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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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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최근연재일 :
2018.08.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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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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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247,285

작성
18.08.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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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2)

DUMMY

단순한 폭발음이 아닌 거대한 소리에 모두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것은 하늘을 찢고, 땅을 뭉개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삶에 있어 전장 가운데 선 자가 아니면, 가까이할 수조차 없는 그런 소리이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다우네른에 있는 자들은 그 소리에 기겁했고, 겪어보지 못한 다른 이들은 지극히 경험에 제한된 상상으로 생각해 보건대 그것을 번개 소리라 생각했다.


마그누스와 올리비아, 세실은 전장에 선 경험이 없었다. 마그누스는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으나 전쟁에서 눈을 돌렸고, 나머지 둘은 경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셋은 아주 기묘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다. 마그누스와 세실은 증오를 힘으로 삼았으나 올리비아는 달랐다. 마그누스는 눈을 돌릴 줄 알았으나 올리비아와 세실은 발을 돌릴 줄 알았다. 다름의 차이는 화합과 맞물려 셋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래서 셋은 폭발음이 일어난 곳으로 눈을 돌렸다. 우선, 마그누스는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눈을 돌릴 줄밖에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실과 올리비아는 발을 돌려 우선 에드윈을 찾을 것을 권했다. 마그누스는 둘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빠른 마그누스라 하더라도 수도를 뒤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뜩이나 엄청난 사람들이 물밀 듯 움직이는 이 널따란 대로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마그누스는 밀려오는 사람들을 피해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올리비아는 골목 구석에 대피해 주변의 위치를 탐색했고, 세실은 지나가는 사람 중 에드윈과 험프티가 없나 살펴보았다.


"젠장! 망했어요! 가서는 안 돼요! 죽을 거에요! 죽을 거라고!"


올리비아는 절규했다. 그것은 공포에 찢어진 심장이었고, 쉽게 고칠 수는 있으나 시간과 결과가 요구되는,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치료가 불가능한 골치 아픈 병이었다. 세실이 올리비아를 달래는 사이 마그누스는 지붕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검다. 커다랗다. 흉포하다. 기괴하다. 두렵다.


두렵다. 그렇다. 마그누스는 두려웠다. 세실이 보는 세상에서 잠시동안은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속도를 가졌고 사냥꾼이란 사냥꾼들은 보이는 족족 갈갈이 찢어발긴 그였지만,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뱀은 꿈틀거렸고 건물들은 무너져 내렸다. 그는 저 커다란 몸뚱어리를 베어낼 수 없다. 제 분수를 가장 잘 아는 마그누스는 꿈틀대는 재앙을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도망치는 사람들은 공포에 빠져 몸부림쳤으며, 올리비아는 이미 감염된 상태였다.


공포란 원래 감염되는 것. 그것이 모여 만드는 것은 광기. 광기의 끝은 죽음. 자칫하면 대로는 죽음에 휩쓸린다.


하지만 공포를 막는 이들 또한 있었다. 백색 옷을 입은 병사들은, 마치 홀로 백 명을 상대하는 기사와 같이 사람들을 통제해 나갔다. 그곳에는 질서가 있었고, 질서는 공포를 잠재웠다. 인간으로 만들어진 파도는 그들을 지나쳐 사라져갔다. 그리고 사라지는 사람들 뒤에는, 몇몇 병사들과 함께 전속력으로 뛰는 붉은 머리의 여인이 있었다.


"질서를 만들어라! 구석구석에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골목을 확인해라!"


소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가운데에도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하는 의지는 존재한다. 그녀는 병사들을 시켜 혹시라도 사람이 있을지 모를 골목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계속해서 찢어져 떨어졌다. 땅은 계속해서 무너져 내렸다. 뽀족한 나무판자들이 거리로 떨어졌다.


"위험하네!"


일이 미터 정도의 나무판자들이 그들을 덮쳤고, 그 선두에는 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듯 보이는 거대한 종도 있었다. 마그누스는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고, 다가오는 종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마그누스의 몸이 부풀어 오르면서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몇 병사들은 나무판자에 몸을 맞고 쓰러졌다. 그중에는 몸이 관통당해 즉사한 자도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손이..."


"뼈가 부러졌네만, 못 쓸 정도는 아니네. 그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그건 제가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왜 여기 있습니까! 저 지옥 속에는 단장님이 계신단 말입니다!"


"뭐? 윽, 우선 대피하세! 세실! 이자들을 따라가! 올리비아는 내가 먼저 데리고 가겠네!"


올리비아는 공황에 빠져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이제 적색 옷을 입은 몇몇 병사들이 쓰러져 있었고, 아직 백색 옷을 입은 병사들은 그들의 의식을 확인한 뒤 살아있는 자들을 부축했다. 세실은 마그누스의 부름대로 골목을 빠져나와 이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세계는 다시 잠잠해졌다.


병사들은 달린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나아간다. 그런 그들은 강하지만 느릿했다. 마그누스는 멀쩡한 한 손으로 올리비아를 둘러메고 달렸다. 누구든 함부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인 마그누스는, 올리비아를 데리고도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세실이라고 했습니까? 당신 또한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병사들은 제가 엄호할 테니 먼저 가십시오."


"하지만, 아까보다 더 큰 폭발이 일어나면..."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네?"


그녀의 냉철한 질문은 세실을 당황하게 했다. 그녀는 사람의 손길을 버리고, 실용성을 따지고 있었다. 그리고 세실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당신은 날아오는 종을 막아낼 능력이 없을 겁니다. 동생에게 편지를 받아 봤으니깐요. 더 큰 폭발이 일어나면 당신도 죽습니다. 대체 무얼 바라는 겁니까?"


"그치만... 그치만, 당신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면서 여기에..."


"제 병사들입니다."


레드웰이 다가와 세실의 왼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머지 한 손은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해 떨렸다.


"기사가 함께 살아남는 존재라면, 전사는 홀로 죽는 존재입니다. 바티칸의 기사이자 북부의 전사인 저는 두 가지 모두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아주 잠시 땅바닥을 바라보았다가, 세실의 어깨에 얹은 손에 힘을 꽉 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당신은 모르겠지만, 제가 사냥꾼인 것을 포기한 만큼, 지금의 저는 기꺼이 전사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자들은 제 병사입니다. 그리고 저는 바티칸의 기사입니다."


그녀의 눈은 올곧았다. 그녀는 냉철하고 실용을 따졌다. 모든 일에 까닭을 따지고 실행에 옮기는 그녀는, 이 자리를 빌어 바티칸의 기사였다.


"젠장! 알겠어요! 가면 되잖아요!"


때문에 세실은 느릿한 이들을 두고 달렸다. 그리고 소리쳤다.


"죽지마요! 살아남으라고요!"


레드웰의 시야에서 세실이 사라져갔다.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조용히 웃고는 살아있는자들과 함께 느릿하게 걸었다. 커다란 소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서둘러야 하네. 계속해서 붕괴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어. 또 한 번 잔해들이 우리를 덮칠지도 모르네."


"하하. 백부님. 아무리 그래도 순 억지 아닙니까? 늦지 않았으니 도망가십시오. 살아 돌아가도 한번은 눈 감아드리겠습니다."


"웃기는 소리군. 자네들을 두고 내 어찌 간단 말인가? 그래, 자네 이름이... 네오였지? 어서 가세."


얼마 뒤 잔해들이 그들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레드웰은 소리를 지르며 조심하라 일렀으나, 편히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많지 않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죽는다. 네오는 한번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일렀다.


"기사는 함께 살아남는 존재이고, 전사는 홀로 죽는 존재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백부님의 선택일 뿐이고, 저희는 이미 선택받았습니다. 저희가 갈 길은 정해져 있단..."


삐죽한 잔해 조각이 네오의 몸을 꿰뚫었다. 잔해는 계속해서 날아들었고, 레드웰도 그런 죽음의 기회에서 제외는 아니었다. 숨이 붙은 자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레드웰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한순간 토해내는 마지막 생명. 레드웰의 얼굴에 유혈이 튀어 올랐다. 그녀는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몸을 떨었다. 피투성이의 네오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기꺼이... 헌신하는..."


레드웰은 눈 앞에 있는 수십구의 핏덩이에 입을 열 수 없었다 . 그녀 앞에 세워진 커다란 장벽을 제외한 곳에는 뾰족한 나뭇가지며 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그녀가 오열하려, 네오의 얼굴에 손을 뻗을 때에, 바람 가르는 소리는 옆에서부터 커졌고, 뱀의 꼬리가 지나가면서 모든 건물이며 하는 것들을 쓸어갔다. 그녀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진 시체들은 갈기갈기 찢겨 사라졌다. 눈물이 흘러내렸고, 뻗은 손은 자리를 찾지 못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입을 열고, 아. 아. 소리를 내뱉으며. 또 조용해지는 순간을 느꼈다. 바티칸의 기사는 외로이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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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3) 18.08.02 77 0 9쪽
»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2) 18.08.01 7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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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2) 18.07.20 7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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