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하성군(河城君) - [4]
하성군과 대작을 나누고 있어야 할 정철을 문 앞에서 발견하자 크게 놀란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서로 탐색을 벌이던 도중.
“...들으셨습니까?”
입을 먼저 열자.
“어디까지 들으셨습니까?”
“하성군이 어좌에 앉으면 큰일이 난다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숨김없이 나에게 얘기를 한다.
문을 열고 마주쳤던 당황한 표정은 사라지고 태연하게 나를 바라보는 정철.
그를 보는 나의 눈빛에 살기와 흥미로움이 공존한다.
“...제가 그대를 당장 죽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아십니까?”
입막음.
그가 훗날 서인의 영수가 잠시 동안 될지라도 내가 세운 계획에서는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림을 대표하는 퇴계이황.
하지만 하성군이 선조로 즉위하고 이조전랑의 자리를 놓고 갈라진 것이 바로 동인과 서인이다.
서인과 동인 구분 없이 중용하지 않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분명 방계출신이지만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하성군과 어좌를 언급했기 때문이죠?”
“그대가 하성군과 술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철.”
그의 이름을 부르며 허리춤에 묶여져 있는 환도를 만지자
“저의 이름도 알고 계셨습니까?”
죽인다는 언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태연하게 내가 이름을 불렀다는 사실을 얘기하며 놀라워한다.
왠지 말리는 기분이 들어 정신을 바로 잡고 주변을 살피며 정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확인을 하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변에 있던 기녀들을 전부 보냈습니다.”
“...보냈다?”
곧장 죽일지 말지 결정을 하는 도중 정철의 음성의 귓가에 꽂힌다.
“무엇 때문입니까?”
“제가 그대의 뜻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정철은 화답을 하며 살기를 띈 나의 눈빛을 고요하게 바라본다.
* * *
집에 돌아온 이순신은 곧장 사랑채에 들어와 자리에 앉아 방금 전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하며 혼란스러워 한다.
‘저는 하성군이 싫습니다. 하지만 주상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는 왕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름에 답했을 뿐입니다.’
그럼 경양군 사건 때 하성군과 정철의 모종의 거래로 이루어졌던 자작극이 아니었단 말인가?
‘성리학자들과 친분이 두터우니 나를 도와달라고 말씀을 하더군요. 솔직하게 아무리 총명하다고 할지라도 16살(1552년 출생)의 치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즉,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하성군은 먼저 정철에게 접근을 했고 그것이 무산이 되자 앙심을 품은 하성군은 경양군을 꼬셔 정철의 처가의 재산을 훔치게 하려고 했다는 건가?
하성군... 즉, 선조는 이미 정철을 불렀을 때부터 그의 강직함을 알아차렸고 승낙과 거절 두 개의 선택지를 준비를 했다는 것이군.
물론 이러한 가정들도 정철이 나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거짓으로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를 거기서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정당방위인 것처럼 꾸며 무방비인 그를 기루에서 죽여도 큰 문제가 있었다.
그가 말을 했던 것처럼 친분이 두터운 성리학자들과 사림의 유생들이 들고 일어나 조정에 상소를 보내겠지.
그럼 전생에서 나의 목숨을 살려주었던 정탁 어르신과 나의 식솔들까지 위험해진다.
‘골치가 아프다.’
백성들을 버렸던 임금을 또 다시 만났지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였고 이황 선생님의 소개로 만난 정탁 어르신도 설득하지 못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앓는 소리를 내며 비스듬히 열린 장지문 사이에 비추는 희미한 달빛을 바라본다.
“지금의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정녕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서서히 권력의 욕심으로 인해 변해가는 성리학자 그리고 광활한 대지를 적시는 백성들의 피를 또 다시 봐야할 것 같아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는다.
‘이청진 군수에게 서신을 보내야 할까?’
물경 3,000명의 정예 병사를 이끌고 있는 이청진 군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같은 그는 나의 연락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손은 멈춘 채 서신을 쓰지 못한다.
‘같은 백성끼리 피를 흘리기 싫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내분을 일으킨다면 가장먼저 백성들의 삶에 큰 피해가 올 것이며 무력으로 세운 나라는 오래가지 못했다.
피로에 지친 이순신은 몽롱해지는 정신으로 그저 달빛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데.
“꿈인가?”
열린 문틈 사이에 정탁이 보이는 것 같아 중얼거리자 그것을 들은 듯.
“손님이 왔는데 뭐하시는 건가?”
뒷짐을 지고서 몸을 돌려 내가 보던 달빛에 시선을 둔다.
꿈에서라도 그에게는 예를 표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며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 몸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는 정탁의 옆에 다가가
“어떻게 오셨습니까?”
“소리도 듣지 못했는가?”
정탁은 혀를 차며 질책한다.
그제야 나의 시야에 보이는 하인.
하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잠자코 있다.
“아무리 자네를 불러도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아 직접 이곳으로 왔네.”
“송구합니다.”
고개를 푹 숙인 하인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얼른 자리를 비켜달라는 눈짓을 보낸다.
나와 정탁.
달빛 아래에 남게 되자
“어찌하여 오셨습니까?”
“자네는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인가?”
나의 물음에 그는 답한다.
“어떤 대답을 원하십니까?”
이미 그에게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
그것을 뻔히 아는 그가 나에게 묻는 연유가 무엇일까?
“이황 선생님의 앞에서 사림을 부정했다지?”
“사림의 근간이 되는 성리학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성리학을 익히는 조선의 신료를 부정한 것입니다.”
“신료는 자네와 나도 포함되어 있네만?”
너도 변질되지 않았냐는 물음.
그것에 쉬이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
“그렇다면 자네는 변질된 신료들을 바꾸고 싶은 것인가?”
“아닙니다.”
이 대답은 즉각 말을 한다.
나에겐 변질된 신료들은 의미가 없다.
이 나라에 왕실이 있는 한 권력을 탐하는 새로운 신료들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단순히 신료들만 바꾸는 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자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설마 진정으로 백성들을 살피기 위해 역모를 생각하는 것인가?”
이제야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나를 바라보며 평온한 어조로 얘기하는 정탁.
“긴 꿈을 꾸었습니다.”
“긴 꿈?”
나의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꿈에서는 조선의 백성들은 시체가 되어 들판에 널려 있었고 우리들의 터전은 완전히 박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믿었던 하성군. 그자는 백성들을 버리고 피난의 길을 떠났습니다.”
직접 겪었던 왜구의 침략.
그로인해 고통 받았던 백성들의 모습.
담담히 말을 하려고 하지만 과거의 풍경이 되살아나 자연스레 살기가 묻어나온다.
“임금은 무엇입니까? 조선의 어버이가 아닙니까? 그런 어버이가 백성들을 버리고 어찌 도망칠 수 있단 말입니까?”
도망만 쳤다면 차라리 이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적통 광해군을 도성에 버려둔 채 그대로 벗어난 그의 행동은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다.
“혹여, 그 꿈을 꿔서 역모를 일으키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겠지?”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럽게 묻는 정탁.
‘도와주시는 것일까?’
늦은 밤.
아까 전부터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정탁이 여기까지 찾아온 연유는 딱 한 가지.
다시 한 번 나의 얘기를 듣고 판단하기 위해서다.
천재일우[千載一遇].
마지막 기회.
“허무맹랑한 꿈으로 영의정과 하성군 더 나아가 문정왕후의 뜻을 꺾어야 합니다.”
주상전하(명종)의 직계혈통은 지금까지 1명. 그마저 요절했고 후계자의 자리는 방계가 차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 누굴까?
‘문정왕후.’
주상전하가 즉위했을 당시부터 수렴청정으로 조정의 권력을 움켜잡았고 수렴청정이 끝난 지금도 주상전하보다 더욱 강력한 권력을 손에 잡고 있다.
주상은 생각했을 것이다.
만일 적통을 생산한다고 하여 문정왕후가 살아있는 한 바뀌는 것은 없었을 것이라고.
특히 병약하셨던 주상은 차라리 자신의 적통에게 왕위를 물려줘 또 다시 자신의 일을 겪게 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만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성군.’
명종은 방계출신 왕자들을 한곳에 모아 감투를 준적이 있던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린 왕자들은 너도나도 감투를 썼지만 하성군 만큼은 특별한 이가 쓰는 것이라며 쓰지 않았다고 한다.
총명하다.
하성군의 명칭을 내리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주상.
그 일면에는 하성군을 보위에 오르도록 일화를 만들게 도움을 줬던 문정왕후가 있지는 않았을까?
“영의정, 하성군, 그리고 문정왕후마마라...”
두 눈을 감고 나의 말을 음미하는 정탁.
이윽고 눈을 뜨며
“조선의 하늘. 그것은 주상전하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머뭇거리며 주상전하가 있는 궁궐 쪽을 바라보더니
“하늘을 받치는 것은 백성이지.”
“그 말씀은?”
“내 기꺼이 너를 돕겠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권력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나의 칼날은 너의 목에 갈 것이다.”
“바라던 바입니다.”
그의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웃는다.
-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3000자~4000자 사이로 연재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5000자 이상의 분량으로 독자님들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내일부터 명절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 기원드리며
되도록... 여러분들께 연참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응원해주시면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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