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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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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po
작품등록일 :
2018.06.28 18:46
최근연재일 :
2018.08.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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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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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285

작성
18.07.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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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1)

DUMMY

북부의 전사는 결코 사냥에 실패하지 않는다.


레드웰이 동생과 남부에 와 있는 그 사이. 그러니깐 수많은 짐승들과 본능적인 전투에 임하고, 비록 이전에는 같은 제국의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적대 국가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수도 없이 구해본 결과, 두 남매는 이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할 것이라 감히 예상했다.


방랑자라는 사람들을 만났다. 모든 이들이 토를 달지 않고 그들에게 충성했지만, 레스녹츠 남매는 그들을 인정하지 못했다. 묵묵한 인상과 결단력 있는 행동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기사단장이라는 자리에 있을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둘은 에드윈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둘이 한꺼번에 덤비게. 시간이 없거든."


에드윈은 수도승들이 모인 훈련장에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에드윈. 아아, 재미있는 사람. 남매는 그를 향해 온갖 비속어와 웃음을 내지른 뒤 그의 손을 노리고 덤벼들었다.


저렇게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라면 손가락 한두개쯤은 자만의 대가로 받아들이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기사 한 명은 백 명을 상대한다. 등을 맞댄 기사 둘은 삼백 명을 상대한다. 예로부터 전해져 온 말이었다. 레드웰 레스녹츠와 그린웰 레스녹츠는 온몸을 살기로 두른 채 눈앞에 보이는 백 명을 죽이고자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그에게 덤볐다. 거대한 양손 검 두 개가 에드윈을 향해 달려들었다. 웅담과 웅장. 두 검의 이름을 뜻하는 곰의 쓸개와 곰의 발바닥은 남매가 처음 곰을 사냥해 먹었던 두 부위였다. 남매는 그날 검을 자신의 것으로 했고, 레드웰은 영광의 상처를 얻어냈다.


검날이 에드윈의 바스타드 소드를 긁어낸다. 에드윈의 검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도 가뿐하게 일격을 막아냈다. 어릿광대가 외줄을 타듯, 심심한 곰 한 마리가 겁에 질린 인간을 가지고 놀듯 말이다.


"왜 공격하지 않는 겁니까."


한참의 시간이 지났고, 그린웰은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동생은 물러났지만 레드웰은 계속해서 에드윈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공격은 궁지에 몰린 자들을 위한 수단이네."


레드웰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만 공격을 막아내며 입을 조물거리는 에드윈이 눈에 거슬릴 뿐이다. 레드웰은 괴성을 내지르며 검을 들어 올렸다. 검을 지르지 않는 기사에게 빈틈을 주지 않는 것은, 가만있는 바위에게 다가오지 말라 돌멩이를 던지는 짓이었다.


"그러니 휘두를 필요가 없지."


에드윈의 검이 반짝이는 물결을 일으키는 동시에 레드웰은 심장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고통이 몸을 타고 올라왔고, 다리에 들어간 힘은 그녀 자신을 무릎 꿇렸다. 하지만 에드윈은 검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그의 검은 제자리를 찾았고,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은 하늘을 날았다.


에드윈. 평민 출신인지 성조차 없는 사내.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레스녹츠 자매는 상처 하나 없는 몸을 일으키며 그의 이름에 대해 이러히 논했다.


'신조차 죽일 수 있는 사내.'


회상은 끝이다. 이제는 그녀의 앞에 있는 현실을 바라 보아야 한다. 눈앞에는 징그럽고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몸을 뒤틀었다. 에드윈은 물러서라 소리쳤으나 그녀의 앞에는 탐스러운 사냥감이 하나 있다. 북부의 사냥꾼은 결코 사냥에 실패하지 않는다. 또한 사냥에서 도망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소리쳤다.


"후퇴! 도망쳐라! 주민들을 통제하고 탈출로를 확보해!"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가 백여 명의 머릿속에 때려 박혔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들은 주춤하는 기색 하나 없이 이곳저곳으로 뛰었다.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자신들보다 한참 앞에 있는 레드웰을 버리고 도망가는 줄로만 알았을 것이나, 실상은 그와 달랐다. 병사들 중 그 누구도 자신들의 앞에 있는 뱀을 보고 겁먹지 않았다.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명령에 따랐다.


어떠한 전쟁, 혹은 싸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수도회와 수녀회를 건드리지 않는다. 분열 전쟁 때 식량이 떨어진 북부의 한 기사가 수녀회를 건드리고 모두 처참하게 죽은 사건은 그 사실을 더욱 확고히 해 주었다. 수도자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서쪽 땅의 유일종교인 사크라토르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고, 그것은 곧 서쪽 땅의 모든 것을 적으로 돌리는 짓이다. 비록 자신이 속한 국가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수도자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그들은 한평생을 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검술과 궁술, 기마술은 모른다 하더라도, 그들이 역경과 고행이라는 이름으로 배우는 고통스러운 수련은 보통 사람 한 명을 한 마리의 맹수로 만든다. 북부의 기사는 다름 아닌 수도승들에게 제압 당했다.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고국으로 돌려보내진 그들은, 모두 북부의 왕에게 처형당했다. 북부의 기사는 수도승들과의 전투에서 그들 뒤에 있는 위대한 존재. 신을 보았다고 주장했고, 그는 편안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런 병사들이다. 사크라토론에 열두 명의 기사들이 모인 것은, 수도승들을 이끌고 전장을 누빌 수 있다는 영광에 이끌려 온 탓이 적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수도승들은 기사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골목이란 골목의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켰다. 반항하는 자가 있다면 손가락으로 뱀을 가리키면 그만이었다. 노인이나 어린아이는 업은 채로 이동했고, 물밀 듯 움직이는 사람들을 침착하게 다루어냈다. 레드웰 또한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쳤다. 자신이 절대적 충성을 바치는 주군에게는 한 치의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른 이유는 필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방랑자이기 때문이다.


뱀은 계속해서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행히 몸을 흔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집이 부서지는 등의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에드윈은 건너편으로 눈을 돌려 말끔하게 청소된 대로를 확인했다. 에드윈이 고개를 끄덕였고, 험프티의 고개 또한 같게 움직였다. 먼저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간 건 험프티였다.


뱀은 빨랐지만, 험프티는 그보다 더했다. 이전에는 말과 같이 달렸으나 이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그누스와 호각을 겨루는 유일한 상대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녀는 런들대거를 역수로 쥔 뒤, 암벽을 오르듯 뱀의 몸을 올랐다. 마침내 뱀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건물들은 삽시간에 무너져내렸다. 돌로 지어진 집들은 뱀의 비늘에 갈리고 갈려 자갈에서 모래로 변했고, 나무로 지어진 집들은 부서지면서 저 멀리 파편이 튀기도 했다. 인간이 맞으면 죽는 파편이었다. 그리고 모든 건물이 자취를 감췄고, 조금의 소란이 끝이 났다. 이 행동을 조금의 소란이라 칭할 수 있는 자는 에드윈뿐이었다.


에드윈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소리와 흙먼지에 모든 것이 몽롱했으나 머리는 차가웠다. 그가 살아있는 이유가 되는 이 차가운 머리는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만들어 주었다. 뱀의 몸에 검을 들이박는다. 그리고 등반을 시작한다. 험프티는 이미 뱀의 머리에 칼을 들이박고, 떨치지 않으려 갖가지 악을 쓰는 중이었다. 뱀의 몸은, 무겁고 긴 양손 검을 지닌 에드윈에게는 더욱 힘든 고행길이었다. 검을 비늘 속으로 쑤셔 넣고, 속을 파내듯 앞으로 이동한다. 이전의 상처들은 모두 금방 재생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빠! 어서!"


험프티의 낮은 목소리는 높은 비명으로 바뀌었다. 에드윈은 확실하게 칼을 박았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갈라지는 고통이었다. 좌우로 기묘하게 움직이는 뱀의 춤은 눈앞의 세상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너무 느렸고, 시간은 없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애썼다. 한 손으로 무게를 버텨야 했기에 팔이 뜯겨 나가는 고통이 동반되었다. 마침내 주머니에서 소중한 것을 잡아챈 그는, 칼을 꽂아 넣은 상처에 물을 흘려보냈다.


다른 이들. 특히 마그누스는 당최 왜 들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깨지지 않게 단단한 병에 보관해 놓은 투명한 액체. 성수를 주입 당한 사냥꾼은 작은 소란을 멈추고 자리에서 정지했다. 에드윈은 칼을 뽑고, 미끄러지지 않으려 균형을 잡고, 그가 낼 수 있는 가능한 한 빠른 속도로 몇 번 발을 움직인 뒤, 검을 역수로 쥐고, 슬라이딩 하듯. 타나토스의 머리에 검을 단단히 박아 넣었다. 바로 옆에는 같은 자세의 험프티가 있었다.


"험프티, 너 눈 벌게졌다."


그리고 자극 때문에 일어난 커다란 움직임. 대지가 갈라지고 세상이 요동쳤다. 모든 것이 뒤바뀜과 동시에 온몸의 뼈가 부러지기 시작했다. 검을 쥔 둘의 손바닥은 살점이 뭉개져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서, 에드윈은 또 한 번 병을 꺼내는 데 성공했다.


흘려보낸다. 잠잠해진다.


손에 힘을 풀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몇 번이나 죽음을 맞이한 둘은, 시간을 버텨내고 자리에 앉았다. 에드윈은 거친 숨을 한 번에 몰아쉰 뒤 가방을 뒤적거렸다. 궤짝을 꺼내고, 뚜껑을 연다. 안에는 성수 네 병이 빛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 험프티. 정신차려."


조금의 고요한 시간동안 둘은 모든 것을 만끽한다. 험프티는 잠깐 명상에 잠겼고, 에드윈은 성수를 꺼냈다. 고요한 시간이 끝나기 바로 직전, 에드윈은 또 한 번 상처에 그것들을 흘려보냈다. 꽤 고생해서 만든 것들이었다. 바쁜 사람을 붙잡아 놓고 몇 번이고 부탁해서 만들었다. 네 개를 만드는 데 몇 달이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둘이 앉은 자리는 이제 완전히 고요해졌다. 에드윈은 박힌 검을 도로 뽑았다. 험프티도. 그리고 더는 재생되지 않는 상처에서, 강렬한 바람이 생명의 숨결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들이 앉은 왕좌는 재가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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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2) 18.08.01 77 0 9쪽
» 잃어버리는 이야기 - 열네번째 죄책감 (1) 18.07.31 84 0 10쪽
32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무번째 비겁함 (2) 18.07.30 80 0 10쪽
31 잃어버리는 이야기 - 스무번째 비겁함 (1) 18.07.29 7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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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잃어버리는 이야기 - 첫번째 두려움 (5) 18.07.23 8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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