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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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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최근연재일 :
2018.08.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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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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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7)

DUMMY

백작은 환한 미소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들어가기를 거절하는 세실을 억지로 하다시피 하여 성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성 내부는 하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실은 응접실에 앉아서 차를 건네받은 뒤, 그에게 물었다.


"무슨 행사라도 있나요?"


세실의 질문에 바올 백작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달리 하인들은 이런저런 일로 바쁜 듯 보였다. 음식이나 가구를 나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들려오는 외침들은 분명 어떠한 행사를 준비하느라 열성인지, 맹렬하고 사나웠다. 세실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다급하게 말했다.


"저, 이렇게 와서 대접받는 건 좋지만, 저는 시간이 없어요. 하루빨리 군의 기사를 만나야 해요."


"알고 있네. 올리비아 양의 편지에서도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지금 백인대장을 만날 수는 없네."


"그 향수병 때문에요?"


바올 백작은 고개를 끄덕거림과 동시에 조금은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때문에 세실은 왠지 모를 답답함에 휩싸였고, 대답을 듣기 위해 바올 백작이 차를 한 모금 할 때까지 기다렸다.


"바티칸의 기사가 향수병에 걸려 나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웃긴 광대놀음이지. 흠,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녀를 자네 앞으로 데려올 수도 있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손댈 수 없는 구역에 있어서 말이야."


"네? 포르토스에 없다는 말씀인가요?"


"맞네. 나는 그녀를 건드릴 수 없네. 병사들은 그녀에게서 마을을 보호하고 있으라는 명령만을 받았으니 그들 또한 그녀를 찾아갈 수도 없고."


만일 바티칸에 대해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 존재했었더라면, 그에게는 백작의 말이 아주 우스꽝스럽게 들렸을 것이다. 헌신을 위해 자신의 지위와 모든 것을 버리고 온 바티칸의 기사가, 그것들이 그리워 군을 버리고 은둔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사실임과 동시에 기사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황당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바올 백작이 후에 한 말은 세실을 더욱 비관적이게 만들었다.


"라비스 루펠로. 다우네른의 공주지. 덜 자란 어린아이의 어리광일지도 모르겠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 그녀가 어디에 있는 거죠?"


세실은 그녀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바올 백작에게 고개를 바싹 들이밀며 물었다.


"포르토스의 부속도시인 다운바일에 있네. 포르토스 강을 건너고 언덕을 두 개 정도 넘으면 나오지."


"부속도시요? 그곳은 백작령이 아닌가요?"


"원칙적으로 따지면 맞기는 하네만. 흠, 설명하자면 복잡하네. 지금은 내 땅이 아닌 그곳 라이터의 땅이라 보는 게 옳겠군."


세실은 자리에서 일어서 서둘러 배낭을 멨고, 백작은 또 골치 아프게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일어난 세실에게 다시 앉기를 권하며 그래 봐야 별수 없다는 듯 말했다.


"잠깐, 라이터가 허락하지 않으면 자네는 그녀를 볼 수 없네. 그, 그러니 우선 이야기라도 들어보게나!"


"라이터가 누군데요?"


"그래. 그것부터 질문했어야지. 그래. 자, 라이터는 그 땅의 기록자라네. 어프렌스의 묘지기와는 또 다른 존재지. 묘지기가 마을마다 한 명씩 있다면, 라이터는 어프렌스를 대표해 한 명밖에 없네. 그리고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조차도 수두룩하지."


"기록자는 무슨 일을 하죠?"


"자신의 이야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기록하네. 예언자의 역할도 하고 있고."


"그거면 됐어요. 라이터를 만나러 가겠어요."


세실은 메려다 만 배낭을 다시 메고 의자를 다시 공손하게 집어넣은 뒤 자리를 떴다. 바올 백작은 당황하여 자리에서 소리쳤다.


"아니, 세실! 그녀는 예언자이기 때문에, 자네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을걸세! 자네가 모르는 것까지도 말이야! 아, 그리고 만약 머물 곳이 없다면 이곳으로 돌아오게! 내 극진히 대접해주겠네!"


"고려해볼게요!"


세실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백작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세실은 다운바일을 향해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역시 빈손으로 가는 것은 아닐지 싶어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저기서 오블라텐 장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오블라텐 사려~! 맛있는 오블라텐~ 놔두었다 밤참으로 먹으면 더 맛있다오~!"


세실은 그에게 다가가 전병처럼 생긴 오블라텐 한 꾸러미를 구매했다. 그에게 동화 10닢을 그의 손에 쥐여준 뒤,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은 모르겠으나 고맙다고 말하고는 다시 재빨리 뛰어나갔다.


"고맙기는야, 내가 고맙..."


"잠시만요!"


"왜그러우?"


"서쪽 다리가 어디죠?"


"절로가면 됀다우."


"고마워요!"


달리고 달려 도착한 서쪽 다리는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무료해 보이는 얼굴을 한 채, 이따 금은 하품도 한 번 내쉬며 평화로운 주변을 지켰다. 한 청년이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달려오느라 진을 썼는지 거친 숨을 내쉬는 청년은 다리를 건너려다 신분증을 검사하려는 병사 둘 앞에 멈춰섰다.


"여기를 지나갈 때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나요?"


청년은 오블라텐을 하나씩 나누어주고는 물었다. 병사 둘은 과자를 한 입 베어 물고 오물거리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


"사람이 얼마큼 지나다니는지 알아야 하니깐 말입니다. 뭐, 그렇다 해도 이쪽 다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쪽으로 가면 갈 곳은 뱀 꼬리 산맥밖에 없으니까요. 혹시라도 출구를 착각하신 거라면..."


"알겠어요! 고마워요!"


등에 오블라텐 꾸러미를 멘 청년은 검사가 끝이 나자마자 고맙다고 소리치며 다리 위를 뛰어 지나갔다. 병사들은 마저 남은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세실은 긴 다리를 뛰어 지나간 뒤, 잠시 숨을 고르고자 자리에 멈춰섰다. 옆에는 커다란 산이 있었고, 그 뒤에도 산들이 있었으나 그 앞을 차지하는 높다란 산에 의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언덕이며 산이며 하는 것들이 시작하지 않은 곳에 선 세실은 그 장관을 잠깐동안 구경했다. 솟아오른 흙더미에는 나무들이 있어 그 흙을 산이라 칭하게 해 주었고, 이제는 봄이지만 계속해서 녹지 않을 눈들은 산 위를 소복이 덮었다. 눈이란 고된 차가움이었지만, 세실은 눈 덮인 산 아래는 따뜻함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가파름이 시작되기 전의 평평함에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이곳까지 달려온 이유. 단순하게 사람을 만나고자 했더라면 걸어와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세실은 있는 힘껏 달렸다. 언제는 그렇게나 싫었던 쇠 오름 내가 있었으나, 지금은 산이며 공기며 하는 세상 일부가 그 냄새를 덮어주었다. 속에 뭉친 답답함을 그렇게 풀어나간다. 발그레해진 그의 얼굴을 기분 좋게 스치는 차가운 공기를 한번 느낀다. 그렇게 세실은 세상의 변화와 자신의 변화 속에서 성장한 그를 만나보았다. 그 남자는, 꽤나 멋지고 때로는 막무가내였으며 이제는 자신에 대해서, 조금은 아는 남자다.


그래서 세실은 조금 들떠버렸다. 남이라면 비난했을 단호한 선택을 내린 진정한 자신을 생각하며, 이제는 자유로워진 그 자신을 기특하게 칭했다. 교황이 내린 자유령이란 다른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렇게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자 자신이 올라야 할 언덕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조금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등에는 지게 바구니를 메었다. 그 남자는 세실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라이터께서 갔다 오라 해서 왔늬... 아니 왔네. 귀한 손님이 왔다 해서 말이야. 따라오게. 서쪽 땅에 있는 왕 넷보다 더욱이 드물고 높은 분이 자네를 맞이하려 하시네."


그는 이렇게만 말하고는 등을 돌려 다시 왔던 길로 걸어가려 했다. 세실은 자연에 홀린 영혼을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린 뒤 그를 따라 걸어갔다. 언덕 하나를 넘고, 둘을 넘는다. 그리고 언덕 아래에는, 노래가 멈추지 않는 다운바일이 있었다.


세상을 엿보는 분께서. 당신을 맞이하네.

가장 고귀한 존재가. 당신을 지켜보네.

세상이 정해놓은 중간, 그 위, 그 아래.

더욱이 자신을 주시하며. 발을 굴러.


바보 같은 막스

불쌍한 기사.

그 위에는 너만이 있네.


사랑스러운 여인

정신 어린 소녀.

산시즈를 넘어서서...


바보 같은 막스

불쌍한 기사.

그 위에는 너만이 있네.


사랑스러운 여인

정신 어린 소녀.

산시즈를 넘어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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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7) 18.08.06 8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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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2) 18.08.01 7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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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추종심리 (1) 18.07.27 9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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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6) 18.07.24 78 0 11쪽
25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5) 18.07.23 8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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