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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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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최근연재일 :
2018.08.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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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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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물세번째 기쁨 (4)

DUMMY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는 곳은 다름 아닌 세실의 방이었다. 허나 세실은 애써 그 사실을 부인하려 했다. 근육통에 저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자는 척하는 것만으로도 한 번의 기회는 생길지도 모른다고, 세실은 생각했다.


“어허! 일어나게! 출발할 때가 됐다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세실만의 생각이었다. 마그누스는 그와 조금 달랐나 보다.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몸 여기저기가 너무 아파서 움직이기가 힘들 것 같은데요···”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세실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답변이었지만, 그의 행동은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마그누스는 침대로 다가와 엎어져 있는 세실을 잡아 들썩 들어 올렸다. 얼마나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가끔 굶기는 했어도 어린애티는 벗어던진 지 오래다. 그런 그가 마그누스에게 들려 화장실로 끌려갔다. 세실의 긴 머리가 찰랑거렸다.


“자, 여기까지 데려다줬으니 이제 괜찮겠지. 원래 근육통은 움직이면 풀리는 거랬네. 뭐, 나는 그리 심하게 느껴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하하하!”


받아져 있는 물로 대충 얼굴을 씻었다. 옷은 어차피 입고 잠들었다. 이왕이면 목욕탕에 가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은 없는듯했다. 세수를 마치고 기다시피 화장실을 나오니 빼꼼히 문으로 얼굴을 내민 험프티와 올리비아가 보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어. 응.”


“우리야 뭐, 어디든 둬도 잠은 잘 자지. 씻었으면 얼른 나와. 필요한 건 다 준비해놨어.”


“토벌인가요? 어디로 가는 거죠?"


“다행히 그리 먼 곳은 아니고, 저기 아레메나에 작은 마을이야. 저번처럼 마차를 타고 갈 거니깐, 왔다 갔다 나흘 정도?”


“나의 고향이지! 오랜만에 가게 돼서 기쁘구먼!”


“아, 그래서 이렇게 들뜬 거였군요. 저야 뭐 준비할 것도 없어요. 내려가죠.”


에드윈은 항상 올리비아와 마그누스가 기억하는 그 자리에 마차와 함께 서 있었다. 일행이 오자 마부와 두런두런 나누던 이야기를 끊고 먼저 마차에 들어갔다. 일행이 모두 마차에 탑승하자 익숙지 않은 덜컹거림과 함께 속도가 붙는다.


“참, 세실. 이거 받게. 찾아보니 하나 있긴 하더군. 나머지 하나는 다음에 줌세.”


에드윈이 세실에게 단검 하나를 건넸다. 어제 연습할 때 사용했던 망고슈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날이 더 길고, 뾰족하고, 날카롭다.


“미제리코드라고 불리는 단검이지. 뜻은 자비. 이야기는 이미 마그누스에게 들었으려나? 성수로 벼렸단 것 말이네.”


세실은 고개를 끄덕 움직이며 '네' 라고 대답하고는 받아든 단검을 이리저리 살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공격적인 모양이다.


“이번 토벌은 그리 위험한 건 아닐걸세. 고작 달팽이라고 하니깐.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네. 사냥꾼들이 워낙에 다 그런 족속이기에··· 마그누스? 이번 토벌 때는 그리 나서지 말고 세실을 보호하는 쪽으로 해주도록.”


마그누스는 고개를 끄덕 움직였다. 그의 커다란 검이라면 베지 못할 적이 없으리라.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달팽이라 하니, 그리 마음 굳게 먹을 필요조차 없었다.


“달팽이... 라면 느릴 텐데. 군이 잡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굳이 방랑자를 부르는 이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보통 그런 놈들은 단단한 게 문제니깐 말이야. 하지만 나, 마그누스라면 부수지 못할 게 없지.”


“그런 거군요. 뭐 저런 검을 마그누스 씨가 휘두르면, 어지간한 바위 정도는···”


“아니! 강철 덩이도 베지. 사람이 입고 있다 해도 말이야··· 아니, 농담이네. 그건 안될 것 같군.”


마차 안은 이래저래 조용했다. 4년간 토벌을 다니면서 마차를 타는 동안 아는 이야기며 하는 것들을 모두 풀어 냈을 것이다.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부족한 잠을 자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그러나 험프티는, 세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마그누스, 마그누스. 자, 자리 바꿔줘.”


험프티는 맞은편에 있는 마그누스의 허벅지를 툭툭 때렸다. 마그누스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고, 험프티는 세실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어,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깐... 어제 야, 약속한 대로 머리 땋는 방법. 가, 가르쳐 줄게.”


험프티는 자신의 검은 머리칼을 한 움큼 집었다.


“기, 기본적인 거는. 이렇게 잡고. 사이를 손가락으로 벌린 다음에, 그 사이로 다시 머리카락을···”


방법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간 방법을 몰랐을 뿐, 나머지는 기본적인 것의 응용이었다. 어느새 험프티의 긴 머리칼은 한쪽으로 땋아졌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스르륵 풀려버렸다. 분명 마지막을 고정하는 것까지 보았건만, 험프티의 머리칼은 하나의 법칙을 거스르듯 원래대로 돌아갔다.


“나, 나는 아무리 해도 원래대로 돌아가서··· 그래서 오, 올리비아가 짜증도 많이 냈어.”


올리비아는 둘을 보며 흐뭇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머리를 땋는다 고해서 아름답지 않을 그녀가 아니었지만, 역시 그녀는 지금 이대로가 가장 어울린다. 라고 세실은 생각했다. 올리비아는 안 되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서, 험프티에게 잠시 자리를 바꿔달라 말했다. 그녀는 순순히 자리를 바꿔 주었다. 올리비아는 세실의 옆에서 머리칼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야, 머리색 참 예쁘네. 험프티의 머리카락은 아무리 열심히 땋아봐야 원래대로 돌아간단 말이야.”


올리비아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실은 잠자코 그녀의 손길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저 뻣뻣한 머리칼은, 마법처럼 하나의 구절로 변한다. 그리고 절들은 이루고 어우러져 끝을 맺는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철학의 시작은 없었다. 세실의 머리에서, 올리비아의 이야기와 철학이, 시작과 끝을 맺었다.


“자. 완성했어. 마그누스? 거기 손거울 하나 있지 않아요? 마그누스 꺼 말이에요.”


마그누스는 올리비아의 부름에 그들을 돌아봤다가, 한번 깜짝 놀라고는 손거울을 꺼내 건네주었다. 받아든 손거울에는 그답지 않은 싸구려 보석이 박혀있었다. 완전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세실의 머리는, 작게 땋아져 하나로 모이는 모습이며 크게 아래로 내린 모습까지. 시작과 끝이 아름다웠다.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에 모습에 호기심이 서려 숨이 가빠왔다.


“우와, 어디서 이런 걸 배우셨대요? 조금 부담스럽기는 한데··· 네, 예뻐요...”


“헤헤. 몇 시간이나 마차에 있으면서 할 게 뭐가 있겠어? 이런 거나 하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때우는 거지. 처음 완성하는 데는 엄청 오래 걸렸었는데, 험프티는···”


올리비아는 원통하다는 듯 분을 삭이는 표정을 지었다. 험프티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지 세실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그저 웃었고, 에드윈은 세실을 잠시 쳐다보고는 웃음을 지으며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응.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야.'


창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과 같이, 세실은 조용히 읊조렸다.




서쪽 국경 마을들과 비슷하게 동쪽 국경 마을도 마차를 타고 꼬박 하루가 더 들어서야 도착했다. 시간은 저녁이었다. 일행들은 역에서 마차를 교체하는 동안 바깥바람도 쐬고, 기지개도 켜고 했다. 오랜 시간 앉아있자니 몸이 삐걱거렸다. 바뀐 마부는 조금 피곤한 듯 보였지만, 에드윈이 은화를 몇 개 쥐여주니 입하나 뻥긋하지 않고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행들은 다시 마차에 탑승했다. 질긴 고기를 질겅질겅 씹어먹고 하나둘 잠에 빠져든다. 덜컹거리는 마차 안은 불편했지만,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세실도 눈을 감고 잠에 취했다.


커다란 덜컹거림에 잠에서 깼으나 시간은 아직 새벽이었다. 도착하는 데는 반나절이 걸릴 거라 했으니 아직 서너 시간은 더 가야 할 듯싶었다. 이 늦은 시간, 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은, 험프티와 에드윈, 그리고 막 잠에서 깬 세실이었다.


“단장님, 피곤하지 않으세요?”


잠긴 목소리로 에드윈에게 물었다. 에드윈은 괜찮다는 표정이었고, 험프티는 눈을 감고 있었다. 적어도 세실의 눈에는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불편하면 깊게 잠들지 못해서 말일세. 늙어서 그런가 잠이 적기도 하고. 중간중간 조금씩 잤으니 그리 걱정 말게. 자네는 피곤하지 않은가? 도착하면 깨워줌세. 더 자도 괜찮네.”


“아뇨. 괜찮아요. 그냥 창밖이나 구경하죠. 잔디밭도 끝났겠다. 이런저런 구경거리도 넘치네요.”


집중해서 보는 밖은 힘들이지 않고 세상을 산책하듯 세실에게 다가왔다. 에드윈도 다시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조금 오랜 시간이 지나자 언덕 너머로 여명이 다가왔다. 아래로부터 푸른색, 붉은색, 노란색. 그리고 그 위로는 조금 흰색이 있었고, 더 나머지는 넓은 군청색이었다. 마치 세계가 색으로 장난을 치는 듯 보였다. 가만히 밖을 주시하던 에드윈은 나지막하게 말을 걸었다.


“정말 아름답지 않나? 여명이 밝아오는 장면은 흔히 보는 황혼만큼이나 많이 보아왔지. 아까 말한 대로 통 잠이 없거든. 하지만 언제나 봐도 아름다워. 어쩌면 여명을 보고자 잠을 자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


“...황혼과 달리 여명은 어떤가요?”


“갈길 잃은 것은 이나 저나 똑같지만, 황혼처럼 허망하지는 않다네. 뒤에는 태양이 있지않나.”


언덕을 넘자 마을과 그 뒤에 있는 강, 그리고 반쯤 떠오른 태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명의 때와 함께 아침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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