뜯어말리다시피 하며, 대신해서 악수로 타협점을 찾았다. 물론 악수 가 끝난 후 반 정도 무릎을 굽히는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갈 길이 바빠 제대로 접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동생에 대한 일은 큰 빚을 졌다고 말했다. 올리비아와 마그누스는 그녀가 떠나가자 그제야 살겠다는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그누스는 불만을 토로했다.


"역시 어프렌스인은 힘들어. 중간이 없단 말일세."


"그러게요."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 북쪽 지방에 대해 떠오르는 게 무엇이냐 물으면, 설산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소소한 이야깃거리이자 매년 화제가 되는 북쪽의 부족민들을 생각한다. 레스녹츠 남매는 그들과 싸움을 벌이는 기사 가문의 후예들이었다.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 레스녹츠 가문이 부족민들과 친하게 지내며 밤새 술판을 벌인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어프렌스 사람들은 술을 좋아했고, 또한 의미 없는 싸움 -모든 싸움에 의미를 부여하는게 문제였지만- 을 싫어했다. 툭 던져놓고 말하자면 마그누스의 말마따나 중간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어프렌스인이 어떻냐고 물어보면 전혀 상반되는 두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도둑놈, 개망나니, 사기꾼, 똘마니.'


'남쪽과는 다른 기사들과 전사, 일당백의 용맹함.'


후자는 보통 어프렌스의 몇몇 기사들을 칭할 때 사용되는 말이었고, 전자는 그 외의 모든 사람과 그들의 왕에게 붙여지는 이름이었다. 북쪽에서 사용되는 '묘지기가 쿵쿵거리는 소리' 또한 당연한 사실을 말할 때 습관처럼 읊조리는 표현이었으며 그것은 그들의 민족성이 아주 잘 담긴 표현이기도 했다.


"묘지기라는 직업은 어프렌스에서 굉장히 높은 직업이지. 죽음 앞에서 평등해진 이들을 공평하게 다스리는, 즉 마을의 생과 죽음의 중개인이 되는 셈이거든. 어프렌스의 마을에서는 싸움이 나면 성주가 아닌 묘지기가 그들을 심판한다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나무로 된 무언가를 들고 다니는데, 심판할 때면 그것을 망치로 쳐서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지."


"개성있는 민족이네요. 그렇지 않아요, 올리비아...?"


올리비아는 또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세실은 손을 쫙 펼친 뒤, 그녀의 뺨을 한 대 살살 칠까 생각했다. 그러나 수심 어린 그녀의 눈동자를 본 세실은,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심히 손을 들어 어깨를 툭 쳤다. 올리비아는 다시 정신을 차렸고 횡설수설하게 세실의 부름에 답했다.


"어? 어. 그렇지. 그런 셈이지."


"올리비아. 자네마저 그러면 우리 둘은 어떡하나? 자네도 에드윈 씨와 험프티 처럼 훅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니겠지? 자네마저 그러면 우리는 이 커다란 마을에서 미아가 돼버릴 거라고."


마그누스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올리비아는 괜한 신경질을 내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신신이 당부했다. 세실은 은화 다섯 닢이 달린 맹세의 중개인으로 둘에게 지목당했다.


"세실, 잘 들었지? 아무 말 없이 사라지면 은화 다섯 닢일세!"




자신의 심장을 작대기로 찌른 여인은 온몸에서 검은 피를 뿜어냈다. 초점 없는 눈은 두 줄의 물줄기를 만들어 낸다. 코와 입, 그리고 귀는 형용할 수 없는 느낌으로 검은 진흙을 뱉어낸다. 심장은 이미 생명을 원동력으로 삼는 하나의 분수가 되었다.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하나로 변해가는 여인, 그 앞에는 에드윈과 험프티가 있었다.


"험프티. 항상 했던 대로 하면 된다. 어차피 죽지는 않을 거니깐,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처리는 가능하겠지."


"다른 방랑자들이 온다면?"


"큰 낭패겠지. 괜히 대답할 게 많아진다. 그런데 말 더듬는 건 인제 그만 둔건가?"


"둘만 있는데, 뭐 어때."


여인의 몸체는 서서히 불어났다. 에드윈은 지금 검을 휘두를까 생각하다가 그만 관뒀다. 괜히 지금 자극했다가는 폭팔에 휩쓸려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드윈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하나의 우연이 일어났다.


"에드윈, 저거는 어쩌게?"


큰 대로에서 백색 옷을 입은 병사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에드윈은 여인의 몸에 가려진 뒤를 보고자 몸을 기울였다. 그것은 분명 레드웰이 이끄는 기사단의 군이었다. 그녀는 잘 보이지도 않는 에드윈을 무서운 눈으로 포착하고는 북방 민족의 인사를 위해 다가왔다. 예상치 못한 변수, 커다란 낭패. 에드윈은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레드웰! 물러나게! 군을 물려! "


사냥을 위해서는 온몸이 예민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한 하나의 행위를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이유가 필요하다. 레드웰은 귀는 밝았으나,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이유를 찾고자 잠깐 자리에 머물렀다. 그녀가 '충성을 바치는 주군에게는 절대적으로 복종할 것' 이라는 이유를 기억해 냈을 때는, 이미 그들의 사이에 선 뒤틀린 여인이 우레같은 폭발음을 일으키며 한 마리의 커다란 뱀으로 변한 다음이었다.


모습은 흉측했고 얼굴은 웃고 있었다. 크기는 수도의 대로를 매울 만큼 커다랬고, 비늘은 기사의 갑옷과도 같았다. 거대한 뱀은 에드윈을 바라보며 혀를 낼름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서쪽 땅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3 잃어버리는 이야기 - 다섯번째 질투 (3) 18.08.10 95 0 9쪽
42 잃어버리는 이야기 - 다섯번째 질투 (2) 18.08.09 86 0 9쪽
41 잃어버리는 이야기 - 다섯번째 질투 (1) 18.08.08 86 0 14쪽
40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8) 18.08.07 83 0 11쪽
39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7) 18.08.06 88 0 9쪽
38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6) 18.08.05 74 0 10쪽
37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5) 18.08.04 84 0 9쪽
36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4) 18.08.03 74 0 9쪽
35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3) 18.08.02 75 0 9쪽
34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2) 18.08.01 75 0 9쪽
33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1) 18.07.31 82 0 10쪽
»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무번째 비겁함 (2) 18.07.30 78 0 10쪽
31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무번째 비겁함 (1) 18.07.29 75 0 9쪽
30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추종심리 (2) 18.07.28 74 0 13쪽
29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추종심리 (1) 18.07.27 95 0 9쪽
28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8) 18.07.26 111 0 9쪽
27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7) 18.07.25 71 0 11쪽
26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6) 18.07.24 78 0 11쪽
25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5) 18.07.23 81 0 13쪽
24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4) 18.07.22 79 0 9쪽
23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3) 18.07.21 114 0 12쪽
22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2) 18.07.20 70 0 12쪽
21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1) 18.07.19 80 0 13쪽
20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물세번째 기쁨 (6) 18.07.18 84 0 12쪽
19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물세번째 기쁨 (5) 18.07.17 72 0 11쪽
18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물세번째 기쁨 (4) 18.07.16 76 0 10쪽
17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물세번째 기쁨 (3) 18.07.15 82 0 12쪽
16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물세번째 기쁨 (2) 18.07.14 116 0 13쪽
15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물세번째 기쁨 (1) 18.07.13 123 0 18쪽
14 잃어버리는 이야기 - 기사단 (13) 18.07.11 83 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