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루드비히 백작 (4)
루드비히 백작 (4)
끔찍했다.
빌리브로트는 카인과 루드비히의 대화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벌인 전투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대악마의 현신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현실이라고 인식할 수도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일차 외변형이 그래도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면 이차 외변형은 말 그대로 악마 그 자체였다.
루드비히의 사악한 얼굴은 더욱 악마적으로 변해 있었고 그의 얼굴 양 옆에는 염소와 산양의 얼굴이 각각 달려있어 이미 인간의 범위는 벗어난 듯했다.
하반신에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맹수의 다리와 파충류의 다리처럼 보이는 각종 혐오스러운 동물들의 다리가 달려있었는데 그 혐오스러운 다리들의 주인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다리들 중 하나에는 끔찍한 뱀 혹은 용의 얼굴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등에는 거대한 날개와 악어의 것과 같은 꼬리도 달려있었다.
빌리브로트는 문득 어린시절 우연히 보고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던 공포스러웠던 악마의 삽화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삽화를 그린 화가는 분명히 악마를 직접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화가가 지금의 악마, 루드비히를 보았다면 감히 자신의 그림에 ‘악마’ 라는 제목을 붙이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빌리브로트는 어린 시절 본 삽화가 천사의 그림을 본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며 오랜 기억을 수정했다.
카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것은 공포에 의한 것이 아닌 역겨움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카인은 그 역겨움을 빨리 해소하고자 자신의 감각의 최대한 개방했고 그의 저주받은 동료 벨제붑에게 자신의 피를 나누어 주었다.
새로운 악귀와의 전투는 기존의 양상과는 달랐다. 우선 루드비히의 외변형 아니 대변형은 그동안 없앴던 죄악의 산물들보다 더 끔찍하고 거대했다. 또한 그 끔찍함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마치 계시록의 종말에서나 나올 법한 악마의 것이었다.
확실히 악귀 루드비히는 수많은 생명을 원천으로 악의 힘을 키운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체사례가 만들어낸 것들보다 더 정교하고 강했으며 지능도 높을 것이었다.
최고의, 최악의 적을 만난 것이다.
악귀 루드비히는 거대한 본체를 움직이지 않고 그의 역겨운 팔이나 꼬리를 이용해 카인을 공격했다. 그 공격은 단지 물리적인 파괴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팔과 꼬리에 맺혀있는 검은 기운은 스치는 모든 것의 생명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물질의 근원이 되는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 같았다.
시체는 물론 무생물인 벽돌조차 그것에 스치면 고유의 색채를 잃고 검은 빛으로 말라 비틀어졌으니 말이다.
카인은 감히 그것에 대항하지 않고 시간을 끌며 악귀를 관찰했다.
물리적인 약점은 없어보였다. 너무나 단단해 보이는 외피와 상처를 입어도 금방 회복되는 재생력까지...
모든 죄악된 그릇들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그 특성들이 더욱 강화된 루드비히였다.
그렇다고 해서 정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경험을 통해 시간을 끌면 악귀들이 자멸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만 루드비히의 피의 보유량은 다른 것들에 비해 현격히 많기 때문에 며칠이 걸릴 지 모를 일이었다.
물론 카인은 그 방법을 선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와 같은 형질의 동료인 벨제붑이 그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카인의 피와 의지를 흡수한 벨제붑은 카인과 하나를 이루었다. 그것은 최근에 깨달은 새로운 발전이었는데 카인 스스로 악귀화가 되는 것이 아닌 벨제붑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카인의 오른팔은 마치 벨제붑에게 감염된 것처럼 검붉은 유기체로 합쳐져 있었다. 마치 오른팔만 악귀화가 된 것처럼 말이다.
카인과 벨제붑은 지난 시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더 강해진 것이다. 그들이 흡수한 저주받은 피만 해도 엄청났다. 브레멘 평원에서 나태의 죄악을 시작으로 이미 질투, 탐욕, 식탐, 색욕의 악귀들을 모두 처단했고 그들의 원천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강해진 것은 피를 흡수한 벨제붑이었고 카인은 그것을 다루는 데 능숙해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이었다.
악귀들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더 흡수하길 원하는 벨제붑의 의지와 카인의 분노가 한 뜻을 이뤄 악귀의 그것보다 더 파괴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대지가 울리고 공기가 증발하는 대격전이었다.
천사와 악마의 대결 혹은 신들의 전쟁이 그럴까? 그것을 보고 있는 빌리브로트와 리나는 당장 죽어도 이상할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승부는 정해져 있었다. 편법으로 강해진 그릇에는 한계가 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상대는 악의 순수로 만들어진 카인이었고 다섯 죄악을 흡수한 벨제붑이었다.
카인의 오른손에서 펼쳐지는 검은 기운, 아니 암흑에 가까운 검기는 결국 악귀 루드비히의 본체를 절단 내기 시작했다.
루드비히의 생기를 흡수하는 검은 기운이 카인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암흑에 기운에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사지와 꼬리가 잘린 악귀 루드비히는 더 이상의 공격을 할 수 없었고 심장에 검이 박힌 채로 자신이 평생을 바쳐 모은 위대한 피가 그의 몸에서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유출된 피는 벨제붑이 탐욕스럽고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당신의 모든 피를 빼앗지 않을 것이니 대제사장의 행방을 말하시오.”
카인은 마지막 경고를 하고는 루드비히의 심장에 박힌 벨제붑을 뽑았다. 그러나 언제든 다시 찌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겁을 먹은 루드비히는 영생은커녕 일 년치도 남지 않은 피를 보며 공포에 떨었다.
“다음 모임은 뮌헨에서 있을 것입니다. 석 달 뒤 가장 달빛이 옅은 날 뮌헨에서 가장 어두운 곳을 찾으면 될 겁니다. 당신께서는 이 정도 말만으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 입니다.”
루드비히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늘 달빛이 옅은 날 가장 어두운 곳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장소는 어둠의 기운을 느끼는 자들만이 알 수 있었기에 언급되지 않았다.
카인은 루드비히의 말처럼 죄악과 어둠, 검은 물질을 세상에서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자들 중 하나였기에 장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소녀들을 죽였지?”
“정확히 모릅니다. 아마도 수백 명은 될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릇을 만드는데 사용됐고 저를 위해 사용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당신의 몸속에 흐르는 영생의 원천을 만드는 데에도 저의 공로가 가장 클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루드비히는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점점 비굴해졌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카인이 수백 명의 소녀를 살해한 악마를 살려둘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지막 루드비히의 덧붙임 말은 카인의 바뀌지 않을 결심은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좋다, 더 이상 피를 뺏지는 않겠지만 그 피가 머무는 네 죄악의 육신은 소멸시키겠다."
"그건, 약속이 다르잖..."
고민을 끝낸 카인은 약속대로 루드비히의 모든 피를 빼앗지는 않았지만 그의 몸을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분쇄했다. 루드비히의 육신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얼마 남지 않은 그의 피와 뒤엉긴 채로 바닥으로 흘렀다. 그와 함께 그의 위대했던 영생의 꿈도 차가운 돌바닥으로 꺼져버렸다.
한동안 고요가 계속되었다. 그 고요를 깬 것은 카인이 끔찍한 피와 살의 응고물을 파헤치면서 시작됐다.
카인은 루드비히의 수백 조각 난 시체 더미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옆에 있던 빌리브로트와 리나라는 소녀는 평범한 인간들이 갖는 생존본능이자 원초적인 동지애로 서로를 끌어 앉은 채 얼어있었다.
곧 카인 무엇인가를 찾아서 집어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루드비히의 엄지손가락이었다. 그는 집어든 엄지손가락을 바닥에 고인 피에 적셔 그들의 용병으로서의 신성한 임무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미 의뢰인이 죽었기에(심지어 카인이 그들의 의뢰인을 직접 죽였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의뢰 완료.”
카인은 아주 조그마한 혼잣말로 말했지만 그 누구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성에서 그 실낱같은 소리는 마치 일주일을 굶은 늑대들의 후각을 자극하는 피의 냄새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냄새와 같은 소리의 파동은 빌리브로트의 고막을 진동시켰다.
“미...미..친, 이 상황에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희미한 미소까지 짓고 있는 파비안을 본 빌리브로트는 방금 전까지 보았던 끔찍한 대악마보다 더 사악한 무엇인가를 대면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다행이고 확실한 것은 성에 사악한 기운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빌리브로트도 어둡고 음울했던 성 내부가 밝아졌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주장에 근거를 더해주었다.
“돌아가시죠. 우리의 의뢰는 완료되었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카인의 말에 빌리브로트는 감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방금 전까지 그가 동지애를 가지고 끌어안고 있던 리나라는 소녀였다.
“이 소녀는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는 이제 그 소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의뢰인도 죽었으니 그녀의 모든 것은 그녀 스스로의 의지대로 되겠지요. 다만, 지금 성 지하실에 아직 많은 소녀들이 갇혀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 열쇠로 소녀들을 풀어주십시오.”
카인은 루드비히가 가지고 있었던 열쇠를 빌리브로트에게 건넸다.
“오늘의 일은 모르는 척하시는 것이 스스로에게 좋을 것입니다. 특히나 끔찍한 괴물을 본 것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제 경험상 그런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것은 타인들에게 의심과 불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그렇겠지... 지금 나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데 그 누가 믿겠나?”
빌리브로트는 진심으로 말했고 리나라는 소녀 역시 고개를 소심하게 끄덕이며 카인에 말에 긍정의 표시를 했다.
사실 그들은 이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경험을 영원히 그들의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또한 그들은 이를 위해 기꺼이 오늘의 일을 한밤중에 겪은 지독한 악몽들 중에 하나로 치부할 적극적인 의사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늘의 기억을 상기시킬 만한 일말의 언행을 하기는커녕 그것을 떠올릴만한 아주 작은 생각의 파편들조차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 떨쳐버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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