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대비(對備) - [2]
[순천도호부사 권준, 방답수군첨절제사 이순신(무의공武毅公), 사도수군첨절제사 김완, 녹도만호 정운, 낙안군수 신호, 전라좌도수군영의 군관 송희립, 전라좌도수군영 군관 나대용, 광양현감 어영담.]
이순신의 손이 움직이자 깨끗했던 서책에는 이름들이 생긴다.
‘우선적으로 다시 만나야 한다.’
왜구들에게 짓밟혔던 조선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쳤던 용맹한 부하들이 떠오른다.
아직은 어리겠지만 인간의 본성은 어디가지 않는 법.
그들과 함께라면 지옥을 방불케 했던 전쟁에 다시 동참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붓을 쥐고 머릿속에서 지나가는 인물들의 이름을 다시 적는다.
[영의정 류성용, 광주목사 권율, 전라도수군절도사 선거이.]
방점을 찍자 새롭게 나타난 3명의 이름.
오랜 친우이자 조선을 위해 함께 맞서 싸웠던 류성용. 조정에서 일하고 있던 류성용이 소개시켜주었고 훗날 서로 수신을 주고 받으며 지기를 나눴던 권율.
녹둔도에서 만나 여진족을 함께 물리쳤으며 왜구의 섬멸에 큰 도움이 되었던 선거이의 미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이라면 나의 목숨을 맡겨도 되겠지.”
백성들에게 어진 임금은 아니었던 주상전하(선조)도 그들의 능력은 높이 사 큰 공훈을 세울 수 있게 협조적으로 나섰던 인물들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
생각이 나는 자그마한 전투라도 일일이 서책에 옮겨 적던 도중.
“...원균.”
나의 삶 중 가장 큰 원흉은 왜구가 아닌 같은 조선인이었던 원균이라는 장수.
그는 부하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무지한 사람이었다.
‘어찌할까.’
자신도 모르게 서책에 적힌 원균의 이름을 보고 긴 시간을 고민을 한다.
왜구들에게 바닷길을 열어준 것도 모자라 판옥선마저 넘겨줬던 역도와 같은 인물을 그냥 모른 척 지나가야 할까?
“수많은 백성들을 위해 내가 지옥에 가리...”
끝내 원균을 어찌 할지 고민을 끝낸 나는 붓으로 원균의 이름 위에 살(殺)을 적는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여물지 않는 육체를 단련하며 다가올 전쟁을 위한 계획을 작성한 이순신은
“건강히 돌아오리다.”
포대기에 감긴 아기를 든 방수진을 향해 희미하게 웃고서는 훈련원 별과 응시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
* * *
자신은 한 평생 무관으로 살다가 죽었지만 나의 가문은 뼈대 있는 문관 가문이었다.
“아우! 오랜만일세. 결혼을 한 후 신수가 좋아졌네.”
“성용 형님도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고리타분한 서책 속에서 잘 지냈지.”
별과 응시를 보기 전 전부터 교우를 지내던 류성용과 주막에서 만나 그간 만나지 못했던 회포를 풀기 시작한다.
“글쎄...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막걸리 한 모금을 마신 류성용은 얼굴이 붉게 물들며
“이황 선생님이 나에게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네.”
훗날 미래에서는 회포를 풀 때마다 이황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던 것을 자랑을 할 정도로 존경심이 많았었지.
“대단하십니다.”
평생 들었지만 질리지 않는 자랑거리.
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히며
“성균관에서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자네도 어서 사마시에 응시해서 들어오게나.”
사마시라...
다른 말로는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시된 과거.
문관 가문에서 태어난 내가 당연하게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 류성용의 얼굴을 바라보며
“형님.”
“왜 그러냐? 혹시 탈락할까봐 두려운 것이냐?”
짓궂은 농을 하며 진지해진 나의 표정을 풀려고 하는 그에게
“저는 사마시를 보지 않을 겁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더냐? 네가 사마시를 치르지 않겠다고?”
나의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분명 문관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하지만...
“저는 무관이 될 겁니다.”
눈이 크게 떠지는 류성용은
“무관이라니? 헛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아니지? 네가 무관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농이 아닙니다. 저의 진심입니다.”
그의 눈빛을 마주치며 얘기하자 들고 있던 사발을 떨어트리며
“...정녕 무관이 될 셈인가?”
“네, 그렇습니다.”
표정이 진중해지며 나의 모든 신체를 샅샅이 훑어보며
“이미 준비를 했구나.”
“내일 훈련원 별과에 응시할겁니다.”
“그래.”
문관이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무관들은 문관들에게 천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이 길을 선택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왜구와 오랑케들을 섬멸. 그것 외는 없다.
“저는 조선의 장군이 되겠습니다. 조선의 모든 적들을 섬멸하는 선봉장으로 설 테니 형님은 조정에 들어가 큰 인물이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영특한 류성용은 곧장 이해를 하고서 떨어트린 사발을 다시 집어 들고 소맷단으로 쓱쓱 문질러 막걸리를 따라 한 모금 마신 뒤.
“무슨 일 있느냐? 혹시 조부의 기묘사화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말고...”
“조부님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문관시험에 응시할 수 없는 자격이 없어서 무관으로 바꾼다고 생각한 류성룡의 목소리가 커지며 나를 달래지만 나는 고개를 젓는다.
“형님 저는 백성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주막 담장 너머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거대한 봇짐을 메고 걸음을 재촉하는 보부상.
빨래감을 들고 근처에 있는 개울을 찾아가는 아낙네들.
힘이 없는 그들은 왜구들의 신식무기인 조총과 칼에 의해 허무하게 스러져갔다.
“제가 무관이 된다면 문관으로 지킬 수 있는지도 확신 못하는 것을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숱한 전장을 누비며 체득한 무예와 경험.
조선의 모든 해안가의 지리.
그 모든 게 22살의 나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
“백성을 위해서라고?”
“결코 무관으로 도망치는 게 아닙니다.”
그제야 사발을 쥔 채로 멈춰있던 손을 움직이며 시원한 막걸리를 마신다.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라...”
류성용은 나의 말에 고심이라도 하듯 작게 중얼거린다.
* * *
“후우...”
과녁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다가 팽팽하게 잡아당긴 시위를 놓자 걸려있던 화살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날아가 꽂힌다.
“10점이오!”
날린 화살이 어디로 꽂혔는지 확인하던 감독관은 이윽고 들고 있던 깃발을 올리며 고함을 지른다.
‘앞으로 한 발.’
화살통에 남은 화살을 시위에 붙여 오른팔을 뒤로 쭈욱 잡아당긴다.
과거로 돌아온 나는 전성기의 육체 그 이상을 넘겼다.
무관에 합격했을 때는 이미 이립(30세)을 넘겼었지만 지금은 약관(20세)에 불과하다.
미동도 하지 않는 오른팔을 가슴에 붙여 고정을 한 뒤 과녁에 조준을 하며 숨을 멈춘다.
티잉!
“10점이오!”
모든 응시를 치르고 며칠 뒤 시험장 앞에 붙은 합격자 명단을 확인한다.
이순신(李舜臣) 합격(合格)
“...붙었다.”
과거에는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져 불합격을 받아 긴 시간을 허비했지만 지금은 당당히 합격을 했다.
“전부 막아주마.”
곧 조선에 상륙할 왜구들을 생각하며 분노를 불태운다.
- 작가의말
추천 선호작을 눌러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댓글을 남겨주셔서 큰 힘이 났습니다.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24